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 Bloch 저술

박설호: (11) 희망의 원리, 제 3차 강의

필자 (匹子) 2024. 3. 16. 10:44

1. 연금술, 세계의 변화, 보편적 의미의 종교 개혁: 블로흐는 수많은 동화를 언급합니다. 동화 속에는 인간의 크고 작은 갈망의 모티프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동화 속에는 어떤 거짓된 내용이 참된 내용 속에 혼재되어 있습니다. 가령 동화 속에는 수많은 망상과 실현 불가능한 이야기가 자리하는데, 이것이 주어진 현실에서 간파될 수 없는, 마치 거짓처럼 다가오는 기상천외한 내용입니다. 그런데 기상천외한 판타지는 놀랍게도 나중에 과학 기술의 발전을 자극하였습니다. 예컨대 비행 담요라든가 알라딘의 램프는 비행 기술을 발전시키게 했습니다.

 

연금술사들은 기괴한 실험을 이어나갔습니다. 연금술사인 브란트는 1674년에 현자의 돌을 찾는 과정에서 자신의 오줌을 여과한 바 있는데, 이러한 실험을 통해서 인()이 발견되기도 했습니다. (Bloch, PH: 747.) 주지하다시피 금이라는 금속은 고유한 성분으로 구성되어 있으므로, 연금술은 성공을 거둘 수 없습니다. 그러나 과거 사람들은 이 사실을 알지 못했습니다. 그렇기에 르네상스에서 근대에 이르기까지 연금술의 시도는 연속적으로 이어졌던 것입니다.

 

꿩 대신 닭이라고 했던가요? 금을 찾아내려는 실험은 금을 만들어내지는 못했지만, 최소한 도자기 기술을 개발하는 데 간접적으로 이바지했습니다. 이와 관련하여 블로흐는 다음과 같이 주장합니다. 즉 연금술은 죄악으로 가득 찬 혼탁한 세상을 순수한 기독교의 황금으로 정화하려는 고결한 의도로 시작되었다고 말입니다. 이 점을 고려한다면 연금술은 사이비 기술자들의 장난이 아니라, 목표와 의향에서 있어서 어떤 가치를 지닌 게 분명합니다.

 

2. 안드레에의 문헌: 요한 발렌틴 안드레에는 1616년에 1459년 크리스티안 로젠크로이처의 화학의 결혼이라는 책을 간행하였습니다. 책의 내용은 마치 기이한 이야기를 전해줍니다. 중부 독일의 유명한 기사, 로젠크로이처는 부활절 하루 전에 새로운 곳으로 여행을 떠납니다. 어느 왕국의 결혼식에 초대를 받았던 것입니다. 그는 비밀스러운 성에서 시험을 거친 다음에 하객으로서 일주일 동안의 결혼식에 참가합니다. 놀랍게도 젊은 왕족의 부부는 사망하고, 하객들은 모조리 금빛 돌의 가시로 변신합니다.

 

이때 로젠크로이처는 너무나 놀란 나머지 황급히 몸을 숨기기 위해서 어느 밀실로 잠입합니다. 그곳에는 비너스의 여인이 잠들어 있었습니다. 사실인즉 주인공 로젠크로이처는 문지기로서 성에서 머물기로 예정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요약하건대 안드레에의 책자는 알키미아라는 신부를 납치하여 7일 동안의 새로운 생명의 탄생을 돕는 이야기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여기서 연금술은 신부를 납치하는 기술로 이해되는데, 세계의 변화 내지는 보편적인 종교 개혁으로 이해되고 있습니다. 안드레에의 책자는 유럽 전역에서 연급술의 비밀과 가치를 퍼뜨렸습니다.

 

3. 기독교 정신과 세계의 전복: 1617년에 장미 기사단원인 브로토퍼는 안드레에의 작품 해설서를 간행했습니다. 해설서는 안드레에가 묘사한 결혼식의 7일을 연금술의 일곱 단계로 서술하고 있습니다. “증류destillatio”, “용해solutio”, “순화purefactio”, “검게 태우기nigredo”, “태양 반사광으로 강도 높이기albedo”, “정제fermentatio”, “의학적 구상projectio medicinae등이 일곱 단계를 가리킵니다. (에른스트 블로흐: 희망의 원리, 열린책들 2004, 1298.) 이른바 화학의 결혼은 최후의 합일과 관련되는데, 황금의 시대가 발효하는 전체성의 과정으로 설명되고 있습니다. 이것이야말로 새롭게 태어나는 연금술의 축제라는 것입니다.

 

실제로 독일 바로크 시대 사람들은 진정한 기독교인의 자유가 도래하지 않았다고 이를 갈구하였습니다. 안겔루스 실레시우스Angelus Silesius깨어나라, 얼어버린 그리스도여라고 외치면서, 윌리엄 블레이크William Blake와 마찬가지로 세상이 찬란한 기독교적 황금으로 변화되기를 갈구하였습니다. 연금술은 인간다운 사회societas humana에 관한 꿈, 다시 말해서 찬란한 황금을 출현을 갈구하곤 하였습니다.

 

장미 십자단원의 장미이슬ros을 뜻하고, “십자가crux”물질의 빛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안드레에의 책에 언급되는 현자의 돌은 그리스도의 석상을 암시합니다. 말하자면 연금술사가 사용하는 납덩이는 인간이자 세계 전체로 이해되고 있습니다. 그들은 지상의 모든 사물에 질서를 부여하려고 합니다. 현재의 세게는 장미 십자단원에 의하면 거대한 전복을 맞이하려고 합니다. 이러한 전복은 은밀하게 감추어져 있지 않고, 세상의 밖에서 완성되려고 합니다. 여기서 황금이란 실존하는 귀중품일 뿐 아니라, 미래 발전의 상징물이었던 것입니다.

 

4. 기술 유토피아에 해당하는 연금술: 블로흐는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사항을 지적합니다. 그 하나는 중세의 연금술이며, 다른 하나는 위대한 건축 속에 도사리고 있는 갈망의 상입니다. 첫째로 연금술은 금을 만들어내는 기술이었습니다. 금속 자체는 세 가지 기본적인 구성 성분 속에 혼합되어 있다고 합니다. 그것은 다름 아니라 수은Merkur”, “유황Pulsur그리고 소금Sal을 가리킵니다. 첫째로 수은의 정수는 물과 흙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물질의 팽창과 용해를 도와준다고 합니다. 둘째로 유황의 정수는 공기와 불로 이루어져 있는데, 남성적이고 능동적인 물체로 이해되었습니다. 물질을 변화시키는 데에는 열기와 불꽃이 필요하다고 합니다.

 

셋째로 소금의 정수는 무엇보다도 기화 가능성을 테스트하는 데 도움을 주고, 금속의 강도와 파괴성을 측정하게 해준다는 것입니다. 더 나은 물질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압축 그리고 응고의 과정을 반드시 요청하는데, 소금이 바로 그러한 역할을 담당한다고 합니다. (Bloch, PH: 748f.) 연금술사들은 세상을 황금으로 정화하려는 욕망을 견지하고 있었습니다. 연금술의 노력 속에는 기독교 사상이 추구하던 어떤 갈망의 흔적이 담겨 있습니다. 세상을 그리스도의 정신, 즉 황금으로 변화시키겠다는 게 그들의 갈망이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연금술사들을 단순히 물체를 기술적으로 조작하는 기능인으로 간주할 수는 없습니다. 그들은 자신의 작업을 주의 실험 작업Laboratorium Dei이라고 간주했습니다.

 

(계속 11, 12, 13, 14, 15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