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 동구러문헌

서로박: 톨스토이의 "크로이처 소나타" (2)

필자 (匹子) 2021. 12. 27. 11:36

6. 질투와 의처증으로 인한 살인: 바실리는 젊은 시절에 오랜 시간 혼자 살다가 결혼하기로 결심합니다. 결혼하기 전에 그는 홍등가에 들락거리면서 자신의 성을 해결하곤 하였습니다. 아내로 맞이한 여성은 오랫동안 피아니스트로 살아온 사람이었습니다. 결혼할 여성을 처음 보았을 때, 바실리는 성적 욕망에 휩싸입니다. 구차하게 돈을 몸 파는 여자들에게 낭비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두 사람은 다섯 명의 자식을 낳아 기르자고 합의합니다. 그러나 아내는 안타깝게도 임신할 수 없는 여성으로 판명 나고 맙니다. 남편이 직장에 나가 일하는 동안에 아내는 낮 시간을 몹시 지루해 합니다.

 

그래서 바실리는 아내가 피아노를 연습할 수 있도록 조처해주었습니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아내는 음악 연주로 행복감에 젖게 됩니다. 바실리는 음악을 이해하지 못하였으므로, 아내의 행복을 막연히 유추할 뿐이었습니다. 어느 날 바실리는 근무시간에 일찍 집에 돌아와서 문틈으로 놀라운 광경을 목격하게 됩니다. 방안에서 아내는 트루카체프스키라는 어느 바이올린 연주자와 함께 베토벤의 크로이처 소나타를 연주하고 있었습니다. 문제는 미적 황홀감으로 충만한 아내의 얼굴이었습니다. 질투심에 사로잡힌 바실리는 결국 아내를 의심하고 살해하고 맙니다.

 

7. 질투인가, 상대방에 대한 몰이해인가? 소설의 핵심사항은 질투로 인한 치정 살인사건만을 다루지는 않습니다. 실제로 바실리 포즈니쇼프는 질투로 인해 아내를 살해했지만, 재판정에서 무죄 선고를 받고 방면되었습니다. 작품의 핵심사항은 등장인물들의 사랑과 결혼에 대한 다양한 입장입니다. 소설의 전반부에 주인공은 근대에 이르러 성도덕이 문란해졌다는 것을 지적합니다. 이와 관련하여 여성의 육체는 기독교의 가치에 근거하는 결혼 제도 하에서는 남성의 소유라는 것을 분명히 지적합니다. 뒤이어 그는 자신의 결혼생활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그는 아내를 현재 사랑하지 않으며, 다만 일시적인 욕망 때문에 결혼했으며, 결국 그미의 삶을 구속하고 말았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분명히 다음의 사항을 간파할 수 있습니다. 즉 바실리의 질투심이 근본적으로 하나의 허상이라는 것입니다. 질투는 사랑하는 마음에서 비롯하는 무엇이라면, 아내에 대한 바실리의 분노는 질투와 무관한 것이었습니다. 어쨌든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분노로 인하여 주인공은 아내를 살해하고, 가정파탄을 맞이했습니다. 그렇다면 작가는 우리에게 무엇을 지적하려 한 것일까요? 즉 행복한 결혼 생활은 적어도 당시의 러시아 사회를 전제로 할 경우 부부 사이의 상호 몰이해를 떨치지 않고서는 거의 불가능한 것일까요? 이러한 몰이해의 문제는 성적 방종의 문제와는 별개의 차원으로 깊이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8. 러시아 사회에서의 파괴된 도덕: 작품은 처음에는 아무런 줄거리 없이 전개되고 있습니다. 여행객들은 사랑과 결혼에 관한 대화를 나누는데, 기껏해야 사람들 사이의 의견 대립만이 작품의 약간의 긴장감을 유도하고 있을 뿐입니다. 소설의 마지막 부분은 주인공 바실리의 결혼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는데, 독자는 여기서 긴장감 넘치는 클라이맥스를 접하게 됩니다. 독자는 여러 주변 이야기를 통해서 19세기 러시아의 현실적 상황을 접할 수 있습니다.

 

러시아 시민 사회는 톨스토이에 의하면 상류층부터 농민들에 이르기까지 도덕적으로 파괴되어 있다고 합니다. 사람들은 결혼의 신성함을 언급하면서, 마음속으로는 남녀의 에로틱한 관계만을 지속시키려는 데 혈안이 되어 있습니다. 시민 사회의 말기에 나타난 또 다른 병적 현상으로서 작가는 여성의 노예화의 현상을 비난하고 있습니다. 여성들은 이른바 결혼 생활이라는 미명 하에서 성적 도구로 전락해 있으며, 남성들의 육욕의 대상으로 취급당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9. 작가의 시대 비판, 음악 그리고 의학에 대한 비판: 톨스토이는 러시아 사회에 만연해 있는 여러 가지 풍조를 신랄하게 풍자하고 있습니다. 특히 문제가 되는 것은 타락한 음악 예술의 풍조라고 합니다. 이와 관련하여 우리는 베토벤의 크로이처 소나타를 예로 들 수 있습니다. 이 소나타에는 특히 빠른 연주에 해당하는 프레스토의 기법이 활용되고 있는데, 이러한 기법은 인간의 감정을 마구잡이로 뒤흔들 정도로 신비스럽고 강렬하다는 점에서 한마디로 문화적 퇴폐 내지 타락이라는 상징적 의미를 드러내고 있습니다.

 

나아가 작가는 학문의 영역에 대해서도 신랄한 메스를 가하려고 합니다. 특히 의학의 영역에서 드러나는 병리 현상에 대한 톨스토이의 어조는 격앙된 외침으로 울려 퍼지고 있습니다. 특히 의사들은 메스를 통해서 낙태 수술을 감행하는 등 인간으로서 저지를 수 없는 일을 저지르고 있다고 합니다. 작가의 이러한 시대 비판은 주인공 포즈니쇼프를 통해서 전해지고 있습니다.

 

10. 사랑과 성에 대한 톨스토이의 전근대적 입장: 우리는 주인공의 다음과 같은 발언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결혼 전에 그리고 결혼한 다음에 방종하게 살아서는 안 되며, 인위적으로 피임하거나 낙태해서는 안 된다.”는 구절이라든가, “누구든 간에 아이들을 자신의 삶의 도구로 삼아서는 안 되며, 육체적으로 결합하는 일을 삶에서 가장 중요한 관건이라고 여기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톨스토이가 추구하는 기독교 정신에 근거하는 순결과 금욕의 자세를 읽을 수 있습니다.

 

기독교의 이상은 톨스토이에 의하면 무엇보다도 신에 대한 사랑 그리고 가난한 이웃에 대한 배려와 관심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합니다. 이러한 사랑은 육체적 사랑이라든가 성적 결합을 합리화시키는 결혼 등과는 일치될 수 없는 무엇이라는 것입니다. 친애하는 T, 우리의 귀에 톨스토이의 주장이 의외로 경직되고 전근대적인 경고처럼 울려 퍼지는 까닭은 무엇 때문일까요? 어쩌면 개개인의 사랑과 성은 동성연애자의 결혼이 합법화되는 21세기에서도 우리에게 여전히 가장 중요한 삶의 문제로 작용하기 때문일까요? 하기야 사랑과 성의 욕구가 충족되지 않은 인간에게 남는 것은 엄청난 고통으로 작용하는 심리적 상흔 내지 질병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