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 근대불문헌

서로박: 빌리에 드 릴라당의 악셀

필자 (匹子) 2021. 5. 9. 10:57

비련의 프랑스 극작가, 필립-아구스트 콩트 드 빌리에 드 릴라당 (Ph.-A. C. de Villiers de L’isle-Adam, 1838 - 1889)은 죽을 때까지 불후의 명작 "악셀 (Axel)"을 발표하지 않고, 20년간 수정에 수정을 거듭했다. 죽기 전까지 발표를 미루어온 것은 두 가지 이유 때문이었다. 자신의 영혼을 담은 최고봉의 작품이라는 판단이 첫 번째 이유였고, 작가의 상상력을 이른바 드라마라는 장르가 채워줄 수 없다는 게 두 번째 이유였다.

 

"악셀" 속에 나타나는 이야기는 파우스트와 유사하다. 무대의 시간은 1820년이다. 제 1막 (Le monde religieux)은 프랑다르 지방의 어느 수도원에서 일어나는 이야기이다. 성탄절이다. 마우퍼의 마지막 후예인 사라는 그미의 뜻과는 반대로 수녀가 되어야 하고, 자신의 재산을 수도원에 넘겨야 한다. 축제를 위해 그곳에 도착한 카톨릭 부제는 마우퍼 가문의 문장 (紋章)을 보고 몹시 놀란다. [문장에는 어느 별의 날개 달린 백마 그리고 마주보고 있는 두 마리의 황금 스핑크스가 그려져 있었다. 백마의 머리는 죽은 자의 두개골로 이루어져 있다.] 

 

그것은 아우어스베르크 가문의 문장과 동일한 것이었다. 아우어스베르크 문장은 (나중에 밝혀지지만) 야누스라고 불리는 중세의 마술사에게서 비롯하는 것이었다. 가톨릭 부제는 사라에게 다음과 같이 질문을 던진다. “그대는 빛과 희망과 삶을 받아들이고, 세상을 포기할 자세가 되어 있느냐?” 이제 수련 수녀가 된 사라는 아니라고 대답한다. 주위 사람들이 경악에 사로잡혀 있을 때, 그미는 창문을 통해 쏜살같이 도망친다.

 

제 2막 (Le monde tragique)의 무대는 슈바르츠발트에 있는 아우어스베르크의 고립된 성이다. 부활절 축제가 임박해 있었음에도 음침하고, 살을 에는 추위가 떠나지 않고 있었다. 맨 처음 세 명의 하녀가 여러 가지 대화를 나누고 있다. 이들은 아우어스베르크의 성주 악셀의 하녀들이다. 하녀들의 대화를 통해서 우리는 악셀의 성격, 그의 가족사 (家族史), 마법사 야누스 등을 간략히 듣게 된다. 우리는 또한 악셀의 사촌인 세상을 호령하는 부대장 카스파에 관한 것을 접할 수 있다.

 

성지기가 등장한다. 악셀이 그렇게 침묵하라고 일렀는데도, 성지기는 성의 주위에 감추어져 있는 보물에 대해 떠벌린다. 카스파는 이를 몰래 엿듣는다. 카스파는 악셀을 만난다. 악셀은 평소에 세상을 등지고 심령술에 침잠하고 있었다. 카스파는 진정한 삶을 알려면 향락주의적으로 살아가야 한다고 말하며 악셀을 유혹한다. 카스파가 보물에 관한 이야기를 끄집어내었을 때 악셀은 자제력을 잃고, 카스파의 향락주의를 공개적으로 모욕한다. 인간이 필요로 하는 것은 “구역질나는 쾌락” 대신에 “정적 속에서 사색하며 지낼 수 있는 권리”를 옹호한다. 카스파는 악셀에게 결투를 신청한다. 악셀은 검으로 카스파를 찔러 죽인다. 이때 무대 배경에서 천둥 번개를 동반한 채 신비로운 마술사 야누스가 등장한다.

 

제 3막 심령학의 세계 (Le monde occulte)에서 악셀은 마술사에게 속마음을 드러낸다. 자신은 삶을 찬양하는 카스파의 삶에 약간 영향을 받았다는 것이다. 그는 이제 삶 속에 빠져 인간답게 살고 싶다고 토로한다. 그러자 야누스는 악셀이 겪어야 할 마지막 어려운 시험을 예견하고, 이를 악셀에게 들려준다. 사라와 악셀은 서로 만나리라는 것이다. 그렇게 해야만 단순하고도 정결한 인간성을 통해서 “황금 그리고 사랑”이라는 두 가지의 광기가 극복될 수 있다고 한다. 

 

악셀은 변화와 사멸이라는 차단된 순환의 고리를 박차고, 이 세상으로부터 완전히 고립된 채 자신과 세계를 창조하는 이른바 신과 같은 존재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카톨릭 부제가 사라에게 던진 똑 같은 질문에 대해 악셀은 격정적으로 “아니”라고 대답한다. 이때 사라가 검은 면사포를 쓰고 등장한다. 악셀은 그미를 알아보지 못한다. 이때 야누스는 의미심장한 말을 뇌까린다. “면사포와 외투, 두 사람의 거부하는 자가 만나다. 작품이 완성될 것이다.”

 

제 4막의 무대는 화려하게 치장된, 희미한 빛이 빛나는 가정의 소굴이다. 하인이 카스파의 매장을 준비하고 있다. 벽에는 두 가족이 아주 밀접하게 결속되어 있는 문장 (紋章)이 걸려 있다. 사라는 문장으로 다가가서 단도로 죽은 자의 머리를 찌른다. 그러자 벽이 무너지고, 무제한의 보물 창고가 안전에 전개된다. 사라는 황금과 보석의 더미 속에 거의 파묻힌다. 악셀이 이를 지켜보고 있음을 알아채자, 사라는 두 개의 피스톨을 꺼내 그를 쏜다. 악셀은 약간 상처 입는다. 그는 사라의 아름다움에 넋을 잃는다. 

 

사슬을 감고 있는 사라에게 황급히 다가가서 그미를 껴안는다. 사라는 머리를 풀어헤치고 그를 끌어안으며 말한다. “이 사슬은 더욱 강력해. 너는 갇혀 있는 나의 남자야.” 사라는 오랫동안 시적으로 독백한다. 그미는 풍요로움이 넘치는 두 사람의 삶에 희열을 느끼고 있다. 이때 악셀은 “어째서 별과 같은 찬란한 꿈이 실현될 수 있어야 하는가?” 하고 묻는다. 현실 삶은 이들의 꿈을 채워주지 못한다. 사라 역시 세상을 부정하고 죽음을 동경하기 시작한다. 그미는 보물더미에서 독이 담긴 반지를 끄집어낸다. 이슬에 적신 독은 순간적으로 빛을 발한다. 두 사람은 그걸 마시면서 황홀감 속에서 이승을 떠난다.

 

빌리에 드 릴라당은 -아놀드 하우저의 말에 의하면- “‘세기 말 (fin de ciècle)’에 등장한 새로운 삶의 감정을 고전적으로 표현”하였다. 그것은 모든 자연적인 것을 포기하는 일로써 요약될 수 있다. 인공성 (人工性)은 데카당스의 고유한 특성이기도 하다. 그러나 릴라당의 작품은 시대적 특징으로 제한될 수는 없다. 사랑을 통한 죽음은 바그너의 오페라 「라인 황금」, 「트리스탄과 이졸데」에서 잘 나타나고 있다. 사랑을 통한 죽음은 종교성과 섹스의 결합이며, 나아가 근친상간과 같은 가장 큰 쾌락의 표현이기도 하다. 빌리에 드 릴라당은 작품 속에서 꿈과 환상을 거부하고 매도하는 실용주의 및 차가운 기능주의를 비판하였다. 대신에 그는 궁극적으로 심령학에 바탕을 둔 찬란한 몽상적 태도, 보들레르의 미에 대한 추구, (말라르메 그리고 빅토르 위고 등의 문학에서 나타난) 고뇌하는 인간의 내면적 성숙의 과정 등을 중시하고 이것들의 가치를 동시대인에게 전하려고 하였다.

 

1894년 빌리에 드 릴라당의 작품이 공연되었을 때 사람들의 반응은 양극으로 치달았다. W. B. 예이츠, G. 칸 등은 극찬한 반면에, 몇몇은 조소를 터뜨렸다. 공연 시간이 장장 다섯 시간이나 지속되었는데도, 음악이 전혀 등장하지 않았다. 관객은 5시간 동안 집중하여 연극을 관람하는 데 지쳤고, 배우 역시 오랫동안 무대에서 연기하기에 피곤함을 느낄 정도였다. 어쩌면 빌리에의 대작의 극작품 공연은 처음부터 무리였는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