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박: 러스의 '여자 사람' (1)

1. 미국 작가, 조안나 러스: “물질 추구 이후의 시대”는 우리를 망각의 늪으로 빠져들게 합니다. 비록 크고 작은 사건은 그치지 않고 출현하지만, 세계대전은 더 이상 발발하지 않습니다. 주어진 삶은 그 자체 무미건조하고 허망한 것처럼 보입니다. 그렇지만 우리의 마음은 거대한 감정의 파도를 주체하지 못하며, 머릿속에는 때로는 섬뜩함을 느낄 정도로 어떤 거역하는 사고가 출현하곤 합니다. 이와 관련하여 우리가 말과 글로 무언가 표현하는 일은 얼마나 중요한 일일까요? 세상사에 관해 그리고 우리 자신에 관해 침묵만 고수한다면, 70억 인구 가운데 한 마리인 우리는 모두 망각의 늪 속으로 가라앉고 말 테니까요.

 

오늘은 미국 작가, 조안나 러스 (Joanna Russ, 1937 - 2011)의 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미의 생애에는 특이사항이 발견되지 않습니다. 뉴욕에서 자라나, 코넬 대학교에서 영어영문학을 공부하고, 나중에 워싱턴 대학교에서 교수로 일했다는 점 외에는 언급할 게 별로 없습니다. 실제의 평탄한 삶과는 달리, 러스의 문학 속의 등장인물들은 급진적이고 전투적인 사상과 감정을 품고 있습니다.

 

2. 여성 중심의 새로운 가상 사회: 러스의 『여자 사람The Female man』(1976)에 등장인물은 특히 미국의 가부장주의 남성 사회에서 경멸당하고, 핍박당하는 여성들입니다. 작가는 남성과 여성의 피비린내 나는 전쟁을 서술합니다. 전쟁은 이른바 “살인자, 부자연스럽고 격세유전적인 혼혈 종자들을 지상에서 모조리 사라지게 하는 과업”입니다. 작품은 문체가 격렬하고 치열하다는 점에서 프랑스의 페미니즘 작가, 모니크 위티크Monique Wittig의 『게릴라들Les Guérillères』(1969)을 방불케 합니다.

 

러스는 고전적 유토피아의 틀을 원용하지는 않았습니다. 다시 말해 새로운 사회의 정치, 경제, 사회 그리고 문화적인 제반 측면을 하나의 시스템으로 세밀하게 서술하지는 않았습니다. 대신에 작품 속에는 리얼리즘 소설의 요소라든가, 에세이, 논쟁, 그리고 사이언스 픽션 등과 같은 다양한 특성이 섞여 있습니다. 부분적으로 목가적 전원의 분위기도 첨부되어 있습니다. 새로운 사회의 주도적 존재로 발전시키는 존재는 여성들입니다. 전체적으로 고찰할 때 소설의 근본적 주제는 어떤 배움의 과정으로 요약될 수 있습니다. 즉 여성이 자본주의의 남근 중심의 권력 체제 속에서 어떻게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는가? 하는 배움 말입니다.

 

3. 소설 속의 네 명의 주인공: 소설 속에는 네 명의 여주인공이 등장합니다. 조안나, 제닌, 자네트 그리고 자엘이 그들입니다. 제각기 다른 사회, 다른 현실에서 사는 네 명의 여성들은 우연한 기회에 만납니다. 조안나는 1970년 미국의 사회 출신입니다. 제닌은 세계 경제 위기의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그미의 시대는 일견 1920년대 유럽처럼 보이지만, 가상적인 과거 공간입니다. 자네트는 먼 미래의 이상 사회에서 살고 있습니다.

 

미래의 이상 사회는 “화일어웨이Whileaway”라고 명명되는데, 여성들만 살아가는 공간입니다. 자엘이 처한 현실적 배경은 인류가 조만간 직면하게 될 가상적 현실입니다. 이곳에서는 남성과 여성이 서로 피 흘리며 끔찍한 전투를 벌입니다. 남성에 대한 여성들의 투쟁은 자엘의 견해에 의하면 스스로를 지키기 위한 필사적인 정당방위라고 합니다. 지금까지 여성 착취, 남근 중심적 경쟁, 맹목적 이윤추구 등은 결국 여성들로 하여금 무기를 거머쥐게 했습니다.

    

 

4. 작품의 구조: 소설은 도합 9개의 장으로 이루어져 있고, 각 장은 다섯 단락에서 17 단락으로 분할되어 있습니다. 네 명의 주인공들은 제각기 네 개의 서로 다른 세상과 접촉함으로써 자신의 고유한 자아와 조우합니다. 작가는 프랑스의 작가, 모니크 위티크의 경우처럼 고전적 유토피아의 패러다임을 처음부터 모조리 무시하지는 않습니다. 물론 완전한 세계에 관한 정태적 유토피아의 구체적인 상은 소설 속에 드러나지는 않습니다.

 

그렇지만 작가, 요안나 러스는 주어진 세계를 역동적으로 변화시키려는 실천적 의향을 과감하게 서술하였습니다. 이에 대한 대안으로서의 상은 유토피아의 상이며, 동시에 디스토피아의 상입니다. 구체적으로 말하건대 작가는 한편으로는 여성들만의 평화로운 파일어웨이의 현실적 상을 서술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잘못 발전된 세계에 대한 급진적 비판 내지 경종의 상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5. 자네트, 시간 여행을 떠나다.: 소설은 자네트가 조안나의 세계에 침투하는 것으로 시작됩니다. 자네트는 화일어웨이라는 미래의 가상공간에서 살아가는 여성인데, 과거로 향해 시간 여행을 떠나온 것입니다. 그미는 우연히 중국의 신년 축제에서 자닌을 만납니다. 자닌은 세계 대공황의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자네트는 그미에게 함께 조안나의 세계로 떠나자고 제안합니다. 조안나는 페미니즘 운동이 발발할 무렵인 1970년대 미국에서 살고 있습니다. 자네트는 자닌과 함께 조안나의 세상으로 발을 들여 놓습니다.

 

자네트는 한 번도 남자와 여자가 아우르며 공생하는 사회에 살아보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모든 게 기이하고 어색하게 보입니다. 조안나는 남자와 여자가 함께 파티를 즐기는 곳으로 자네트를 데리고 갑니다. 파티 장소에서 한 남자는 자네트에게 치근덕거립니다. 자네트는 남자를 만난 적도 없고, 남자의 유혹을 받아본 적이 없었습니다. 자네트는 남존여비의 풍토를 도저히 납득하지 못합니다. 그미는 남자의 몸을 내려친 다음에 그에게 조소의 발언을 퍼붓습니다. 자네트는 지상의 가족들이 어떻게 생활하는지 알고 싶어 합니다. 그래서 조안나는 자네트를 자신의 지인인 윌딩스 가족을 소개해줍니다. 이후에 자네트는 윌딩스의 집에 잠시 거주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