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 이탈스파냐

서로박: (1) 군주론, 혹은 마키아벨리의 고독

필자 (匹子) 2023. 1. 22. 09:20

친애하는 M, 군주론 한 권을 읽는 수고를 덜어드리기 위해서, 필자는 군주론의 핵심 사항만 요약한 글을 올려봅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필자 OT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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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마키아벨리, 악마의 대변인인가, 아니면 최악의 냉소주의자인가?: 강의 중에 필자는 정치학을 논하는 자리에서 두 권의 필독서를 권하곤 합니다. 그 하나는 니콜로 마키아벨리 (Niccolo Machiavelli, 1469 - 1527)군주론Il Principe이며 (마키아벨리: 군주론 (군주국에 대하여), 곽차섭 역, 2017.), 다른 하나는 에치엔 드 라 보에시 (Étienne de La Boétie, 1530 1563)자발적 복종 Discours de la servitude volontaire입니다. 전자의 문헌이 권력자가 활용하는 폭력 그리고 기만적 술수를 낱낱이 지적하고 있다면, 후자의 문헌은 폭군의 권력이 인민의 자발적 복종을 통해서 형성되었다는, 놀랍고도 비밀스러운 사실을 우리에게 알려줍니다.

 

군주론이 특정 권력자를 보필하는 참모의 관점에서 모든 것을 기술하고 있다면, 이에 비해자발적 복종은 인민의 관점에서 투시한 권력의 비밀스러운 실체 그리고 이를 지탱하고 있는 힘을 예리하게 밝히고 있습니다. 마키아벨리는 군주가 자신의 의지를 관철하기 위해서는 때로는 폭력을 행사해야 하며, 사악한 술수를 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합니다. 이러한 발언으로 인하여 그는 역사적으로 찬사 외에도 수많은 비난과 혹평을 감내해야 했습니다.

 

2. 사자와 여우, 폭력성과 기만의 전략: 마키아벨리가 이러한 오명을 듣게 된 데에는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습니다. 군주론의 제18장에서 그는 군주가 막강한 권력을 행사하고 인민을 능숙하게 기만하기 위해서는 여우와 사자의 태도를 모방해야 한다고 주장했기 때문입니다. 사자는 고립 상태에서 어떤 함정에 빠지기 쉽고, 여우는 혼자서는 늑대를 대적할 수 없습니다. 권력을 위해서는 새로운 군주는 때로는 사자와 같은 맹폭한 힘을 행사해야 하고, 때로는 여우처럼 교활하게 경쟁자를 역으로 속일 수 있는, 고단수의 술수를 활용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군주가 마치 사자와 여우처럼 행동하지 않으면, 결국 권력을 상실하고 만다는 것입니다. (고명섭: 키케로의 의무론에서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으로, 한겨례신문 2023111일 자.)

 

이러한 입장은 로마의 사상가, 키케로의 의무론De Officiis에서 처음으로 언급된 바 있습니다, 언젠가 키케로는 불의를 저지르는 데는 폭력과 술수라는 두 가지 방식이 있다고 말한 바 있습니다. 그런데 정치의 영역에서 가장 중요한 두 가지 덕목은 정의의 실현이며, 참다움의 실천입니다. 인간은 사자의 폭력성을 거부해야 하며 여우의 속임수는 더더욱 멀리해야 한다는 게 키케로의 지론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어떤 주어진 한계상황은 때로는 오로지 생존을 요청하게 하며, 이러한 덕목들을 실천하기 어렵게 만듭니다. 이를 고려할 때 마키아벨리는 권력 유지의 방책으로서 어쩔 수 없이 두 가지 악덕을 용인하는 셈입니다.

 

3. (하나의 예) 정직함 그것은 인간 삶의 도리다.: 키케로에 의하면 사자와 같은 폭력적인 인간보다도 더 위험한 자는 여우와 같은 교활한 인간이라고 합니다. 따라서 인간이 삶에서 추구해야 하는 것은 오로지 정직성이라는 것입니다. 바르고 정직한 인간의 예로서 키케로는 마르쿠스 아틸리우스 레굴루스를 거론합니다. 레굴루스는 제1차 포에니 전쟁 당시에 카르타고 원정을 지휘했습니다. 기원전 255년 북아프리카 전투에서 패배하여 병사 500명과 함께 포로가 됩니다. 이때 레굴루스에게 하나의 임무가 주어집니다. 그것은 강화조약을 조건으로 로마가 시칠리아 섬을 카르타고에게 넘기는 임무였습니다. 레굴루스는 강화조약을 성공리에 완수하든 실패하든 카르타고 포로수용소로 돌아가기로 약속했습니다. 레굴루스는 로마의 원로원에서 자신을 감찰하는 카르타고인이 듣든 말든 간에 강화조약을 맺어서는 안 되며, 로마에 붙잡힌 카르타고 군인들을 돌려보내어서는 안 된다고 역설합니다. 원로원은 그이 제안을 받아들여서 강화조약을 체결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주의해야 하는 것은 레굴루스의 다음 행동입니다. 로마에 남으면 여생을 편안하게 살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레굴루스는 카르타고로 돌아가서 죽음을 맞이합니다. 신의를 지키는 것이 눈앞의 이익을 추구하는 것보다 더 중요했기 때문입니다. 신의를 지키기 위해서 자청해서 고난을 받아들이는 것 이는 보통사람이 행하기 어려운 행동입니다. 카르타고인들은 레굴루스를 끔찍하게 고문한 뒤 바구니로 만든 둥근 통 속에 집어넣습니다. 그리하여 레굴루스는 마치 축구 공처럼 코끼리들에게 이리저리 차이다가 밟혀 죽게 됩니다.

 

4. 마키아벨리의 두 문헌: 군주론1532년에 간행되었습니다. 마키아벨리는 1513년에 이미 권력자에 관하여 De principatibus라는 제목의 문헌을 집필하여, 익명의 출판사를 통해 간행하게 했습니다. 그때부터 군주론은 폭력과 공포의 정치를 옹호하는 책자로 유럽 전역에 알려진 바 있습니다. 1557년 로마 가톨릭교회는 군주론을 금서 목록에 편입시켰습니다. 프로이센의 프리드리히 2세는 이 책을 접하고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리하여 그는 프랑스의 철학자 볼테르로 하여금 1740년에 -마키아벨리 혹은 마키아벨리 왕자에 관한 비판적 에세이 Anti-Machiavel, ou, Essai de critique sur le Prince de Machiavel를 집필하도록 요청했습니다. 볼테르는 이 문헌에서 군주의 교활한 술수와 간계를 한마디로 마키아벨리즘이라고 지칭한 바 있습니다. 마키아벨리는 볼테르에 의하면 범행을 저지르려는 의도, 사악한 인간의 행동, 음모, 배반, 파렴치함, 마치 지옥에서나 나타날 수 있는 악령의 짓거리를 여지없이 까발리는 작가라는 것입니다. 이로써 마키아벨리는 죄악을 가르치는 교사라는 악명을 얻게 되었습니다.

 

5. 군주론 집필의 시대적 배경: 마키아벨리는 자신의 두 번째로 유명한 문헌인 티투스 리비우스의 첫 번째 열권에 관한 논문 Discorsi sopra la prima deca di Tito Livio(1531)을 집필한 직후에 바로 자신의 대표작 집필을 착수하였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마키아벨리가 처했던 정황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16세기 중엽 이탈리아반도에서는 수많은 공국이 존재하고 있었습니다. 프랑스, 에스파냐 등의 나라는 이탈리아반도를 식민지로 삼으려는 데 혈안이 되어 있었습니다. 바로 이 무렵에 이탈리아 공국 가운데 하나인 피렌체 공화국이 몰락하고 말았습니다. 그러자 마키아벨리는 관직을 상실하고 저술 작업에 몰두하게 됩니다. 그는 피렌체 공화국에서 역사 기록자, 외교관 그리고 비서 등으로 고용되어 일하고 있었습니다. 이때부터 정치 이론의 현대적 형태에 관해서 고심하였으며, 자신의 정치 이론의 적용 가능성을 탐구했습니다. 마키아벨리의 관심사는 당시 피렌체의 여러 가지 정치적 사건들에 직접 개입하는 일이 아니라, 일반적 행정 추진에 관한 법적 문제로 향하고 있었습니다. (Viroli, Maurizio: Niccolò’s Smile: A Biography of Machiavelli. 2000. P. 26)

 

6. 군주론의 집필 의도: 군주론을 줄리아노 메디치 그리고 그의 형, 로렌초 데 메디치에게 헌정한 바 있습니다. 이 문헌은 도합 26장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탈리아를 야만의 상황으로부터 해방해야 한다는 저자의 절실한 마음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마키아벨리는 차제에는 이탈리아에 반드시 정치적 구원자가 나타나서, 당시의 권력의 공백을 없애는 게 급선무라고 빋었습니다. 오래 전부터 그는 강력한 이탈리아의 통일 국가를 꿈꾸었습니다. 가까운 미래에 이러한 통일 국가가 나타나야만, 거대한 외세와 버금가는 민족 국가의 조직 형태가 굳건하게 결성될 수 있다고 확신했습니다. 마키아벨리는 모세, 페르시아의 황제인 키루스 대제 그리고 고대 아테네의 전설적인 왕 테세우스를 모범으로 하여, 실제로 권력을 행사하는, 공국의 제후들을 신랄하게 비난합니다. 이탈리아의 제후들은 무작위적으로 법을 활용하면서, 무엇보다도 전쟁을 찬양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마치 무기가 성스러운 물건인 것처럼 말하면서, 인민을 죽음의 전선으로 몰아간다는 것입니다.

 

(계속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