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한국 문학

(명시 소개) (3) 사랑과 평화를 위한 진혼곡. 문창길의 시 「지돌이할머니를 추모하며」

필자 (匹子) 2023. 2. 22. 18:56

(앞에서 계속됩니다.)

 

B: 그런데 한 가지 지적할 게 있습니다. 일본군인 가운데에서 지금까지 한 사람도 자신의 과거의 죄를 공공연하게 드러내며 양심적으로 고백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일본군인 가운데 지금까지 단 한 사람도 여성을 능욕한 다음에 살해한 범죄를 공개적으로 밝힌 적이 없었습니다. 기이하지 않습니까?

A: 기이하다기 보다는, 그것은 우리의 소름을 돋게 하는 집단적 망각입니다. 가령 전후 시대의 독일을 생각해 보세요. 유대인들에게 해악을 끼쳤던 독일 사람들은 수치심을 의도적으로 은폐하려고 했습니다. 과거의 죄는 나와는 무관하다고 생각하는 마음가짐은 독일인 자신의 감정을 차단하는 심리적 방어기제가 된다는 것입니다. (박설호: 호모 아만스. 치유를 위한 문학 사회심리학, 울력 2017, 116쪽 이하)

 

B: 물론 전쟁이 발발하였고, 수많은 여성이 핍박당했습니다. 역사는 이를 잘 말해줍니다. 그런데 국가적 차원에서, 그것도 국가의 정책에 의해서 집단으로 다른 나라의 여성들을 겁탈하고 도륙한 적은 이전에는 한 번도 없었습니다.

A: 일본 당국은 전쟁터의 총알받이들을 위해서 수많은 위안소를 설치했습니다. 그렇게 해야 자국이 승리를 구가할 수 있다고 믿었던 것이지요.

B: 문제는 일본군인들 가운데 공개적으로 양심 고백을 단 한 명도 나타나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A: 만약 어느 왕년의 일본 군인이 전쟁 이후에 여성들을 능욕하고 살해했음을 공개적으로 밝히면, 당사자는 일본 사회에서 완전히 매장된다고 합니다.

 

B: 일본에서 내부 고발자가 출현하지 않는 것도 같은 이유이겠네요?

A: 그렇습니다. 일본인들의 내면에 도사린 “복종” 내지는 “배반”이라는 심리 구조는 사무라이의 “할복”에서 상징적으로 드러납니. 일본은 섬나라이기 때문에, 어디론가 탈출하거나 도망칠 공간이 없었습니다. 그럴 바에는 차라리 배를 갈라 자결하는 게 차라리 떳떳하다는 것입니다. 이로써 천왕에 대한 절대적 복종이 일본에서는 하나의 미덕으로 자리하게 된 것입니다.

 

광주 나눔의 집에 세워진 소녀상

 

B: 그렇다면 복종과 배반은 양날의 칼이라는 말씀인데...

A: 루스 베네딕트의 『국화와 칼』에 묘사되고 있듯이, 일본인들에게는 “칼”을 감추고 “국화”를 드러내는 엉큼한 복종심은 “섬나라”라는 지리적 특성 때문에 생겨났는지도 모를 일입니다. (Benedict, Ruth (1946): The Chrysantheumum and the Sword, Boston.). 각설, 문창길 시인은 일본의 군국주의가 아직 청산되지 않았다고 말하는 것 같습니다. 한인들은 시인에 의하면 아직도 “자주독립”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어쩌면 가해자들의 뼈를 깎는 자기반성이야말로 진정한 화해를 위한 전제 조건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B: 잘 알겠습니다. 문창길 시인의 시작품은 여성들의 과거의 쓰라린 치욕 그 이상의 의미를 표현하는 것 같습니다.

A: 바로 그 점이 중요해요. 작품의 주제에 해당하는 위안부 사건은 제 2차 세계대전 당시에 일회적으로 출현한 비극적 사건으로 국한될 수 없습니다. 그것은 20세기 이후에 자행된 모든 유형의 범행을 상징적으로 포괄하고 있습니다.

B: 인류 역사는 남성 중심주의의 투쟁, 자본의 침탈, 자본가의 착취 그리고 타국을 약탈하는 국가 중심주의로 점철되어 있다는 말씀이로군요.

 

A: 그렇습니다. 문창길 시인은 수미일관 다음과 같은 네 가지 과업을 자신의 창작을 위한 모티프로 설정하였습니다. 첫째는 반전 평화 운동을 가리킵니다. 문학 행위는 언젠가 독일 작가 크리스타 볼프가 말한 바 있듯이 평화의 연구로 확장되어야 합니다. 둘째는 “식인 자본주의”에 대한 저항 운동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식인 자본주의란 미국의 철학자, 낸시 프레이저(Nancy Fraser, 1947~ )가 언급한 바 있는 모든 자원과 재화를 먹어 치우는 자본주의의 폭력성을 가리킵니다.

B: 사람들이 인간답게 살지 못하는 근본적 이유는 이윤 추구의 자본주의 생활 구도 때문이지요? 이러한 질서 속에서 우리는 제각기 돈에 의해서 이렇게 저렇게 튕기는 당구공들입니다. 다른 두 가지의 운동은 무엇입니까?

 

A: 셋째는 남녀평등을 강조하는 여성 운동입니다. 우리는 모든 폭력과 성폭력에 저항하기 위해서 연대해 나가야 합니다. 넷째는 생태를 보존하는 공동체 운동입니다.

B: 환경 운동, 평화 운동 그리고 생태 공동체 운동은 하나의 보편적 운동으로 집약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A: 좋은 지적입니다. 전쟁, 폭력, 진정한 사랑 그리고 성폭력 등 오늘날의 사회 심리적 주제와 결착되어 있습니다. 이에 관해서 우리는 학문적으로 그리고 예술적 방식으로 제반 사항을 톺아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시인은 이러한 주제의 관련성을 염두에 두고 위안부 할머니에 관한 연작시 역시 이러한 일과 연관해서 연구되어야 할 것입니다.

너: 말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