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한국 문학

(명시 소개) (2) 사랑과 평화를 위한 진혼곡. 문창길의 시 「지돌이할머니를 추모하며」

필자 (匹子) 2023. 2. 22. 14:01

세상을 떠나기 전의 지돌이할머니의 모습

 

(앞에서 계속됩니다.)

 

B: 시인은 자신의 “어머니 같은 혼을 이제야 맘 놓고 훠이훠이” 휘날릴 할머니를 떠나보내 드리려고 합니다.

A: 할머니는 젊은 시절에 치욕과 수모를 겪고, 오랫동안 비탄과 자학으로 삶을 이어왔지만, 그래도 말년에는 자그마한 평온을 누렸습니다. 그렇기에 시적 자아는 지돌이할머니에게 이러한 평온과 작은 기쁨을 간직하기를 바랍니다. 여기에는 “짝사랑 같은 마음” 그리고 “아리랑 같은 어깨춤”도 포함됩니다.

B: 뒤이어 시인은 동병상련의 친구들을 소환해내는군요.

A: 네, 할머니들은 함께 지내면서 서로 우정을 나누었지요. 시인은 나눔의 집에 거주하는 할머니들의 특징을 하나씩 열거합니다. “자분자분한 귓속말”, “그렁그렁한 타박거림”, “맛깔 나는 춤 맵씨”, “섹시한 그림솜씨”, “조용조용한 말동무”, “애교스런 질투”, “알 듯 모를 듯 노랫말”, “잔병치레로 힘든 발걸음” 등을 모두 껴안고 “웃음바람으로 하늘 바람으로” 가시라고 호소합니다. 그것들은 최소한 누릴 수 있는 위안으로 자리할 것입니다. 왜냐면 그러한 기억 속에는 저세상에서 모든 한을 너울처럼 풀어헤치고 마음의 휴식을 찾으시라는 바람이 자리하기 때문입니다.

B: 저세상에서 다시 살게 된다면, 천국에서 극락에서 새로운 삶을 누리게 된다면 “곱디고운 17세 처녀”로, “어느덧 앞가슴 봉긋한” 꿈 많은 “가시내”로 살기를 시인은 갈구합니다.

 

저 눈망울 맑은 퇴촌유치원 아이들의

고사리같은 손짓을 따라 그렇게 할머니를 보내옵나니

마냥 푸르러 곱디고운 십칠세 처녀로만

그 곳에서 사시어요 다시는

지긋해서 생각도 싫은 안강보통학교에서

조선말보다 일본말을 더 배우지도 말고

꽃사슴 같은 슬픈 짐승으로 콩밭 매고 밀을 심어

가을 추수 때면 지주에게 다 바치고 남은 쭉정이

걷어다 무솥에 푹푹 삶아 식솔 배 채우지 말고

꿈 많은 가시내 어느덧 앞가슴 봉긋한

열일곱 지돌이 처녀로만 영원하시어요

가끔은 이 어리석은 시인도 잊지 마시고

자나깨나 걱정 많던 나눔의집 식구들도 잊지 마시고

불심으로 원력을 펼치시는 원장스님도 잊지 마시고

목소리도 청청하게 시를 읽던 이기형시인도

꼭 기억 하시고 검정치마 흰저고리 살랑이며

고구려적 그 기상으로 가시다가

고이 머무는 그곳에서 우리를 지켜 보세요

우리는 기어이 왜놈을 물리치고

우리의 자주 독립을 이룰 겁니다

 

B: 이 시를 끝까지 읽으면 가슴이 찡해질 것 같습니다.

A: 우리가 예의 주시해야 하는 것은 다음과 같은 시구입니다. “꽃사슴 같은 슬픈 짐승으로 콩밭 매고 밀을 심어/ 가을 추수 때면 지주에게 다 바치고 남은 쭉정이/ 걷어다 무솥에 푹푹 삶아 식솔 배 채우지 말고”. 여기서 우리는 한국인들이 어째서 역사적으로 가난과 가렴주구에 시달렸는지를 감지하게 됩니다.시인은 한반도의 남쪽이 오래전부터 착취당하고 약탈당하는 민초의 고난을 안고 있는 땅이라는 것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계속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