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 근대불문헌

서로박: 푸리에의 팔랑스테르 (4)

필자 (匹子) 2022. 4. 28. 11:25

26. 지방자치적인 유토피아의 상: 잘 구획되고 정리된 공동체 국가는 궁극적으로 존재할 수 없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모든 팔랑스테르는 제각기 독자적 행정 체제를 지니기 때문입니다. 바로 여기서 우리는 푸리에의 유토피아의 지방분권적이고 연방주의의 특성을 감지할 수 있습니다. 인류는 먼 미래에 40억까지 증가하게 되고, 그 다음부터 풍요롭고 사치스러운 삶의 방식은 줄어들 것이라고 합니다. 이는 오늘날의 현실을 염두에 둘 때 얼마나 그럴듯한 예견입니까?

 

19세기 초에 증기 기관이 발명되고, 철도가 개설되자, 푸리에는 반-상어, 반-고래, 반-사자 등에 관한 상상을 더 이상 진척시키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현대인들은 푸리에의 예언대로 오늘날 자통차를 타고 “마르세유를 떠나, 리옹에서 점심을 먹고, 파리에서 저녁 식사를 즐길” 수 있게 되었습니다. 말하자면 푸리에의 예언은 부분적으로 실제 현실에서 출현한 것입니다.

 

27. 세상을 움직이는 동인은 쾌락이다.: 그럼에도 세상을 움직여 나가는 동인은 증기 기관이 아니라, 쾌락이었습니다. 푸리에는 근본적으로 고찰할 때 토마스 홉스의 추론에서 출발하고 있습니다. 홉스에 의하면 인간은 쾌감과 불쾌감의 지배를 받습니다. 인간 동물은 쾌감을 추종하고, 불쾌감을 회피합니다. 홉스는 다음과 같이 결론을 내립니다. 개개인이 어떤 쾌락을 획득하지 못하도록 엄밀한 사회적 질서가 확립되면, 인간적 사회는 제대로 기능하리라는 결론이 바로 그것입니다.

 

그러나 푸리에는 이와 반대되는 결론을 내세웁니다. 그는 사회의 형태를 개조시켜, 그 속에 쾌락 원칙을 적용시킵니다. 국가의 폭력은 결코 사회 체제의 기본적 골격이 될 수 없다고 합니다. 폭력과 충동 억압이 물질적 정신적 생산의 토대가 될 수 없으며, 오로지 쾌락이 그러하다고 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중앙집권적 국가에 대한 푸리에의 불신과 노여움을 읽을 수 있습니다.

 

28. 19세기 참담한 현실에 대한 반대급부로서의 팔랑스테르: 친애하는 F, 예리한 당신은 푸리에의 사고를 황당무계하다고 치부해 버리지는 않겠지요? 12세기에 로저 베이컨 Roger Bacon은 자석의 힘을 믿었고, 먼 훗날 사람들이 날개 달린 어떤 탈것을 타고 먼 곳을 여행하리라고 예견하였습니다. 베이컨의 위대성은 불가능한 것이 실현될 수 있다는 믿음에서 비롯합니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푸리에의 기상천외한 발상 자체가 아니라, 어째서 그러한 발상이 비롯되었는가 하는 물음입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는 푸리에의 시대 비판이 중요합니다. 불과 여섯 살 나이의 어린아이가 비참한 작업 환경에서 힘들게 일하는 것을 그는 두 눈으로 지켜보았습니다. 수많은 여성들이 탁하고 어두운 공장에서 고통을 참으며 일하는 것을 목도하였던 것입니다. 하루 14시간 씩 일하는 수많은 가장들이 저녁이 되면, 자신이 만든 물건을 내다 팔려고 길가에 서성거려야 했습니다. 이들은 월급을 돈으로 받지 않고, 자신이 만든 물건으로 받았던 것입니다. 어쩌면 푸리에의 이론 속에 담긴 상상의 미래상은 당시의 프랑스 현실에 대한 반대급부가 아닐까요?

 

29. 충동과 쾌락을 강조하는 사회 유토피아: 푸리에 사상의 영향: 푸리에의 입장은 마르크스와 사드의 사이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푸리에의 광적인 환상 배후에는 모든 역사적 유토피아 사회상에서 나타나는 내용과 정 반대되는, 어떤 가상적 사회가 설계되어 있습니다. 왜냐하면 푸리에의 이상 사회는 국가의 폭력 내지는 충동의 억압에 의해서 만들어진 게 아니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의 나타난 가장 나은 사회에 관한 유토피아의 설계 속에는 쾌락이 배제되어 있고, 충동이 생략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에른스트 블로흐는 토마스 모어의 『유토피아』를 진정한 의미의 향락적 삶을 추구하는 유토피아라고 규정한 바 있습니다. 그러나 모어가 기술한 자유와 향락의 유토피아는 엄격한 사회적 틀 속에서 절제 내지는 자제를 전제조건으로 하는 것이었을 뿐, 향유 자체를 노골적으로 칭송하지는 않았습니다. 이에 비하면 푸리에는 인간 자체를 향유하는 인간으로 규정하고, 오로지 인간의 행복을 위해서 사랑과 노동을 규정하려고 하였습니다.

 

30. 푸리에가 끼친 영향 (1): 푸리에의 사상은 현대에 이르러 두 명의 걸출한 사회 심리학자에게 영향을 끼쳤습니다. 허버드 마르쿠제와 빌헬름 라이히가 바로 그들입니다. 마르쿠제는 푸리에에게서 깊은 감동을 받고 『에로스와 문명 Eros and Revolution』이라는 책을 집필하였습니다. 라이히의 오르가슴 이론에 관한 일련의 문헌은 푸리에의 사상에서 많은 모티프를 찾고 있습니다.

 

러시아의 작가, 니콜라이 체르니셰프스키 Nikolay Chernyshevsky는 소설 『무엇을 할 것인가?』 (1863)에서 푸리에의 팔랑스테르와 유사한 공동체를 설계한 바 있습니다. 그런데 푸리에의 팔랑스테르는 실제로 다른 지역에서 작지만 의미있는 결실을 맺게 됩니다. 1846년 알제리의 드니뒤시에서 농업 조합이 형성되었으며, 1850년에는 푸리에의 제자 콩시데랑은 미국 텍사스에서 공동체를 건설하였습니다.

 

1858년에는 장 밥티스트 고댕은 파리 근교에 “파밀리스테르 Familistère”를 건립했는데, 이는 푸리에의 공동체와 매우 유사한 단체였습니다. 1845년 페트라세프스키라는 외교관은 푸리에를 연구하면서 러시아의 전제정치와 농노제를 비판한 바 있습니다. 4년 후 그를 포함한 22명은 체르니셰프스키의 공동체 운동에 동조했다는 혐의로 사형 선고를 받았는데, 그 가운데 한 명이 처형 직전에 황제의 명령으로 유배의 형벌로 감형되었습니다. 그 사람은 다름이 아니라 나중에 러시아의 문호로 거듭나게 되는 도스토예프스키였습니다. 도스토예프스키는 자신의 소설, 「지하 생활자의 수기」에서 시민 사회로부터 등을 돌리며 살아가는 기인에 관해서 비판적으로 묘사한 적이 있습니다.

 

31. 푸리에가 끼친 영향 (2): 푸리에는 당시의 사회에 상당한 물의를 일으킨 일부다처주의 공동체를 탄생하게 하였습니다. 이를테면 존 험프리 노이스 (John Humphrey Noyes, 1811 – 1886)의 완전주의 공동체를 예로 들 수 있습니다. 노이스는 처음에는 법학을 공부하다가 신학을 전환하여 1839년에 퍼트니, 버몬드 지역에서 완전주의 공동체를 결성하였습니다. 이곳 사람들은 농사를 지으면서 일부다처주의를 실천하였습니다.

 

노이스는 다음과 같이 주장하였습니다. 만약 저세상에 결혼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인간은 지상에서 금욕생활을 영위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노이스는 심지어 그룹섹스조차도 용인하였습니다. 이러한 행사 (?)가 공동체 내에서 진행될 경우, 여자들은 아이를 낳아서는 안 된다는 것을 하나의 철칙으로 내세웠습니다. 1848년 노이스가 가정 파괴범으로 몰리게 되었을 때 그는 공동체 사람들과 함께 오네이다 지역으로 이전합니다. 노이스는 아홉 명의 여자들을 아내로 맞이하였는데, 그들에게서 58명의 자녀가 태어났다고 합니다.

 

푸리에의 공동체는 국가 중심의 체제를 용인하지 않고, 자유로운 인간 삶을 스스로 선택하여 살아가는 유토피아를 추구하고 있습니다. 이는 사적인 사랑의 삶에서 모든 금기를 파기하는 방식으로 나타났습니다. 푸리에의 팔랑스테르 공동체의 삶의 방식은 이를테면 미국에서 모르몬교에 영향을 끼쳤습니다. 모르몬교도의 일부다처주의의 삶의 방식은 푸리에의 사상과 무정부주의의 사고와 무관하지 않습니다.

 

참고 문헌

 

- 도스토예프스키: 지하 생활자의 수기, 이동현 역, 문예출판사 1998.

- 라이히, 빌헬름: 문화적 투쟁으로서의 성, 박설호 역, 솔 1997.

- 러셀, 버틀란트: 결혼과 도덕에 관한 10가지 철학적 성찰, 김영철 역, 자작나무 1997.

- 박주원: 푸리에의 팔랑쥬, 즐거운 노동사회의 유토피아, 실린 곳: 장동진 외, 이상국가론, 연세대 출판부 2004, 209 – 242쪽.

- 변기찬: 사를 푸리에의 정념. 조화 혹은 사회성을 향한 욕망, 석당 논총, 49집, 2011, 239 – 271쪽.

- 블로흐, 에른스트: 희망의 원리, 5권 열린책들 2004.

- 체르니셰프스키, N,무엇을 할 것인가?, 서정록 역, 열린책들, 2003.

- 푸리에, 샤를: 사랑이 넘치는 신세계 외, 변기찬 역, 책세상 2007.

- 파코, 티에리: 유토피아. 폭탄이 장치된 이상향, 동문선 2002.

- Berneri, Marie Louise: Reise durch Utopia, Berlin 1982.

- Claeys, Gregory: Searching for Utopia. The History of an Idea, London 2011.

- Fourier, Charles: Le nouveau monde amoureux, Œuvres complètes de Charles Fourier, t. VII, Paris 1966.

-Jens, Walter (hrsg.): Kindlers Literaturlexikon, München 2001.

- Marcuse, Herbert: Triebstruktur und Gesellschaft (에로스와 문명의 독어판), in: ders., Schriften, Bd. 5, Frankfurt a. M. 1979.

- Reich, Wilhelm: Die Funktion des Orgasmus, Köln 1971.

- Saage, Richard: Utopie und Eros. Zu Charles Fouriers neuer sozitärer Ordnung, in: UTOPIE kreativ, H. 105, 1998, S. 68 – 8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