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 유토피아

서로박: 아나키즘의 유토피아 사상 (4)

필자 (匹子) 2018. 1. 29. 11:11

(앞에서 계속됩니다.)

 

20. 크로포트킨과 란다우어의 사상적 공통점 (1): 여기서 우리는 크로포트킨과 란다우어의 유토피아의 공통점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두 사람은 어떤 이상화된 중세의 도시를 상정하고 있습니다. 크로포트킨에 의하면 상호 부조의 원칙은 중세의 도시에서 가장 명확한 형태로 드러났습니다. 길드는 친구와 이웃을 도우려는 인간 본성의 깊은 욕망과 일치하는 것입니다. 길드 조합은 삶의 우연한 상태 속에서 조합원들을 상호 물심양면으로 도와주는 역할을 담당합니다. 그런데 나중에 자본주의의 도래로 인하여 이러한 길드 조합의 장점은 산산이 부서지고 말았습니다. 이로써 이전에 존재하던 상호부조의 협동 정신은 자본주의 국가의 폭력에 의해서 희생되었다고 합니다. 구스타프 란다우어 역시 길드조합, 중세의 협동 원칙, 자발적인 행정 원칙 등을 몹시 찬탄한 바 있습니다. 중세의 마을과 시장에서는 협동과 조력의 원칙이 정착되어 있었는데, 란다우어는 이를 커다란 장점으로 지적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협동과 조력의 원칙은 나중에 얼마든지 지방 자치를 위한 초석으로 활용될 수 있다고 합니다.

 

21. 크로포트킨과 란다우어의 사상적 공통점 (2): 둘째로 상호부조는 인간의 근본적 속성이라고 합니다. 친구와 이웃을 도우려는 인간의 충동은 정치적 사회적 맥락 무관하게 형성되어 왔다고 합니다. 적이든 동지든 간에 인간이 이웃을 도우려는 심성은 인간의 이성 속에 도사린 하나의 특성이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그것은 제도적 차원에서 이해되는 게 아니라, 인간의 근본적 속성의 차원에서 파악될 수 있다고 합니다. 크로포트킨은 상호부조의 충동이 평화와 풍요로운 환경 속에서 실천되고 배가되지만, 전쟁 그리고 폭정 등이 횡행하는 시기에도 시골의 마을 그리고 가난한 계층 사람들 사이에서 생동하고 있다고 합니다. 란다우어 역시 상호부조의 원칙을 하나의 이상적 에너지로 활용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이를 아나키즘의 바람직한 사상으로 도입하고 있습니다. 더 나은 사회를 실현시키려는 자는 란다우어에 의하면 두 가지 사항을 무엇보디도 필요로 한다고 합니다. 그 하나는 상호부조의 협동 정신이며, 다른 하나는 비판적 지성의 과감하고도 적극적인 행위라고 합니다. 이와 관련하여 란다우어는 유토피아의 특징을 두 가지로 요약합니다. 그 하나는 주어진 현실에서 점점 커져가는 토피아에 대한 반작용이며, 다른 하나는 과거에 출현했던 유토피아에 대한 분명한 기억이라고 합니다. (Landauer 1923: 15). 인간은 한편으로는 주어진 현실 속에서 정착되어 있는 사회적 모순을 예리하게 직시해야 하며, 다른 한편으로는 과거의 역사에 존재했던 찬란한 영화로움을 분명하게 기억하면서, 지금 여기에서 그것을 재현시킬 의지를 지녀야 한다는 것입니다.

 

22. 크로프토킨과 란다우어의 사상적 공동점 (3): 크로포트킨의 상호부조는 그 의향을 고려할 때 란다우어의 유토피아와 동일합니다. 가령 두 사람은 독일 농민 혁명에서 기존의 국가를 뒤집고, 인민의 자치, 자활 그리고 자생을 실천하려는 사람들의 의지를 고찰하려고 했습니다. 16세기의 종교 개혁 시대에 출현한 농민 혁명은 이러한 의지를 정확히 반영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오래 전부터 대중들은 국가의 폭력에 굴복해 왔지만, 더 나은 사회를 상호 부조의 원칙하에 건설할 계획을 세웠습니다. 10,000명으로 이루어진 재세례파 사람들은 크로포트킨에 의하면 자치, 자활, 자생의 (신앙) 공동체의 꿈을 꾸었다고 합니다. 란다우어 역시 16세기 초의 재세례파라는 종교 운동 속에서 유토피아의 의향을 발견하려고 하였습니다. 이들 모두 거대한 폭력을 저지르는 국가로부터 등을 돌리고, 평등한 신앙 공동체를 형성하여 혁명적인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해 지대한 관심을 기울였습니다. 이들은 결국 농민 혁명이라는 투쟁으로 발전하게 되는데, 혁명은 끝내 실패로 돌아가게 됩니다. 농민 혁명 후에 국가는 근대의 시기에 즈음하여 세 가지 경향을 관철시키게 됩니다. 첫째는 제후들의 절대 권력이었고, 둘째는 실정법의 절대적 권위였으며, 인간과 인간을 국적으로 구분하는 이른바 민족주의의 경향이었습니다. 이러한 경향은 초기 자본주의 시대에 출현한 시민 계급의 요구 사항과 의기투합하여 실제 현실에 모습을 드러내게 되었습니다.

 

23. 아나키즘 속에 도사린 세 가지 문제점 (1): 그러면 이번에는 아나키즘 사상에 도사린 몇 가지 문제점을 지적하려고 합니다. 이미 언급했듯이 아나키즘은 다양한 스펙트럼을 지니고 있으므로, 아나키즘에 대한 하자를 지적하기란 결코 수월한 일이 아닙니다. 아나키즘의 한계 내지 취약점을 언급할 때 우리는 개별적 인물을 전제로 하여 신중하게 논의를 개진해야 마땅할 것입니다. 그렇지 않을 경우 추상적 원론의 함정에 빠질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아나키즘 속에 도사린 하자가 아니라, 세 가지 문제점을 신중한 자세로 지적할까 합니다. 가령 우리는 아나키즘의 유형으로서 다섯 개의 사항을 지적할 수 있습니다. 1. 개인주의, 2. 상호주의, 3. 집산주의, 4. 반정부적 코뮤니즘, 5. 반정부적 생디칼리슴 등이 그것들입니다. (박홍규: 100 - 106). 여기서 집산주의란 아나키스트들이 하나의 당이라는 거대한 상설 기구를 세워, 이에 의존하지 않고, 기구의 설치와 해체를 반복하는 성향을 가리킵니다. 왜냐하면 당에 의존하는 것 자체가 또 다른 국가를 인정하는 처사이기 때문입니다. 반정부적 생디칼리슴은 주어진 노동조합 내지 의회 정치를 거부하고, 스트라이크를 통해서 혁명을 이룩하려는 급진적 행동주의를 가리키는 용어입니다.

 

상기한 다섯 가지 분류와 관련하여 우리는 다음과 같은 세 가지 문제점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첫째로 19세기 아나키스트들의 근본적 입장은 마르크스에 의하면 19세기 유럽의 현실적 정황을 전제로 할 경우에 시대착오적인 것으로 판명되었다고 합니다. 이는 아나키즘의 사상 자체에 하자가 도사리고 있는 게 아니라, 19세기 현실적 모순과 직결되는 당면한 문제가 아나키즘의 사상적 요구사항을 통해서 어떤 좋은 해결책을 마련하지 못했다는 뜻입니다. 노동자의 가난과 부자유의 핵심적 고리는 국가 자체가 아니라, 잉여가치의 창출이라는 자본가의 의도적인 의향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렇다고 자본가의 경영에만 힘을 실어주는 국가에 책임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노동의 소외를 가속화시키고, 사람들로 하여금 가난과 강제노동의 수렁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하는 장본인은 잉여가치의 창출이라는 자본의 속성, 바로 그것이라고 합니다. 물론 아나키스트들 또한 나름대로 당시 사회에 기여한 바 있었습니다. 그들은 봉건주의에 기반을 둔 절대 왕정, 기득권과 결탁하는 관료주의적 권력 등이 가난한 사람들을 지속적으로 착취해 나간다고 지속적으로 비판해나갔습니다.

 

(계속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