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 이탈스파냐

서로박: 보카치오의 '데카메론' (1)

필자 (匹子) 2021. 8. 6. 10:12

친애하는 B, 오늘은 조반니 보카치오 (1313 - 1375)의 『데카메론 Il Decamerone』에 관해서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보카치오는 페트라르카의 제자로서 훌륭한 문학 작품을 많이 남겼습니다. 그는 이탈리아 구어체를 수용하여 생동감 넘치는 서정시를 많이 집필하였습니다. 작가에 관해서는 별도로 말씀드리기로 하고 오늘은 작품집, 『데카메론 Il Decamerone』에 관해서 언급하려고 합니다.

 

이 작품은 보카치오의 중편 모음집으로서 1349년에서 1353년 사이에 집필된 것입니다. 중편 소설 모음집에는 총 100개의 이야기가 실려 있습니다. 이것들은 우화, 경구적 이야기 그리고 실제 발생했던 사건들을 다루고 있습니다. 작품집은 “부드러운 가슴 속에서 타오르는 사랑의 열정에 대해 부끄러움과 수치심을 느끼는 고상한 여성들”을 즐겁게 해주기 위해서 기술되었다고 합니다. 보카치오의 작품집이 오늘날 서양의 모든 소설의 모범 내지 원형으로 인정받고 있는 것은 바로 그 때문입니다.

 

작품 데카메론은 어원상 “10 (δέκα)” + “하루 (ἡμέρα)”에서 유래한 말입니다. 따라서 제목은 열흘을 가리키는데 “열흘 동안에 완성된 작품”이라는 의미를 지닙니다. 10명의 선남선녀들은 어느 성에 모여서 각자 10개의 이야기를 전한 것을 고려하면, 작품은 “페스트가 창궐하던 파멸의 시기에 일곱 명의 여자들과 세 명의 젊은 남자들이 돌아가면서 제각기 나눈 100가지의 이야기”로 요약될 수 있습니다. 10이라는 숫자는 고대에 성스러움을 지닌 숫자로 이해되었습니다. 일찍이 프란체스코 교단 출신의 스콜라학자인 보나벤투라 Bonaventura는 10을 “가장 완전한 숫자”로 명명한 바 있습니다.

 

보카치오는 프톨레마이오스의 “천체의 시스템”을 통해서 이에 관해서 익히 알고 있었지만, 숫자 10의 상징적 의미에 관해서는 단테의 『신곡』에서 접한 바 있다고 말했습니다. 사실 보카치오는 1373년 10월 23일부터 이듬해 1월까지 피렌체 근처의 성당을 돌아가면서 행한 60 차례 강연했는데, 이 자리를 빌어서 그것을 고백하였습니다. 따라서 『신곡』에 실린 100개의 노래가 보카치오의 작품에 담긴 100개의 이야기와 구조적으로 일치한다는 사실은 결코 우연이 아닙니다.

 

1348년에는 유럽 전역에 전염병인 페스트가 창궐하였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단시간에 몰살하였고, 당시 생존한 사람들의 삶은 차마 눈뜨고 볼 수 없는 처참한 상황이었습니다. 당시 사람들이 살아가는 풍경은 아비규환 그 자체였습니다. 그렇기에 기존하던 관습, 도덕 그리고 법이라는 사회적 규범의 장치는 죽음 앞에서 전율하는 인간들에게 어떠한 실질적 영향도 끼치지 못했습니다. 앞에서 언급한 일곱 명의 여성들과 세 명의 젊은 남자들은 약 2주 동안 피렌체의 처참하게 죽어가는 끔찍한 광경으로부터 벗어나서 시골의 어느 한적한 성으로 도피합니다.

 

“죽음을 기억하라 memento mori”는 경고의 상으로서의 끔찍한 대문을 들어서면, 전혀 부담스럽지 않는 즐겁고 관능적인 장면들이 시야에 들어옵니다. 관료주의를 지향하는 10명의 교양인들은 끔찍한 재앙으로 고통 받는 세상을 벗어나서 한적한 지역에 작은 서클을 모입니다. 이들이 창조한 것은 바로 유유자적한 편안함과 관능이 자리하는 아르카디아였습니다. 따라서 다음의 사실을 미리 숙지해야 할 것입니다. 즉 소설 속에 묘사되고 있는 흥미진진한 사랑의 이야기, 에로스의 쾌락 등은 속세의 참혹함과 고통을 일시적으로 잊기 위한 것이라는 점 말입니다.

 

10명의 참가자들은 아무런 구속도 받지 않은 채 그들은 에로틱한 분위기에 취한 채 유유자적하게 지냅니다. 사람들 사이에는 어떤 껄끄러운 만남이라든가, 얼굴 붉히는 어색함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10명의 젊은 사람들은 이미 오래 전부터 잘 아는 사이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매일 한 명의 왕과 한 명의 왕비를 선출합니다. 왕과 왕비는 하루 시간을 보내기 위한 이야기의 주제를 결정합니다. 이때 이야기의 주제들은 가급적이면 포괄적으로 그리고 다양하게 정해지기 때문에 각자 허용된 주제의 다양한 이야기를 다른 사람들에게 전달할 수 있습니다.

 

이야기는 때로는 섬세하거나 거칠게, 때로는 비극적이거나 희극적인 내용으로 이루어지곤 합니다. 이야기의 배경이 되는 세계는 그야말로 휘황찬란한 팔레트로 채색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세계는 도저히 속내를 간파할 수 없는 사랑의 신 아모르 Amor 그리고 운명의 여신, 포르투나 Fortuna가 다스리기 때문에, 어느 누구도 사전에 어떤 배후의 일관된 분위기를 알아차릴 수 없습니다.

 

이를테면 두 번째 날에는 어떠한 희망도 없이 고통스러운 굴욕을 견디면서 처절하게 싸우다가 결국에는 해피엔딩을 맞이하는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가 서술되고, 네 번째 날에는 애틋한 사랑으로 인하여 불행을 감수하다가 끝내 안타깝게도 자살을 선택하는 연인들의 운명이 서술되기도 합니다. 다섯 번째 날에는 사랑하는 두 사람이 고통스럽고도 참혹한 사건에 연루되어 고초를 겪다가 끝내는 행운을 거머쥐는 이야기가 서술되고 있습니다. 그게 아니라면 세계 방방곡곡을 돌아다니며 장사하던 사람은 어떤 기상천외한 이야기를 흥미진진하게 서술하고 있습니다. 몸을 뜨겁게 달구는 달콤한 말로 여성들을 유혹하여 정사를 나누는 이야기, 마치 우리나라의 판소리 대본인「배비장전」과 유사한 이야기도 등장합니다.

 

이를테면 어느 매혹적인 고위층 여성을 구슬려서 대담한 행동과 빠른 결정으로 살을 섞은 뒤에 교묘하게 도망쳐서 사태를 모면하는 이야기들도 실려 있습니다. 그게 아니라면 A라는 남자가 B라는 여자와 사랑을 나눈 뒤에 B라는 여자가 C라는 남자와 살을 섞는, 마치 아르투르 슈니츨러 Arthur Schnitzler의 『윤무 Die Reigen』와 같은, 현실에서는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짝짓기의 연결고리와 같은 이야기도 나타납니다. 그렇기 때문에 때로는 외설적인, 때로는 승화된 고결한 사랑의 이야기가 마치 중세라는 거대한 극장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공연되고 있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