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 Bloch 저술

박설호: (16) 희망의 원리. 제 4차 강의

필자 (匹子) 2024. 3. 29. 14:32

 

(앞에서 계속됩니다.)

 

1. 젊은 괴테, 방랑자의 폭풍 노래: 제48장에서 블로흐는 문학예술이 나타난 갈망의 상을 서술합니다. 그가 첫째로 선택한 것은 젊은 괴테의 열정과 문학 작품입니다. 젊은 시절 괴테는 혼란스러움을 느끼면서 자신의 불확정적인 갈망을 연속적으로 추적하였습니다. 좋은 가문에서 태어나 풍족하게 살았지만, 불안으로 인해 어디에서도 안주하지 못했습니다. 괴테의 발효하는 동경은 그의 편지에서 그리고 그의 작품에서 그대로 드러나고 있습니다. 가령 베르테르의 열광적 사랑과 이에 병행하여 출현한 괴로움은 괴테 자신의 혼란스러움뿐 아니라, 시대적인 문제점에서 유래한 것입니다.

 

사실 『젊은 베르테르의 고뇌』는 폭정에 저항하는 질풍과 노도의 운동과 연결되어, 당시에 청춘의 저항 운동을 분출하게 했습니다. 극 작품, 「괴츠 폰 베를리힝겐」의 주인공은 괴테의 신과 같은 존재였으며, 진정한 “데미우르고스”였습니다. (Bloch, PH: 1150). 이는 반역의 불꽃을 안겨주는 프로메테우스의 노여움과 관련됩니다. 극 작품, 「타소」에 나타나는 극단적 판타지는 젊은 괴테의 갈망과 열광을 담고 있는 상징적 정서와 같습니다. 이렇듯 젊은 괴테의 문학은 자신의 시 제목과 같은 “방랑자의 폭풍 노레”로 요약될 수 있습니다. 언젠가 셰익스피어는 극 작품, 「폭풍The Tempest」에서 작가의 창조적 능력을 “아리엘”이라고 명명했습니다. 젊은 괴테의 문학적 토대는 블로흐에 의하면 자신의 격정적 아리엘을 담기 위한 찬란한 만화경으로 비유될 수 있습니다.

 

2. 괴테의 문학에 반영된 악령의 특징: 괴테의 집필 장소는 언제나 어두운 공간이었습니다. 그는 예술적 생산의 에너지를 악령과 같은 무엇이라고 규정하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에너지는 사람들을 유혹하는 힘이며, 명령을 내리는 힘이라고 합니다. 악령의 요소는 우리를 경악에 사로잡히게 하지만, 때로는 우리를 매료시킵니다. 그것은 폐쇄적인 특징을 지닙니다. 악령의 요소는 내면적 폐쇄성을 지니므로, 대중들을 순식간에 열광의 도가니에 빠져들게 합니다.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예술 작품은 성스럽고도 훌륭한 내용뿐 아니라, 격세 유전적인 끔찍함을 전해주기도 합니다.

 

괴테는 자연의 직접적인 영향으로 출현하는 모든 것을 사악한 영혼이라고 간주했습니다. 그렇지만 자신에게는 이러한 것들이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고 실토하기도 했습니다. 기이하고 사악한 특징은 자연과 세계의 내부와 외부 사이의 상호 관계에서 교묘하게 드러나고 있습니다. 자연과 세계의 비밀이 묘하게 드러나는 순간 그곳에서는 사악하고 기이한 에너지가 작용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비밀스러운 무엇은 폐쇄성과 출현하는 오로라 사이에서 끊임없이 서로 영향을 끼친다고 합니다.

 

그래서 시작품은 괴테에 의하면 「교회 창문에 그려진 그림Gedichte sind gemalte Fensterscheiben!」입니다. (Goethe, J. W., Gedichte. Ausgabe letzter Hand, 1827. Parabolisch). 그렇기에 밖으로 드러나는 비밀, 밝은 악령의 표현 형태 내지는 객체 형태는 알레고리 내지는 상징으로 드러날 수밖에 없습니다. 괴테가 독창적으로 작업한다는 것은 세계에 창조적 정신을 부여한다는 것을 뜻했습니다. 왜냐면 자연과 세계 전체가 객관에 합당하게 존재하면서 생명력을 이어나가는 알레고리와 상징이기 때문입니다. 괴테는 브루노와 스피노자와 마찬가지로 범신론적인 전체성을 고려하면서 자연의 책을 집필하려고 노력했습니다.

 

3. 괴테의 미뇽, 동경의 내용은 머나먼 고향이다.: 블로흐는 괴테의 소설 『빌헬름 마이스터의 수업시대』에 등장하는 소녀, 미뇽을 통해서 동경의 의미를 추적하였습니다. 미뇽은 어린 시절 줄 타는 광대에게 유괴되어, 극단과 함께 방랑합니다. 단장의 학대에 시달리던 그미는 우연히 빌헬름과 만납니다. 미뇽은 그에게서 처음으로 인간적 따뜻함을 느낍니다. 빌헬름은 그미에게는 고향으로서의 인간입니다. 그런데 다른 한편 빌헬름은 단 한 번도 누군가로부터 사랑을 받은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도 미뇽은 보호자도, 아버지도 아닌 그를 따릅니다. 말하자면 빌헬름은 그미에게는 이탈리아의 안온한 집을 떠올리게 해주는 존재입니다.

 

미뇽은 언제나 이탈리아의 먼 곳을 갈망하는데, 이러한 동경은 그미가 지금 그리고 여기에서 추방되어 있다는 사실을 말해줍니다. 그런데 미뇽이 꿈꾸는 공간은 실재하는 이탈리아의 집이 아닙니다. 그곳은 동경 자체의 영역일 뿐입니다. 미뇽이 죽기 전에, 그미를 진단한 의사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선한 아이는 참으로 기이한 존재로군. 몸 자체가 깊은 동경으로 이루어져 있는 것 같으니까. 자네를 갈구하고, 조국을 갈구하고 있어. 그러나 이러한 갈망은 오로지 무한정하게 먼 곳에서만 성취될 것 같아.” 괴테가 이탈리아 여행에서 실제로 접했을 때, 남성의 대리석상을 바라보면서 미뇽이 꿈꾸던 아버지의 존재를 떠올립니다.

 

대리석상은 버팀목으로서의 미뇽의 아버지가 아니라는 사실을 깊이 체득합니다. 동시에 미뇽이 갈구하던 고향 집은 실제 이탈리아의 따뜻한 가옥이 아니라는 것을 처절하게 깨닫습니다. 괴테는 이렇듯 갈망의 허구성, 아니, 영원히 방황하는 동경을 숙고하면서, 미뇽에 관한 세 편의 시를 집필했습니다. (Bloch, PH: 1170). 시작품은 결코 다른 실제 공간으로 이전될 수 없는 고유한 공간을 우리에게 전하고 있습니다. 미뇽의 동경은 실제 현실에서 체험할 수 없는, 그야말로 동경에 불과한 “머나먼 고향”일 뿐입니다. 이렇듯 인간의 갈망은 완전히 충족될 수 없으며, 우리에게 성취의 우울이라는 여운을 남길 뿐입니다.

 

4. 순간의 쾌락으로서의 "오늘을 즐겨라Carpe diem": 블로흐는 순간의 열광을 누리는 돈 후안을 다루는데, 방탕한 인간의 문학작품 속에 반영된 사회사적 주제를 천착하고 있습니다. 돈 후안은 모든 여자에게 낚싯줄을 던집니다. 성욕을 누린 바람둥이는 다른 유혹에 이끌려 다른 곳으로 떠납니다. 돈 후안이 처음으로 극작품에 등장한 때는 1630년이었습니다. 몰리나Molina의 「세비야의 사기꾼El Burlador de Sevilla」에서는 육체적 욕망과 정신 사이의 중세적 대립이 강조됩니다.

 

돈 후안은 신을 비웃으며 육체적 욕망을 추구하는데, 고해 수도사 앞에서 참회합니다. 몰리에르는 프랑스의 궁정 사회를 비판하기 위해서 동 쥐앙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말하자면 동 쥐앙은 신을 모독하는 무신론자로 처신하는데, 이는 계몽주의의 사고와 무관하지 않습니다. 모차르트의 오페라에서 돈 조반니는 몰리에르와 마찬가지로 교활한 기회주의자로 등장합니다. 농부, 마제트는 주인공과 갈리 혁명적 의식을 품고 있습니다. 놀라운 것은 돈 후안의 상이 프랑스 혁명 이후로 의미 변화를 이루었다는 사실입니다. 말하자면 향락주의는 수사 계급을 반대하는 에너지로 작용하게 되었습니다.

 

가령 바이런의 「돈 후안」은 속물들의 위선과 반동주의 그리고 근엄한 경건주의를 패러디하고 있습니다. 이에 비하면 니콜라우스 레나우의 서사시 「돈 후안」은 여성의 정조 관념이 무의미하다는 것을 지적하지만, 수미일관 지고의 사랑을 찾으려고 애를 씁니다. 그러나 레나우 작품에 등장하는 돈 후안은 1003명의 여성을 농락하지만, 결국 죽음을 맞이합니다. 1003이란 –언젠가 키르케고르도 암시한 바 있듯이- 나누어지지 않는 숫자이기 때문에, 지고의 사랑은 미완으로 끝날 수밖에 없다고 합니다. (Bloch, PH: 1187). 비련의 독일 작가 그라베 역시 1829년에 「돈 후안과 파우스트」라는 극작품을 발표했습니다. 여기서 돈 후안은 결코 궁정의 불한당도 아니고, 구애하는 바람둥이도 아닙니다. 그는 그라베에 의하면 거인과 같은 보헤미안의 전형이라고 합니다. 왜소한 부르주아가 어째서 거대한 배포를 지닌 자로 다루어지는지에 관해서는 납득하기 힘이 듭니다. 어쨌든 돈 후안이 만끽하는 순간의 쾌락은 블로흐에 의하면 좋든 싫든 간에 인간의 열정 가운데 가장 눈부신 빛임에 틀림없습니다.

 

(게속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