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오로지 한 인간의 착상에서 비롯한 것이라니, 참으로 가당치 않다고 여겨진다. 당시에는 의학적으로 장기 이식이 불가능한 시대였기 때문에 도저히 믿기지 않는다고 여겨질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놀라게 하는 보고는 그 자체 더욱 생생하게 다가온다. 특히 이러한 이야기가 영국인들에게 국한될 수 없다고 생각하면 말이다. 영국의 젊은 연구가들은 인도의 해안가에서 멸종된 동물과 식물을 발굴하기 위해서 기이한 동굴을 찾았는데, 바로 그곳에서 그들이 체험한 내용을 보고하고 있다.
탐험대원들은 여러 가지 좋고 나쁜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인도의 해안을 따라 항해했다. 그들의 눈앞에 어떤 기이한 동굴 입구가 모습을 드러내었다. 동굴의 안에는 생물에 관한 수많은 비밀이 감추어져 있는 것 같았다. 동굴의 입구는 어떠한 밀물이 다가와도 그들을 보호해줄 것처럼 느껴졌다. 입구로 향하는 해안가에는 수많은 암초들이 숨어 있었다. 그래서 그들은 어쩔 수 없이 모터보트를 해안가에 정박시켜놓고, 작은 뗏목으로 노를 저어 입구로 향하기로 했다. 이때 탐험대원은 오랜 역사 이전의 유물들을 발견하리라는 기대감이 부풀어 있었다.
바로 이 순간 한 번도 보지 못한 괴물의 비명소리가 동굴 속에서 메아리쳤다. 섬뜩한 동물이 꿈에 나타날 때 우리는 잠에서 깨어나곤 한다. 이와 같은 끔찍한 괴물이 실제로 모습을 드러낸 것이었다. 공룡 한 마리였다. 마치 외눈박이 거인, 폴리페모스처럼 끔찍한 몰골을 탐험대원 앞에 보여주었던 것이었다. 아마도 마지막까지 살아남은 공룡 한 마리임에 틀림없었다. 놈은 어느 젊은 영국인 몇 사람을 강하게 밀친 다음에 동굴의 출구를 막은 채 비스듬하게 누웠다. 뒤이어 다친 영국인들 가운데 한 사람을 골라서, 마치 저녁 음식을 섭취하는 듯이 꿀꺽 집어삼키는 게 아닌가? 탐험대원들은 절대 절명의 위기 상황에서 숨도 크게 쉴 수 없었다.
다음날이 밝았다. 젊은 연구자들의 죽음이 서서히 다가오는 것 같았다. 바로 이때 그들은 생존할 수 있는 가능성을 찾았다. 괴물은 두 명의 인간을 붙잡아 바위 아래로 강하게 내리쳤다. 한 사람이 즉사하고 말았다. 다른 한 사람은 치명상을 입었으나, 아직 죽지 않은 것 같았다. 괴물은 두 사람을 내버려둔 채 피곤한 듯이 다시 몸을 뻗었다. 포만감 속에서 그냥 잠을 청하려는 것 같았다. 다행히도 영국 탐험대원들은 칼과 삽과 같은 도구들을 지니고 있었다. 이것들은 땅속을 헤집어 선사시대의 유물을 발굴하기 위한 도구들이었다. 또한 그들에게는 위스키로 가득 찬 거대한 통 하나가 있었다. 이것은 발굴된 유물이 썩지 않도록 안전하게 보관하기 위한 용도로 고향에서 가지고 온 물건이었다. 그들은 위스키를 조심스럽게 괴물의 주둥이에다 들이부었다.
괴물은 영문도 모르는 채 거대한 술통에 담긴 위스키를 모조리 들이마시게 된다. 이러한 일이 진행되는 동안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영국인들 가운데 한 사람은 이미 사망한 동료의 해골을 절개하여, 그의 뇌를 조심스럽게 도려내었다. 다른 한 사람은 알코올에 완전히 마취된 괴물 곁에서 괴물의 머리통을 갈라 헤집은 다음에 괴물의 뇌를 빼내었다. 두 사람은 분명히 오래 전에 외과 의사로 일한 적이 있는 것 같았다. 뒤이어 그들은 괴물의 머리통 속에 인간의 뇌를 부착시킨 다음에 머리통을 단단히 묶었다.
기상천외한 수술이 진행되는 동안에 괴물은 알코올에 취해서 그런지는 몰라도 자신의 자리에서 요동도 하지 않고 있었다. 출구는 여전히 막혀 있었다. 오랜 시간이 지난 뒤에 괴물의 아가리에서 놀라울 정도로 요상한 소리가 터져 나왔다. 그것은 마치 문장을 구성하려는 인간의 말소리를 방불케 하는 것이었다. 분명히 옥스퍼드 지역의 악센트를 담은 영어였는데, 서서히 그 발음이 또렷하게 들리기 시작했다. 괴물의 입에서는 놀랍게도 본의 아니게 뇌를 기증한 죽은 친구의 말이 터져 나왔던 것이다. 그뿐 아니라, 자리를 비켜주면서 자신의 친구들이 그곳을 빠져나갈 수 있도록 출구를 열어준 것도 바로 그 괴물이었다.
탐험대원들은 이제 얼마든지 동굴을 빠져나갈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냉정하게 괴물과 작별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괴물은 죽은 친구의 뇌를 작동시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나중에 괴물은 동료들에게 이곳을 떠나라고 재촉하기까지 했다. 왜냐하면 괴물은 인간의 뇌를 장착하고 있지만, 자신의 몸속에 자리하고 있는 조직체 그리고 동물적 본능이 인간의 뇌의 작동을 조만간 차단시키리라는 점을 감지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친구의 말소리가 동물의 비명소리로 뒤바뀌면서 점점 커지기 시작했다. 괴물이 서서히 탐험대원들에게 위협을 가하려고 했다.
괴물의 눈에서 공룡의 노여움과 같은 광채가 발하기 시작했다. 탐험대원들은 동굴 밖으로 도피하여, 그곳 암초에 정박해둔 뗏목으로 향했다. 뒤이어 그들은 노를 저어서 그들의 모터보트로 신속하게 도주하였다. 신속하게 보트에 승선했을 때, 괴물은 그들을 쫓아와서 해변 가 암벽 사이에 몸을 던지고 있었다. 모터보트는 동굴을 서서히 벗어났다. 해변에서 괴물은 있는 힘을 다해서 이상한 소리를 내질렀다. 괴물의 비명 소리는 탐험대원들에게 참으로 비밀스럽고도 기이하게 울려 퍼졌다. 마치 죽은 친구가 죽어가면서 자신을 살려달라고 애원하는 통곡처럼 들렸기 때문이었다.
젊은 연구가들은 고고학적 발굴이라는 미시적 작업에만 정통했을 뿐, 고대 역사에 대한 개괄적이고 심층적인 시각을 지니지 못했다. 그렇기에 그들은 이른바 인간이 역사적으로 자신의 위대함을 더욱 발전시켜 나갔다는 허구성을 예리하게 간파하지 못했으며, 동물과 인간 사이에 상호 연관되는 “반응적 토대” 내지는 생물학적 공통점을 전혀 도출해내지 못했던 것이다.
게다가 그들의 체험은 당시에 학문적으로 어떤 결과를 이룩해내지 못했다. 하기야 괴연 누가 이미 사멸된 괴물 내지 가상적으로 떠올린 이야기에서 어떤 정치적 철학적 교훈을 찾아내려고 했겠는가? 그렇지만 인도의 해안가가 아니라, 오래 전에 사용되던 화형대 앞이었더라면 사정은 달랐을 것이다. 가령 급진적 종교개혁자, 얀 후스는 화형대 위에서 처형당했는데, 그곳에 서성거렸던 사람들은 비밀스럽고도 추악한 인간의 본성을 직접 목격했을 것이다.
그밖에 시베리아에서 몰살당한 매머드를 생각해 보라. 물론 우리는 과거에 나타난 끔찍한 역사를 현재 삶을 위한 교훈으로 직접적으로 도입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최소한 다음과 같이 말할 수는 있다. 나중에 자연 과학자가 과학적 측정 도구인 육분의 (六分儀)로써 작업하고, 러시아 지역에서 몇 푼의 돈을 벌었을 때, 그는 분명히 깨닫게 될 것이다. 즉 그들이 머문 곳은 오로지 인도 해안만은 아니었다는 사실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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