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 현대영문헌

서로박: 에드윈 에스트린 커밍스의 거대한 방

필자 (匹子) 2018. 8. 7. 16:27

친애하는 J, 오늘은 미국 작가이자 자유주의자인 에드워드 에스트린 커밍스 (Edward Estlin Cummings, 1894 - 1962)의 장편 소설,『거대한 방 The enormous Room』(1922)을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작가는 1917년에 친구 윌리엄 슬레이터 브라운과 함께 프랑스에서 의무병으로 일했습니다. 다시 말해 그는 미국의 적십자 단체에 속해 있었는데, 제 1차 세계대전 당시에 프랑스로 차출되었습니다. 두 사람은 자신들에게 주어진 일을 충실히 이행하지 못하고, 프랑스의 이국적인 생활에 흠뻑 젖게 됩니다.

 

이로 인하여 두 사람은 직속상관으로부터 신임을 얻지 못하게 됩니다. 프랑스의 검열관은 커밍스와 브라운의 편지를 검열합니다. 브라운의 편지 속에는 검열관의 말에 의하면 독일에 대한 적개심이 발견되지 않고, 전쟁의 구역질나는 상황만 가득 차 있다고 합니다. 결국 두 사람은 체포되어 반역 혐의로 감옥에 갇힙니다. 이로 인하여 두 사람의 끔찍하기 이를 데 없는 옥중 생활이 시작됩니다.

 

 

 

 

 에드워드 에스트린 커밍스 (1894 - 1962)

 

 

문제는 그들이 재판 받지 않고 바로 감옥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당시는 전쟁이 치러지던 시기이었으므로, 재판 받기가 거의 불가능했던 것입니다. 어쨌든 두 사람은 프랑스의 여러 감옥을 전전하다가, 결국 남 프랑스에 있는 “라 페르테 마체 La Perté Macé”라는 강제 수용소에 수감됩니다. 커밍스의 아버지는 몇 달 후에야 아들이 프랑스 감옥에 갇혀 있다는 소식을 접하게 됩니다. 그는 고통에 시달리다가, 결국 아들의 석방을 촉구하는 편지를 미국의 윌슨 대통령에게 보냅니다. 윌슨 대통령은 외교 책임자에게 이 문제를 심도 있게 다룰 것을 명령합니다. 그리하여 커밍스와 슬레이터는 위원회에 소환되어 간단한 재판의 절차를 받습니다. 결국 커밍스는 무죄로 석방되지만, 브라운은 계속 감옥에서 썩어야 합니다.

 

소설은 일인칭으로 기술되고 있습니다. 주인공은 인간 이하의 비참한 삶을 영위하는 감옥 생활을 정교한 필치로 묘사합니다. 자신이 친구와 어떻게 체포되었는지, 그리고 라 페르테 마체 수용소로 어떻게 이송되었는지 등을 생생하게 기술하고 있습니다. 이때 주인공은 자신의 존재 그리고 현재의 세계 등을 깊이 숙고하게 됩니다. 이때 작가는 소박한 문체로 프랑스 법정의 재판에 관한 내용을 매우 관심 있게 다룹니다. 강제수용소에 도착하기까지 그는 모든 것을 다만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이를 경험적으로 기술하였습니다. 그러나 강제 수용소에 갇힌 뒤부터 주인공의 자의식은 완전히 돌변하게 됩니다. 이러한 변화는 자전적인 서술 방식에서도 그대로 드러나고 있습니다.

 

주인공이 갇혀 있는 곳은 짐승의 축사보다도 더 더럽고도 추악합니다. 그곳에서는 50명의 수인들이 밀집하게 거주하고 있습니다. 방은 침과 오물로 인하여 끊임없이 악취로 진동하고, 탁한 공기로 인하여 제대로 숨을 쉴 수도, 편안히 잠을 잘 수도 없습니다. 그렇기에 그곳은 마치 시간과 장소가 멈추어 있는 공간처럼 느껴집니다. 거대한 방에서 주인공은 수없이 다양한 인간군과 조우합니다. 거기에서는 한 인간이 이전에 어떠한 사회적 특권을 누렸는지 하는 물음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오로지 하루하루 목숨을 부지하는 일입니다. 인간 존재는 어떠한 가면도 비밀도 없이 마구잡이로 까발려져 있습니다. 커밍스는 마치 초상화가처럼 거대한 방에서 부자유스럽게 생활하는 여러 사람들을 한 명씩 차례대로 서술합니다. 그의 서술은 치밀하고 정교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사람들이 갇혀 있는 공간은 마치 존 번연 John Bunyan의 『순례의 과정 Pilgrims Progress』에서 나타나듯이, 어둠 속에서 밝은 곳으로 향하는 내적 경험의 영역을 대변하고 있습니다. 이로써 작가는 비참한 상황 속에서도 살아남는 인간 존재의 위대성을 체험하게 됩니다.

 

작가가 묘사하는 순례자 여행기의 구조적 원칙은 다름 아니라 상승 작용입니다. 주인공은 맨 처음에는 수많은 얼굴과 육체 그리고 감옥의 수장인 “아폴리온” 등과 같은 수많은 익명존재로 인하여 자기 자신의 존재가치를 깡그리 상실합니다. 그렇지만 나중에 주인공은 자신의 고유성을 발견하게 됩니다. 주인공이 자신을 되찾고 삶을 능동적으로 개척해나가도록 도움을 주는 자는 “방랑자”, “줄루”, “합창셔츠”, “멕시코놈” 그리고 “흑인 장” 등과 같은 주변인물들입니다. 주인공은 감옥에 수감된 평범한 인물 속에서 놀라운 인간 가치가 도사리고 있음을 깨닫습니다. 맨 마지막에 주인공은 놀라운 소식과 마주칩니다. 즉 미국으로 돌아가게 되었다는 소식,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커밍스는 전쟁의 끔찍한 악영향인 감옥 생활을 우리에게 생생하게 보여줍니다. 작가는 인간의 성도착 증세를 그대로 다루고, 모든 전쟁 상황을 중립적 시각에서 차례대로 서술하였습니다. 작품이 비록 자전적 경험에 의존하고 있지만, 전쟁 소설의 범주에 속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친애하는 J, 한 가지 사항을 첨가하려고 합니다. 그것은 다름 아니라 하이너 뮐러 Heiner Müller가 그의 극작품 「햄릿 기계」의 두 번째 장에서 부분적으로 인용했다는 사실입니다. 뮐러는 “거대한 방”을 유럽으로 비유하고 있습니다. 유럽은 뮐러의 견해에 의하면 거대한 감옥의 방입니다. 남성들의 폭력사회에서 대부분의 여성은 마치 오필리아 Ophelia처럼 정신착란을 일으키던가, 끝내는 자살로써 삶을 마감해야 합니다. 그러나 오필리아는 저항하고 복수하는 여성으로 거듭납니다. 그미는 자신을 살해하는 자를 죽임으로써 억압당하는 처지에서 해방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