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민주적 사회주의자, 조지 오웰: 친애하는 F, 이번의 강의는 조지 오웰의 『1984년』을 내용으로 하고 있습니다. 조지 오웰의 본명은 에릭 아더 블레어입니다. 그는 1903년 인도의 비하르에서 태어났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영국의 식민지 정책의 일환으로 파견된 동인도회사의 관리였는데, 가족과 함께 인도에서 거주하고 있었습니다. 오웰은 아버지의 권고로 1921년 영국의 식민 경찰의 연수를 받다가, 도중에 그만 두고 맙니다. 왜냐하면 그는 십대의 나이에 영국의 식민지 경영이 가난한 인도인들의 재화를 착취하기 위함이라는 사실에 항의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경력 쌓기를 스스로 포기한 영국의 젊은이의 앞에 가로놓인 것은 가난과 주위사람들의 냉대,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오웰은 독립하기 위하여 온갖 허드렛일을 마다하지 않습니다. 먹고 살기 위한 일이다 보니, 중도에 그만 두는 경우가 허다했습니다. 심지어는 길거리 노숙자로 생활하다가 안타깝게도 폐결핵을 앓게 됩니다.
1937년에 오웰은 멕시코의 마르크스주의자들과 교우하다가, 프랑코 독재에 항거하는 공화주의자로서 에스파냐 내전에 직접 참가합니다. 전투에서 총상을 입었는데, 그 가운데 한 발은 자신의 목을 관통할 정도였습니다. 이 시기에 오웰은 자신이 “민주적 사회주의자”라고 공개적으로 표명한 바 있습니다. 그밖에 오웰은 어떤 놀라운 사항을 경험하게 됩니다. 그것은 다름 아니라 공화주의자들 사이에도 여러 파시즘적 특성이 숨어 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1939년에 영국으로 돌아와서 잠시 도서 비평가로 활약하다가 영국군에 입대하게 됩니다. 그렇지만 폐결핵 증세로 인하여 징집되지 않습니다. 직접 참전하는 대신에 오웰은 BBC 방송의 종군 기자로 활약합니다. 제 2차 세계대전 당시에 영국은 인도 전문 기자를 필요로 했는데, 오웰이 적임자라고 판단했던 것입니다. 세계대전이 끝나고 난 다음에 오웰은 집필에 몰두하였습니다. 당시에 발표된 작품으로서 소련의 정치 숙청을 풍자하는 『동물 농장 Animal Farm』이 있습니다. 이 작품으로 인하여 작가로서의 오웰의 명성은 세계적으로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2. 미래의 개인은 자유를 누리는가? 조지 오웰이 1948년에 집필하여 1949년 발표한 소설 『1984』년은 미래 소설의 형식을 취하고 있지만, 통상적인 사이언스 픽션으로 편입될 수는 없습니다. 자먀찐 그리고 헉슬리의 디스토피아 문학 작품과는 달리, 작품의 주제는 정치 이데올로기와 술수를 사용하는 국가의 횡포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게다가 오웰은 베이컨 Bacon, 케플러 Kepler, 쥴 베른 Jules Verne 등의 과학 기술적 유토피아에 관해서 커다란 관심을 기울이지도 않았습니다. 오웰은 처음부터 사회적 구도로서의 국가 체제의 문제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었습니다.
물론 작가의 세계관이 처음부터 끝까지 변하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 1947년만 하더라도 작가는 사회주의 체제 및 이에 대한 건설에 나름대로 약간 희망을 품고 있었지요. 이는 1947년에 발표된 글, ?유럽 연합으로 향하여 Toward European unity?에서 잘 드러나고 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름에 따라서 오웰은 사회주의를 지향하는 전체주의 국가로부터 서서히 실망감을 드러내었습니다. 과연 체제로서의 국가가 개인의 자유와 관련하여 어떻게 작용하고 있는가? 국가는 개인에게 어느 정도의 범위에서 관여해야 하고, 개인은 국가에게 어느 정도의 범위에서 도움을 줄 수 있는가? 하는 문제가 오랫동안 오웰의 뇌리에서 맴돌고 있었습니다. 바로 이러한 물음에 대한 해답을 찾기 위하여 오웰은 미래 소설을 집필했던 것입니다.
3. 미래, 1984년 후 정치적 지형도: 작품은 1984년, 미래의 세계를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오세아니아, 유라시아 그리고 동아시아 - 세 강국이 오랫동안 전쟁을 벌이고 있습니다. 첫째로 오세아니아는 북 남미 대륙 그리고 오스트레일리아의 영역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둘째로 유라시아는 유럽과 구소련의 영토를 관할하고 있습니다. 셋째로 동아시아는 중국, 티베트 인도 북부 그리고 극동 지역을 관장하고 있습니다. 주인공에 살고 있는 곳은 영국이므로, 유라시아의 나라입니다. 영국 땅에는 2퍼센트 인구의 (정치적 엘리트에 해당하는) 당대표 그리고 당원들이 배치되어 있습니다. 더욱 정확하게 말하면 당은 빅브라더를 중심으로 결성된 내부 당과 외부 당으로 나누어집니다.
그 아래에 프롤레스가 존재하지요. 다시 말해서 내부 당은 권력의 핵심부인 반면, 외부당은 공무원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하층 계급에 해당하는 프롤레스들은 밀고와 감시 속에서 살지만, 미성숙의 상태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국가는 “임마누엘 골드슈타인”이라는 적이 있다는 것을 전하면서, 사람들로 하여금 이에 대항해야 한다고 설파합니다. 여기에는 어떠한 역사적 진리도 정당성도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재화 관리, 거주 지역의 개선, 군주주의 그리고 대중 문학 등에 관해 탁상공론을 피력하고 있습니다.
4. 공무원, 윈스턴 스미스: 주인공 윈스턴 스미스는 런던의 “정보 행정청”에서 일하는 직원입니다. 그러니까 “외부 당”과 “프롤레스”들을 상호 감시하는 일이 윈스턴의 일과이지요. 따라서 스미스는 사회의 중상류에 속합니다. 그가 하는 일은 국내외에서 전해지는 모든 뉴스들의 내용을 파기하거나, 조작하는 것입니다. 당국은 이로써 유라시아 국가의 인민들을 체제순응적으로 변화시키려고 애를 씁니다. 주인공은 1945년생으로서 현재 나이는 39세입니다. 1945라는 숫자는 묘하게도 윈스턴 처칠의 정치권력의 정점과 일치하고 있습니다. 작가 오웰은 주인공을 의도적으로 윈스턴 스미스라고 명명함으로써, 다양한 정치적 내용을 은근히 암시하려 했습니다.
5. 주인공과 제임스 버넘: 윈스턴 스미스는 실제 인물인 제임스 버넘 James Burnam과 같은 정치적 입장을 고수하고 있습니다. 참고로 말씀드리자면 버넘은 자본주의가 결국에는 관료주의, 기술 관료의 계획 경제 내지는 중앙 집권적 지배로 이전될 것이라고 확신하는 경제학자입니다. 이를테면 그는 자신의 책 『경영 혁명 The Managerial Revolution』 (1941) 그리고 『마키아벨리주의자들 The Machiavellians』 (1943)에서 마르크스주의 대신에 경영자 사회주의를 주창하였습니다. 버넘에 의하면 경영자는 4개의 제각기 다른 집단, 즉 주주, 금융가, 이사, 경영자 등으로 구분되는데, 이 가운데에서 경영자가 우위를 차지해야 한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경영자는 생산 과정에서 필수적 존재이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제임스 버넘의 이론이 실현되면, 모든 국가 권력은 경제 관료 내지 재벌의 손에 장악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국가 권력은 국가의 경제적 이득을 위해서 작동될 것이며, 이로 인하여 전체주의의 폭력은 더욱더 심화될 것입니다. 조지 오웰 역시 제임스 버넘의 이론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는 가령 1946/47년에 「제임스 버넘과 경영 혁명 James Burnham and the Managerial Revolution」이라는 글에서 버넘의 이론을 언급하면서 반드시 국가 중심주의로 이전될 자본주의의 변화에 대해 우려를 표명하였습니다.
6. 주인공의 인간성: 윈스턴 스미스는 지적이며 모든 것을 골똘히 생각하는 타입입니다. 그렇지만 그는 심리적으로 무척 유약한 편입니다. 처음에 그는 강한 자의 권리를 옹호했지만, 시간이 흐름에 따라 “프롤레스”의 희생적인 삶에 동정심을 품기도 합니다. 가령 윈스턴은 이따금 어머니의 얼굴을 기억하곤 합니다. 어머니만 생각하면 포근함을 느끼고 주위의 번잡한 스트레스로부터 해방되는 것을 느낍니다. 그는 무의식적으로 인간적 따뜻함과 사랑 그리고 “협동”의 가치를 인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국가는 개인의 성과 사랑 그리고 영혼의 측면을 체제파괴적인 영역으로 규정합니다. 국가는 개개인의 사랑과 성의 충족을 좌시하면서, 무엇보다도 생산력이며, 주어진 의무를 충실히 이행할 것을 개개인들에게 요구하고 있습니다. 윈스턴은 “프롤레스”의 활력주의의 요소가 현실적 조건을 변화시킬 것을 은근히 갈구합니다. 그러나 지금의 헤게모니의 상황에서는 이러한 활력주의 내지 인간성 등이 허용되지 않고 있습니다. 윈스턴은 이를 그저 흐릿하게 감지할 뿐입니다.
7. 줄리아와의 첫 번째 만남: 어느 날 그는 성에 대항하는 청년 모임에 참석하게 되었는데, 그곳에서 아름다운 여성 줄리아와 처음으로 만나게 됩니다. 줄리아는 윈스턴에 비해서 실천적이고 즉흥적인 삶을 추구하는 여성입니다. 그미가 당을 증오하는 이유는 자신의 사적인 행복이 당에 의해 파괴되기 때문입니다. 윈스턴이 엠마누엘 골드스타인의 추상적 성명서에 동의하기 때문에 이에 가담하는 반면에, 줄리아는 무엇보다도 윈스턴과 사랑의 삶을 즐기기 위해서 윈스턴의 뜻에 따릅니다. 그미는 동료, 이웃 그리고 경찰 등에 대해 그다지 신중한 편이 아닙니다.
줄리아는 “성에 반대하는 청년 그룹”에 대해 반대의시를 분명하게 드러냅니다. 이는 말하자면 근엄한 금욕의 삶을 증오하는 그미의 입장을 분명하게 드러내고 있습니다. 소설 속에 은밀하게 암시되고 있지만, 줄리아는 윈스턴을 만나기 전에 이미 빅브라더의 당원들과 부적절한 관계를 맺으면서, 자유분방하게 살아왔습니다. 어쨌든 그미는 두 번의 만남인데도 주인공의 관심을 완전히 사로잡습니다.
8. 줄리아와의 세 번째 만남과 당국의 감시: 세 번째 만나는 자리에서 줄리아는 주인공에게 쪽지 하나를 건네줍니다. 거기에는 “당신을 사랑해요.”라는 구절이 적혀 있었습니다. 윈스턴은 몹시 당황했지만, 언젠가 샤링턴 씨가 보여준 방을 떠올립니다. 모든 방마다 감시 카메라가 설치되어 있었지만, 유독 그 방에서는 카메라가 설치되어 있지 않는 것 같았습니다. 두 사람은 바로 그 방에서 만나서 육체적 사랑을 나눕니다.
줄리아와의 동침은 주인공으로서는 참으로 이전에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놀라운 경험이었습니다. 윌리엄은 줄리아에 대해 깊은 사랑의 감정을 느낍니다. 주인공과 줄리아의 밀회의 빈도는 높아집니다. 만약 두 사람의 만남이 발각되면, 두 사람은 엄벌에 처해지게 되어 있습니다. 왜냐하면 남녀 사이의 성애 (性愛)는 (성을 억압하는) 당의 독트린에 위배되기 때문입니다. 주인공은 줄리아와 함께 전원에서 살아가기를 꿈꾸지만, 당국은 이를 끝내 허용하지 않습니다.
9. 실권자 오브라이언과의 만남: 윈스턴은 줄리아와 함께 오브라이언을 찾아갑니다. 오브라이언은 자신의 방에 설치되어 있는 감시카메라를 잠깐 차단시킵니다. 그러자 주인공은 안심한 듯이 그에게 모든 비밀, 줄리아에 대한 사랑 그리고 자신의 내적 사고 등을 털어놓습니다. 오브라이언은 주인공에게 엠마누엘 골드스타인의 책 ?과두 집단의 이론과 실제?를 읽으라고 권합니다. 여기서 언급되는 작가 “엠마누엘 골드스타인”은 미국의 무정부주의자 엠마 골드먼 Emma Goldmann을 연상시킵니다. 엠마 골드먼 (1869 - 1940)은 러시아 출신의 유태계로서 1919년 국외로 추방될 때까지 노동자와 여성을 위해 열성적으로 일했습니다.
소설 속에서 골드스타인은 빅브라더와 마찬가지로 초시간적 존재입니다. 그는 과거에는 빅브라더의 당원이었으나, “첫 번째 국가의 적으로” 간주된 자입니다. 엠마누엘 골드스타인은 혁명적 사회주의 이념이 왜곡되었다고 말하면서, 주위의 다른 나라들과 규합하여, 반혁명적 투쟁을 실천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골드스타인은 실제로 사회 내의 체제파괴적인 인간들을 속출해내기 위한 일종의 미끼나 다름이 없습니다. 윈스턴은 골드스타인의 책을 읽으며, 언론, 출판, 집회 그리고 결사 등의 자유를 알게 됩니다. 며칠 후에 윈스턴은 당국으로부터 체포당합니다. 그는 오브라이언 그리고 샤링턴이 당국의 첩자로서 주인공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해 왔다는 것을 뒤늦게 깨닫습니다.
10. 주인공 감옥에 갇히다: 세 번째 단락은 말하자면 감옥 이야기로 시작됩니다. 주인공이 머물고 있는 곳은 창문 없는 공간입니다. 사방에는 불빛이 환하게 켜져 있고, 감시 카메라가 설치되어 있습니다. 밤이 되어도 소등하지 않아서 윈스턴은 시간관념을 상실합니다. 게다가 음식 역시 무척 빈약하여, 서서히 체중이 줄어듭니다. 오브라이언은 주인공을 감시하며, 때때로 고문을 가합니다. 이를테면 그는 전기 충격으로 주인공의 기억을 지우려고 합니다. 고문당하는 윈스턴의 모습은 처참하게 변해 갑니다.
고통 속에서 그는 더 이상 거역하지도 저항하지도 낳겠노라고 말합니다. 그제야 비로소 사람들은 주인공에게 먹을 것을 갖다 주고, 상처 입은 몸을 치료하게 조처합니다. 윈스턴은 이제 과거를 잊고 새롭게 태어난 기분을 느낍니다. 어느 날 밤에 그는 줄리아에 관한 꿈을 꾸고 비명을 지릅니다. 이때 오브라이언은 윈스턴이 여전히 “감시 체계” (빅 브라더)를 내심 혐오하고 있다고 진단을 내립니다. 그리하여 주인공은 가장 끔찍한 고문실 101호실로 송치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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