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창길 시인의 시평을 다시 한번 정리하여 올립니다. 양해 부탁드리면서 OT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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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 오늘은 연대하는 민족시인 문창길의 시 「지돌이할머니를 추모하며」를 다루기로 하겠습니다. 이 작품은 시집 『북국독립서신』(2019. 들꽃세상)에 수록되어 있습니다.
A: 문창길 시인의 두 번째 시집은 『철길이 희망하는 것은』(들꽃 2002) 이후에 17년 후에 간행된 귀중한 시 모음집입니다. 시인은 평화, 상생 그리고 통일이라는 거대하고도 필연적 과업에 집중적 관심을 기울였습니다. 『북국독립서신』은 민족의 아픔과 한이라는 주제에서 벗어나 있지 않습니다.
B: 시집의 전반부에는 일본군에게 끌려가 온갖 고초를 겪은 할머니들에 관한 증언의 시가 수록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를 놀라게 하는 것은 문 시인의 시작품이 실존했던 인물의 거짓 없는 개인사에 바탕을 두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시작품들이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간 할머니들의 증언에 근거한다는 점에서 공감의 폭을 배가시키는 것 같습니다.
A: 그렇습니다. 문창길 시인은 2005년부터 경기도 광주의 나눔의 집에 계시는 일본군 위안부로 고통당했던 할머니들과 인연을 이어왔습니다. 그래서 시작품 속에 어떠한 가식도 치장도 드러내지 않은 채, 결코 잊힐 수 없는 폭력을 생생하게 전달해줍니다.
B: 그러면 「지돌이할머니를 추모하며」를 살펴보기로 할까요? 작품은 연으로 구분되어 있지 않지만, 작품을 세 연으로 나누어보았습니다.
할머니는 아무런 말없이 웃기만 하셨다.
푹 눌러 쓴 검정 털모자 속에서
할머니의 어두운 과거사가 삐죽이 새어 나오고 있다
그 언저리에 2월의 늦은 눈발이 설설 내리고
동구밖 어귀엔 혹시나 동생이 들어서지 않을까
내내 귀 쫑긋 올리며 눈시울을 적신다
그보다 더 낭랑 십팔세 꽃다운 나이에 순정을 바친
우리 서방님 이제나 저제나 오시려나
늘상 그리움에 주름진 얼굴 감추던 할머니
소시적 꿈 많은 청춘을 살라먹고 아니
왜놈들에게 빼앗긴 무명치마 흰저고리의
어머니같은 혼을 이제야 맘 놓고 훠이훠이 휘날리는
할머니 그렇게 지고지순한 할머니가
이제 날개를 펴고 살아남은 자가 그리워할
먼 머언 나라로 가시는군요
그곳에는 참기름같은 사랑이 있나요
그 먼 나라에는 헤어지지 못할
서방님 하나 기다리고 있나요
B: 여기서 드러나는 시적 분위기는 가시는 분에 대한 진혼곡처럼 느껴지네요.
A: 고풀이 아니, 씻김굿이라고 표현하는 게 더 나을 것 같네요. 시인의 이러한 굿판을 통해서 일본군 위안부로 일해야 했던 할머니들의 원한을 모조리 날려 없애려는 것 같습니다. 작품에서 다루어지는 지돌이할머니께서 살아온 길은 어떠했는지요?
B: 지돌이할머니는 1923년 6월 5일에 경북 경주군 안강면에서 태어났습니다. 18세에 결혼하여, 남편과 함께 일본으로 건너갔습니다. 이때 남편이 군인으로 끌려가자, 할머니는 고향으로 돌아왔습니다. 어느날 중국의 방직 공장에서 일할 사람을 구한다는 말에 속아 넘어간 것이 화근이었습니다. 1945년 3월 13일에 나이 어린 처녀는 흑룡강성 동령현 석문사 위안소로 끌려갔던 것입니다.
A: 해방 후의 행적은 어떠했는지요?
B: 지돌이할머니는 곧장 한국으로 돌아올 수 없었습니다. 그후 중국인과 결혼하여 슬하에 1남1녀를 두었습니다. 한국 적십자단체에 의해 그미의 생존이 확인된 시점은 1997년이었습니다. 할머니는 2000년 6월 1일 귀국하여 경기도 광주 나눔의 집에 정착했습니다. 바로 그해에 국적을 다시 취득할 수 있었지요. 안타깝게도 할머니는 치매 증세를 보이다가 2008년에 불귀의 객이 되었습니다.
A: 누구든 간에 과거의 기억을 죽을 때까지 잊을 수 없습니다. 위안부 여성들은 평범하게 가정을 꾸리고 살아갈 수 없었습니다. “몸 버리고 돌아온 계집”에 대한 주위의 냉대 또한 이루 말할 수 없었지요, 시인은 이승에서 핍박당하던 할머니의 죽음에 애통해합니다. “그곳에는 참기름 같은 사랑이 있나요?” 시인은 할머니와의 이별을 결코 무덤덤하게 받아들일 수는 없습니다.
그래요 가시려거든 내 짝사랑 같은 마음도
아니 우리의 아리랑 같은 어깨춤도
그 가슴에 맘껏 가지고 가세요
그리고 이옥선 할머니의 자분자분한 귓속말도
김군자 할머니의 그렁그렁한 타박거림도
박옥선 할머니의 맛깔나는 춤맵씨도
배춘희 할머니의 섹시한 그림솜씨도
문필기 할머니의 조용조용한 말동무도
강일출 할머니의 애교스런 질투도
김순옥 할머니의 알 듯 모를 듯 노랫말도
박옥련 할머니의 잔병치레로 힘든 발걸음도
와락 껴안고 웃음바람으로 하늘 바람으로
가시어요 그것이 내 어머니 같은 지돌이할머니의
희망이라면 또는 왕생하는 극락이라면
또 그곳이 경상북도 경주군 안강면 양월 창마을 고향이라면
소작농 딸년으로 태어나 지지리도 못나게시리
단단한 삶을 살아낸 우리의 지돌이할머니라면
가시는 걸음걸음 붉은 꽃 진달래 즈려밟고 가시어요
(계속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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