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 Bloch 저술

박설호: (10) 희망의 원리, 제 2차 강의

필자 (匹子) 2024. 3. 9. 14:34

(앞에서 계속됩니다.)

 

19. 사회 유토피아와 천년왕국설: 국가 소설에 반영된 문학 유토피아는 대체로 “사유재산 철폐”를 주창합니다. 여기에는 어떤 정의롭고 평등한 국가의 모델이 체계적으로 서술되고 있습니다. 이는 제각기 주어진 끔찍한 사회상에 대한 반대급부로써 투영된 것입니다. 그런데 더 나은 삶을 위한 꿈은 사회 유토피아 그리고 천년왕국설이라는 두 가지 흐름으로 이어집니다. 전자는 토머스 모어, 캄파넬라 베이컨 등이 설계한 문학 유토피아를 가리키고, 후자는 메시아에 대한 기대감의 정서를 가리킵니다. 사회 유토피아는 바람직한 국가의 합리적이고 정태적인 설계로 구성되어 있다면, 후자는 메시아사상 내지는 천년왕국설에 반영된 미래에 나타날지 모르는 구원의 순간을 지칭합니다.

 

특히 후자는 더 나은 세계를 급작스럽게 이룩할 수 있는 혁명적 열광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전자가 역사적으로 개혁의 수정적이고 냉정한 모티프로 활용되었다면, 후자는 급작스러운 혁명의 능동적이고 열광적인 모티프로 쓰이게 됩니다. 가령 모어, 캄파넬라, 베이컨의 유토피아가 사회적 토대가 되는 자연법사상과 결부되어, 더 나은 국가의 기본적 바탕으로 자리매김하였다면, 오래전부터 나타난 메시아에 대한 기대감은 19세기 중엽에 노동자의 마음속에 강력한 혁명을 촉구하는 정서로 비화되어 나타난 바 있습니다. 어쨌든 사회 유토피아와 천년왕국설은 사회적 변화와 발전을 촉구하는 두 가지 모티프에 틀림이 없습니다.

 

20. 무정부주의 운동과 유토피아: 블로흐는 무정부주의의 유토피아를 거론하면서, 슈티르너, 프루동 그리고 바쿠니의 사상을 예로 들고 있습니다. 이로써 19세기 무정부주의 운동은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사항으로 요약됩니다. 첫째로 19세기 아나키즘은 블로흐에 의하면 19세기 유럽의 현실적 정황을 전제로 할 때 시대착오적으로 판명되었습니다. 이는 아나키즘의 사상 자체에 하자가 있는 게 아니라, 당시 유럽 사회의 현실적 모순이 아나키즘의 노력을 통해 해결되지 못했다는 뜻입니다.

 

둘째로 아나키즘은 원칙과 지향성을 고려할 때 나무랄 데 없지만, 실천 과정에 있어서 어떤 취약점을 노출합니다. 그것은 개개인의 열정과 저항에 근거하는데, 조직화 그리고 계획에 있어서 치명적인 취약점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19세기 아나키즘의 점조직 운동은 거대한 사회의 변혁을 위한 세력을 결집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셋째로 아나키즘 운동에는 테러의 정당성에 관한 문제로 불거져 나왔습니다. 가령 조르주 소렐의 급진적 생디칼리슴은 사회의 불합리한 체제를 뒤집는 데 도움을 주지만, 목표 설정과 조직화의 역역에서 막강한 힘을 발휘하지 못했습니다.

 

이를테면 급진적 테러리스트는 이상 사회의 건설이라는 목표와 무력 투쟁이라는 수단 사이에서 좌충우돌하는 모습을 보여줄 수밖에 없었습니다. 착취하고 억압하는 구체제의 무력을 무너뜨리기 위한 수단과 방법은 어느 정도의 범위에서 가능한가? 폭력은 어느 정도의 범위에서 정당화될 수 있는가? 하는 문제를 생각해 보세요. 폭력의 문제는 현대까 무정부주의의 운동에서 하나의 난제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국가의 폭력에 저항하는 운동은 오늘날에도 무소불위의 폭력을 자행하는 국가에 저항하고 개개인의 인권을 지킬 수 있는 유일한 방식으로 자리매김하고 있습니다.

 

21. 시민 사회의 유토피아: 벨러미와 모리스: 시민 사회의 운동으로서 19세기 이후에 나타난 청년 운동을 언급합니다. 기이한 것은 블로흐가 에드워드 벨러미의 『2000년에서 1887년을 되돌아보면서Looking backward: 2000 – 1887』 (1888) 그리고 윌리엄 모리스의 『유토피아 뉴스』를 시민 사회의 유토피아로 규정했다는 사실입니다. 물론 미국과 영국을 문학 유토피아의 배경으로 설정했다는 점에서 시민 사회 유토피아라고 규정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여기서 블로흐의 오류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추측컨대 모리스는 세계가 진화론적으로 향상되리라고 믿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는 주어진 사회의 혁명적 전복이 필연적이라고 확신했지만, 실천에 있어서 어떤 좋은 해결책을 찾지 못했습니다.

 

게다가 모리스는 사회가 어느 순간 혁명적으로 전복되리라고 믿었으므로, 혁명을 위한 구체적 계획 그리고 구체적이고 상세한 설계를 처음부터 생략하였습니다. 엥겔스가 모리스를 가리켜 “정서적 취향의 사회주의자”라고 명명한 것도 바로 그 때문입니다. 19세기 말의 유토피아는 멜러미와 모리스를 필두로 두 개의 양극을 이루고 있습니다. 그 하나는 과학 기술에 대한 극단적 찬양이며, 다른 하나는 과학 기술 발전에 대한 급진적 비판입니다. 최근에 이르러 모리스의 『유토피아 뉴스』는 생태주의의 유토피아의 원조로 새롭게 부각되었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산업 발전으로 인한 환경 파괴를 비판하기 위한 일환으로 설계된 것이기 때문입니다. 모리스의 유토피아는 유럽 지역의 생태 공동체 운동보다 100년 앞서서 출현하였으며, 오늘날에도 환경 생태를 위한 기본적 단초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계속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