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은 오랜 기간에 걸쳐 정치의 영역에서 지대한 영향을 끼친 서적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마키아벨리를 정치가 내지 철학자로만 이해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는 소설가 그리고 극작가로 활동했습니다. 마키아벨리는 피렌체 대학교에서 라틴어와 인문학을 공부한 다음에 오랫동안 고향 도시에서 공직자로 일하기 시작했습니다. 그의 행정 능력은 탁월했고, 외교 사절단으로 인접 국가를 방문하곤 하였습니다. 당시 이탈리아는 프랑스와 에스파냐의 막강한 권력에 종속되어 있었고, 국토 역시 분할되어 있었습니다. 게다가 교황의 권한이 막강하여 프랑스 국가와 대적하기도 하던 시대였습니다. 마키아벨리는 현실의 이러한 악조건 속에서 피렌체에서 고위 공직자로 일했는데, 그의 삶이 롤러코스터를 타게 된 것은 어쩌면 필연적 귀결이었습니다. 피렌체는 프랑스 국가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었는데, 정권이 바뀌자, 메디치가 복권하게 되었습니다. 이때 마키아벨리는 메디치를 전복시키려는 모반의 일원으로 몰리게 되었고, 투옥됩니다. 24시간의 고문을 견딘 그의 재산은 몰수되었고, 1514년에 산트 안드레아의 작은 농장에 칩거하게 됩니다. 이때부터 마키아벨리는 문학 작품의 집필에 몰두하였습니다.
오늘 다루려는 중편은 「한 여인을 취한 악마 La Novella del Diabolo che Presse Moglie」인데, 마키아벨리가 사망한지 20여년이 지난 시점인 1549년에 간행되었습니다. 작품의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어느 날 저주받은 영혼들은 지옥으로 향하기 전에 다음과 같이 하소연합니다. 즉 그들의 부인들은 제각기 범죄를 저질렀는데, 이러한 범죄가 출현한 것은 오로지 남편들의 잘못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지옥의 제후인 플루토는 그들의 하소연을 청취하다가, 어떤 궁금증에 사로잡힙니다. 결혼의 삶이 얼마나 힘들길래 그들이 그러한 말을 하는가? 플루토는 일단 어떠한 자초지종을 알아보는 게 급선무라고 판단합니다. 그는 “벨파고어”라는 이름의 악마를 지상으로 보내기로 작심합니다. 벨파고어는 결혼의 삶 그리고 지옥의 삶 가운데 어느 것이 더 끔찍한가? 하는 물음에 대한 해답을 찾아와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 그는 인간의 형상으로 약 10년 동안 한 여인과 동거해야 합니다. 그렇게 해야만 혼인 상태의 인간이 어떻게 슬픔과 기쁨을 느끼는지 속속들이 경험할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지상으로 내려온 악마 벨파고어는 일단 에스파냐 출신의 귀족으로 변신합니다. 그는 주위 사람들에게 자신이 카스티글리아 출신의 귀족, 로드리고라고 소개합니다. 그 다음에 많은 벨파고어는 금은 보화가 실린 수레를 끌고, 많은 부하들을 데리고 피렌체에 당도합니다. 피렌체는 이제 프랑스가 아니라, 에스파냐의 막강한 권력에 굴복하고 있었습니다. 에스파냐 출신의 돈 많은 귀족 로드리고가 당도하자, 피렌체 사람들은 그를 부러워하며, 허리를 수그리기 시작합니다. 바로 이 순간부터 로드리고에게 엄청난 재물이 있다는 소문이 피렌체 전역에 퍼져나갑니다. 결국 악마, 벨파고어, 아니 에스파냐의 귀족 로드리고는 이른바 피렌체에서 가장 아름다운 처녀, 오네스타와 결혼식을 올립니다. 사실인즉 오네스타는 피렌체의 유지, 아메리고 도나티의 딸이었습니다. 도나티는 최근에 자신의 재산을 탕진하였는데, 이를 모면하기 위해서 교묘하게 자신의 딸을 로드리고와 결혼시킨 것이었습니다.
벨파고어는 오네스타를 처음 본 순간부터 자신의 눈을 의심했습니다. 너무 미인이었기 때문입니다. 벨파고어와 오네스타는 허니문을 보낸 다음 아무 걱정 없이 하루하루를 보내며 생활했습니다. 그런데 몇 개월이 지나자 벨파고어는 그미의 성품을 알게 됩니다. 몇 년이 지나자 그의 눈에는 오네스타의 아름다움 대신에 그미의 소유욕만 비치게 됩니다. 아니나 다를까, 오네스타는 허영심이 강했으며, 씀씀이가 헤픈 여자였습니다. 게다가 그미의 가족들마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로드리고의 재산을 조금씩 빼앗아가기 시작합니다. 과소비는 나라님도 못 말린다고 했던가요? 시간이 흐름에 따라 로드리고의 재산은 동이 나게 됩니다. 그럼에도 오네스타의 가족들은 사치스러운 생활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결국 로드리고는 거대한 빚에 시달리는 신세가 됩니다. 이들과 사느니, 차라리 지옥으로 도망칠까? 하는 생각이 문득 떠오릅니다.
결국 빚쟁이들의 독촉을 피하는 게 상책이라고 판단한 로드리고는 몰래 집을 나서면서 어디론가 줄행랑을 놓습니다. 저녁 무렵 그는 어느 농부의 집에서 은신하게 됩니다. 농부의 이름은 “지아마테오 델 브리카”였습니다. 그는 자신을 숨겨주고 음식을 융숭하게 대접한 농부에게 감사의 마음을 느낍니다. 그래서 로드리고는 자신이 누구인지를 분명히 밝히면서 농부에게 물질적으로 감사를 표현하려고 합니다. 그는 두 번에 걸쳐 악령을 제거하는 자로 일합니다. 신들린 처녀의 몸속으로 잠입하여, 사악한 영혼이 빠져나가게 조처합니다. 로드리고는 수고비를 농부에게 전해줍니다. 로드리고는 농부에게 물질적으로 고마움을 끝냈다고 믿으면서, 더 이상 돈을 악령을 제거하는 일을 하지 않기로 결심합니다. 어느 날 프랑스 왕국의 공주가 악령에 사로잡히게 됩니다. 농부는 프랑스 왕에게 불려갑니다. 프랑스 왕은 그미를 고쳐달라고 농부에게 부탁합니다. 이때 농부는 자신은 그렇게 할 능력이 없다고 말합니다. 그러자 프랑스 왕은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만일 공주의 몸속에 잠입한 악마의 영혼을 추방시킨다면, 농부는 죽음을 면할 수 있는 것입니다.
어느 날 노트르담 사원 앞에서 놀라운 일이 벌어집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운집해 있는데, 농부가 거대한 광장 한 가운데에 서 있습니다. 농부는 공주의 몸에서 악마를 빼내어 그를 추방시켜야 하지만, 어떻게 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습니다. 바로 이 순간 공주는 사슬에 묶인 채 노트르담 사원 앞의 광장으로 끌려 나옵니다. 로드리고는 은밀히 공주에게서 사악한 영혼을 빼내려고 합니다. 일이 다 끝날 무렵에 그는 왜 사람들이 이런 식으로 불필요한 짓거리를 행하고 있는가? 하고 농부에게 묻습니다. 이때 농부는 뜬금없이 “조만간 벨파고어의 아내, 오네스타가 이곳에 나타날 것입니다.”하고 대답합니다. 바로 이 순간 로드리고는 너무나 놀란 나머지 행하던 일을 멈추고, 혼비백산 지옥으로 도망치고 맙니다.
한 여성을 취하는 악마의 이야기는 동방의 소재에서 유래한 것입니다. 이러한 유형의 이야기들은 이탈리아의 동화 수집가이자 작가인 지오반니 프란체스코 스트라파롤라 (Straparola, 1480 - 1558)의 『편안한 밤Piacevoli notti』 (1550)에 실려 있습니다. 이 작품의 특징은「만드라골라」와 마찬가지로 우아하고 정교한 언어로 표현한 놀라운 착상에서 발견됩니다. 마키아벨리는 피렌체의 고위 관리로 일할 무렵에 능수능란한 인간 유형을 접하고, 이를 작품 속에 악마인 벨파고어의 형상 속에 담았습니다. 악마 벨파고어는 거침없이 행동하는 인간 유형이라는 점에서 『군주론』의 모델이 된 바 있는 이탈리아의 전제 군주 체자레 보르자 (1475 - 1507)를 방불케 합니다. 마키아벨리의 이 작품은 다른 작가에게 나름대로의 영향을 끼쳤습니다. 나중에 프랑스의 작가 라퐁텐도 악마의 소재로 작품을 집필한 바 있으며, 영국의 극작가 존 윌슨John Wilson은 극작품 「벨페고어, 혹은 악마의 결혼Belphegor, or The Marriage of the Devil」을 완성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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