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애하는 J, 오늘은 중세 이탈리아의 시성으로 알려진 단테 알리기리 (1265 - 1321)의 “신곡 (La divina commedia)” (1300 - 1321)에 관하여 말씀드리겠습니다. 이 작품은 무려 21년이라는 기나긴 창작 과정을 지니고 있는데, 맨 처음 책으로 간행된 것은 1472년이었습니다. 오늘 어째서 이탈리아어로 씌어진 문학 작품이 다루어지는가? 하고 당신은 의아하게 생각하겠지요? 얼핏 보기에는 독일 문학과 무관한 것 같지만, 본질적으로는 기독교 정신을 그대로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서양 문학의 두 개의 문화적 토대 (그리스 로마의 문화 그리고 기독교 문화) 가운데 커다란 비중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물론 단테 알리기리의 “신곡”은 사상적 배경 및 이후의 영향을 고려할 때 결코 서양 문학에서 생략될 수 없는 작품입니다.
단테가 살았던 곳은 중세의 피렌체였습니다. 13세기 이후부터 이탈리아에는 황제파인 기벨린당과 교황파인 구엘프당이 끊임없이 세력 다툼을 벌려 왔습니다. 두 파는 번갈아 가며 우선권을 차지했는데, 정권이 바뀔 때마다 엄청난 보복이 뒤따랐습니다. 단테의 가족은 오랫동안 교황파인 구엘프당을 추종했습니다. 그렇지만 단테는 나중에 교황의 정치를 전적으로 동조하지는 않습니다. 나중에 단테는 정치적 갈등에 연루되어, 화형 선고를 당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판결은 “추방형”으로 감해졌고, 추방 기간 동안에 단테는 자신의 불멸의 대작 “신곡”을 집필합니다.
한 인간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는 자는 누구보다도 은사이며, 친구이고, 애인입니다. 만약 단테 역시 탁월한 은사, 친구 그리고 연인이 없었더라면, 그는 위대한 시작품을 후세에 남기지 못했을 것입니다. 친애하는 J, 부디 부탁하건대 당신 역시 악하고 이기주의적인 사람을 가급적 멀리하고, 선하고 아름다운 사람을 골라서 깊이 뜨겁게 정을 나누십시오. 그래야 당신은 “더 나은 사람 (a better person)”으로 발돋움할 수 있습니다. 여기에는 은사, 친구, 선배, 애인, 친척 등의 구분이 있을 수 없습니다.
단테의 은사는 브루네토 라티니였습니다. 라티니는 단테를 비롯한 많은 인재들에게 피렌체에 대한 사랑 그리고 새로운 민중의식을 일깨워 주었지요. 누군가 라티니를 역사서에서 다음과 같이 묘사했습니다. “라티니는 피렌체 젊은이들을 순화시키고, 그들에게 화술을 가르쳤으며, 공화국 정치 철학을 가르친 스승이었다.” 예컨대 라티니의 저서 “보물 서적 (Les Livres du trésor)” (1262 - 1266)은 고전 인용문의 보고 (寶庫)입니다. 이 책은 고전 서적에 관한 많은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이 책의 제2권에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니코마코스 윤리학의 일부가 실려 있습니다. 실제로 라티니는 단테에게 키케로, 아리스토텔레스, 세네카 그리고 구약성서의 “잠언”을 자주 인용하곤 하였습니다. 나중에 라티니는 단테의 신곡에 등장합니다. 그는 “지옥 편”에서 인간이 불멸의 존재가 되는 방법을 주인공에게 가르쳐주지요.
친애하는 J, 이번에는 단테의 친구에 관해 살펴봅시다. 단테는 무척 조숙한 편이었습니다. 그의 나이 18세 때에 혼자 시작법을 완벽하게 익혔으며, 나중에 “신생”에 실리게 될 소네트를 유명 시인들에게 보내기도 하였습니다. 단테는 그들로부터 여러 편의 답장을 받았습니다. (친애하는 J, 편지를 보내도 아무런 답장을 보내지 않는 한국의 유명인사들에 비하면, 유럽 사람들은 비교적 충직한 편입니다.) 그 가운데 가장 중요한 답장은 구이도 카발칸티의 것이었습니다. 이를 계기로 단테는 카발칸티와 우정을 맺었습니다. 단테가 나중에 “향연 (Convivio)” 그리고 라틴어로 쓴 “속어론 (De vulgari eloquentia)” 역시 카발칸티의 조언을 바탕으로 집필된 것들입니다. 카발칸티는 단테에게 이탈리아 현지 토속어로 작품을 집필하라고 권했습니다. 그 때문에 단테는 자신의 작품 “신생 (La Vita nuova)”을 카발칸티에게 헌정했습니다.
친애하는 J, 당신은 단테가 9살 때 만나 열렬히 사랑했다고 묘사한 베아트리체에 관해서 들어보셨지요? 그렇지만 베아트리체는 실존 인물이 아닙니다. 단테는 아름다운 그미를 애타게 찾았으며, 하마터면 현실에서 발견할 뻔 했습니다. 그러나 베아트리체는 결코 단테의 실제 삶에서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그렇기에 베아트리체는 단테의 이상형입니다. 이를테면 마치 돈키호테가 실재하는 둘시네아를 쳐다보지 못하고, 관념 속에 머물렀던 것처럼, 단테 역시 베아트리체라는 상을 언제나 갈구하며 살아왔습니다. 그렇기에 그미는 이른바 “발견될 수 없는 여성 (La femme introuvable)”입니다. 그렇기에 단테의 문학에 묘사된 베아트리체는 모조리 허구의 여인일 뿐입니다. “신생”에서 그미는 신성한 존재이나, “향연”에서 그녀는 세속적인 여인으로 묘사되며, “신곡”에서는 깊은 이해심을 지닌 인도자로 등장합니다. 친애하는 J, 당신도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습니까? 부디 그분이 “발견될 수 있는 남자”, 혹은 “발견될 수 있는 여자”이기를 빕니다.
각설, 이제 “신곡”을 살펴보기로 합시다. 신곡의 구조를 이루는 기본 구성요소는 “곡 (Canto)”입니다. 다시 말해 지옥 편, 연옥 편 그리고 천국 편으로 나누어져 있는데, 각 장은 33개의 곡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지옥” 편에는 서문과 같은 곡이 하나 더 첨가되어 있습니다. 단테의 “지옥” 편은 위치상 기능상 다른 고전들과는 차이점을 지닙니다. 호메로스 (Homer)의 “오디세이”에서는 제 7권에 그리고 베르길리우스 (Vergil) 의 “에네이아스”에서는 제 6권에서 제각기 저승 세계가 묘사됩니다. 호메로스와 베르길리우스의 책에서는 중간 부분에 지하 명부의 세계가 다루어지는데, 이는 주인공으로 하여금 인생을 회고하고, 삶의 본질적인 가치를 지적하게 하기 위함입니다. 이에 비하면 단테는 작품 첫 부분에서 “지옥”의 세계를 방문합니다. 이는 그리스도의 세계관에 입각한 것입니다. 지옥의 방문은 맨 처음에 이루어져야 한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인간은 진정으로 회개하기 전에 지옥의 세계를 체험해야 한다는 게 하느님의 뜻이기 때문입니다.
작품은 단테가 죽은 뒤의 세상을 방랑하는 이야기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지옥, 연옥 그리고 천국이 순서대로 묘사되고 있습니다. “지옥”의 맨 처음에 단테는 죄의 어두운 숲 속에서 방황합니다. 거기서 그는 베르길리우스를 만납니다. 베르길리우스는 다음과 같이 전합니다. 만약 주인공이 죽지 않은 몸으로 지옥, 연옥 그리고 천국을 순방한다면, 신은 주인공에게 구원을 내리리라는 게 바로 그 전갈이었습니다. 신은 베아트리체의 청원을 듣고 그렇게 결정을 내렸다는 것입니다. 단테는 1300년 자신의 나이 35세 되는 부활절의 밤에 집필을 착수하여, 56세 되는 1321년 부활절 밤에 작품을 완성하였습니다. 처음에는 반신반의하다가 단테는 안내자 베르길리우스를 따라, 지옥으로 들어가기로 결심합니다.
지옥의 문 앞에는 다음과 같이 씌어져 있었습니다. “Lasciate ogni seranza, voi ch’entrate” (이 안으로 들어가는 자여, 모든 희망을 떨쳐버려라.) 그렇습니다. 지옥은 희망이 차단된 공간입니다. 단테와 베르길리우스는 옷깃을 여미면서 아헤론 강을 건너 지옥으로 잠입합니다. 그곳의 영혼이라고 해서 모두 사악한 자들은 아닙니다. 또한 지옥에도 비교적 살아가기 편한 공간도 부분적으로 마련되어 있었습니다. 두 사람은 첫 번째 지옥 영역에 당도합니다. 세례 받지 못한 아이들, 영웅들이 잠시 거기에 머물고 있습니다. 또한 호메로스, 플라톤, 키케로 등의 영혼들이 비교적 안온한 고립된 공간에서 은은한 빛을 받으면서 거주하고 있었습니다.
친애하는 J, 지옥은 언제나 무시무시한 곳이라고 생각되지요? 그것은 기독교의 세계관에 바탕을 둔 것입니다. 지옥의 끔찍한 광경은 두 번째 영역에서 그대로 나타납니다. 베르길리우스와 단테는 바로 그곳에 당도합니다. 문 앞에는 고대의 지하 세계를 관장하는 미노스가 악령의 모습으로 서성거립니다. 그는 저주받은 영혼들을 단계로 나누어, 머물 공간을 배치해주고 있습니다. 죄의 척도는 범행과 처벌에 의해 정확히 책정됩니다. 이러한 척도에 따라 지옥은 세계의 층으로 나누어집니다. 지옥의 맨 위층에는 (두 번째에서 다섯 번째의 영역) 인간적 열정에 의해 죄지은 죄인들이 머물고, 아래층 (일곱 번째에서 아홉 번째의 영역)에는 사악한 의도에서 범행을 저지른 죄인이 머물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죄가 무거울수록, 죄지은 영혼은 지옥의 아래로 배치됩니다.
지옥은 마치 뒤집힌 원뿔 모습으로 이루어져 있어서, 내려가면 내려갈수록 공간은 좁아집니다. 가령 아홉 번째 노래에서 디테라는 지옥의 도시가 묘사되고 있습니다. 거기서 주인공은 피렌체 사람인 우베르티를 만나게 되는데, 우베르티는 주인공이 추방되리라는 사실을 미리 알려줍니다. 주인공의 스승, 라티니도 등장하여, 같은 말을 반복하고 있습니다. 지옥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등장합니다. 가령 오디세이의 영혼은 지옥에서 고통당하며 지냅니다. 그는 트로야 전쟁 당시에 사람들을 속이고 살해했다는 이유로 이곳에 거주하고 있습니다.
단테는 지옥의 핵심 안으로 들어갑니다. 그곳에는 세 개의 머리 달린 악마가 서성거리고 있는데, 유다, 브루투스 그리고 카시우스를 갈기갈기 찢어먹고 있습니다. 그 다음에 단테는 부활절 아침에 3일간 지구 남반구로 솟아올라, 태평양에 근처에 있는 높은 산으로 향합니다. 그곳이 바로 연옥 (Purgatorio)에 해당하는 정화 (淨化)의 산이었습니다. 친애하는 J, 단테가 연옥의 장소를 남태평양의 높은 산으로 설정했다는 사실 자체는 무척 상징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남태평양에 우뚝 솟은 높은 산이 연옥으로 설정된다는 것은 “어쩌면 지구가 둥글지 모른다.”는 가설에 의해서 나온 것입니다. 그것도 지동설이 출현하기 이전의 중세에 말입니다. 이에 관해서는 나중에 다시 언급하기로 하겠습니다.
(계속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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