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 이탈스파냐

서로박: (3) 군주론, 혹은 마키아벨리의 고독

필자 (匹子) 2023. 1. 22. 09:23

(앞에서 계속됩니다.)

 

15. 운명의 여신에 대항하는 권력으로서의 미덕: 마키아벨리는 『군주론』의 제25장에서 운명의 여신이 끼치는 영향력을 서술합니다. 운명의 여신의 영향력은 엄청난 크기와 양으로 흘러가는 격노하는 강물과 같습니다. 운명의 여신의 에너지는 이처럼 막강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그렇지만 이러한 에너지를 가로막고 차단하는 것은 무엇보다도 우주의 질서에 해당하는 미덕의 힘입니다. 특정 사회에서 출현한 위대한 인간은 마키아벨리에 의하면 이러한 미덕의 힘을 최대한 활용할 수 있습니다. 말하자면 미덕의 힘은 궁극적으로 운명의 여신, 포르투나에 대적하고 저항하는 하나의 방어막으로 작용하게 됩니다. 이 데목에서 마키아벨리가 내심 갈구하던 희망 사항이 백일하에 드러나고 있습니다. 즉 모세, 키루스 대제, 로물루스 그리고 테세우스 등과 같은 불세출의 영웅이 조만간 이탈리아에서 나타나서, 자신이 지닌 모든 미덕을 최대한 발휘하여 운명의 여신이 가하는 불가항력에 대항하게 되리라는 것입니다.

 

16. 마키아벨리는 고대 그리스 철학 그리고 스토아학파의 영향을 받고 있다. 마키아벨리는 자신의 문헌에서 인간의 삶이 우주에 종속된다는 스토아학파의 사상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입장은 고대 그리스 사상가들의 정치적 입장과는 분명히 다른 것입니다. 가령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는 “이성νούς”의 활동이 인간의 본성으로서의 “기회occasione” 그리고 “운명fortuna”의 작용과는 무관하게 추진된다는 것을 분명히 했습니다. 다시 말해서 고대 철학자들의 정치관은 마키아벨리 그리고 마키아벨리를 추종하는 사람들의 견해와는 분명하게 구별되고 있습니다. 실제로 마키아벨리를 추종하는 사람들은 마키아벨리의 “미덕의 상징성”에서 사상의 질적 내용을 찾으려고 했습니다. 이러한 내용은 『티투스 리비우스의 첫 번째 열권에 관한 논문』에서 역사적 모법 그리고 사회적 모델로서 설계되어 있습니다. 요약하자면 마키아벨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미덕”이라는 질적 특성인데, 이러한 미덕의 힘은 특히 가장 힘든 시기의 사회 내에서 가장 효율적으로 작동되는 “폭력violenzia”이라고 합니다. 바로 이 점을 고려한다면, 우리는 마키아벨리의 사상이 고대 그리스 사상가들의 정치적 입장보다는 오히려 로마의 스토아 사상의 숙명론적 우주 이론에 근접한 것처럼 보입니다.

 

17. 마키아벨리의 고독:Solitude de Machiavel 그렇지만 『군주론』에서는 고대 그리스의 정치사상 그리고 스토아학파의 정치적 입장 등이 세밀하게 언급되고 있지 않습니다. 마키아벨리는 마치 맨 처음으로 미지를 더듬는 탐험가처럼 생소하고 기이한 정치적 입장을 타진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1531년에 간행된 『티투스 리비우스의 첫 번째 열권에 관한 논문』이 공화주의를 예찬하고 있다면, 『군주론』은 군주제를 찬양하는 식으로 말입니다. 특히 후자의 문헌에서 저자는 통상적인 군주 국가가 아니라, “새로운 군주국의 새로운 군주”를 가상적으로 갈구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마키아벨리는 어째서 이러한 모순적인 입장을 피력했을까요? 그것은 -루이 알튀세르가 강연문 「마키아벨리의 고독」에서 주장한 바 있듯이- 마키아벨리가 16세기 초의 이탈리아반도의 정황을 의식하면서 새로운 국가. 지속 가능한 국가, 강대하게 성장할 수 있는 국가를 갈망했기 때문입니다. 마키아벨리는 기존의 군주들을 옹호한 게 아니라, 강대하고 혁신적인 국가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새롭고도 막강한 정책을 펼칠 수 있는 군주가 일차적으로 필요하다고 확신했습니다. 이러한 입장은 동양에서 선한 왕을 찾아다니며 방랑했던 공자의 태도와 흡사합니다.

 

18. (부설) 선한 왕을 모시며 왕도 정치를 실현하는 게 공자의 꿈이었다. 공자는 춘추전국시대에 살았습니다. 당시는 난세였습니다. 지식인들은 두 부류로 나누어져 있었습니다. 한 부류는 난세에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초야에 묻혀 사는 은둔자들이었습니다. 이들은 기회주의적으로 출세하여 폭군 아래에서 헌신하느니, 가난과 고독의 삶을 영위하는 게 낫다고 판단하였습니다. 다른 한 부류는 마치 기회주의 지식인 군들링Gundling과 마찬가지로 폭군 아래에서 일신의 영달을 추구하는 간신 모리배들이었습니다. 공자는 이들과는 달랐습니다. 선한 왕을 찾아다니지만, 자신이 생각하던 권력자가 아니면, 미련 없이 권력을 박차고 그곳을 떠난 사람이 공자였습니다. 그렇기에 공자는 은둔자들에게는 어리석게 기회를 엿보는 권력 지향적인 인간으로 비쳤으며, 간신들에게는 이득을 추구하지 않는 어리석은 고집쟁이로 비쳤습니다. 마키아벨리 역시 때로는 세도가의 책사 자리를 탐하기도 했지만, 때로는 그러한 기회를 박차고 나온 것을 고려하면, 그의 삶은 공자의 행적을 방불케 합니다. 법도와 융통성, 규칙과 예외성 사이의 중간을 선택한 사람들이 바로 공자 그리고 마키아벨리였습니다.

 

19. 마키아벨리에게는 정치 제도의 초석이 아니라, 통일 국가를 마련하는 일이 관건이었다.: 마키아벨리가 아무런 부끄러움도 느끼지 못하고 실증적 논거로서 군주를 옹호하는 글을 집필한 셈일까요? 그렇다면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은 -『티투스 리비우스의 첫 번째 열권에 관한 논문』과는 달리- 권력자의 지배를 보장하고, 권력의 수호를 도모하기 위한 문헌으로 규정되어야 할까요? 무조건 그렇다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마키아벨리는 『군주론』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인민의 본성을 충분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군주가 되어야 하며, 군주의 본성을 충분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인민의 일원이 되어야 한다.” 군주를 논평했다고 군주의 좋고 나쁜 기능을 모조리 담을 수 없는 것처럼, 인민을 논평했다고 해서 우리는 인민의 모든 것을 간파할 수는 없습니다. 군주의 기능과 인민의 기능은 상호 보완적인 무엇으로 거론되어야 하며, 특히 16세기 초의 이탈리아반도의 정세를 충분히 고려해야 합니다. 이 점을 고려한다면, 마키아벨리의 보편적인 사상은 오로지 『군주론』에 서술되어 있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군주에 대한 마키아벨리의 전체적이고 보편적인 견해를 간파하려면, 우리는 군주론 외에도 다른 문헌을 함께 고려하지 않으면 아니 될 것입니다. 요약하자면 마키아벨리는 군주국이냐, 공화국이냐를 놓고 고심하지 않았습니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완벽한 정치 제도를 확립하는 문제가 아니라, 이탈리아 통일 국가의 터전을 마련하는 과업이었습니다.

 

 

20. 마키아벨리의 문헌들은 특별한 독해를 요한다.: 우리는 『군주론』에서 군주에 관한 문제뿐 아니라, 인민에 관한 문제를 도출해낼 수 있는 지혜를 견지해야 할 것입니다. 마키아벨리가 확고하지 않은 나라를 다스리기 위해서 사자와 여우의 태도를 답습해야 한다고 말할 때, 이는 아무런 조건 없이 권력자를 옹호하기 위한 발언으로 해석될 수는 없습니다. 비근한 예로서 유토피아 연구에 끼친 디스토피아의 영향을 언급해보겠습니다. 디스토피아 문학은 20세기 초에 우후죽순 격으로 속출했는데, 일련의 문헌은 독자들에게 끔찍하고 부정적인 현실 상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그렇다 해서 우리는 디스토피아 작가들을 모조리 비관적 염세주의로 편입시킬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들은 다만 미래의 사회에 나타날 수 있는 끔찍하고 소름 돋는 현실의 가능성을 제시함으로써 독자들에게 무언가를 경고하려고 했던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군주론을 인민의 관점에서 비판적으로 독해할 수 있습니다. 만약 우리가 『군주들』을 읽게 되면, 권력자의 폭력 그리고 그들의 교활한 술수들을 역으로 감지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독해는 우리로 하여금 권력의 음험한 본질적 속성을 깨닫게 해줍니다.

 

21. 마키아벨리 비판, 그래도 선과 올바름 그리고 비폭력주의에 기대를 걸 수밖에 없다.: 예리한 독자는 “미덕virtù”의 개념 속에 불순한 성분이 혼재되어 있음을 감지하게 될 것입니다. 즉 마키아벨리의 미덕의 개념 속에는 하나의 수단으로서의 폭력이라는 부분적 특징이 조건화되어 있습니다. 주어진 현실이 참담할 경우, 도저히 평화적인 방법으로 사태를 해결할 수 없는 비상시국에 처해 있을 때, 인간은 어쩔 수 없이 폭력과 거짓된 술수를 용인할 수밖에 없다고 합니다. 사실 이성을 지닌 인간이라면 누구든 간에 선을 추구하고 악을 밀쳐내려고 노력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이 무의미할 정도로 사회적 정황이 어지럽고 참담하며 무질서하다면, 악덕에 해당하는 잔인한 폭력과 거짓된 술수를 일시적으로 용인하면서 이를 활용하는 게 능사일까요? 이러한 태도는 폭력 내지는 거짓과 일시적으로 기회 순응적으로 타협하는 처사가 아닐까요?

 

아무리 폭력과 전쟁 그리고 기만과 속임수가 횡행하고 있다 하더라도 우리는 선 (善)에 대한 실천적 의지, 거짓과 폭력을 배격하려는 노력 그리고 간디의 비폭력주의에 대한 기대감을 마냥 저버릴 수는 없을 것입니다. 참과 대의를 중시하는 인간이라면 누구든 간에 사자와 여우가 활보하는 세상을 탐탁하게 여기지 않으니까요. 그렇지만 여기에는 또 다른 문제가 남아 있습니다. 누군가 비폭력주의로 저항한다고 하더라도, 극한의 상황 속에서 폭력과 속임수를 일시적으로 피하는 게 생존을 위한 가장 좋은 방책이 아닐까요?

 

참고 문헌

 

- 고명섭: 키케로의 의무론에서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으로, 한겨례신문 2023년 1월 11일 자.

- 마키아벨리: 군주론 (군주국에 대하여), 곽차섭 역, 길 2017.

- 알튀세르, 루이: 마키아벨리의 고독, 김민석 역, 중원문화 1992, 221 – 242쪽.

- Althusser, Louis: Solitude de Machiavel, Press universitaires de Paris 2015.

- Guicciardini :Francesco Seguiti dalle considerazioni intorno ai „Discorsi“ del Machiavelli. Einaudi, Turin 2000,

- Jens, Walter (hrsg.): Kindlers Literaturlexikon, Bd. 9, München 1982

- Kersting, Wolfgan: Niccolò Machiavelli. 3. Auflage. Beck, München 2006.

- King, Ross: Machiavelli – Philosoph der Macht. Aus dem Englischen von Stefanie Kremer. Original: Machiavelli – philosopher of power. Bassermann, München 2021,

- Machiavelli, Niccolo: Il Principe/Der Fürst, Reclam: Stuttgart 1995.

- Viroli, Maurizio: Niccolò’s Smile: A Biography of Machiavelli. 2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