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한국 문학

(명시 소개) (3) 타향에서 고향 찾기, 이교상의 연작시 "담양에서 쓰는 편지"

필자 (匹子) 2022. 7. 8. 11:07

(앞에서 계속됩니다.)

 

4. 고향의 지리적 의미 (공간)

 

: 이어지는 시편들은 한결같이 놀라운 시적 상상력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다른 기회에 다루어볼까 합니다. 일단 시작품에 나타난 고향의 의미에 관해서 살펴보려고 합니다. 선생님은 서두에서 고향의 1. 지리적 의미 (장소로서의 공간), 2. 문학적 의미 (세계), 3. 심리학적 의미 (자아) 4. 철학적 의미 (두 개의 시간) 등을 말씀하셨지요?

: 네. 고향이란 흔히 “한 인간이 태어나 자란 곳”이라는 의미를 지닙니다. 대체로 사람들은 자신이 과거에 체험한 안온한 공간을 떠올리고 이를 고향의 장소라고 생각합니다. 향수 역시 자신이 살았던 과거의 공간으로 돌아가려는 마음을 담고 있습니다. 여기서 고향이 내재하는 지리적 의미가 도사리고 있습니다.

 

: 고향을 그리워하는 마음은 흔히 “향수”라고 말하지요?

: 네, 서양사람들은 향수를 “노스탤지어nostalgia”로 표현하지요. 그렇지만 여기에는 놀랍게도 “귀환의 괴로움 (νόστος + ἄλγος)”이라는 의미가 숨어 있습니다. 말하자면 고향으로 돌아갈 수 없기에 고통을 느끼는 것입니다. 과거에 오디세우스가 그러했고, 흑해로 망명을 떠나야 했던 오비디우스Ovid도 고독의 쓰라림을 벗어날 수 없었습니다.

 

: 독일 통일이 평화적으로 이루어진 다음에 몇몇 동독 사람들은 과거의 삶을 그리워했지요. 이를 “오스탈기Ostalgie”라는 조어로 표현했지요?

나: 재미있는 예로군요. 어쨌든 향수는 고향으로 갈 수 없는 자들의 고통스러운 마음을 담고 있습니다. 기원전 600년 이후에 바빌로니아로 끌려간 유대인들의 고통을 참으로 쓰라린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고통은 구약성서에 자세히 서술되고 있지요.

: 귀환의 괴로움에 대한 예를 굳이 서양에서 찾을 필요는 없습니다. 일제 강점기에 한인들도 참으로 끔찍한 비극을 맞이했습니다. 소련의 스탈린은 1937년에 연해주에 거주하던 한인들을 연말까지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시켰습니다. 이로써 17만 명이 넘는 한인들이 고단한 삶의 구렁텅이로 빠지게 되었지요.

 

나: 이제 그 정도로 하고 시작품에서 나타난 고향에 관해서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고향은 시인에게 무작정 밝고 편안한 유년의 장소가 아닌 것 같습니다. 물론 과거의 삶이 끔찍한 고통의 형상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무조건 긍정적으로 다가오는 안온함은 아닌 것 같습니다.

너: 어쩌면 고향은 시인에게 있어서 시적 페이소스를 떠올리게 하는 영역인지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시인은 자신의 과거 시절을 “시간이 녹슬게” 만든 “외로움”으로 “욕창의 시간”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시인이 가난한 부모님과 함께 살던 “가시넝쿨”의 장소, “기록되지 않은 슬픔”을 언급하는 것도 그 때문인 것 같은데요.

: 그렇습니다. 김만중의 시작품에서도 나타난 바 있듯이 과거의 장소가 “적소” 내지는 유배지였다면, 현재의 장소는 “상류였던 꿈”을 실현할 수 있는 공간일 수 있습니다. 이는 문학이라는 가능성의 현실 속에서 발견될 수 있을 것입니다.

 

5. 고향의 문학적 의미 (세계)

 

: 좋은 지적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고향이 지니는 두 번째 주제인 문학적 의미 (세계)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타향이 낯선 새로움을 안겨준다면, 고향에 대한 갈망은 시인에게는 무조건 귀환의 괴로움 내지는 부정적인 퇴행의 의미로 이해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 어째서 그렇게 생각하는지요?

: 시인은 낯선 장소인 담양에서 자연을 접하면서, 과거의 행적을 기억해내고 있습니다. 시인의 과거의 삶은 비애를 촉구하기에 충분합니다. 그렇지만 과거의 공간이 온통 부정적으로 슬프게 와닿지는 않습니다.

 

: 과거의 공간이 슬픈 만화경의 세계였다면, 지금 여기의 공간은 내적 갈망으로 형성된 상상의 문학적 세계라는 말씀이지요?

나: 네, 시인은 장욱진 화백의 「가로수」라는 그림을 바라보면서 어린 시절 기억하던 낮꿈의 영역을 유추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첫째로 현재 시인이 처하고 있는 공간과는 분명히 다른 영역입니다. 기억을 통해서 매개되지만, 시인이 오랫동안 갈구하는 공간일 것입니다. 둘째로 그것은 장자의 “호접몽”과 같은, (심지어 죽음을 초월할 수 있는) 광대무변한 영역이며, 셋째로 가로수의 상부에 위치하는 다른 현실을 가리킵니다.

: 네, 시인은 “별”, “댓잎”, “그린내” 등과 같은 시어를 전면으로 내세우는 것도 갈망의 현실과 무관하지 않겠군요.

 

: 그렇습니다. “별”은 한편으로는 아름다운 다른 세상을 지칭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방향을 알려주는 길잡이지요. 라틴어 속담에 다음과 같은 것이 있습니다. “가장 좋은 것을 잡치는 게 가장 나쁜 일이다. Corruptio optimi pessima

: 무슨 뜻이지요?

나: 인간은 사소한 일에 있어서 얼마든지 실수를 저지를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스스로 정한 삶의 목표를 포기하거나 이를 어겨서는 안 됩니다. 가령 북극성은 방랑하는 자에게 북쪽이 어디인지를 알려줍니다. 이 점이야말로 우리가 천방지축 좌충우돌 날뛰는 동물들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사항이 아닐 수 없습니다.

 

: 이교상 시인에게 “별”은 삶의 방향처럼 자리하고 있었다는 말씀이로군요.

나: 시인은 힘든 순간마다 “별이 보였”다고 술회하고 있습니다. 삶에서 방향감각은 매우 중요합니다. 설령 다른 길을 걸어가고 있다고 하더라도, 자신이 설정한 목표의 방향으로 돌아갈 수 있지요. 시인 이교상이 찾아낸 과업은 시조 쓰기, 바로 문학의 길이었고, 여기서 자신의 업을 뒤늦게 감지하게 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