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한국 문학

(명시 소개) 최영철의 두 편의 시

필자 (匹子) 2023. 4. 13. 10:12

최영철

 

 

인생이 달디달 때 술맛은 쓰고

인생이 쓰디쓸 때 술맛은 달았네

어느새 사랑에 취한 이에게 모든 길은 파묻혀 보이지 않아도

이윽고 사랑을 놓친 이에게 천지사방 모든 길이 망망대해였네

행여 묵직한 주머니를 넉넉한 여비로 생각지 말게나

그 바람에 바삐 가야 할 길 얼마나 멀고 무거워졌겠는가

먼저 길 떠난 이들이 모른 척 흘리고 간 여비가 차곡차곡 쌓여

저 멀고먼 협곡마다 반짝이고 있으니

나 이제 이 낯선 길 하나도 두렵지 않다네

 

.....................

 

나리꽃 필 때

 

첫사랑의 정체는 소매치기였어

말 한 마디 없이

나와 너의 순정만 훔쳐 달아났지

나 잠깐 혼절해 있는 사이

그걸 어디 멀리 내다버린 줄 알았는데

이순(耳順) 어느 맑은 날

처음 수줍음 그대로 돌아 왔네

 

 

최영철 시집: 멸종 미안족, 문학연대 2021.

 

 

조금만 기다리면 해설을 올리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