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 근대불문헌

서로박: (3) 메리메의 '카르멘'

필자 (匹子) 2025. 3. 11. 11:27

(앞에서 계속됩니다.)

 

9. 남쪽 나라의 따뜻한 열기에 대한 동경: 아마도 낭만주의자 치고 어떤 무엇을 동경하지 않는 사람은 한 명도 없을 것입니다. 작가 메리메를 자극한 것은 한편으로는 무엇보다도 어떤 이국적인 분위기였습니다. 카르멘의 소재에 매달린 것은 바로 그 때문이었습니다. 남방의 따뜻하고 열정적인 문화는 마치 동방의 찬란함을 모조리 포괄하는 무엇으로 다가왔던 것입니다. 이와 관련하여 메리메는 다음과 같은 모토를 사용하였습니다. “피레네산맥 너머에는 아프리카가 시작된다.” 메리메가 카르멘 소재를 선택한 것은 나름의 이유가 있습니다. 작가는 사회적 국외자로 살아가는 인간군에 대해서 말할 수 없는 연민의 감정을 품고 있었습니다.

 

메리메는 에스파냐에서 실제로 있었던 어떤 사건을 바탕으로 소설을 구상했는데, 많은 부분을 의도적으로 변화시켰습니다. (Lux: 95). 먼 훗날 작가는 고고학적 문헌을 뒤지기 위해서 에스파냐를 여행하게 되었는데, 카르멘과 돈 호세의 이야기를 접하게 되었다고 고백하였습니다. 당시에 어떤 사람이 강도 행위로 단두대의 처형이라는 형벌을 받게 되었는데, 그에게서 돈 호세와 카르멘에 관한 이야기를 접했다는 것입니다. 이로써 우리는 소설의 화자가 작가 메리메인 것을 여기서 유추할 수 있습니다. 메리메는 격정적이고 낭만적인 분위기를 처음부터 배제하고, 아주 냉정하고도 분명한 관점에 의해서 카르멘과 돈 호세의 이야기를 이어나가고 있습니다. 이를테면 소설의 마지막 부분에 작가는 유럽에서 살아가는 집시들의 역사 그리고 그들의 생활방식을 일목요연하게 요약하고 있습니다.

 

10. 집시의 삶, 그것은 모든 삶의 방식을 접하지만, 하나의 특정한 삶의 윤리를 선택하지 않는다. 작품은 얼마든지 다양하게 해석될 수 있습니다. 작품에 관한 비평문은 수없이 많습니다. 그렇지만 필자는 가장 단순하게 작품을 대하려고 합니다. 삶의 행복은 무엇보다도 사랑의 삶에서 발견될 수 있습니다. 인간의 삶에서 돈과 명예, 경력과 사회적 성공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이보다 중요한 것은 삶에서 누구와 만나 사랑을 나누는가? 하는 물음입니다. 사랑하는 임으로부터 지극한 사랑을 받는 일 그리고 한 사람의 임에게 극진한 사랑을 베푸는 일 – 이것은 누구든 간에 꿈꾸는 갈망과 같습니다.

 

누군들 사랑하는 임과 오순도순 살고 싶지 않을까요? 그러나 주어진 현실에서 이를 실행하기 너무나 어려우므로 우리는 고뇌하고, 슬퍼하며, 또 다른 방식의 자유연애를 추구하는지 모릅니다. 어쩌면 카르멘과 돈 호세는 처음부터 서로 맞지 않는 연인이었습니다. 책임감으로 무장한 순진한 군인은 세상에서 유일한 임 한 사람을 선택하여 살아가고 싶었습니다. 반대로 카르멘은 일부일처제를 고통을 안겨주는 감옥으로 규정했습니다. 서로 맞지 않는 의향을 지닌 남녀가 일방적으로 진행되는 사랑의 화살을 어떻게 처음부터 쏘지 않을 수 있을까요? 카르멘이 돈 호세를 거부한 것은 지금까지 습관으로 굳어진, 집시의 삶의 방식 때문이었습니다. 그미는 모든 것을 가졌지만, 아무것도 소유하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순정남의 굳은 사랑과 질투는 아무것도 선택하지 않는 국외자의 수수방관주의와 정면으로 부딪친 것입니다. 서로 다른 존재 방식으로서의 이질적인 삶이 두 사람을 비극의 구렁텅이로 몰아넣고 말았습니다.

 

11. 작품 『카르멘』의 영향: 메리메의 작품의 가치는 무엇보다도 카르멘에 대한 가장 적확하고도 생동감 넘치는 묘사에서 발견됩니다. 작가 메리메는 냉정한 자세로 거리감을 유지한 채 카르멘이라는 자유로운 영혼을 서술해 나갔습니다. 사람들은 카르멘이야말로 치명적인 요부, 즉 “팜므 파탈 femme fatale”의 선구자라고 주장하였습니다. 그렇지만 카르멘이야말로 남성 중심의 사회에서 억울하게 죽음을 맞이한 비극적 인물로 평가될 수 있습니다. 가령 오늘날 페미니스트들은 다음과 같이 주장합니다. 즉 메리메는 자의식을 지닌 채 삶을 성찰하는 여성이 아니라, 남성 작가에 의해서 객체로 묘사된 미모의 여성상에만 혈안이 되어 있었다는 것입니다.

 

카르멘에 대한 치정 살인은 주어진 사회 질서에 관한 문제를 숙고하게 만듭니다. 중세에 사람들은 아더 왕을 둘러싼 성배에 관한 신화적 이야기를 즐겨 읽으며, 신시대에 사람들은 돈 후안과 파우스트에 관한 전설을 자주 접하곤 합니다. 그런데 20세기 초의 문학예술에서는 카르멘의 상이 너무나 자주 출현합니다. 예의 주시해야 할 사항은 카르멘의 파괴적인 힘입니다. 사실 20세기 후반에 이르기까지 유럽 시민 사회에서 여성들은 가부장적 남성의 폭력 속에서 거의 질식하다시피 살았습니다. 카르멘이 구질서에 저항하며 남자를 유혹하는 이브의 완강한 모습을 보여주는 것은 그 자체 의미심장합니다. 왜냐면 카르멘의 상은 현대의 시민 사회가 표방하는 체제 순응적 성 윤리 속에서 속박될 수 없는 에로티시즘을 드러낸다는 점에서 거의 유형적이기 때문입니다.

 

시대가 바뀌면 사회적 질서도 변화되기 마련입니다. 삶에서 나타날 수 있는 세 가지 사랑의 삶은 일부일처제의 결혼제도, 매춘 그리고 자유연애로 나누어집니다. 이 가운데 강제적 성 윤리가 남아있는 사회에서는 일부일처제의 결혼제도만이 합법적이라고 인정받고 있습니다. 인공지능과 첨단 과학 기술이 발전되는 21세기 현대 사회에서 강제적 성 윤리의 이데올로기가 얼마나 오래 정당성을 이어나갈지는 아직 아무도 모릅니다.

 

 

- 메리메, 프로스페르: 카르멘, 한정주 역, 지성 공간 2020.

-́́ 메리메, 프로스페르: 카르멘, 김진욱 역. 범우사 2001.

- 송진석: 메리메의 카르멘과 열정의 취급법, in: 불어불문학연구, 92집, 2012, 235 – 262.

- Jens, Walter (hrsg.) Kindlers neues Literaturlexikon, 22 Bde. München 2001.

= Antonius Lux (Hrsg.): Große Frauen der Weltgeschichte. Tausend Biographien in Wort und Bild. Sebastian Lux Verlag, München 1963.

- Mérimée, Théâtre de Clara Gazul. Romans et nouvelles, Édition établie, présentée et annotée par Jean Mallion et Pierre Salomon, coll. «Bibliothèque de la Pléiade», Paris, Gallimard, 197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