34 이탈스파냐

서로박: 보카치오의 '데카메론' (2)

필자 (匹子) 2021. 8. 6. 10:17

양피지에 기록된 보카치오의 글

 

특히 놀라운 것은 서클의 참가자들이 첫 번째와 아홉 번째의 날에 아무런 특정한 주제 없이 자유분방하게 이야기를 나눈다는 사실입니다. 이 대목에서는 디오네오 Dioneo라는 거친 악동 한 명이 등장하여, 앞으로의 진행 과정에 관해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디오네오는 마치 모임에서의 사회를 맡듯이, 참석자들에게 앞으로의 진행과정을 알려줍니다. 그는 저자인 보카치오를 대변하는 인물인 셈이지요. 디오네오는 자신의 본능을 최대한 발휘하여 매일 서클의 분위기가 즐겁고 안온하게 자리하도록 노력합니다. 여기서 나타나듯이, 보카치오는 비판적 리얼리스트로서의 역할에 충실하게 주어진 현실을 치밀하게 관찰하여, 모든 것을 묘사했다는 점에서 놀라운 재능을 발휘하고 있습니다.

 

작품은 중세 말기의 기사들, 시민들, 성직자들, 귀족 부인들, 수공업자들, 농부들 그리고 장난치는 악동들의 삶을 빠짐없이 다루고 있는데, 이들의 삶은 독자들에게 낯설게 다가옵니다. 특히 사랑의 장면을 묘사할 때 보카치오는 민중들이 즐겨 쓰는 특유의 속어, 유머러스한 구어체 표현을 아낌없이 활용하였으며, 때로는 여러 장면을 쉽고 재미있게 생생한 언어로 서술하였습니다. 그렇기에 상류층 여성들이 『데카메론』을 접할 경우 그들은 한편으로는 겸연쩍음으로 얼굴을 붉히겠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낭독자와 함께 웃음을 터뜨릴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친애하는 B, 어쩌면 당신은 이러한 가볍고 경박한 이야기에 눈살을 찌푸릴지 모릅니다. 그렇지만 부카치오의 재미있는 연애 이야기, 남녀들의 농탕질 등은 성도덕의 잣대로 고찰할 때 부도덕한 문란함에 기인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들은 오히려 기독교와는 다른 세계에 살아가는 사람들의 현세에서의 체험에 근거하는 이야기들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보카치오의 이야기들을 중세의 도덕적인 기준으로 평가해야 할 게 아니라, 현세의 삶에 대한 기쁨과 감각적 세계에 대한 예찬이라는 측면에서 적극적으로 수용해야 할지 모릅니다. 작품을 읽는 독자들은 보카치오가 의도한 대로 거칠고 외설스러운 표현, 연애 유희들로 인하여 인간적 쾌활함에 대해 웃음을 터뜨릴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농사짓는 여자들이 남편 몰래 수사들과 만나서 숲속에서, 혹은 방앗간에서 즐기는 은밀한 정사 이야기, 젊은이들이 성적 호기심을 주체할 수 없어서 동네 처녀들과 행하는 온갖 연애 유희의 이야기 등은 독자의 마음을 설레게 하고 웃음을 터뜨리게 만들지만, 이룰 수 없는 사랑으로 번뇌하다가 끝내 자신의 연인을 포기할 수 없어서 목숨을 끊는 이야기는 독자를 몹시 슬프게 만듭니다.

 

친애하는 B, 신영복 선생은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에서 결혼의 의미를 다음과 같이 말한 적이 있습니다. “나는 그 (혹은 그미)와 함께 살면서 더 나은 인간이 되고 싶습니다. I'd like to be a better person with ihm (or. her)” 이는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요? 돈도, 재물도, 나이도, 명예도 결혼의 조건이 될 수 없으며, 더 나은 인간이 되려는 마음이 결혼 조건이자 궁극적 목표라는 것입니다. 어때요, 놀랍지 않습니까? “한 인간은 누군가를 사랑함으로써 진정한 삶의 용기를 지니게 되고, 고결한 인간으로 거듭나게 된다.”는 것은 놀랍고도 멋진 생각이 아닌지요?

 

아름다운 사랑은 이렇듯 한 인간의 인생관마저 뒤흔들어놓을 수 있습니다. 다시 『데카메론』으로 돌아가기로 하겠습니다. 등장인물 디오네오는 지금까지 무례한 느낌을 들게 만들 정도의 경박하고 장난스러운 성적 향유를 언급했지만, 마지막에 이르러서는 이와는 반대로 사랑으로 인해 더 나은 사람으로 거듭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습니다. 예컨대 고결한 정조에 관한 이야기는 참으로 감동적입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그리젤다 Griselda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구아티로 왕은 몇 년 전에 농부 출신의 그리젤다를 왕궁으로 불러들여 함께 살았습니다. 그미는 30대 후반의 눈부시게 아름다운 여자였습니다. 그리젤다는 왕의 아들을 낳기도 하였습니다. 그러자 왕에게는 그미와 결혼할 마음이 생겼습니다. 그래도 왕은 그리젤다의 속내를 속속들이 알지는 못하고 있었습니다. 시험 삼아 왕은 그미를 법정에 세웁니다. 이때 그는 그리젤다가 오래 전에 딸을 살해했다고 말합니다. 그리젤다는 깜짝 놀랐습니다. 그미는 약 20년 전에 딸을 출산했는데, 실수로 그만 딸을 시장터에서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구아티로 왕은 어린 딸을 살해한 혐의로 죽여야 마땅하지만, 고의가 아니므로 그리젤다를 추방시키겠노라고 일갈합니다. 뒤이어 왕은 신하들 앞에서 조만간 알미레나라는 젊은 여인과 혼인하겠노라고 공언합니다. 신하들은 어리둥절해 합니다. 그들 가운데 알미네라를 아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나중에 알미레나는 주인공의 잃어버린 딸로 밝혀지게 됩니다.) 사실 알미레나는 우여곡절 끝에 마지못해 입궐하게 되었습니다. 왕이 자신을 간택하였으므로, 그미는 사랑하는 남자 에르네스토와 헤어진 다음에 궁궐에서 눈물로 시간을 보냅니다.

 

임신한 그리젤다의 모습

 

다른 한편 그리젤다는 아들과 함께 옛날에 살던 자신의 초라한 집으로 되돌아옵니다. 그미는 아름다우면서도 착하디착한 여성이었습니다. 수년간 함께 살다가 자신을 내친 왕이 너무도 원망스러웠지만, 왕을 극진히 사랑하는 마음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언젠가는 자신의 속마음을 깨닫기를 바라면서, 체념하듯 살아갑니다. 어느 날 시칠리아의 귀족 람발도가 찾아와서, 그리젤다에게 청혼합니다. 이때 그미는 왕을 남편으로 여기고 연모하기 때문에 청혼을 절대로 받아들일 수 없다고 말합니다. 그러자 람발도는 자신과 결혼하지 않으면 아들을 잡아 죽이겠다고 협박합니다.

 

그날 밤 그리젤다는 아들을 데리고 도주합니다. 고립무원의 처지에서 이리저리 방황하다가, 자신을 의탁할 곳은 왕궁밖에 없음을 직감합니다. 그래서 그리젤다는 아들을 데리고 왕궁으로 들어가, 시녀로 일하기로 결심합니다. 이야기는 해피엔딩으로 끝납니다. 그미는 오래 전에 잃어버린 딸과 극적으로 상봉합니다. 사실 구아티로 왕은 그리젤다의 마음을 떠보기 위해서 몰래 람발도를 그미에게 보낸 것이었습니다. 왕은 만조백관들의 축복을 받으면서 주인공과 결혼하고, 알미레나는 사랑하는 에르네스토와 뜨겁게 재회합니다.

 

보카치오의 작품은 후세에 비난의 대상이 되곤 하였습니다. 로마 가톨릭 교회는 작품에 대해 항상 적대적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작품은 신성모독의 내용으로 가득 채워져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보카치오가 죽은 뒤 4세기 후에 완고하고 위선적인 청교도주의자들은 이른바 외설적인 작품을 공개했다는 이유로 보카치오의 무덤을 헤집기도 하였습니다. 보카치오의 작품은 르네상스에 이르러 인정받게 됩니다. 르네상스의 수사학자들은 보카치오의 작품을 명작으로 인정하며, 그를 단테와 페트라르카에 버금가는 작가로 격상시켰습니다.

 

보카치오의 작품은 후세에 커다란 영향을 끼쳤습니다. 셰익스피어 역시 보카치오의 작품에서 어떤 착상들을 찾아내어서 「침벌레인 Cymbeline」「끝이 좋으면 다 좋다 All's Well That Ends Well」 등을 집필하였습니다. 레싱의 반지의 우화 역시 보카치오의 데카메론에서 유래한 것입니다. 첫째 날 세 번째 이야기를 읽으면 우리는 이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작품은 발작의 표현을 빌면 “인간 희극 La Commedia umana”으로서 손색이 없습니다. 문학사가, 조수에 카르두치 Giosué Carducci는 1875년에 발표한 『문학 연구 Studi letterati』에서 단테의 “신곡 神曲”과 필적하는 작품으로서 “데카메론”을 “인곡人曲”으로 명명하기도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