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혹에 대항하여
베르톨트 브레히트
1.
너희, 유혹 당하지 말라!
시간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하루가 문 안에 머물고 있다.
조만간 밤바람을 느낄 테니.
내일은 더 이상 오지 않으니.
2.
너희, 기만당하지 말라!
인간 삶은 너무 적은 것이다.
순간적 동작으로 후루룩 음미하라!
삶을 너희가 내버려둔다면,
그건 결코 충분치 않으리라!
3.
너희, 위안을 받지 말라!
많은 시간이 남아 있지 않다.
구원자를 그냥 썩게 하라!
가장 큰 무엇은 바로 삶이다.
더 이상 마련된 것은 없다.
4.
너희, 유혹 당하지 말라,
강제 노동과 소모를 위해서!
누가 너희를 두렵게 하겠느냐?
너희는 모두 짐승처럼 죽고
나중에 도래하는 것은 없다.
Gegen Verführung von Bertolt Brecht:
1. Laßt euch nicht verführen!/ Es gibt keine Wiederkehr./ Der Tag steht in den Türen;/ Ihr könnt
schon Nachtwind spüren:/ Es kommt kein Morgen mehr.
2. Laßt euch nicht betrügen!/ Das Leben wenig ist./ Schlürft es in schnellen Zügen!/ Es wird euch
nicht genügen/ Wenn ihr es lassen müßt!
3. Laßt euch nicht vertrösten!/ Ihr habt nicht zu viel Zeit!/ Laßt Moder den Erlösten!/ Das Leben ist am größten:/ Es steht nicht mehr bereit.
4. Laßt euch nicht verführen/ Zu Fron und Ausgezehr!/ Was kann euch Angst noch rühren?/ Ihr sterbt mit allen Tieren/ Und es kommt nichts nachher.
(단어 설명)
verführen 규 4 유혹하다,
die Wiederkehr 회귀, der Verkehr 교통,
spüren 규 4 느끼다,
der Nachtwind 밤바람
betrügen 규 4 기만하다, 속이다
schlürfen 규 자 후루룩 들이마시다
in schnellen Zügen 순간적 동작으로
genügen 자 3 충분하다
lassen 4 내버려두다 lassen ließ gelassen
vertrösten 규 4 위로해주다
der Moder 썩은 물건
erlösen 규 4 구원해주다, der Erlöste 구원 받은 자
die Fron 사역, 강제 노역,
Ausgezehr 이 단어는 각운을 맞추기 위해서 표현된 것 =
das Auszehren 소모
die Angst 두려움
rühren 규 4 건드리다
das Tier 동물, (Pl.) die Tiere
(질문)
1. 시인은 독자에게 무언가를 계몽하려고 합니다. 무엇으로부터 “너희, 유혹 당하지 말라!”고 그가 경고하는가요?
2. 제 2연에서 디오니소스의 축제를 연상하게 하는 구절은 무엇입니까?
3. 브레히트는 기독교의 세계관, 시민주의 이데올로기를 비판합니다. 이를 뒷받침하는 구절을 찾아보세요.
(해설)
“아름다운 여성이여, 그대는 유혹 당해야 하리라. 삶은 너무나 짧아, 당신의 청춘은 다시 돌아오지 않으리라.” 이는 천하의 바람둥이들이 요조숙녀 혹은 무조건 정조를 지키려는 과부들을 유혹할 때 던지던 말이었습니다. 브레히트 역시 이를 생각하며, 이 시를 집필한 것 같습니다. 따라서 “유혹당하지 말라”는 말은 그 자체 역설적이 아닐까요? 유혹 당하지 말라는 말은 “사랑에 유혹 당하지 말라.”는 말일까요? 아니면 “사랑의 삶을 가로막는 주어진 관습, 도덕 그리고 법 등에 유혹 당하지 말라.”는 의미를 지닐까요?
「유혹에 대항하여」만큼 죽음과 내세에 대한 브레히트의 입장을 드러내는 작품도 드물 것입니다. 일찍이 브레히트는 기독교에 바탕을 둔 시민 사회를 비판해 왔습니다. 특히 기독교 경건주의 내지 신비주의는 일반 사람들에게 저세상의 찬란한 삶을 위해서 이세상의 행복을 일시적인 것으로 받아들이라고 강조합니다. 다시 말해 이 세상의 행복은 죽은 뒤의 영겁의 삶에 비해 덧없다는 것입니다. 브레히트는 이러한 내세지향적인 세계관을 기득권자의 이권 추구를 위한 이데올로기로 생각합니다. 시인의 견해에 의하면 “내일은 더 이상 다시 오지 않는다.” 그렇기에 시인은 “기만당하지 말라!”고 독자에게 거의 명령조로 말합니다. 마치 디오니소스처럼 “오늘을 즐겨라 Carpe diem”하고 외치며, 이 세상의 행복과 향락을 설파하는 것 같습니다. 그 이유는 인간이 언젠가는 모두 “짐승처럼 죽”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당신은 이러한 생각에 동의하는지요? 죽음 이후의 세계를 갈구하는 인간의 갈망은 “무(無)”에 불과한가요? 희망의 기능을 고려할 때 천박한 무신론보다는 일견 어리석게 보이는 경건주의가 더 낫지 않을까요?
출전: 필자, 새롭게 읽는 독일 현대시, 한신대 출판부, 2010, 193 - 19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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