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 이탈스파냐

서로박: 후안 룰포의 두 편의 소설 (1)

필자 (匹子) 2021. 9. 20. 10:20

1. 후안 룰포의 문학: 친애하는 R, 당신의 편지를 읽고 나는 한동안 침울해 있었습니다. 대학에서 문학을 전공하여 문인이 되려고 하나, 그럴 수 없어서 취업 전선에 뛰어들었다는 당신의 소식이 나를 슬프게 했습니다. 1983년 뮌헨에서의 가난한 유학생활을 접고 귀국을 결심할 때의 나에게도 그러한 절박함이 있었습니다. 나중에 유학 생활을 계속했지만, 우리의 삶을 음으로 양으로 방해하는 것은 먹고 살아야 하는 문제입니다. 내가 지속적으로 문학 작품에 관해서 글을 쓰려는 것도 강의 때문이기도 하지만, 당신과 같은 젊은이들에게 도움을 주고 싶어서입니다.

 

멕시코의 작가, 후안 룰포 (Juan Rulfo, 1917 - 1986) 역시 가난 때문에 대학에서 편안하게 공부할 수 없었습니다. 그는 생계를 위한 일과 창작을 병행해야 했으니까요. 오늘은 후안 룰포의 두 편의 산문집을 다루려고 합니다. 그것들은 『화염 속의 들판El Llano en Llamas』(1953)이며, 다른 하나는 『페드로 파라모 Pedro Paramo』(1955)입니다. 이 작품을 접하면, 우리는 비련의 가난한 작가가 자신의 갈망과 해원을 어떻게 창작을 통해서 이룩했는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2. 1930년의 멕시코 내란과 작가의 비극: 1917년 멕시코의 아풀코에서 가난한 가정의 아들로 태어난 룰포는 산 가브리엘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습니다. 당시의 멕시코는 일대 전환기를 맞이한 나라였습니다. 나이 5세 무렵에 그의 아버지는 군부에 의해 총 맞아 사망했습니다. 가톨릭을 신봉하는 멕시코의 농민들은 무조건적으로 개혁을 추진하는 정부의 정책에 지속적으로 항거하였던 것입니다. 왜냐하면 중앙 정부가 위로부터의 일방적 정책을 통보함으로써 지방의 농촌 공동체를 재편성하려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결국 농민들은 어쩔 수 없이 무력으로 궐기하기에 이릅니다. 당시에 무기를 거머쥔 농민들은 크리스테로스Cristeros라고 명명되었습니다. 이로 인하여 1926년부터 1929년까지 무려 3년간 내전이 발발했는데, 이것이 이른바 “구에라 크리스테라 Guerra Cristera” 내전이었습니다. 당시 멕시코의 권력자는 플루타르코 엘리아스 카에스였는데, 그의 권력은 1935년까지 이어졌습니다. 3년 동안의 내전으로 인해 5000 명의 크리스테로스는 전쟁터에서 살해당하거나 감옥에 수감된 다음에 모조리 총살당했습니다.

 

3. 끔찍한 한계 상황, 후안 룰포의 가난과 고독: 후안 룰포의 삶은 계엄령, 가난 그리고 고독으로 요약될 수 있습니다. 전쟁의 와중인 1927년에 어머니가 사망한 뒤에 룰포는 잠시 가난한 할머니 집에 얹혀살다가, 고아원에 보내졌습니다. 그 후에 멕시코의 구아달라하라에 있는 수녀원의 기숙사에서 생활하면서 학교에 다닐 수 있었던 것은 하나의 행운이었습니다. 1932년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생계 문제로 대학에서 문학을 전공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낮에는 고무 공장에서 일하거나 영화 촬영장에서 스크립터로 분주하게 활동해야 했습니다.

 

그의 이러한 활동은 나중에 자신의 영화 제작 작업에 커다란 도움이 됩니다. 1950년대에 제법 많은 문학 작품을 발표했으나,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지는 못했습니다. 이에 실망한 후안 룰포는 영화 제작에 뛰어들었습니다. 그의 문학적 명성은 자신이 만든 영화를 통해서, 서서히 퍼져나갔습니다. 후안 룰포는 예술사진의 제작에도 일가견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1983년에 후안 룰포는 서 베를린에서 개최되는 세계 문화 축제에 참가했는데, 이때 독일 작가 귄터 그라스에 의해 독일 전역에 알려졌습니다.

 

4. 후안 룰포의 산문집: 『화염 속의 들판』에는 14편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룰포는 1955년의 개정판 간행 시에 두 편의 단편을 추가로 첨부하였습니다. 룰포의 산문집은 2년 후에 간행된 장편 소설, 『페드로 파라모』가 문학적 성공을 거둔 데 비하면, 세인의 관심을 끌지 못했습니다. 독자들은 나중에야 비로소 『화염 속의 들판』의 문학적 진가를 간파하기에 이릅니다. 산문집의 기본적 테마는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폭력violencia”입니다.

 

작품 「루비나」는 신의 축복이라고는 전혀 찾을 수 없는 황량한 도시 코말라Comala를 묘사하고 있습니다. 코말라는 한마디로 죽음의 흔적이 가시지 않는 유령 도시를 방불케 합니다. 이곳의 모든 가옥과 들판은 메마르고 황폐해 있으므로 사람들은 어떠한 위안도 얻을 수 없습니다. 게다가 정치적 혼란으로 인해서 주민들은 너도나도 할 것 없이 맹금들로 둔갑해 있습니다. 미친개로 둔갑한 어느 사내는 아무런 죄책감 없이 이웃을 살해하고, 재물을 약탈하며, 마주치는 아녀자에게 성폭행을 자행하곤 합니다. 이와 병행하여 작가는 아무런 의식 없이 활동하는 폭동 단체를 서술합니다. 이들 가운데에는 구에라 크리스테라 내전에 참가한 자들도 있었습니다. 그들은 어떠한 합리적 이성에 입각하여 행동하지 않고, 오로지 분노와 표독스러운 공격 성향만 드러낼 뿐입니다.

 

5. 단순하고도 직접적인 서술 방식: 후안 룰포는 대부분의 이야기를 주인공 “나”의 시각으로 생생하게 서술합니다. 그럼에도 화자는 지극히 구체적이지만, 감정에 지우치지 않고, 냉정한 자세로 모든 것을 엄정 중립적으로 기술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서술 방식 속에는 불법에 대한 비판적 의식도 자리하지 않으며, 도덕적 논평도 첨가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렇기에 독자는 소설 속의 사건을 접할 때 마치 자기 자신이 불법이 자행되는 한계 상황 속에 직접 처해 있다는 것을 소스라치게 놀라게 됩니다.

 

이러한 서술 방식은 「그들은 우리에게 땅을 하사했다 Nos han dado la tierra」그리고 「말하자면 우리는 정말 가난하다 Es que somos muy pobres」등의 작품에서도 그대로 나타나는 특징입니다. 말하자면 후안 룰포는 작가의 발언을 철저하게 감춘 채 모든 것을 단순하고도 직접적으로 서술하고 있습니다. 이로써 독자들은 이곳 사람들이 가난과 폭정으로 인하여 얼마나 끔찍할 정도로 힘들게 살아가는가를 생동감 넘치게 접할 수 있습니다.

 

6. 부자 사이의 갈등:「폭력」에서는 후안 룰포 문학에서 나타난 창작의 기본적 동인이 다루어지고 있습니다. 이것은 다름 아니라 부자 사이의 갈등인데, 부자 사이의 뿌리 깊은 증오심은 결국 상대방에 대한 살인 욕구로 이어지고 있습니다.「마틸데 아르칸겔의 유산」에서도 가족 내의 갈등이 첨예화됩니다.

 

한 여인은 자식을 구하려 하다 말에서 떨어져 목숨을 잃고 맙니다. 남편은 아내의 죽음으로 인한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이는 아들에 대한 분노로 고스란히 이어집니다. 걸핏하면 아들에게 손찌검을 가하는가 하면, 밥을 굶기곤 합니다. 남편은 삶의 욕구를 상실한 채 그동안 모아둔 자신의 전 재산을 술로 탕진합니다. 내전이 발발했을 때 아버지와 아들은 각자 다른 집단에 합류하여 총을 거머쥐고 싸웁니다. 두 사람 사이의 갈등은 공공연한 전투로 이어지게 된 것이었습니다.

 

하루가 지나자, 아들은 아버지의 시신을 수레에 태우고 마을로 되돌아옵니다. 작품 「너는 개 짖는 소리를 듣지 못하니 No oyes ladrar los perros」는 나중에 영화로 만들어진 단편인데, 여기에는 정반대되는 이야기가 서술되어 있습니다. 소설 속에서 아버지는 아들이 어떻게 살아가는지 전혀 모릅니다. 어느 날 아버지는 심하게 부상당한 아들을 짊어지고 밤새도록 이리저리 배회하다가, 다른 마을의 의사에게 데리고 갑니다. 죽은 아내를 생각하면서 그저 아들을 살리고 싶었던 것입니다. 나중에 정신을 차린 아들은 마치 미친개처럼 가족도 모른 체하면서 광포하게 행동합니다. 부자 사이의 인간적 소통은 소설 속에서 극단적으로 차단되고 있습니다.

 

7. 후안 룰포의 간결하고도 아름다운 문장: 재차 말씀드리지만, 후안 룰포의 문학의 강점은 구어체의 서술 방식에서 발견됩니다. 거의 모든 작품이 일인칭으로 서술되거나, 대화체로 서술되는 것은 매우 놀랍습니다. 설령 3인칭 단편이라고 하더라도, 화자는 마치 백화점 속에서 서성거리는 수많은 고객처럼 행동하면서, 놀라운 사건을 예리하게 직접적으로 투시하고 있습니다. 가령 화자는 아주 드물게 직접적으로 발언하기도 합니다.

 

가령 화자는 「마틸데 아르칸겔의 유산」에서 “바라건대 이 자리에 계시는 어느 누구도 나로 인해서 모욕당하지 않으시기를 빕니다.” 하고 직접 말합니다. 룰포의 문장은 단순하면서도 정갈할 정도로 간결합니다. 일부 문장은 독자에게 간간이 변증법적 놀라움으로 경악을 일으키게 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독자들은 후안 룰포의 문장에서 어떤 서정시의 여운을 감지하게 됩니다. 아름답고 간결한 문장으로써 후안 룰포는 자신의 고향 할리스코Jalisco의 슬픈 현실적 상황 그리고 이러한 상황 속에 처한 인간의 곤궁함을 묘사하는 데 성공을 거두고 있습니다.

 

8. 풍자의 언어, 특수한 문체: 그렇지만 룰포의 작품에는 소설 기법상의 예외 사항이 나타납니다. 나중에 추가로 삽입된 단편 소설,「지진의 날El día del derrumbe」에서는 기이할 정도로 유머러스한 풍자의 이야기가 전개되고 있습니다. 두 명의 노인이 등장해서 과거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는데, 두 사람은 과거사를 제대로 기억해내지 못합니다. 그렇기에 두 사람의 대화는 각자 들려주는 과거의 이야기를 상호 보충하는 역할을 담당합니다. 두 사람은 오래전에 지진이 발발한 지역에 관해서 이러쿵저러쿵 대화를 나눕니다. 지진이 발발 이후에 그곳을 다스리는 영주가 방문합니다. 그는 끔찍한 사건으로 숨진 사람들의 장례식에 참석하여 죽은 자의 넋을 기리는 연설을 행하도록 되어 있었습니다.

 

이때 영주의 연설이 참으로 우스꽝스럽게 전개됩니다. 공허한 민족주의의 혁명에 관한 영주의 일장 연설은 하객들의 분노를 자극하여 장례식장에서 커다란 소동이 벌어지게 됩니다. 여기서 작가는 종래의 간결하고도 시적인 문장을 지양하고, 기법상으로 관용 에스파냐의 현학적 문체를 패러디하고 있습니다. 작가는 단편 소설 「마카리오」에서 의도적으로 서투른 에스파냐어를 사용하여, 불행한 소년의 이야기를 전개해나갑니다. 소설 속에 사용되는 서투르기 이를 데 없는 소년의 구어체는 참으로 놀랍습니다. 그것은 소년의 삶의 첨담한 정황 뿐 아니라, 소년이 광증에 사로잡히게 된 근본적인 원인을 알려주는 수단으로 작용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