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 현대영문헌

서로박: 로렌스의 채털리 부인의 사랑 (2)

필자 (匹子) 2018. 8. 30. 15:33

어느 날 산지기 멜로어가 그미와 대면합니다. 멜로어는 차탈레이 가(家)에 고용된 사람으로서 귀족이 아니었습니다. 멜로어는 코니와 마찬가지로 지금까지의 삶에서 아무 것도 얻은 게 없었습니다. 그는 광부의 아들로 태어나, 가정을 꾸렸는데, 그 결혼 생활은 몹시 불행했습니다. 결국 멜로어는 자신의 불행을 떨치기 위해서, 군에 입대하여 식민지인 인도로 도피하였습니다. 그곳에서 장교로 근무하다가 자신을 아껴주던 사려 깊은 상관이 사망한 직후 그는 폐결핵에 걸리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군인의 직책을 저버리고 다시금 고향 마을에 돌아와서 칩거하게 된 것이었습니다. 멜로어는 고향 마을인 렉비 우드에서 고적하게 살아가면서 자신의 불행을 돌이켜보면서 조용히 살기로 마음을 먹었던 것입니다. 멜로어는 매우 섬세하고 영리한 남자였습니다. 물론 폐결핵을 치료해야 한다는 일차적인 이유에서 산지기를 자원했지만, 렉비 우드는 그에게 마법의 전체성이 깃들어 있는 성스러운 공간이었습니다. 그렇기에 그는 상류 출신의 영어를 거부하고, 고향사람들이 사용하는 거친 방언을 감추지 않았습니다. 그가 사투리를 사용하는 것은 상류층에 대한 증오심 때문이었지만, 자연과 동화되고 싶은 마음과도 관련됩니다.

 

 

 

Bildergebnis für lady chatterley's lover

 

 

멜로어는 자기보다도 10살 나이 어린 코니를 만나, 깊은 사랑을 느낍니다. 두 사람은 상대방에게 이끌려, “숲의 조용한 침묵 아래에서”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성적으로 결합합니다. 두 사람은 성교를 통해서 진정한 사랑의 감정을 확인하게 된 것입니다. 그 다음부터 사랑하는 두 사람은 시간이 허락할 때마다 만나 상대방의 몸을 탐합니다. 멜로어는 코니와의 만남을 통해서 깊은 사랑 속에서 행복감을 느끼지만, 그미와의 관계가 일시적으로 끝나게 될까봐 서서히 두려워합니다. 왜냐하면 두 사람 사이에는 신분의 차이가 자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멜로어는 비밀리에 만나야 한다고 경고하지만, 코니는 이를 거부합니다. 즉 그미는 신분상의 차이 때문에 발생하는 모든 어려움을 감내하려고 작심한 것입니다. 사랑하는 남녀의 성적 결합은 결실을 맺습니다, 코니가 임신하게 된 것입니다. 남편을 비롯한 주위 사람들은 이 사실을 알아차리고, 아기의 아버지가 누구인지 집요하게 묻습니다. 클리포드는 모든 것을 알게 되자, 자존심에 상처를 입게 됩니다. 사회는 그미에게 적대적 자세를 취하면서 손가락질합니다. 더럽고도 음탕한 여자가 휠체어를 타고 다니는 불쌍한 남편을 저버리고, 천박한 사내와 살을 섞어 아기를 가지게 되었다는 것이었습니다. 클리포드는 볼톤 부인에게 의지합니다. 말하자면 볼톤 부인은 마치 유아와 같은 클리포드를 어머니처럼 감싸 안아줍니다.

 

코니가 스코틀랜드의 언니 집에서 잠시 살기 위하여, 렉비 홀을 떠나 있는 동안, 멜로어는 미들렌드라는 다른 지역의 어느 농장에서 일하며 살아갑니다. 그는 전처와 정식으로 이혼한 다음에 이혼 서류를 발급받았습니다. 그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미들렌드에서 코니의 이혼을 기다리는 것 밖에 아무 것도 없습니다. 소설은 멜로어의 편지로 끝나고 있습니다. 편지 속에는 떠나 있는 연인에 대한 그리움과 고독, 연인에 대한 깊은 사랑 그리고 연인과 평생 살아가리라는 희망과 신뢰감을 표현되어 있습니다. 마지막 구절은 다음과 같습니다. “당신의 사랑, 존 토마스 (멜로어의 페니스 -역주)는 설레는 마음으로 레이디 제인 (코니의 생식기)을 뜨겁게 기다리고 있소.” 

 

소설은 영국과 미국에서 커다란 반향을 불러일으켜, 이른바 “외설적 묘사”, “간통의 찬양” 그리고 “문명 적대적인 발언” 등으로 부분적으로 삭제되어 간행되었습니다. 당국은 “자지 Pimmel”, “보지 Fotze” 등과 같은 단어, “퍽하다 fuck” 등과 같은 저속어를 문제 삼았고, 노골적인 성행위 묘사를 저질이라고 규정하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작가는 의도적으로 노골적인 성 묘사를 작품 속에 반영하였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무엇보다도 가톨릭주의가 강조하는 “영원한 결혼”에 대해 반기를 들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진정한 결혼은 로렌스에 의하면 무엇보다도 성의 결합, 다시 말해서 “남근 (男根)의 토대”에 바탕을 두고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야만 가톨릭주의의 결혼관은 용납될 수 있다고 합니다.

 

이와 관련하여 우리는 소설의 취약점을 클리포드에 대한 묘사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물론 클리포드는 작가 로렌스가 혐오하는 모든 특성을 빠짐없이 지니고 있습니다. 즉 성불구, 탐욕, 귀족 취향의 절제, 이윤 추구의 성향 등이 바로 그것입니다. 그렇지만 나의 생각으로는 로렌스는 성과 부부의 성행위에 대해 너무나 과도한 의미를 부여하는 것처럼 여겨집니다. 내적으로 일말의 장점을 지니지 않는 사람이 이 세상에 있을까요?

 

로렌스는 신체적 결함으로 인한 성 불능을 단호하게 사랑에 대한 무능력으로 단정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태도는 다른 각도에서 고찰하면 어쩌면 비인간적 처사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클리포드가 자신이 원해서 성불구가 된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바로 이러한 관점에서 고찰할 때 "채털리 부인의 사랑"은 삶의 일면만 투시하고 있을 뿐입니다. 인간의 행복은 오로지 요철 (凹凸) 사이의 접합 관계로 축소화될 수는 없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