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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박: 쥐스킨트의 '향수' (2)

필자 (匹子) 2020. 8. 17. 10:18

(9) 향기를 위하여 연쇄 살인을 저지르다.: 마침내 주인공은 그라스로 향하게 됩니다. 그 지역에서 아눌피 여사와 하인들는 그들의 독특한 향수 제조하고 있었습니다. 주인공은 이들에게서 독특한 향수 제조법을 배웁니다. 어느 날 산책하다가 장 밥티스트는 놀라운 냄새를 맡게 됩니다. 그것은 로르라는 소녀가 풍기는 냄새였습니다. 주인공은 이 냄새를 어떻게 해서든 소유하고 싶어 합니다. 로르가 여인으로 성장하자, 장 밥티스트는 그미의 향기에 얼을 빼앗깁니다. 로르는 향수 제작을 위한 최상의 정수를 소유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주인공은 그라스에서 살고 있는 25명의 가장 아름답고도 고귀한 여자들을 차례로 살해한 것입니다. 이는 오로지 여자들의 몸에서 제각기 달리 풍겨 나오는 암내들을 밀폐된 병 속에 오래 보존하기 위함이었습니다. 로르의 아버지는 뒤이어 연쇄 살인의 희생자가 될 처녀가 바로 자신의 딸이 되리라는 것을 간파합니다. 그래서 그는 딸을 데리고 도시를 떠나 도주하려고 합니다. 이때 로르의 냄새를 예리하게 맡은 그르누이는 로르를 잡아다가 여관에서 살해합니다. 그렇게 해서 그는 로르의 냄새를 병에 담아서 보관합니다.

 

(10) 처형이 거행되는 날, 위기를 모면하다: 그런데 사람들은 장 밥티스트가 범인이라는 단서를 찾아냅니다. 연쇄살인범은 재판에 회부되어 1766년 4월 15일에 사형 선고를 받습니다. 처형이 거행되는 날 주인공은 수만 명의 사람들 앞에 모습을 드러냅니다. 놀랍게도 모두가 그를 사랑하고 존경하는 게 아닌가요? 그것은 다름 아니라 주인공이 최상의 향수를 만들어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만약 그가 여자들을 살해하지 않았더라면, 이러한 놀라운 향수는 발명되지 않았을 게 뻔했습니다. 이때 놀라운 일이 벌어집니다. 장 밥티스트 주위에 모여든 사람들은 기이한 분위기에 도취하여 황홀경에 빠집니다. 남녀들은 술을 마시며 서로 껴안고, 아무런 부끄러움도 느끼지 않은 채 상대방을 알몸으로 끌어안습니다. 그 다음 날 사람들은 자신들이 무슨 일을 저질렀는지, 더 이상 기억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11) 이제 남은 것은 나의 향기를 스스로 찾는 일이다.: 장 밥티스트는 이로 인하여 어처구니 없게도 사면됩니다. 말하자면 아눌피 부인의 남편이 살인죄를 뒤집어쓰게 된 것입니다. 그렇지만 주인공은 다음의 사실을 알아차립니다. 주위 사람들이 자신을 애호한 것은 자신을 사랑해서가 아니라, 자신이 창조해낸 향수 때문이라는 사실 말입니다. 그래서 장 밥티스트는 파리에 있는 오래된 생선 가게로 향해 떠납니다. 그곳에서는 거지, 살인자, 사회에서 냉대 당하는 하층민들이 모여 있었습니다.

 

주인공은 의도적으로 자신의 몸에 과도한 양의 향수를 뿌리자,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듭니다. 어느새 한 가운데 모여 있는 나무토막에서는 불길이 타오르고 있었습니다. 향수의 영향은 너무나 강렬한 것이었으므로, 삶들은 그들 앞에 천사 한 사람이 서성거리고 있다고 착각할 정도입니다. 모든 사람들은 주인공에게 달려듭니다. 천사의 한 조각이라도 소유하고 싶은 유혹 때문이었습니다. 결국 장 밥티스트의 몸은 찢겨지고, 죽음을 맞이해야 합니다. 그르누이는 결국 자신이 태어난 곳에서 사망하는 운명을 맞이해야 했습니다.

 

(12) 작품의 주제로서의 사회적 문제: 첫째로 향수는 계급 갈등의 측면에서 해석될 수 있습니다. 앞 장에서 살펴본 바 있듯이 향수는 귀족들이 쓰는 제품이었습니다. 주인공은 이러한 향수의 냄새를 찾아다닙니다. 향수를 사용하는 자들은 대부분의 경우 여자들이었습니다. 왜냐하면 귀족 여성들은 어떻게 해서든 출신 성분이 좋은 남자를 유혹하여 아내가 되는 등 자신의 권력과 재산을 유지해야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 사실을 오랫동안 간파하지 못했던 주인공 그르누이는 권력과 금력을 추구하는 여자들의 향수에 근접해 나갑니다.

 

바로 이러한 한 향수는 권력과 금력에 종속되는 사물과 같습니다. 아니, 향수는 특권에 대한 객관적 상관물입니다. 주인공은 아무 것도 모른 채 권력과 금력을 추적하다가 수많은 여성들을 살해합니다. 이는 소설의 줄거리에 나오는 피상적 이야기입니다. 그렇다면 소설의 주제는 과연 어떻게 요약될 수 있는가요? 우리는 다름 아니라 주인공 그르누이가 자신의 신분에 관해서 어떠한 사항도 알지 못한다는 사실에 주의를 집중시켜야 할 것입니다. 아닌 게 아니라 주인공은 자신의 냄새를 전혀 맡지 못합니다. 마찬가지로 그는 자신이 누구의 자식인지, 어떠한 출신이지를 조금도 간파하지 못합니다.

 

(13) 주인공은 아웃사이더 예술가의 전형이다. 그르누이는 자신의 냄새를 맡지 못합니다. 아니, 그에게는 냄새가 없습니다. 어쩌면 자신의 냄새를 차단시킨 것은 태어날 무렵의 생선 비린내였는지도 모릅니다. 어쩌면 자신의 출산의 비밀이 그로 하여금 자신의 냄새를 맡지 못하도록 가로막았는지도 모를 일입니다. 냄새가 없다는 것은 주어진 사회의 일원이 아니라, 사회로부터 벗어난 유형의 인간을 의미합니다. 그르누이는 모든 냄새를 맡을 수 있지만, 정작 자신의 냄새를 맡지 못합니다.

 

예술가 작가는 사회의 모든 문제에 관여하여 이를 작품 속에 다루지만, 정작 사회적 사건의 한복판에 서성거리지 못합니다. 그르누이 역시 그러합니다. 또한 그는 이중적 삶을 영위합니다. 낮에는 향수를 만들고, 밤에는 범죄를 저지릅니다. 우리는 그에게서 이중인격의 요소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르누이라는 이름이 어원상 “개구리”를 가리키는 것도 의미심장합니다. 개구리는 수륙양용의 삶을 즐기지 않습니까?

 

(14) 작품의 주제로서의 심리적 문제: 둘째로 작품 『향수』는 심리적으로 왜곡된 인간을 등장시켜, 인간관계의 중요성 그리고 인간과 인간 사이의 조화로운 관계의 중요성을 분명히 전해주고 있습니다. 작품의 주인공은 자신의 출신에 관해서 아무 것도 알지 못합니다. 그에게는 탁월한 후각의 능력이 주어져 있습니다. 이를 매개로 향수를 만들면서 살아갑니다. 그러다가 냄새에 집착하다가 살인을 저지르게 됩니다. 문제는 주인공이 자신의 냄새를 전혀 맡지 못한다는 사실입니다. 이는 인간관계의 측면에서 설명될 수 있습니다. 자신이 누구인지 분명히 아는 사람은 대인 관계에 있어서 자제할 줄 알고 상대방의 심리를 꿰뚫어볼 수 있습니다.

 

주인공은 탁월한 후각의 능력으로써 상대방, 특히 여자들의 냄새를 추적하지만, 정작 상대방의 입장에서 자신을 성찰할 능력을 지니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에게서 사회성이 결핍되어 있다는 것은 일대기에서 그대로 드러납니다. 이를테면 그르누이는 혼자 있을 때 가장 편안함을 느낍니다. 산속에서 7년의 세월을 보내는 것이 가장 행복했다는 것은 많은 점을 시사해줍니다.

 

그는 대인 관계에 무척 서투릅니다. 모든 것은 자기 자신의 입장에서 고찰하고 자기 의지에 의해서 행동합니다. 상대방이 무슨 생각을 하든, 어떻게 반응하든 주인공은 개의치 않습니다. 그렇기에 주인공에게는 한 여성을 진심으로 사랑할 능력마저 결핍되어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주인공 그르누이는 부분적으로 사이코패스의 특성을 지닌 인간형으로 이해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가 사이코패스의 전형이라고 단정 지을 수 있을까요?

 

(15) 사이코패스의 특징 (1): 사이코패스 Psychopath는 반사회성 인성 장애에 해당되는 사람들을 가리킵니다. 이들의 특징들로는 외견상의 모습으로는 사이코패스인지 아닌지 파악되지 않습니다. 그들은 충동적으로 행동하고 무책임합니다. 그들에게는 어떤 장기적인 삶의 계획이 없습니다. 그리고 주위 사람들과 아무런 교우 관계 그리고 애정 관계를 맺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그들에게는 상대방에 대한 배려심이라든가, 동정심이라고는 조금도 찾아볼 수 없기 때문입니다.

 

사이코패스들은 상대방을 기만하며, 언제나 홀로, 깍두기로 살아갑니다. 그들은 주위 사람들을 의식적으로 그리고 무의식적으로 괴롭히지만, 어떠한 죄의식을 느끼지 않습니다. 그리고 사이코패스는 태어났을 때 감정을 관여하는 전두엽이 일반인들처럼 활성화되지 않습니다. 전두엽이 일반인의 약 15%에 불과하기 때문에 선천적인 경우가 대다수이며, 낮은 공감 능력과 양심의 가책이 없고 도파민이 과도하게 분비됨으로써 자신의 공격성향을 의식적으로 조절하지 못합니다. 또한 사회규범을 쉽게 위반하기도 하여서 전체 범죄자의 15~20%를, 중범죄자의 50% 이상을, 연쇄살인범의 90%를 차지하며, 재범률은 다른 범죄자의 2배, 폭력 관련 재범률은 다른 범죄자의 3배로 알려져 있습니다.

 

 

(16) 사이코패스의 특징 (2): 『괴물의 심연』의 저자인 제임스 펠런은 “사이코패스는 다리 셋인 의자와 같다.”고 말합니다. 제임스 펠런은 성공한 신경과학자이자 의대 교수이고 세 아이를 둔 행복한 유부남이지만 뇌 스캔 사진을 분석하다가 자신의 뇌 스캔 사진을 보고 자신 역시 다른 사이코패스처럼 전두엽이 작은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우리가 아는 사이코패스들은 대부분 폭력적이고 불안정하며 공감을 모르고 거짓말에 능한 이들인데, 사회적으로 성공한 과학자이자 교수인 펠런 자신이 과연 사이코패스일까? 펠런은 그러한 의문을 품게 됩니다.

 

어느 날 한 권의 책을 읽게 되는데 그 책에는 사이코패스의 전사 유전자가 가족력에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즉 타인을 공격하는 전사 유전자는 부모로부터 이어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펠런은 사이코패스의 범죄를 저지르지 않았습니다. 즉 사이코패스의 범죄가 발생하기 위해서는 1. 전두엽의 저 기능 2. 전사 유전자 (마치 다른 사람을 공격하려는 성향을 지닌 유전자) 3. 유년기 시절에 부모로부터의 성적 또는 육체적 학대. 이 세 가지를 공유해야 합니다. 세 가지 특성 모두를 공유하지 않은 인간은 사이코패스의 범죄를 저지르지 않습니다. (팰런: 127) 가령 펠런은 자신의 전두엽 기능이 저하해 있으며, 전사 유전자 요인이 있다는 것을 처음부터 알고 있었지만, 자신의 부모로부터 성적으로 그리고 육체적으로 학대당한 적은 한 번도 없었습니다. 그렇기에 그는 지금까지 사이코패스의 범죄를 저지르지 않았던 것입니다.

 

(17) 주인공은 사이코패스의 전형인가?: 장 그르누이는 어물전에서 일하는 나이 많은 하층민 여자의 배에서 태어난 사생아입니다. 당시는 프랑스 혁명이 발발하기 50년 전의 시점이었고, 프랑스 파리를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작품은 자신의 출신에 관해서 아무 것도 알지 못하는, 무산계급에 속하는 젊은이 한 사람이 어떻게 권력과 금력에 휩쓸리게 되는가? 하는 문제를 역설적으로 묘사하였습니다.

 

그렇다면 그르누이는 사이코패스의 전형인가요? 그는 여인의 향기에 집착하여 연쇄살인을 저지르는 것으로 미루어 사이코패스의 유형으로 이해됩니다. 마지막에 이르러 그의 행동에서 어떤 치유의 가능성을 찾을 수 있습니다만, 안타깝게도 비극을 맞이합니다. 주인공은 후각이 발달한 사내로서 다른 사람, 특히 여성들의 냄새를 기막히게 감지하는 능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러나 정작 자신의 냄새를 전혀 감지하지 못합니다. 이러한 어긋난 감각적 특성은 그로 하여금 한 가지 사항에 집착하게 되고 끝내는 사이코패스의 길을 걷게 만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