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 근대불문헌

서로박: 카베의 '이카리 여행' (2)

필자 (匹子) 2022. 6. 4. 10:40

6. 소설의 전개 과정: 윌리엄은 이카리에서 살아가는 젊은 청년, 윌모어를 사귀게 됩니다. 윌모어의 아버지는 이카리 국가의 높은 관직을 맡고 있지만, 그의 직업은 기계 수리공입니다. 윌모어의 여동생, 코릴라는 바느질 노동자입니다. 영국 귀족인 주인공은 이 사실에 놀라움을 금치 못합니다. 국가의 높은 관리가 기계 수리공으로 일한다는 것 자체가 도저히 납득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어느 아름답고 순진무구한 처녀인, 코릴라는 주인공 윌리엄을 매혹시킵니다. 주인공은 처녀를 뜨겁게 사랑합니다. 결국 그는 유럽으로 돌아와서, 자신이 이카리에서 기록해 두었던 일기장을 친구에게 전하면서, 그것을 출간해달라고 부탁합니다.

 

카베는 모든 것을 일기 형식으로 세밀하게 기록해두었습니다. “일기 형식”은 이카리의 사회적 정치적 그리고 철학적 시스템을 가급적이면 평이하고도 생동감 넘치게 서술하기 위한 수단으로 선택한 것입니다. 만약 카베가 모든 것을 설명문으로 서술해나갔더라면, 그것은 아마도 마치 딱딱한 논문처럼 따분하고 독자의 흥미를 부추길 수 없었을 것입니다.

 

카베가 소설의 주인공으로서 프랑스의 사회주의자가 아니라, 영국의 귀족을 선택한 것은 지극히 의도적입니다. 이를테면 주인공은 처음부터 귀족으로서의 편견을 고수하며, 영국의 사회 시스템 내지 계층 차이를 당연하게 여기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의 견해는 나중에 서서히 변하게 됩니다. 이를테면 윌리엄은 이카리 국가의 모습을 직접 체험한 다음에 자신의 세계관이 얼마나 우물 안 개구리의 그것처럼 편협하고 폐쇄적이며, 이카리에서의 평등사회가 얼마나 훌륭한가 하는 것을 스스로 깨닫게 된 것입니다.

 

7. 이카리 공동체의 모습: 카베의 작품의 줄거리는 이카리 공동체 국가를 묘사하기 위한 수단으로 작용합니다. 이를 위해서 작품은 두 개의 커다란 단락으로 나누어집니다. 첫 번째 단락에서는 이카리의 일반적이고 가시적인 사항들이 기술되어 있으며, 두 번째 단락에서는 이카리의 정치 경제 구도의 틀 등이 기술되어 있습니다. 이카리는 “풍요롭고도 풍족한 나라”나 다를 바 없다고 합니다.

 

도시는 화려하게 치장되어 있고, 경작지와 정원은 형형색색의 꽃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곳 사람들은 “우아하고 휘황찬란한 생활양식”을 즐기면서, 공동적으로 살아갑니다. 도로가 잘 닦여 있으며, 교통수단 역시 매우 발전되어 있습니다. 그곳에 도사리고 있는 분위기는 “질서, 일원성, 화해, 찬란한 우정 그리고 미덕과 행복”으로 요약될 수 있습니다. 이것들은 이카리 “공동체에서 결코 생략될 수 없는 특성들”이라고 합니다.

 

물론 이카리의 사회주의 평등 국가의 모델은 엄밀히 따지면 토마스 모어의 『유토피아』의 모델과는 다릅니다. 두 개의 작품 사이에는 300년이라는 시간적 차이가 엄연히 존재합니다. 가령 모어의 유토피아가 농업과 수공업에 바탕을 둔 경제 구조의 시대에 태동한 사회상이라면, 이카리 공동체 국가는 19세기의 분화된 노동의 생산 양식, 생산에 있어서의 상업 혁명이 실현되던 시점에 탄생한 사회상입니다. 따라서 기술적 영역에서 두 작품 사이에는 분명한 차이가 드러날 수밖에 없습니다.

 

8. 사유재산제도 그리고 화폐의 철폐: 이카리 국가에서는 실제 현실과는 달리 사유재산 제도가 완전히 철폐되어 있습니다. 모든 재화는 공동의 소유로 되어 있습니다. 국가는 이러한 재화를 그저 관리할 따름입니다. 그곳 사람들은 화폐 역시 사용하지 않습니다. 화폐는 카베에 의하면 인간을 경제적 노예로 만들게 하는 도구라고 합니다. 왜냐하면 화폐가 존속하는 한, 사람들은 더 많은 화폐를 벌어들이기 위해서 온갖 술수를 다 사용한다는 것입니다. 이카리 공동체 국가에서는 만인이 평등합니다. 나아가 어떠한 계층 차이 내지 직업적 구분도 용납되지 않고 있습니다. 물론 성의 차별은 존재하기 때문에, 남녀가 성의 평등, 경제적 평등을 누리며 살아가지는 않습니다. 이를테면 오로지 남자들만이 자유롭고도 평등하게 투표에 참가하며, 나라를 다스릴 수 있습니다.

 

9. 일곱 시간의 의무 노동: 나아가 그들은 국가의 모든 생산과 분배에 참가합니다. 모든 사람들은 반드시 일해야 할 의무를 지닙니다. 다시 말해 사람들은 한 명도 빠짐없이 하루 일곱 시간 노동해야 합니다. 여자들은 노동 외에도 가사에 몰두해야 하므로 반나절 이상 노동하는 경우는 절대로 없습니다. 모든 사람들은 공동으로 식사합니다. 모든 작업 영역에는 어떤 거대한 식당이 있어서, 사람들에게 식사를 무료로 공급합니다.

 

이카리 국가에서는 식량과 물품이 충분하게 비축되어 있어서 일하지 않아도 얼마든지 살아갈 수 있지만, 흉년이 들 경우에 그리고 비상사태 시에 활용할 수 있는 물품을 계속 조달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 사람들은 쉬지 않고, 노동에 임하고 있습니다. 그 대신에 노동 시간은 하루 일곱 시간을 초과해서는 안 됩니다. 농업과 수공업의 경우 기술적 자재 내지 도구가 개발되어 있어서 하루 종일 일하지 않고도 높은 생산량을 얻어낼 수 있습니다.

 

10. 과학 기술을 통한 무노동의 유토피아: 이를 고려할 때 우리는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습니다. 과학 기술을 극대화시킴으로써 사회적으로 필요한 노동 시간을 질적으로 단축시키려고 생각한 사람이 바로 카베였다고 말입니다. 바로 이러한 이유에서 학자들은 카베의 유토피아 모델을 “무노동의 유토피아”라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무노동의 유토피아는 자본주의 이전의 생산 양식 내지 삶의 양식을 이상화한 것으로서 “놀고먹는 사회 Schlaraffenland”를 전제로 합니다.

 

이와 관련하여 슈나벨 Schnabel 그리고 모리스 Morris 역시 자신의 유토피아에서 “인간은 어떻게 하면 힘들게 노동하지 않고 삶을 향유할 수 있을까?“ 라는 물음을 깊이 숙고한 바 있습니다. 그렇지만 두 사람이 주어진 자연 조건을 최대한 이용한 수동적인 무노동의 유토피아를 설계했다면, 카베는 슈나벨 그리고 모리스와는 달리 과학 기술, 최상으로 조직화된 산업을 최대한으로 이용하여 능동적으로 노동 시간을 단축함으로써 무노동의 유토피아를 추구합니다. 물론 카베의 견해에 의하면 인간 삶에서 무노동은 결코 존재할 리 만무합니다. 대신에 노동 시간의 단축은 과학 기술과 기계 기구 등의 사용으로 인하여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