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한국 문학

(명시 소개) 전홍준의 시, "금정산"

필자 (匹子) 2023. 3. 2. 18:48

"난바다를 헤쳐 온 늙은 고래 한 마리

 

심해에서 건져 올린 지혜를 잘게 부숴

등뼈에다 풀과 나무를 기르고

내 친구 동식이 한숨도 품어주고

막노동 김씨의 술자리에서

말씀으로 훈제한 안주가 되어주기도 하는

 

언제나 그대가 던져주는 아삭아삭한 꼴 때문에

사하촌의 뭇 생명들

시퍼런 작두날 같은 세상에 베이고도

아직도 미간을 펴고 사는 것이다."

 

(전홍준: 흔적, 전망 2020, 59쪽.)

 

나: 금정산이 고래로 비유되고 있군요. 그것도 “난바다를 헤쳐 온 늙은 고래”라고 말입니다. 이로써 시인의 섬망 속에는 바다와 땅이 뒤집힌 채 투영되는 것일까요?

너: 산이 고래라면, 인간은 거대한 생명체 위에서 휴식을 취하는 작은 난쟁이 릴리푸트와 같을까요? 바다가 늙은 고래에게 험난한 장소였다면, 땅은 우리에게 “시퍼런 작두날과 같은 세상”과 같습니다.

나: 자본주의의 폭력은 눈앞에서 코를 베어가게 합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돈으로 상처를 받고 살아가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산을 고래로 비유한 게 무척 재미있군요.

 

너: 그렇습니다. 고래는 분명히 처음에는 육지에 사는 동물이었다고 합니다. 좁은 땅은 참혹한 양육강식의 현장이었습니다. 그래서 사랑스러운 젖먹이동물이 바다로 풍덩 뛰어든 게 분명합니다.

나: 동물들은 생존하기 위해서 자신을 변화시키는 본능이 탁월하지요?

너: 그렇습니다. 마치 집돼지가 산으로 도주하면, 자신의 송곳니를 날카롭게 키우듯이, 고래 역시 주어진 환경에 순응하기 위해서 팔과 다리를 지느러미와 꼬리로 둔갑시켰을 게 분명합니다. 그래서 인디언들은 고래가 인간의 전신이라고 노래한 바 있습니다.

나: 고래는 참으로 영특한 동물입니다. 인간과 친구가 될 수 있는 영물, 20년 전에 자신의 가족에게 해를 가한 원수를 똑똑히 기억하는 영혼 - 그는 바로 고래지요.

 

너: 금정산은 어쩌면 시인에게 고향의 일부가 아닐까요? 고향이 인간의 가장 이상적인 거처라면, 금정산은 고향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접할 수 있는 일시적인 휴식처의 기능을 톡톡히 합니다.

나: 산등성이는 고래의 등뼈처럼 휘었습니다. 시인은 범어사 산책길 하마 마을에서 계명봉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계명봉은 마치 드러누운 소처럼 보이지만, 고래 한 마리를 빼박았습니다. 눈은 계명봉이고, 입은 범어사가 되지요.

너: 그곳을 찾아간 적이 없어서 그까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어쨌든 삶의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금정산을 오르면, 산은 등산객에게 “심해에서 건져 올린 지혜”를 전해주는 게 분명합니다. 산은 자신을 돌이켜 보며, 자신의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게 해주지요. 그밖에 막걸이 한 잔이 막노동 김 씨에게 하나의 위안이라면, 산길은 “말씀으로 훈제한 안주”나 다름이 없습니다.

 

나: 그렇다면 산은, 고래는 우리에게 어떠한 말씀을 전해줄까요?

너: 잘 모르기는 하나, 그것은 휴식과 위안과 관련될 것 같네요. 금정산은 춘하추동 “아삭아삭한 꼴”을 드러내며 등산객에게 휴식을 제공합니다. 금정산이라는 늙은 고래는 세상의 불평등을 멍 하니 바라봅니다. 세상에는 뛰는 놈 위에 나는 놈 있습니다. 인간 동물은 어떻게 해서든 위, 밥통을 채워야 한다는 숙명을 안은 채 태어납니다.

나: 고래는 인간의 먹이가 아닙니다. 산 역시 그 자체 음식이 아닙니다. 문제는 인간 동물이 음식을 놓고, 서로 피비린내 나게 싸운다는 사실입니다. 그렇지만 금정산, 늙은 고래는 입도차압 (立稻差押)의 참혹한 현실을 수정할 힘과 여력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경멸당하고, 핍박당하는 민초들의 울분을 삭여주고 달래주는 쉼터의 역할을 톡톡히 하는 것 같습니다.

 

너: 여기서 "사하촌"은 시인이 살고 있는 곳으로서 아마 범어사 근처이겠지요?

나: 네, 소설가 김정한의 소설 『사하촌』과는 분명히 다른 것 같습니다. 김정한은 보광사 아랫동네에서 착취당하는 민초들의 아픔을 생생하게 묘사한 바 있습니다.

너: 보광사 아랫동네는 어디일까요? 그곳은 생계를 위해서 노동해야 하는 민초들의 삶의 현장일까요? 그렇다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힘들게 일하면서, 고단한 삶을 이어가고 있을까요?

 

나: 그까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핍박당하는 민초들을 위한 위안의 장소, 젖물림의 장소가 바로 금정산, 늙은 고래인 것은 분명합니다.

너: 그렇다면 금정산은 부산에 있는 산이 아니라, 세상의 모든 산이지 않을까요? 고래의 자식인 우리는 산의 젖물림 속에서 살아가는지 모르겠습니다.

나: 금정산은 당신에게 젖과 꿀을 기약하는 천국의 찬란한 장소는 아직 아닐지 모릅니다. 그렇지만 최소한 “시퍼런 작두날 같은 세상에 베이고도 (...) 미간을 펼 수 있는” 위안의 거처임에는 틀림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