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에서 계속됩니다.)
6. “국가 없는 사회”의 네 가지 특징 (2): 셋째로 국가 없는 사회는 지방 자치 내지 지방 분권의 정책을 추구합니다. 그것이 소규모의 자치, 자활 그리고 자생 운동으로 조직화되어야 한다는 주장은 필연적인 귀결입니다. 소규모 공동체는 거대한 산업의 컨베이어 시스템 내지 기계화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고, 수공업의 경제 체제를 중시합니다. 지방 자치 운동은 중앙집권적 국가 권력에 맞설 수 있는, 작지만 효과적인 정책으로 활용될 수 있습니다. 현재 이 순간에도 중앙집권적 국가는 글로벌 자본주의 시대에 이기주의적 횡포를 저지르는데, 이에 대한 대안적 삶의 방식은 소규모의 공동체 운동일 수 있습니다. 특히 인터넷 매체가 발전되고 과학 기술의 수단을 최대한 활용할 수 있는 21세기의 현실에서는 소규모 아나키즘 공동체의 확산은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넷째로 아나키스트들은 국가에 의해서 정해진 모든 관습 도덕 그리고 법의 체계를 용인하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를테면 일부일처제의 가족 제도가 개개인의 자유를 가로막는 나쁜 이데올로기로 못 박는 경우가 많습니다. 아나키스트들 가운데 사랑의 삶에 있어서 완전한 자유를 주장하고, 구속받지 않는 사랑을 실천하는 자들이 많은데, 이는 아마도 완전한 자유를 만끽하려는 아나키즘의 출발점과 관련됩니다.
7. 막스 슈티르너의 『유일자와 그의 소유물』: 막스 슈티르너 (Max Stirner, 1806 – 1856=는 1845년에 『유일자와 그의 소유물Der Einzige und sein Eigentum』이라는 책으로서 급진적 개인주의의 방식을 추구하는 아나키즘 사상을 내세웠습니다. 슈티르너는 하나의 대안으로서의 사회적 존재마저 용인하지 않으면서, 유일자로서의 개인의 존재가치 내지 개인의 정당성을 강조하였습니다. 인류는 오랜 시간에 걸쳐서 어렵사리 개인의 부자유 그리고 억압적 구도를 해방시켰습니다. 슈티르너는 인류가 힘들게 성취해낸, 자유에 대한 개개인의 권한을 어떠한 경우에도 포기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슈티르너에 의하면 여전히 사회적 체제 내지 타부에 의해서 예속되어 살고 있습니다. 개개인은 마치 간사한 신하처럼 국가의 법에 굴복하며 살아가고, 먹고 살기 위해서 일을 해야 하며, 온갖 근심에 사로잡힌 채 살아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인위적 사회는 결코 바람직한 시스템으로 출현할 수 없습니다. 인위적으로 축조해낸 국가 없는 사회에 관한 사고 자체가 처음부터 하나의 판타지에 다름이 없다는 것입니다.
8. 슈티르너의 개인적 급진주의: 슈티르너의 급진적 개인주의는 고대의 철학 사상, 이를테면 “자신에게 필요한 모든 물건을 스스로 지니고 다닌다.”라는 비아스Bias의 생각이라든가, 견유학파 사람들이 몸소 실천하던 무소유의 생활방식과 유사합니다. (블로흐: 29). 슈티르너는 다음과 같이 주장합니다. 인간이 자신의 자유를 구가하려면, 사회적 예속, 강제 노동 그리고 근심 등을 떨쳐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 개개인은 우선적으로 자아, 즉 “나”에 대한 의식을 정립해야 합니다. 그렇게 해야만, 개인은 자신을 내적으로 그리고 외적으로 억압하는 근본적 기관인 국가와 정면으로 싸워나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국가에 대항해서 투쟁하기 위해서 사람들은 혁명이라든가, 새로운 체제의 도움을 받을 게 아니라, 오로지 나와 나 자신이 처하고 있는 사회적 존재 구속성을 먼저 깨달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막스 슈티르너는 괴테의 노동가의 한 구절을 인용합니다. “나의 일을 무 (無)위에 설정했노라.Vanitas Vanitatem Vanitas.” (Stirner: 11). 이 구절은 다음과 같은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어떠한 과거의 인습과 계율에 의존하지 않고, 타인의 간섭과 외부적 강요 없이 나 자신의 일을 묵묵히 행하겠노라.” 견유학파의 무소유의 삶과 관련하여 로버트 노직Robert Nozick은 1974년에 발표한 책 『무정부주의, 국가 그리고 유토피아Anarchy, State and Utopia』에서 이에 관해서 천착한 바 있습니다. 자유는 국가의 간섭과 억압으로부터 해방될 때 이룩될 수 있는데, 이는 노직에 의하면 오로지 자유주의의 최소 국가에서 실현될 수 있다고 합니다. (노직: 408). 과연 그가 말하는 최소 국가가 오늘날의 생태공동체 운동과 어느 정도 접목될 수 있는가? 하는 물음에 대해 노직은 말을 아끼고 있습니다. 노직이 사회의 질서를 하나의 계약으로 설정하고 계약의 성립조건 하에서의 자유를 논한다는 점에서 그의 논리는 프루동의 견해를 떠올리게 합니다.
9. 피에르 조셉 프루동이 파악한 이데올로기로서의 사회적 질서의 동인: 유럽에서 아나키즘 운동을 이어간 사상가로서 우리는 피에르-조셉 프루동, 미하일 바쿠닌 그리고 표도르 크로포드킨 등을 예로 들 수 있습니다. 이들은 19세기부터 활동한 아나키스트들로서, 사회의 대안적 조직에 관한 가능성을 지속적으로 설계하였으며, 유럽에서 오랫동안 제각기 영향력을 행사하였습니다. 이를테면 프루동은 질서의 문제를 집요하게 파고들었습니다. 인간 사회의 질서는 때로는 하나의 바람직한 규범으로 작용할 수도 있지만, 이는 때로는 개개인의 자유를 억압하는 수단으로 활용되곤 하였습니다. 프루동은「인간 사회의 질서 창조, 혹은 정치 조직의 원칙에 관하여De la création de l’ordre dans l’humanité ou principes d’organisation politique」(1843)라는 논문을 통해서 인간 사회의 질서가 어떻게 생겨나는가? 하는 문제를 천착하고 있습니다.
10. 사회적 질서를 존속시키는 네 가지 동인: 프루동은 사회적 질서를 성립시키고 이를 존속시키게 하는 네 가지 동인을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1. 조직의 동인 (mouvement organique): 이것은 개별 인간이 지니고 있는 주권을 분할시키는 동인입니다. 당국은 개별 노동자들로 하여금 작은 분야에 매진하여 노동에 임하도록 자극합니다. 2. 산업의 동인 (mouvement industriel): 당국은 산업가로 하여금 재화의 생산과 유통에 골몰하여 자본과 이익을 창출하도록 자극합니다. 이로써 산업가는 의식적으로 무의식적으로 국가의 시스템에 맹종하게 됩니다. 3, 입법의 동인 (mouvement législatif): 당국은 입법자들로 하여금 개별적 사람들이 자신의 재산을 제각기 관리하도록 하는 법을 만들게 합니다. 이로써 나타나는 것은 물권법이며, 사회의 모든 구성원들은 물권법의 규정에 예속되어 살아갑니다. 4. 과학의 동인 (mouvement scientifique): 당국은 지식인과 학자들로 하여금 체제 내에서 학문을 익히게 합니다. (Jens P: 673). 학문의 기관은 다음 세대의 노동자를 육성하는 일을 담당함으로써, 개별 인간을 기능인으로 만들고 체제에 대해 의심하지 않도록 조처합니다. 이러한 네 가지 동인은 사회적 질서를 존속시키고 새로운 사고를 억압하는 수단으로 사용된다고 합니다. 따라서 문제는 개개인이 인위적 허구에 의해서 작동되는 네 가지 동인의 근본적 속성을 깨닫고 이를 무너뜨리는 일입니다.
11. 『소유란 무엇인가?』: 프루동의 책,『소유란 무엇인가? 법과 국가 권력의 원칙에 관한 연구Qu'est-ce que la propriété ? ou Recherche sur le principe du Droit et du Gouvernement』(1840)은 노동 없이 이윤을 착복하는 계층을 신랄하게 비판하고 있습니다. 비록 그의 글에서 “소유권propriété”의 개념과 “소유 possession”의 개념이 불분명하게 사용되고 있지만, 프루동은 가난한 자의 노동의 이윤을 착복하는 부자들을 일차적으로 비난하였습니다. 이는 오로지 계층과 착취 없는 사회 내에서 개개인들의 제한 없는 자유를 누리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프루동은 사회계약론과 관련되는 이권 분립 (입법과 사법의 구분)이라든가 삼권 분립을 처음부터 거부하였습니다. 그 대신에 프루동이 내세운 것은 다음과 같습니다. “1. 전제주의는 반드시 철폐되어야 한다. 2. 은행가 그리고 산업가의 계급이 지니고 있는 거대한 권한은 약화되어야 한다. 3. 개별 사람들의 재화 획득의 구조는 변화되어야 한다.” (Proudhon: 175).
12. 국가의 해체에 관한 프루동의 관심: 프루동은 프롤레타리아의 참담한 삶을 안타깝게 생각했지만, 이를 부차적으로 생각했습니다. 그의 관심은 자본주의 생산 양식의 파괴가 아니라, 전통적 권력 국가의 해체를 무엇보다도 우선적 관건으로 생각하였습니다. 이 점에 있어서 그는 마르크스와는 다른 노선을 추구합니다. 프루동에 의하면 정신적 독자성 내지 독립성이야 말로 개별적 인간이 지니고 있는 가장 커다란 능력 가운데 하나라고 합니다. 프루동이 추구하는 이상 사회는 사람들이 서로 협동하면서 살아가는 공동체라고 합니다. 이러한 공동체가 바람직한 방향으로 실천되기 위해서는 권력이 하나의 국가 시스템으로 집결되지 말고, 가급적이면 폭넓게 분할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프루동의 사상은 19세기 후반부의 시기에 프랑스 사회주의 운동에서 중요한 경향으로 이어졌습니다. 그렇지만 프루동은 유대인종 그리고 여성들에 대해 마치 편집증 환자와 같은 지독한 편견에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아니, 그는 유대주의와 페미니즘에 대해 악랄한 비판을 서슴지 않았습니다.
(계속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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