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 근대불문헌

서로박: 빌리에 드 릴라당의 트리빌라 보노메

필자 (匹子) 2021. 5. 9. 10:45

아귀스트 드 빌리에 드 릴라당 (1838 - 1889)의 연작 단편집 "트리빌라 보노메"는 1887년에 간행되었다. 다섯 편의 단편 가운데 두 편, 「클레어 르노아르」 그리고 「백조의 살인자 (Le tueur cygnes)」는 제각기 1867년에 그리고 1886년에 개별적으로 발표된 바 있다.

 

연작 소설은 모두 트리빌라 보노메 박사라는 주인공과 관련된다. 그는 모니에를 J. 프뤼도므, 플로베르 부바르 그리고 페퀴체 등과 같은 부호 집안의 출신이다. 이들은 레미 슈르몽의 말에 의하면 “19세기에서 가장 독창적인 사람들”이었다. 빌리에 드 릴라당은 이른바 트리빌라 보노메라는 인물을 통해서 [마치 볼테르가 종교인의 본성을 낱낱이 파헤쳤듯이] 속된 시민의 본성을 백일하에 드러내고 있다.

 

 

주인공 트리빌라 보노메는 시민일 뿐 아니라, 과학자이다. 그는 실증주의 그리고 과학적 진보에 숭배하고 있는 인간형으로서, [작가, 철학자 그리고 신비주의자로 요약될 수 있는] 빌리에 드 릴라당과는 정 반대되는 인물이다. 주인공은 아름다움 그리고 초자연적인 요소에 전투를 선언할 정도로 물신숭배의 태도를 여지없이 표방하고 있다.

 

첫 번째 단편 「백조의 살인자」는 서곡으로 구상된 것으로서, 트리빌라 보노메의 속물 근성을 낱낱이 고발하고 있다. 주인공은 살기 위해서 아름다움을 살해한다. 그는 백조가 죽을 때 어떻게 우는지를 들으려고 날짐승을 살해한다. 그럼에도 백조는 탈출을 노래하고 사랑을 노래함으로써 주인공을 무찌른다. 주인공, 트리빌라 보노메는 백조의 비밀을 전혀 알아차리지 못한다.

 

트리빌라 보노메는 자신의 패배를 나중에야 인식한다. 그는 세자르 르노아르와 그의 아내 클레어 사이의 의견 대립을 목격한다. 세자르는 헤겔주의와 심령주의 사이에서 갈피를 잡지 못하는 반면에 그의 아내 클레어는 독실한 기독교인이다. 두 사람의 세계관은 주인공의 냉소주의 내지는 경박한 실증주의에 대한 거대한 도전인 셈이다.

 

로노아르가 죽을 때 주인공과 클레어는 임종을 지키고 있다. 르노아르는 무언가 중얼거린다. 주인공은 고개를 바깥으로 돌리고 있기 때문에 간통과 복수에 관한 르노아르의 중얼거림을 이해하지 못한다. 갑자가 클레어가 경악에 사로잡혀 정원으로 달려나가 눈물을 흘린다. 이때 주인공은 묘한 두려움에 휩싸인다. 그는 클레어를 떠나며, 앞으로는 다시는 클레어의 집에 들어오지 않겠노라고 맹세한다.

 

1년 후에 주인공은 우연히 죽어 가는 클레어와 마주치게 된다. 주인공은 그미로부터 기이한 이야기를 듣는다. 즉 주인공의 친구 헨리 클립톤이 그미의 비밀스러운 애인이었다는 것이다. 주인공은 친구 헨리 클립톤이 남태평양의 어느 섬에서 원주민에게 맞아죽었다는 사실을 익히 알고 있었다. 클레어는 계속 주인공에게 이야기를 들려준다. 남편 세자르 르노아르는 생전에 아내의 간통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다가, 죽음 직전에 이 사실을 알아차렸다는 것이다.

 

그미는 죽은 남편의 저주로부터 벗어나기 위하여 어디론가 돌아다녔다. 나중에 그미는 어느 원주민과 마주치는데, 그가 바로 자신의 남편이었던 것이다. 동시에 이 원주민은 자신의 애인 헨리 클립톤을 때려죽인 바로 그 사람이었다. 죽기 직전에 그미는 그의 얼굴을 분명히 기억해내고 있었던 것이다.

 

의혹에 가득 찬 채 주인공 트리빌라 보노메는 눈동자 속을 들여다보면서, 죽은 사람의 동공에 비친 마지막 상을 포착하려고 시도한다. 어느 이국적인 땅이 떠오른다. 축제가 시작되고 많은 원주민들이 춤을 추고 있다. 어느 원주민의 얼굴은 놀라울 정도로 죽은 세자르 르노아르와 닮았는데, 친구 헨리 클립톤의 잘린 머리통을 마구 휘두르고 있다.

 

지금까지 그는 심령학적인 측면을 전혀 신뢰하지 않았다. 그러나 방금 경험한 상은 자신의 유물론적인 입장을 뒤집어 놓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마침내 그는 자신이 비밀스러운 구멍을 통해서 무한을 들여다본 유일한 자임을 굳게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