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 현대영문헌

서로박: 오웰의 '1984년' (2)

필자 (匹子) 2021. 2. 8. 10:58

11. 고문당하고 세뇌당하는 개개인들: 101호실은 마치 지옥과 같은 고문이 자행되는 곳입니다. 오브라이언은 주인공이 쥐를 몹시 두려워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는 주인공을 거대한 새장 속에 가둔 뒤에 그의 손발을 묶어둡니다. 세장의 바깥에 두 마리의 굶주린 쥐를 서성거리게 합니다. 새장의 문이 열리면 언제라도 쥐가 달려들어, 윈스턴의 몸을 물어뜯을 것 같아 보입니다. 극도의 고통 속에서 주인공은 자신에게 남아 있는 마지막 보루, 즉 줄리아에 대한 사랑을 포기합니다. 가령 윈스턴은 고문당해야 할 사람은 자신이 아니라, 줄리아라고 언성을 높입니다. 이로써 주인공이 가슴속 깊은 곳에 묻어둔 내적인 사랑의 감정마저 송두리째 산산 조각나고 맙니다. 

 

마지막에 이르러 윈스턴은 출옥합니다. 그는 허름한 카페에서 체스놀이로 시간을 보냅니다. 어느 날 우연한 기회에 줄리아를 만나게 됩니다. 이제 더 이상 사랑의 감정도 없고, 끓어오르던 욕정도 솟구치지 않습니다. 줄리아는 자신의 육체에 남아 잇는 고문의 흔적을 보여줍니다. 과거에는 그토록 날씬하고 아름다웠던 그미의 육체는 이제 볼품없이 변해 있었습니다. 그미는 주인공을 밀고했노라고 고백합니다. 그 말을 들어도 주인공은 조금도 가슴의 두근거림을 감지하지 못합니다. 

 

그날 저녁 전쟁 광분에 관한 뉴스를 들었을 때, 주인공은 대중들과 마찬가지로 “전쟁을 치러야 한다.”고 소리 높여 외칩니다. 그의 마음속에는 평생 자리하고 있었던 공동체에 대한 거부감이 어느새 사라져 있습니다. 당국이 비밀리에 주인공의 처형을 준비하고 있을 때, 윈스턴은 이를 알아차리지 못하고ㅡ, 빅 브라더에 감동 받아 눈물을 흘리고 있습니다. 빅브라더가 아니었더라면 자신은 자아에 대항하는 싸움에서 승리하지 못했다고 생각합니다. 그의 영혼은 눈처럼 흽니다. 죽기 직전에 윈스턴은 완전히 세뇌당해 있습니다.

 

12. 등장인물들과 국가의 정체: 윈스턴 스미스는 정부의 교묘한 술책을 수행하는 공무원입니다. 그는 국내외적으로 입수하는 모든 정보를 조작하고 은폐하는 일을 담당합니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그는 정부의 교활한 술책에 치를 떨면서, 반정부적인 단체에 가담합니다. 가령 엠마누엘 골드스타인이 바로 그 비밀스러운 단체입니다. 주인공의 여자 친구인 줄리아 역시 여기에 가담합니다. 그러나 엠마누엘 골드스타인은 정부가 비밀리에 만들어낸 가상적인 단체로 판명됩니다. 오브라이언과 같은 친정부적 인사는 이러한 단체를 만들어서 체제 파괴적인 개인들을 가려내려고 의도했던 것입니다. 

 

국가에 대한 윈스턴 스미스의 저항은 줄리아와의 성관계로 표출됩니다. 주인공은 줄리아와 비밀리에 만나 육체관계를 맺는데, 이러한 행위는 오로지 자녀 출산으로서의 성관계만을 공개적으로 용인하는 국가의 가정 정책을 의도적으로 거부한다는 점에서 하나의 사보타주로 이해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오브라이언은 골드스타인의 책의 공동저자로서 모든 감시의 임무를 통제하는 책임자입니다. 고문실에서 오브라이언은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만약 당신이 미래의 현실상을 그려보려고 한다면, 당신은 언제나 개인의 얼굴을 깔아뭉개는 장화를 생각하면 족할 것입니다.” (Orwell: 246)

 

13. 세 개의 계층 국가: 지구상에는 오세아니아, 유라시아, 동아시아라는 세 개의 거대 국가가 있는데, 이들 국가 모두 세 가지 계층으로 분할되어 있습니다. 세 국가의 사회질서는 계층의 시스템을 용인하는 관료주의 공동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첫 번째 계층은 국가 권력의 핵심으로 알려진 “내부 당”을 가리킵니다. 이에 속하는 사람들은 전체 인민의 2퍼센트에 해당하는 자들입니다. 그들은 사람들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고 감독합니다. 일만 사람들의 식생활, 사생활 그리고 의견들을 모조리 감독하며, 모든 이데올로기의 술책을 이용하여 그들의 모든 사회적 욕구를 조절합니다. 

 

두 번째 계층은 국가 관료 내지 공무원들입니다. 이들은 “외부 당”에 속하며, 내부 당의 모든 정책을 수행하는 역할을 담당합니다. 이들의 수는 국민의 13퍼센트에 달합니다. 세 번째 계층은 프롤레스라고 불리는 일반 사람들입니다. 이들의 전체 인구의 85퍼센트에 해당하는 다수로서, 국가권력에 의해서 착취당하고 기만당하는 민초들입니다. 놀라운 것은 프롤레스가 수많은 사람으로 구성되어 있더라도 하나의 혁명 세력으로 부상하지 못한다는 사실입니다. 왜냐하면 사회의 2퍼센트에 해당하는 엘리트 소수들이 모든 언론과 방송을 장악하여, 일반 사람들의 귀를 막고, 어떠한 비판의식을 지니지 못하도록 영향을 끼치기 때문입니다.

 

14. 위험하고 무시무시한 국가 권력: 국가 권력은 사람들에게 이른바 빅브라더의 모습으로 각인되고 있습니다. 그의 몸짓은 거대하고, 얼굴에는 두꺼운 콧수염이 달려 있습니다. 혹자는 스탈린의 음흉한 초상화를 연상하지만, 우리는 히틀러 역시 떠올릴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빅브라더는 당의 독재적인 정책을 수행하고, 권력자로서의 숭배의 대상이기 때문입니다. 그는 사람들로 하여금 서로 밀고하게 하고, 거짓된 법을 집행하게 하며, 무고한 사람들을 잡아서 고문하고, 그들을 세뇌시키기까지 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스탈린주의 외에도 파시즘의 폭력을 떠올릴 수 있습니다. 

 

놀라운 것은 오웰의 국가에서 생활하는 모든 아이들은 자신의 부모들을 밀고한다는 사실입니다. 이를테면 브레히트의 극작품 「제 3제국의 공포와 비참상」에서는 자식이 부모를 밀고하는 장면이 묘사되어 있습니다. (Brecht: 1134 이하). 국가의 모임에 여러 번 빠지게 되면, 당사자는 당국으로부터 요주의 인물로 낙인 찍합니다. 요약하건대 조지 오웰은 개개인의 자유를 억압하고, 계층적 사회질서를 총괄하는 군국주의 독재국가를 비판적으로 묘사하였습니다. 아마도 오웰의 『1984년』만큼 개개인의 감시를 위해서 온갖 술수와 계략을 동원하는 국가의 치부를 드러낸 작품은 아마도 없으리라고 생각됩니다.

 

15. 국가란 무엇인가?: 오웰은 『1984년』을 통해서 전체주의 국가 시스템을 통렬하게 비판하였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 자리에서 오웰의 국가의 기능을 고전적 유토피아들이 추구한 국가의 그것과 비교해볼 수 있습니다. 국가는 지금까지의 전통적 유토피아에서 개인의 안녕과 행복을 돌보는 질서 체제의 기능을 담당하였습니다. 그러나 오웰의 국가는 전체적인 행복,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2퍼센트의 엘리트를 위해서 개개인의 자유와 권익을 압살하는 정책을 수행합니다. 

 

전통적 유토피아에서는 주지하다시피 사유재산이 철폐되어 있는데, 이는 오로지 부의 공정한 분배를 실현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러나 오웰의 국가에서는 소수 엘리트들이 사회의 거의 모든 재화를 착복하고 있습니다. 이를 고려한다면 오웰의 국가는 개개인의 자유와 평등을 도모하는 기관이 아니라, 개개인의 부자유와 불평등을 획책하는 전체주의 기관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는 어쩌면 유토피아의 목표를 전복시키는 특성이 아닐 수 없습니다. 저자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권력은 수단이 아니라, 그 자체 마지막 목적이다. 권력의 목적은 권력이다.” (Orwell: 242). 

 

아니나 다를까, 전통적 유토피아에 등장하는 일반 사람들은 도덕적으로 고매한 이상을 견지하고 육체적으로 그리고 정신적으로 스스로를 발전시켜나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오웰의 국가에서 사람들은 살아남기 위해서 기회주의적으로 행동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사람들의 다리는 마치 토끼의 앞다리처럼 짧으며, 민첩하게 행동합니다. 그들의 표정은 좀처럼 속내를 드러내지 않으며, 눈을 크게 뜨지 않습니다. 이는 프롤레스가 사회 내에서 그저 맡은 바 임무만을 행하는 기능인이라는 사실을 반증하고 있습니다.

 

15. 작품의 주제: 친애하는 F, 21세기에 살아가는 우리는 소설 『1984년』을 읽고 무엇을 느끼게 될까요? 물론 정도 차이는 있지만, 우리가 프롤레스처럼 감시당하며 살아가는 게 아닐까요? 언론의 통제, CCTV, 감시 카메라 등을 생각해 보세요. 문학 작품이 우리와 관계된다고 믿을 때, 우리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게 될 것입니다.

 

대부분의 국가 소설이 체계적이고 추상적인 데 비해 오웰의 작품은 지배 체계를 구체적으로 상세히 묘사하고 있습니다. 또한 모든 이야기가 윈스턴의 체험의 입장에서, 정확히 말하면 “체험의 관점”으로 서술되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국가 시스템에 관한 묘사는 오로지 한 사람의 관점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어딘지 모르게 비밀스럽고, 묘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지요. 이처럼 오웰은 -체코 출신의 독일 소설가 프란츠 카프카 (F. Kafka)처럼- “선별적 인지”라는 체험 화법을 부분적으로 구사하고 있습니다. 

 

한 가지만 더 지적하도록 하겠습니다. 『1984년』은 오랜 기간 동안 다양하게 해석되었습니다. 보수주의를 추종하는 독자들은 이 작품을 전체주의에 바탕을 둔 사회주의를 비판할 수 있는 대표적인 범례라고 주장하였습니다. 이에 반해서 진보주의자로 자처하는 사람들은 사회주의를 변형시킨 스탈린주의에 대한 비판의 작품으로 오이해하였습니다. 예컨대 ?동물 농장 Animal farm?에 등장하는 나폴레옹 (돼지)가 스탈린을 지칭하듯이, ?1984년? 에 묘사된 현실은 스탈린의 체제 하의 구소련의 현실을 묵시적으로 묘사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작품 속에 묘사된 현실이 전체주의 사회에 대한 작가의 메타포라고 일차적으로 받아들이면 족할 것 같습니다. 만약 그것이 오로지 30년대의 스탈린주의 체제 하의 소련을 가리킨다고 상징한다고 단정 지으면, 더 이상 다른 해석의 가능성이 사라지게 되기 때문입니다.

 

참고문헌

- 박경서: 조지 오웰의 소설에 나타난 사회주의적 전망, 신영어영문학, 제 10집, 1998, 101 - 122쪽.

- 박설호: 유토피아 연구와 크리스타 볼프의 문학, 개신 2001.

- 오웰, 조지: 1984, 김기혁 역, 문학동네 2009.

- Brecht, Bertolt: Gesammelte Werke, Bd. 3, Frankfurt a. M. 1968, S. 1073 – 1192.

- Jens, Walter (hrsg.): Kindlers Literaturlexikon, München 2001.

- Orwell, George: 1984, Frankfurt/ Berlin/Wiem 197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