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모만큼 지속적인 것도 없다.” (헤라클레이토스)
1. 물질과 정신은 하나의 이원론으로 구분될 수 없다. 에른스트 블로흐는 대부분 문헌에서 물질의 개념을 이중적 의미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 하나는 흔히 말하는 물리적 영역과 결부된 물질의 개념을 가리키며, 다른 하나는 인간과 사회를 포괄하는 개념으로서의 물질입니다. 여기서 데카르트 방식의 물질과 정신이라는 이원론적인 분할은 아무런 의미를 지니지 못합니다. 오히려 관념론에서 말하는 정신의 개념은 물질이라는 대개념 속에 얼마든지 편입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습니다. 즉 블로흐는 물질을 주체로서의 인간 그리고 객체로서의 세계 사이를 구분하는 이원론과는 전혀 다르게 이해한다고 말입니다.
물질은 블로흐에 의하면 생동하는 동일성의 실체입니다. 그것은 세계의 변화 과정에서 나타나는 인간과 자연의 생동하는 실체를 가리킵니다. 따라서 물질은 인간과 세계에 자극을 가하고 변화시키는 매개체로 이해될 수 있습니다. 말하자면 물질은 하나의 매개체 내지는 모태로서 인간 그리고 세계의 최전선에서 “새로운 무엇Novum”을 도출해냅니다. 이 점을 고려하면 그것은 -(블로흐의 중요한 용어 가운데 하나인) 유토피아의 기능이 그러하듯이- 하나의 자극, 변모 그리고 변화의 의향 등과 같은 필요조건 조건을 동시에 갖추고 있습니다.
2. 물질의 개념: “물질”은 라틴어로 “materia”라고 하는데, 그리스어로 “ὕλη”라고 표기되는 소재에서 유래한 것입니다. 이 단어는 원래 “나무”. “목재”, “수공업자의 소재” 등의 의미를 지니고 있었습니다. 물질은 전통적인 철학관에 의하면 한마디로 우주의 소재라고 합니다. 이들에 의하면 물질은 특정한 공간 내에서 다양한 특징을 지니고 있으며, 밀집된 특성으로 서로 구분되는 무엇이라는 것입니다.
소크라테스 이전의 철학자들은 “아르케ἀρχή”라고 하는 근원의 원칙, 원래의 토대 내지는 “원래 소재”를 찾으려고 했습니다. 이 와중에서 그들은 여러 가지 다양한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이오니아의 철학자, 탈레스와 아낙시만드로스는 물질을 “물(水)” 그리고 “공기”라고 규정했습니다. 아낙시메네스는 물질을 확정되지 않은 무엇으로 판단하면서, 이것을 “아페이론ἄπειρον”이라고 명명했습니다. 이후에 레우키포스 그리고 데모크리토스는 물질을 분화되지 않은 기본적 개체라고 이해했습니다. 특히 데모크리토스는 물질을 “원자들ἄτομος”라고 표기했습니다. 물질의 다양성은 공허한 공간에서 다양한 원자들이 서로 배치되어 있으며, 서로 유동하고 결합되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라는 것입니다.
3. 플라톤이 이해한 물질: 플라톤은 물질의 개념을 주로 일상적인 의미로 이해했습니다. 물질은 플라톤에 의하면 형체가 없고, 질적 특성을 고수하지 않는 무엇이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통상적으로 현존하지 않지만, 나중에 형체를 드러낼 수 있으며, 얼마든지 형태를 잉태할 수 있다고 합니다. 물질이 사물로 인지될 수 있는 까닭은 그게 빠르든 늦든 간에 이데아에 관여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플라톤은 이데아와 대상으로서의 사물을 구분하여, 전자를 “재 기억Anamnesis”을 통해서 도출해낼 수 있는 근원의 상으로, 후자를 감각으로 인지되는 모사의 상으로 이해했습니다. 이를 고려할 때 물질은 플라톤에 의하면 사멸하고 변화하는 부차적인 형태를 보조하는 존재,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닙니다. 왜냐면 플라톤에게 중요한 것은 오로지 원초적 상으로서의 이데아이며, 인간은 파괴되지 않는, 불변하는 이데아를 찾아서 이를 다시 기억으로 소환해내면 충분하다는 것입니다. 플라톤의 이데아 이론의 영향으로 물질은 형태와 대칭을 이루는 카테고리로 통용되기에 이릅니다.
4. 아리스토텔레스의 물질 개념: 물질의 개념은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해서 달리 이해되었습니다. 물질은 한편으로 모든 형태 속에 기초하는 무엇이라고 합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물질의 이러한 특성을 “히포카이메논ὑποκείμενον”, 즉 “기체Substrat”라고 명명했습니다. 우리는 주어진 현실에서 수많은 형태를 접하게 되지만, 이러한 형태가 출현하게 된 데에는 물질이 은밀하게 관여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다른 한편으로 물질은 형태를 수용하고 받아들이는 능력을 지니고 있다고 합니다. 바꾸어 말해 물질은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하면 이러저러한 사물 가운데 하나가 아니라, 특정 공간 속에서 자리하거나 유동하는 무엇입니다. 따라서 물질은 모든 사물을 출산해내는 변화의 모태 내지는 변모의 자궁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물질은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하면 형태의 출현에 가담하여 작용하고 변모를 도모하는 “에네르게이아ένέργεια”이며, 이를 가능케 하는 “디나미스δύναμις”라는 특징을 지니고 있습니다. 물질은 “결정되지 않은 무엇ἀόριστος”으로서 그 자체 구상적으로 실제 현실에서 존재하기 위한 형태를 필요로 합니다. 그러한 한 그것은 형체를 부여하려고 애쓰는 모든 기본적 토대이며, 수동적 여성적 원칙을 고수하고 있습니다.
5. 물질과 형태에 관한 아리스토텔레스의 구상 그리고 플로티노스: 물질과 형태에 관한 아리스토텔레스의 구상은 이전에 출현한 데모크리토스의 원자 이론을 거의 사라지게 했으며, 고대 철학의 자연 과학적 시금석으로 영향을 끼치게 됩니다. 물론 당시 사람들은 여러 가지 질문을 제기했습니다. 가령 물질이 어떻게 유동하는가? 물질은 과연 외부 자극을 통해서 당긴과 밀침을 수행하는가? 아니면 그게 스스로 생동감 넘치게 능동적으로 움직이는가? 하고 말입니다. 스토아 사상가들은 산기한 질문에 관해서 “씨앗의 로고스logos spermatikos”라는 개념으로 대답했습니다. 현존하는 모든 것은 스토아 사상에 의하면 싹 내지는 씨앗처럼 작용하는 내재적 에너지를 지니고 있습니다. 이러한 힘은 마치 씨앗과 싹이 차제에 외부적으로 “발화(発花)”하게 합니다. 신플라톤주의자, 플로티노스는 무언가를 변화시키는 물질의 기능을 어떤 영원한 돌출 행위와 연결했습니다. 모든 현존재는 일원성으로서의 신의 빛으로부터 “유출emanatio”해 나온다는 것입니다. 물질은 플로티노스에 따르면 유출 과정의 힘이 거의 빠진 마지막 단계에 머물고 있습니다. 이로써 물질은 아무런 형태 없이 공허한, 청체를 지니지 않는 수동적 존재라는 것입니다. 플로티노스가 말하는 “우시아οὐσία”는 움직임이 거의 사라진 물질의 무기력한 특징만을 드러낼 뿐입니다.
(계속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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