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 Bloch 저술

박설호: (19) 희망의 원리. 제 4차 강의

필자 (匹子) 2024. 4. 5. 09:39

(18에서 계속됩니다.)

 

13. 음악 예술: 음이란 가장 멀리 떨어져 있는 가장 내면적인 항성으로부터 퍼져나오는 빛과 같습니다. 음악은 블로흐에 의하면 인간의 감정을 가장 열정적으로 분출하게 하는 예술적 장르라고 합니다. 그것은 문학의 경우처럼 언어를 매개로 하지 않으며, 회화 예술의 경우처럼 시각을 매개로 하지 않습니다. 음악은 가장 직접적인 방식으로 소리, 즉 청각에 의존할 뿐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악기는 타악기를 제외하면 목적(牧笛)이라고 합니다. 목자들은 피리를 불면서 사랑에 대한 동경을 음악으로 표현하였습니다. 오늘날에도 젊은 인디언은 평원으로 내려가서 목적을 불면서, 이별의 슬픔을 음악으로 표현합니다. 그러면 인디언 처녀는 멀리서 눈물을 흘린다고 합니다.

 

이는 오비디우스의 변신 이야기Metamophoses에 실려 있습니다. 목양신은 아름다운 요정 시링크스를 사랑하여, 그미에게 저돌적으로 다가갑니다. 이때 시링크스는 물의 자매, 파도에게 간청하여 갈대로 변신합니다. 목양신은 시링크스의 가느다란 허리를 낚아채었지만, 그가 차지한 것은 갈대밖에 없었습니다. 그는 너무나 아쉬워 긴 한숨을 내쉽니다. 그의 아쉬움은 갈대 속으로 들어가 묘한 음을 드러내는 게 아니겠습니까? 목양신은 갈대를 꺾어서 얼기설기 목적을 만듭니다. (Bloch, PH: 1245). 음악은 지금 곁에 없는 사랑하는 연인과 가상적으로 나누는 대화입니다. 이렇듯 목양신의 목적 연주는 사랑의 슬픔을 달래주는 위한으로 작용하게 되었습니다.

 

14. 음악과 분리될 수 없는 인간적 표현: 음악은 궁극적으로 아직 완성되지 않은 세계를 음표로써 그림 그리는강렬한 예술입니다. 예컨대 베를리오즈는 이룰 수 없는 사랑의 고통으로 환상 교향곡을 작곡하였습니다. 사실 음악만큼 사회적으로 조건화된 예술은 없습니다. 다시 말해 인간의 정서는 시대적 상황에 따라 음악의 장르 속에 직접적으로 스며들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헨델의 음악은 성장하는 영국의 제국주의의 찬란함을 과시하고 있습니다. 바흐의 칸타타는 바로크 시대의 시대적 배경과 죽음의 문제를 담고 있으며, 바그너의 오페라는 자본주의 부르주아의 도취적 열정을 표출하고 있습니다.

 

가령 후기 자본주의의 인간 소외, 물신숭배 현상은 12음계 법을 창안하게 하였습니다. 한마디로 음악 예술은 다양한 음을 담는 젊음의 예술이며, 유토피아를 아무런 중개 없이 표출하는 예술적 장르입니다. 음악이 표현하는 것은 아직도 발효하지 않은 무엇 내지는 아직도 완전히 정의 내려지지 않은 무엇입니다. (Bloch, GdU2: 234.) 그러므로 그것은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존재의 핵심이며 지평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자고로 노래는 내밀한 정서가 담긴 근원의 본질을 소환한다. Cantus essentiam fontis vocat.고 하지 않습니까?

 

15. 천구의 화음, 인간을 이상으로 이끄는 별: 중세의 시대에는 음악가가 화가보다도 더 높은 지위를 부여받았습니다. 당시에 음악은 중세의 대학에서 배워야 하는 일곱 가지의 교양과목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물론 이론으로서 음악이 다루어졌을 뿐, 음악연주와 같은 실천적인 부분은 거의 무시되었습니다. 음악에서 말하는 대위법은 아리스토텔레스 이후로 이어진 논리학의 도움을 받고 있었습니다. 실제로 대위법이란 한 개의 소리로 많은 다양한 음을 만들어내는 기법으로 이해됩니다. 중세 사람들은 음악 이론을 통해서 천구의 화음을 추적하였습니다. 교회의 음악은 오로지 신으로부터 유래하며, 천사의 화음 속에서 울려 퍼지는 예술적 철학적 지침이었습니다. (Bloch, PH: 1263).

 

보에티우스는 음악에 나타난 계층적 질서를 언급한 바 있습니다. 첫째로 천체의 음악 musica mundana은 척도와 수에 의해서 정해진 세계와 우주의 움직임이라고 합니다. 둘째로 인간의 음악 musica humana은 인간의 영혼과 육체와 함께 조화로움 음의 유희를 가리킵니다. 셋째로 악기의 음악 musica instrumentalis은 가장 아랫부분의 실제 음으로 들리는 유출emanation로 이해될 수 있습니다. 이로써 천구의 음향은 중세의 세계관을 반영한 범례로서 학문적 영역에서 자리매김하게 됩니다.

 

실제로 천구의 화음을 중요하게 생각한 사람들은 낭만주의 자연 철학자들이었습니다. 예컨대 셸링은 예술의 철학에서 리듬과 멜로디 그리고 화음의 의미를 천문학과 관련지었습니다. 고대 음악의 리듬과 멜로디가 행성의 규칙적인 연속성과 관련된다면, 이에 반대되는 화음과 대위법 등은 혜성의 불규칙적인 불연속성과 관련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로써 셸링은 화음의 이론과 대위법 속에는 인간을 초월하는 숭고한 질서가 자리한다고 확신했습니다. 요약하건대 천구의 화음은 찬란한 신의 세계에 대한 동경을 예술적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16. 음향의 강렬함과 도덕성, 소나타 형식과 베토벤의 피델리오: 음악은 블로흐에 의하면 아직 드러나지 않은 세계와 관계를 맺는다고 합니다. 주어진 사회의 표피적인 면은 단절되어 있으며, 차단되어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은 놀랍게도 음악입니다. 음악은 음이라는 순수함을 본령으로 하지만, 진폭에 있어서는 주어진 사회 그리고 다가올 사회의 제반 조건을 암시해주기도 합니다. 바로 이러한 이유로 인하여 음악은 그 자체의 강렬함 그리고 당위적 세계에 관한 도덕성을 선취하게 해줍니다. 그렇기에 음악의 본령은 고향으로서의 일시적인 시링크스이며, 헤엄치는 임을 위해서 빛을 밝혀주는 헤로의 램프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미 언급했듯이 음악의 형식은 주어진 시대정신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가령 쇤베르크는 화음과 불협화음이 자신의 시대에 이르러 더 이상 의미가 없음을 직감하였습니다.

 

12음계법으로 이루어진 그의 음악은 한편으로는 현대인의 불만족 그리고 슬픔을 표현하며, 다른 한편으로는 성취되지 않는 삶 속의 무한한 현존재를 예술적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밖에 소나타 형식은 블로흐에 의하면 불일치에 대항하려는 혁명적 열정과 관련된다고 합니다. (Bloch, PH: 1286). 소나타는 초기 자본주의의 적대적 감정 내지는 동시대의 갈등을 변증법적으로 소화해낼 수 있었습니다. 이로써 우리는 다음의 사실을 간파할 수 있습니다. 소나타의 진정한 주체는 모든 가능성을 발전시키는 에너지의 동인이라는 사실 말입니다. 소나타 그리고 푸가는 비참한 삶 그리고 숙명에 대항하려는 인간의 강렬하고도 끈질긴 갈망을 담고 있습니다. 특히 블로흐는 해방의 놀라운 에너지를 담은 순간을 베토벤의 피델리오의 트럼펫 신호에서 발견하고 있습니다. 왜냐면 트럼펫 신호는 성취된 희망을 알리고 죽음마저도 극복할 수 있는 자유의 정신을 일깨우기 때문입니다.

 

17. 죽음의 의미: 블로흐는 제52장부터 죽음에 대항하는 희망의 상을 서술하고 있습니다. 죽음이 우리에게 불안을 가져다주는 까닭은 인간이 죽은 뒤에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사실 죽음의 타격처럼 낯설고 암울한 것은 없을 것입니다. 인간은 때로는 스스로 목숨을 저버림으로써 죽음의 한계를 극복하기도 합니다. 순교자들은 자신의 거룩한 뜻을 위해서 목숨을 흔쾌히 바칩니다. 후세인들은 그들이 승리를 맛보지 못했으며, 실패한 사람이라고 탄식하지는 않습니다. 설령 죽은 뒤에 무()로 변하게 되는 게 사살이라 하더라도, 인간은 죽음 이후의 세계에 일말의 의미를 부여해 왔습니다.

 

그래서 “모든 것은 결코 뒤섞여 훼손되지 않으리라Non omnis confundar라는 격언이 오랫동안 퍼지게 되었습니다. (Bloch, PH: 1325). 그리스 문화, 이집트 문화 그리고 기독교 문화는 죽음을 극복하려는 수많은 갈망의 방식을 보존해 왔습니다. 사람들은 오래 전부터 죽음 이후의 세계를 해명하려는 꿈을 꾸었습니다. 이러한 꿈속에는 비록 죽음을 당하더라도 결코 완전한 절망 속에 빠지지 않으리라는 강렬한 욕망이 역설적으로 담겨 있습니다. 블로흐는 이어지는 장에서 제반 종교에 나타나는 죽음 이후의 세계를 차례대로 서술하고 있습니다.

 

(20으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