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 Bloch 흔적들

블로흐: 랍비와 그의 두 번째 부인

필자 (匹子) 2021. 1. 21. 11:15

나이든 랍비는 최근에 그미와 혼인하게 되었다. 말하자면 하나는 랍비의 두 번째 부인이 된 셈이었다. 랍비는 기혼남이었는데, 나이가 지긋이 들어서 다시 한 번 젊은 여인과 결혼하게 된 것이었다. 수년에 걸쳐서 두 사람은 매우 행복한 삶을 이어나갔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랍비가 병에 걸렸다. 그는 지금까지 한 번도 침대에 드러누운 적이 없었을 정도로 신체가 건강한 편이었다. 그는 젊은 부인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하나, 아마도 침대에서 더 이상 일어날 수 없을 것 같소. 이르든 늦든 간에 죽음의 천사가 찾아올 거요. 그러면 그분은 나를 주님에게 데리고 갈 것 같소.”

 

이때 하나는 흐느끼면서 다음과 같이 외쳤다. “나의 랍비여, 그런 말씀하지 마세요. 나는 그러한 말씀을 도저히 감내할 수 없답니다. 죽음의 천사가 찾아오기 전에 차라리 집의 창문과 문의 입구를 완전히 차단시키는 게 좋을 것 같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천사가 우리에게 강림한다면, 다음과 같이 말할까 해요. 죽음의 천사님, 제발 나의 랍비의 목숨을 앗아가지 마세요. 그게 곤란하다면, 어디든 내가 그 분의 거처에 항상 머물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랍비는 살그머니 그미의 손을 잡았다. “하나, 그렇게 말해서는 안 돼. 젊은 삶을 그런 식으로 탕진해서는 곤란하지 않겠어?” 랍비의 위로에도 불구하고 하나는 눈물을 흘리면서 탄식을 멈추지 않았다. 자신이 설령 죽는 한이 있더라도 사랑하는 분과 함께 머물겠다는 것이었다. 이때 랍비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몹시 피곤한 듯이 벽 쪽으로 돌아누워서 살그머니 눈을 감았다.

 

젊은 부인은 저녁 무렵까지 잠든 랍비의 곁에 머물면서 정성스럽게 그를 간호했다. 약간 어두워지자 그미는 장 보기 위해서 시내로 떠났다. 하나가 거의 집 앞에 당도할 무렵에, 랍비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가만히 생각에 잠겨 있더니, 허둥지둥 부엌으로 향했다. 부엌의 칸막이 뒤에는 통통하게 살이 찐 거위 두 마리가 있었다. 랍비는 빗장을 열고, 그곳에 있다가 다시 자신의 방으로 돌아왔다. 이때 그는 바닥에 빵가루를 뿌렸다.

 

말하자면 빵 가루는 거위가 머물고 있는 칸막이 문으로부터 복도를 거쳐서 침대가 있는 방문까지 흩어졌다. 랍비는 이상한 행동을 끝낸 다음에 신속하게 자신의 침실로 돌아갔다. 하나가 침실의 문을 열고 어두운 방을 들어섰을 때 환자는 이미 잠든 체하고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부엌으로부터 어떤 기이한 소리가 들렸다. 그것은 빵 가루로 인해 들리는 소음이었다. 누군가 완강하고도 조용히 걸어오는 소리였는데, 아무래도 사람의 발자국 소리는 아닌 것 같았다.

 

랍비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서, 하나에게 말했다. “당신, 들리지? 죽음의 천사가 이곳으로 향해 오는 소리가 들리지 않아?” 하나는 기이한 소리를 듣고 모골이 송연해졌다. 발자국 소리는 어느새 침실 앞까지 이어졌다. 마치 죽음의 천사가 하나가 앉아 있는 문 앞의 모서리까지 다가온 것 같았다. 그런데 발자국 소리는 하나 자신에게 다가오는 것처럼 들리는 아닌가? 이를 감지했을 때, 하나는 손가락으로 랍비를 가리키면서 소리를 질렀다. “죽음의 천사님, 그가 누워 있는 곳은 이쪽이 아니라, 바로 저기예요!”

 

바로 이 순간 랍비는 전등을 켰다. 놀랍게도 거위 두 마리가 하나에게 다가가 빵가루를 쫒아먹고 있었던 것이다. 랍비는 조용히 말했다. “사랑하는 하나, 당신은 뭐라고 말했지? 언젠가 ‘죽음의 천사님, 제발 나의 랍비의 목숨을 앗아가지 마세요. 그게 곤란하다면, 어디든 내가 그 분의 거처에 항상 머물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라고 말하지 않았니?” 하나는 자신 앞에 서성거리는 거위와 남편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머뭇거리면서 다름과 같이 말을 이었다. “정말 죽음의 천사가 찾아왔더라면, 나는 그렇게 말했을 거예요. 거위에게 헛소리를 내뱉었을 뿐, 당신을 의식하지 않았어요.”

 

이야기를 들려주는 화자는 매우 놀란 듯이 다음과 같은 말로써 이야기를 끝마친다. 상기한 이야기는 유대인들이 절대로 자기 자신을 동물과 비교해서는 안 된다는 교훈에 대한 증거라는 것이다. 뒤이어 화자는 하나의 다음과 같은 푸념을 첨부하고 있다. “그렇다고 내가 거위 앞에서 부끄러워해야 할까요?” 말하자면 늙은 남편에 대한 젊은 여인의 사랑은 그렇게 진지하지 않았는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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