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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박: 쥐스킨트의 '향수' (1)

필자 (匹子) 2020. 8. 15. 10:52

(1) 냄새는 강렬하나, 순식간에 사라진다.: 친애하는 S, 인간이 지닌 오관의 능력 가운데 가장 낙후된 것은 후각입니다. 인간은 개보다 소보다 냄새를 잘 맡지 못합니다. 어쩌면 인간은 지적 능력을 개발한 반면에, 후각의 능력을 서서히 상실해 왔는지 모릅니다. 후각이야 말로 생물들의 본능과 직결되는 것이지요. 인간의 성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후각이라고 합니다. 남자들은 여자들의 S라인에 황홀해 합니다. 그만큼 남자들의 성감대는 시각에 의존하고 있습니다.

 

이에 비하면 여성들은 남자의 멋진 몸매에 그다지 탄복하지 않습니다. 여성을 자극하는 것은 무엇보다도 향기이지요. 그래서 『수호지』에서 바람둥이 서문경은 요조숙녀들을 마음대로 유혹하여 농락하기 위해서 바지 주머니에 온갖 방향제를 차고 다니지 않습니까? 여성을 자극하는 것은 무엇보다도 향기입니다.

 

(2) 향기는 기억을 찾게 하는 매개물이다: 나아가 향기는 잃어버린 기억을 되찾게 해주는 매개체입니다. 마르셀 프루스트의 『장편 소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A la recherche du Temps Perdu』에서 주인공은 냄새를 통해서 과거의 기억을 되찾습니다. 아마 여러분들도 어느 특정한 냄새를 맡을 때, 잊어버린 과거가 불현듯 떠오르는 경우를 경험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이러한 경우야 말로 “미리 본 것 déjà-vu”에 대한 재 기억의 효과이기도 하지요.

 

그렇습니다. 냄새는 인간에게 잃어버린 기억을 되찾게 해주는 효과를 지닙니다. 실제로 후각은 어쩌면 인간의 삶에서 두 가지의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즉 인간의 감성을 자극하는 기능 그리고 대뇌에서 인간의 기억을 관장하는 기능이 바로 그러한 역할들입니다.

 

 

 

(3) 향수의 개발: 첫째로 사람들은 더럽고 불쾌한 냄새를 줄이기 위해서 향수를 개발하였습니다. 온몸에서 풍기는 암내라든가 누린내를 없애는 것보다는 다른 냄새로 중화시키는 게 효과적이라고 믿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향수를 만들어낸 사람들은 나쁜 냄새를 약화시키는 역할 뿐 아니라, 인간의 감성을 자극하고 사랑하는 분위기를 연출하는 데 효과적이라는 것을 발견해내었습니다.

 

향긋한 냄새는 사랑을 나누는 데 효과적이라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입니다. 요즈음 독일에서 샴푸 개발에 박차를 가하는데, 머리카락을 깨끗이 하는 기능보다는 이성을 자극하는 냄새를 첨가하는 것을 가장 중요한 관건으로 여기는 실정입니다. 둘째로 사람들은 안온한 냄새가 망각된 기억을 되살리는 데 효과적이라는 점을 간파해내었습니다. 그래서 요즈음은 요양원에서 치매 치료를 위해서 라벤더 향기를 많이 사용한다고 합니다.

 

(4) 남한의 고등학교 학생들도 다 아는 소설: 오늘은 남한에서도 널리 알려져 있는, 파트릭 쥐스킨트 (Patrick Süskind, 1949 - )의 장편 소설 『향수. 어느 살인자의 이야기』에 관해서 살펴보기로 합니다. 소설은 1985년에 간행되었습니다. 쥐스킨트는 불과 1년 전에 일인극인 『콘트라베이스Der Kontrabaß』를 집필하여, TV의 시리즈로 방영하게 한 바 있습니다. 이때 그는 방송 작가 헬무트 디틀 Helmut Dietl과 함께 시나리오를 썼지요. 쥐스킨트의 『향수』는 80년대 독일에서 대대적인 성공을 거둔 작품입니다. 이 작품은 부제가 말해주고 있듯이, 18세기 문화사와 도덕의 역사를 심령학적이고도 신비적인 터치로 그린 것입니다.

 

『향수』는 다양한 문헌을 교묘히 인용한다는 점에서 에코의 『장미의 이름Le Nom de la rose』과 마찬가지로 포스트모던 계열의 작품입니다. 작품은 에코의 『장미의 이름Le Nom de la rose』과 마찬가지로 포스트모던 계열의 작품에 속합니다. 쥐스킨트는 어쩌면 “자기중심주의, 계산된 합리성, 무감정, 질서 그리고 사회 정의”로 요약될 수 있는 차가운 계몽주의를 비판하려고 의도했는지 모릅니다. 작품은 범죄소설, 역사소설, 예술가소설 그리고 교양소설의 특징을 모조리 포괄하고 있습니다.

 

(5) 기막힌 탄생: 주인공은 장 밥티스트 그르누이Jean-Baptiste Grenouille라는 남자입니다. 그는 “찬란한 시대의 가장 놀랍고도 수치스러운 사건 속에서 가장 놀랍고도 수치스러운 인물”로 모습을 드러냅니다. 그르누이는 1738년 7월 17일 파리의 시메트리 드 인노센트 묘지 근처의 어시장에서 태어났습니다. 당시는 프랑스 혁명이 발발하기 50년 전의 시기였습니다. 주인공이 태어난 장소는 가장 추악한 권력을 자랑하는 왕궁 근처의 시멩티에 거리의 생선 가게였습니다.

 

그의 어머니는 아이를 낳기에는 너무 나이가 많았으므로, 출산 당시에 기절하고 맙니다. 그 때문에 주인공은 어머니의 배속에서 빠져나와서 생선 찌꺼기들이 가득 담긴 쓰레기통 속으로 들어가고 맙니다. 그래도 그가 살아남은 것은 그야말로 기적이었습니다. 아기를 담은 쓰레기통은 청소부에 의해서 다른 곳으로 옮겨졌습니다. 그르누이의 어머니가 정신을 차렸을 때, 자신이 낳은 신생아를 찾을 수 없었습니다. 사실 아기를 출산하고 싶지도 키우고 싶지도 않았으니, 차라리 잘 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의 어머니는 주위 사람들에 의해서 영아 살해범으로 몰려 체포됩니다. 며칠이 지난 후에 그미는 단두대에서 사형당하고 말지요.

 

 

(6) 냄새, 그것은 사람들을 황홀하게 만든다: 냄새 맡는 능력은 분명히 주인공의 장기였습니다. 이러한 능력에 대해 주인공 스스로도 탄복할 정도였으니까요. 그르누이는 어린 아이 때부터 다양한 냄새를 기가 막히게 알아내는 능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는 그 대신에 자신의 고유한 냄새를 맡지 못합니다. 주인공은 여러 유모를 전전하며 살았는데, 그를 오랫동안 친아들로 보살펴주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장 밥티스트는 유모들에게 두려움을 안겨주었기 때문입니다.

 

냄새 맡는 초인적 능력이 한상 문제였습니다. 몇 년 뒤에 그는 가이야르 마담에게 넘겨집니다. 마담은 고아가 된 아기를 키운다는 조건으로 시정부로부터 돈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장 밥티스트는 사회의 아웃사이더가 됩니다. 다른 아이들은 그를 이상하다고 여기면서 따돌렸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은 장난삼아 그를 질식사 시키려고 할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시도는 언제나 실패로 돌아갑니다. 그르누이는 어느 누구의 사랑도 받지 못하고, 친구 없이 외롭게 자랍니다.

 

(7) 어떻게 하면 여자의 아름다운 향기를 오랫동안 마음속에 담아두고 가끔씩 꺼내어 만끽할 수 없을까?: 어린 시절에 주인공은 이 세상의 모든 향기를 맡아서 이를 자신의 마음속에 영원히 보관하려고 결심합니다. 8세 때 그는 그리말이라는 가죽 공장 노동자에게 인신매매됩니다. 주인공은 힘든 노동을 견디면서 끝내 살아남습니다. 어느 날 그는 우연히 자신이 알지 못하는 기이한 향기를 맡게 됩니다. 향기의 출처를 알아내려고 그는 파리 시내를 배회합니다. 향기는 너무나 자극적이고도 강렬해서 파리의 어느 시가지에 위치한 모든 골목을 가득 채우고 있었습니다.

 

알고 보니 그것은 다름 아니라, 어느 젊은 처녀의 겨드랑에서 나는 냄새였습니다. 장 밥티스트는 겨드랑이 냄새에 찬탄을 금치 못합니다. 그래서 그는 그미의 암내를 오래 맡으려고 처녀를 방에 가두려고 합니다. 조용히 다가가서 그미를 납치하려하다가 그만 처녀를 죽이고 맙니다. 바로 이 순간 완전무결한 향기는 처녀의 죽음과 함께 사라졌다는 것을 주인공은 알아차립니다. 그는 향기를 영원히 보관하는 방법을 찾으려고 결심합니다. 그런데 그르누이는 몇 년 후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처녀의 향기를 생생하게 인지하게 됩니다.

 

 

(8) 그르누이의 수업시대 그리고 편력시대: 그르누이는 그리말이 시키는 대로 가죽 껍질을 향수업자 발디니에게 갖다주게 됩니다. 이때 주인공은 자신의 능력을 발디니에게 드러냅니다. 그르누이의 능력을 알아차린 발디니는 그리말에게서 주인공을 “구매”합니다. 주인공은 발디니로부터 향수 제조의 여러 가지 기술을 익히게 됩니다. 그는 놀라운 재주를 최대한 발휘하여 발디니의 향수가 파리에서 최고로 훌륭하다는 것을 증명해냅니다.

 

장 밥티스트는 향수 외에도 철 그리고 다른 물질의 냄새를 집요하게 맡으려고 합니다. 발디니의 증류 기술이 기대한 만큼의 성공을 거두지 못하게 되자, 주인공은 향수의 본고장인 그라스로 떠나기로 결심합니다. 그라스로 가는 길에서 장 밥티스트는 수많은 인간의 냄새를 맡습니다. 순식간에 구역질을 느낍니다. 구역질은 너무나 강렬한 것이었으므로, 사람들을 피해서 어디론가 도주하고 싶은 욕망이 치솟습니다. 그래서 그는 약 7년에 걸쳐 동굴에 숨어서 살아갑니다.

 

7년 동안의 시기에 그는 마침내 자기 자신에서 어떠한 냄새를 맡지 못한다는 사실, 아니, 자신이 어떠한 냄새도 발산하지 못하는 인간이라는 사실을 마침내 알게 됩니다. 그밖에도 그르누이는 그라스에서 마침내 인간의 모든 향기를 가장 세밀하게 구분할 수 있게 됩니다. 주인공은 다양한 냄새의 도움으로 숨어서 살아 왔습니다. 말하자면 마치 도롱뇽이 색의 변화로 자신을 은폐하듯이, 그는 냄새의 보호를 받으면서 사람들의 눈에 인지되지 않은 채 살 수 있었던 것이지요. 지금까지 그는 마치 추적자의 덫을 피해 다니는 늑대처럼 살았습니다. 아니, 그르누이는 마치 미묘한 냄새를 찾으러 다니는 사냥꾼처럼 방황하며 살았는지 모릅니다.

 

어느 날 그는 인간을 지배하고 싶은 욕구가 솟아오릅니다. 그는 다시 사람들 틈에 뒤섞이려고 한다. 우선 주인공은 연구자 마르키를 찾아갑니다. 마르키는 기체에 관한 어떤 이론을 개발 중이었습니다. 마르키에 의하면 지구는 나쁜 가스를 내품는데, 동굴에서 숨어 있던 그르누이의 건강을 해쳤다는 것입니다. 마르키의 집에 머물면서 주인공은 어떤 인간 냄새와 유사한 향기를 성공리에 개발하게 됩니다. 이 냄새를 몸에 지니고 있으면, 장 밥티스트는 다른 인간들의 불쾌한 냄새를 어느 정도 감내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