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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박: 그라스의 '양철북'

필자 (匹子) 2020. 8. 4. 09:55

친애하는 F, 귄터 그라스의 『양철 북』은 1959년에 발표되었습니다. 당시까지 그라스는 시, 극작품, 조각 작품 등을 창조했는데, 이 작품을 통해서 소설가로 변신했습니다. 『양철 북』은 전후 문학에서 커다란 획을 그을 정도로 세계적으로 알려졌습니다. 이 작품은 “외설스럽다.”, “허무주의적이다.” 그리고 “신을 모독하고 있다.” 등의 비난을 받았습니다. 이러한 비난은 이후에서 그라스 문학의 세 가지 특징으로 부각됩니다. 아닌 게 아니라 그라스는 거의 병적일 정도로 성을 기괴하게 묘사하고, 인류 발전에 관한 어떠한 이상도 용인하지 않으며, 나아가 신앙 자체를 탐탁하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귄터 그라스

 

 

친애하는 F, 『양철 북』의 주인공은 주지하다시피 오스카 마체라트입니다. 그는 소설적 화자로서 어느 병실에서 자신이 살아온 이야기 그리고 현재의 일상 등을 독립적으로 기록합니다. 이는 두 개의 서로 다른 소설적 시점을 그대로 지칭합니다. 첫 번째 시점은 1899년부터 1952년까지이며, 두 번째 시점은 1952년부터 1954년 사이를 가리킵니다. 오스카의 외할머니는 안나 브론스키였습니다. 그미는 1899년경에 감자 밭에서 일하고 있었는데, 어느 도망자를 자신의 치마 속에 숨겨줍니다. 그는 요셉 콜라이첵이라는 폴란드 남자였는데, 방화범으로 군인들에게 쫓기고 있었습니다. 요셉은 과연 여자의 치마 속에서 무슨 일을 했을까요?

 

10개월 후 안나 브론스키는 딸, 아그네스를 출산합니다. 소설은 폴란드와 독일 사이에서 살아가던 독일인들의 생활상을 때로는 우화적으로, 때로는 시적으로 서술하고 있습니다. 특히 소설 속의 배경이 되는 단치히는 동프로이센의 도시였는데, 이곳은 그라스의 고향이기도 합니다. 요셉 콜라이첵은 안나 브론스키의 남편으로 살다가 1913년 경찰에 쫓겨 어디론가 사라집니다. 소문에 의하면 그는 결국 강에 빠져 죽었다고 합니다. 주인공의 할머니, 안나는 생필품 가게를 운영하며 살아갑니다. 요셉이 사라진 뒤에 그미는 요셉의 형, 그레고르 콜라이첵과 결혼합니다. 그리하여 그미는 딸, 아그네스와 함께 그레고르와 살아갑니다.

 

친애하는 F, 당신은 그라스의 소설을 읽으면, 자주 얼굴을 붉히게 될 것입니다. 그만큼 노골적인 성 묘사, 수많은 사람들의 결혼과 사랑의 이야기 그리고 속물들의 연애 이야기와 모험담 등이 소설의 주류를 이루고 있으니까요. 어머니인 아그네스는 라인 지방 출신의 독일인, 알프레트 마체라트와 결혼합니다. 그렇지만 그미는 비밀리에 사촌오빠인 얀 브론스키와 정을 통하곤 합니다. 목요일이 되면 아그네스는 비밀리에 얀을 만나, 대낮인데도 호텔에서 살을 섞곤 하였습니다. 놀라운 것은 그미에게 남편에 대한 죄의식이 없다는 사실입니다. 그리하여 태어난 자식이 주인공, 오스카 마체라트입니다. 그래서 오스카의 아버지는 두 사람입니다.

 

 

 

 

 

오스카는 세 살 되던 생일날에 양철로 된 북 하나를 선물로 받습니다. 그 후로 오스카는 자주 북을 두드립니다. 양철 북은 오스카에게는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게 하는 매개물이며, 동시에 생존의 도구이기도 합니다. 양철 북을 매개로 그는 어린 시절 정신 병동의 기억을 떠올릴 수 있습니다. 북을 두드리는 한, 그는 자신의 고유한 존재를 망각하지 않습니다. 북의 리듬은 단치히에서 보냈던 자신의 기억을 환기시켜줍니다. 나아가 오스카는 기이한 능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오스카가 유리창을 응시하면, 유리창은 순식간에 깨어집니다. 또한 그는 고함을 질러, 전구 혹은 유리창을 깨뜨릴 수 있습니다.

 

문제는 주인공이 거대한 영웅의 척도를 증오하여, 성장하기를 거부한다는 데 있습니다. 성인이 되었는데도 그는 마치 난쟁이처럼 자그마합니다. 소설은 총 46장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대부분의 경우 오스카인 “나”에 의해서 서술되고 있습니다. 때로는 제 3의 인물이라든가 낯선 화자가 등장하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만, 대체로 1인칭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오스카는 어린 나이에 무엇보다도 성에 대해 호기심을 느낍니다. 어머니는 목요일이면 얀 브론스키와 호텔에서 밀회를 즐기는데, 오스카는 어머니와 얀 브론스키의 알몸을 문틈으로 관찰합니다. 그는 빵 가게의 여자에게서 글을 배웁니다. 왜냐하면 그는 일찍이 나쁜 행동으로 인하여 학교에서 퇴학당했기 때문입니다.

 

 

 

 

 

나치의 행군이 진행될 때면, 오스카는 북을 두드립니다. 가끔 그는 독일 군인들의 분열식을 순식간에 방해하곤 합니다. 예컨대 오스카가 행군 리듬을 왈츠 리듬으로 바꾸어 연주하면, 군인들은 행군하는 대신, 서로 끌어안고 왈츠를 추곤 했습니다. 오스카는 때때로 서커스에 등장하여, 유리를 깨뜨리곤 합니다. 작가는 놀라운 상상력을 발휘하여, 단치히의 일상을 기묘하게 왜곡된 상으로 묘사합니다. 오스카는 밴드를 조직하여, 음악에 심취하지만, 결코 스스로 시민 세계에 편입되지 못합니다.

 

친애하는 F, 당신은 “수정의 밤” 사건을 아시는지요? 1938년 나치 돌격대들은 어느 날 밤 모든 유대인 상점의 유리창을 박살내었습니다. 이날 밤에 유대인 마르쿠스는 결국 스스로 목숨을 끊습니다. 마르쿠스는 오스카에게 정기적으로 북은 제공하던 사람이었습니다. 이때 오스카는 자조 섞인 목소리로 어떤 푸념을 터뜨립니다. 즉 타인에게 언제나 불행을 초래하는 존재가 바로 자기 자신이라고 말입니다.

 

실제로 오스카는 전쟁을 전후하여 가정적으로 연쇄적인 불행들을 겪어야 합니다. 어머니는 두 번째로 임신했을 때, 자살해버립니다. 다시 불구 아이를 낳는다는 사실에 대해 깊이 절망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실질적인 아버지, 얀 브론스키는 폴란드 우체국에서 일하다가 나치에게 붙잡혀 처형되고 맙니다. 법률상의 아버지, 알프레트 마체라트는 나치의 보호를 받았는데, 러시아 군인들이 진군해 올 무렵 신분증을 입안에 틀어넣고 삼킵니다. 행여나 나치에 동조한 자신의 행각이 발각될까봐 그렇게 행동을 취했는데, 이로 인하여 그는 질식사하고 맙니다. 전쟁이 끝날 무렵에 오스카는 무가치한 삶 속에서 벗어나게 됩니다. 그는 난쟁이들의 모임인 릴리푸타너 극단에서 일하게 된 것입니다. 오스카는 어느 난쟁이 여자와 사랑에 빠져, 아이를 낳습니다. 그런데 그미는 먼 훗날 오스카의 장모가 됩니다. (잉?)

 

오스카는 뒤셀도르프로 와서 석공, 재즈 연주자, 모델 등의 일로써 살아갑니다. 게다가 콘서트 연주와 음악적 성공으로 많은 돈을 벌어들입니다. 그는 스스로 유년의 상태를 고수하다가, 정상적인 삶을 거부하였고, 이로 인하여 과거에 대한 기억을 상실하게 됩니다. 친애하는 F, 이는 어쩌면 아데나워 시대에 수많은 독일인들의 기억 상실증과 일맥상통한 것입니다. 경제 기적을 이룩하자, 독일인들은 과거 나치 시대의 끔찍한 범죄를 잊으려고 의도했던 것입니다. 오스카는 근본적으로 나치에 대해 저항하고, 전쟁 그리고 기억 상실증 자체를 싫어했습니다. 오스카는 어느 날 병원 내에서 어느 간호원을 살해하여, 정신 병동에 수감됩니다. 이곳에서 오스카는 자신의 과거를 글로 표현합니다.

 

 

 

 

주인공이 사용하는 수많은 언어유희, 은어, 풍자, 암유적인 상 그리고 기발한 유머 등은 상식적인 이데올로기를 배제하기 위함입니다. 다시 말해서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언어는 그라스에 의하면 알게 모르게 권력의 측면에서 일반 사람들을 조종하고 세뇌하는 역할을 담당합니다. 언어는 권력을 지닌 자 내지 금력을 지닌 자가 그렇지 않는 자에게 가하는 하나의 폭력과 같습니다. 그렇기에 주인공은 일상적이고 상투적인 표현 대신에 예술적 언어를 사용합니다. 예술적 언어가 언어유희, 은어, 풍자, 얌유적인 상 그리고 기발한 유머를 지니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이 점을 고려할 때 작품 『양철 북』은 첫째로 모든 역사를 권력자의 눈에서 고찰하는 게 아니라, 인민의 눈으로 고찰하는 작품입니다.

 

둘째로 그라스는 전쟁과 폭력에 처음부터 이의를 제기합니다. 작가는 끔찍한 독일의 역사를 난쟁이 아이의 시각으로 묘사합니다. 이로써 독자는 제 2차 세계대전 이후에 독일 전역에 퍼져나간 나치 범행에 대한 기억 상실증을 다시 한 번 재확인할 수 있습니다. 작가는 오로지 한 아이의 시각에 투영된 과거의 체험을 독자들에게 전해줍니다. 이로써 독자는 과거에 무엇이 존재했는가? 하는 사실을 다시 한 번 기억해내고 끔찍한 나치의 참상 그리고 독일인들의 제국주의적인 만행을 돌이켜보게 됩니다. 한마디로 작품은 50년대 60년대 독일인들의, 특히 서독인들로 하여금 자신의 잠재적인 기억상실증을 통렬하게 비판하게 하고, 그들로 하여금 과거 사실에 관한 단선적인 사실 기록에 대해 반항하도록 촉구하고 있습니다.

 

친애하는 F, 이 작품에서 세 번째로 강조되는 것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주인공 오스카가 항상 여성들을 동경한다는 사실입니다. 두 남자를 사랑하던 자신의 어머니, 아그네스, 전쟁 시기에 알프레트를 유혹하던 바닐라 냄새 풍기는 고혹적인 마리아, 풍만하고 선정인 몸매를 지닌 이웃집 여자 리나 그레프, 그리고 자신의 존재를 진정으로 이해해주던 난쟁이 여자, 로스비타가 바로 그들입니다. 오스카는 라인 지방에 머물 때, 간호원 도로테아를 찾아갑니다. 그는 언제나 흑인 여자요리사에 대해서 끔찍한 공포심을 느꼈습니다.

 

그렇기에 도로테아의 하얀 옷은 그에게 항상 하나의 위안으로 작용했습니다. 요약하건대 오스카의 어린 시절의 욕구는 “어린 태아의 상태로 되돌아가는 일”이었습니다. 이는 “어머니로서의 여성들에게 되돌아가려는 욕망”과 다를 바 없습니다. “여성에 대한 작가의 음탕한 숭배” - 이것은 가톨릭교회가 추구하는 마리아 숭배 정신에 전적으로 위배되는 태도입니다.

 

 

양철북 연극 공연의 한 장면

 

여성의 자궁 속으로 기어들어가려는 주인공의 태도, 할머니의 치마폭에 숨으려는 어느 범법자의 도피 - 이것이야 말로 그라스가 궁극적으로 작품에서 추구하려는 모성 속으로 은폐하려는 “퇴행 Regression”의 욕구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렇기에 그라스는 외형적으로는 진보적 태도를 보여주고 있지만 (가령 사민당을 위한 정치 참여, 정치 망명객에 대한 동정적 태도 등), 심리적 측면으로 고찰할 때 지극히 반동적 퇴행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작가입니다.

 

그라스는 겉으로 보기에는 사회 민주당을 동조하면서 빌리 브란트를 독일의 수상으로 선출하는 데 앞장 선 바 있습니다. 그러나 속으로는 동구의 사회주의를 지속적으로 비판해 왔습니다. 어쩌면 그라스가 묘하게도 겉 다르고 속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 것은 자기 자신의 정체성을 은폐시키고 부인하기 위함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는 2006년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자신이 SS 공병대에 자원했다는 것을 고백하였습니다. 어쩌면 전쟁 당시에 나치를 위해서 일했다는 죄책감과 부끄러움이 결국 그로 하여금 반파시즘의 명작을 창조하게 만들었는지도 모를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