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에서 계속됩니다.)
13. 러시아 출신의 무정부주의자, 바쿠닌: 미하일 바쿠닌 (1814 – 1876)은 모스크바 근처의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나, 처음에는 러시아 차르의 근위병으로 근무하였습니다. 그러나 러시아가 폴란드를 억압하는 처사는 도저히 용납될 수 없었습니다. 1840년 바쿠닌은 베를린과 파리로 가서 1848년에 유럽 혁명에 동참하였습니다. 이때 집필된 문헌은 「슬라브 민족에게 고함Aufruf an die Slaven」이라는 글이었는데, 여기서 바쿠닌은 슬라브 민족에 의한 공화국 연방이 독자적으로 건설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였습니다. 혁명의 와중에서 그는 러시아 정부 첩자에 체포되어, 시베리아로 유배를 떠납니다. 그러나 바쿠닌은 시베리아의 감옥을 탈출하여, 지구를 반 바퀴 돌아 유럽으로 돌아옵니다. 그의 여행은 일본의 요코하마를 거쳐, 태평양을 건너, 미국 땅을 관통한 다음에 대서양을 지나 스위스에 도착합니다. 이때 국제 노동자 연맹에 가담했는데, 마르크스는 1872년에 바쿠닌과 그의 추종자들을 따돌리기 위해서 일부러 미국에서 첫 번째 인터내셔널 대회를 개최하였습니다.
14. 노동자냐, 농민이냐? 1870/71년의 파리 코뮌 운동을 열렬히 지지한 사람은 바로 바쿠닌이었습니다. 바쿠닌은 프롤레타리아가 아니라, 농민이 사회주의 혁명을 주도해야 한다고 주장하였습니다. 이러한 견해로 인하여 그는 마르크스와 첨예하게 대립하였습니다. 인간은 바쿠닌에 의하면 사회적인 동물이며, 자유롭게 살고 싶은 충동을 지니고 있습니다. 자유롭게 살고 싶은 충동은 만인이 지니고 있는 최소한의 권한이므로 보장받아야 마땅하다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 필요한 것은 바쿠닌에 의하면 세 가지라고 합니다. 첫째는 인간의 평등권이고, 둘째는 재화의 공동 소유이며, 셋째는 지방분권적인 연방의 체제로 구성되는 사회라고 합니다. (Bakunin 23). 바쿠닌은 유작, 『국가주의와 무정부주의 Staatlichkeit und Anarchie』(1879)에서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립니다. 즉 마르크스의 정치적 이념은 결코 노동자 계급에 의한 독재가 아니라, 노동자 계급에 대한 독재로 종언을 고하게 되리라고 말입니다. 바쿠닌의 사고는 일관성이 없을 정도로 충동적이며, 그가 제기한 반유대주의적인 논평에는 어떤 이성적인 논거가 결여되어 있습니다.
15. 크로포트킨의 무정부주의와 상호부조 (1): 귀족의 가문에서 태어난 크로포트킨은 무정부주의의 정당성으로서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사항을 내세웠습니다. 인간은 빵 앞에서 늑대가 되는 본능적 특성을 지니고 있지만, 동물과 처음부터 다르다고 합니다. 동물들의 약육강식의 생활방식과는 달리, 인간은 거대한 자연의 폭력에 맞서기 위해서 서로 협력해야 했습니다. 인류가 자연과 사회에서 성공적으로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강자의 생존 방식을 지양하고, 상호부조 내지 협력을 가장 중요한 생활방식으로 정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렇기에 인간에게는 사악한 이기주의보다도, 이웃을 도와주고 이웃의 불행을 측은하게 바라보는 마음이 더 강하다고 합니다. 그렇다고 크로포트킨이 인간의 본성을 무조건 선하다고 단정하지는 않았습니다. 인간의 본성은 선하기도 하고 악하기도 하다고 합니다. 그런데 더 나은 삶을 위해서는 사악하고 그릇된 이기주의적 심성을 약화시키고, 선하고 올바른 이타주의를 최대한도로 끌어내는 게 중요하다고 믿었습니다. 그렇게 해야만 인간은 마치 “하이드씨Mr. Hyde”와 같은 지적 야수의 흉물스러운 면모를 벗어던지고, “지킬 박사Dr. Jekyll ”의 선하고 올바른 인간성을 고수할 수 있습니다.
16. 크로포트킨의 무정부주의와 상호 부조 (2): 푸리에는 소외되지 않은 노동의 물질적 공동체를 꿈꾸었는데, 이는 크로포트킨에 의하면 하나의 유토피아가 될 수 없다고 합니다. (Kropotkin: 188). 왜냐하면 개개인에게 특권 의식을 떨치게 하는 일이 더욱 시급하다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하방(下放)”이라는 운동이 적절하다고 합니다. 학자, 예술가, 물리학자, 사회학자, 역사가 그리고 시인 등은 일정 기간 동안에 공장에서 노동자로 일하거나, 시골에서 한시적으로 농사를 짓는 게 필요하다고 합니다. 그렇게 해야만 삶의 일부가 농업과 공업이며, 농민과 노동자들이 처한 정황들을 구체적으로 헤아릴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크로포트킨은 어떻게 해서든 산업과 농업을 지방으로 급진적으로 분산시켜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가장 살기 좋은 나라는 폭력이 없고, 억압 내지 강제노동이 없는 평등사회라고 합니다. 크로포트킨은 자신의 문헌, 『상호부조Mutual Aid. A Factor of Evolution』(1902)에서 이러한 생활방식을 사회적 다윈주의라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크로포트킨이 내세운 아나키즘의 농촌 공동체의 정신은 나중에 레오 톨스토이의 인간적 아나키즘 그리고 마하트마 간디의 비폭력 자치 자활 자생주의로 계승되었습니다. 그밖에 “하방”의 제도는 중국에서 마오쩌둥의 치하에서 부분적으로 실행된 바 있습니다.
17. 란다우어의 무정부주의 사상적 배경: 구스타프 란다우어는 아나키스트 가운데에서 비교적 유연하고도 깊이 있는 사상을 내세웠습니다. 그의 아나키즘 사상은 한마디로 체제와 지배에 대항하는 소시민적 저항의 차원을 넘어서는 깊은 철학적 사색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란다우어는 감옥에 구금되었을 때 아나키스트의 실천적 행동 역시 이러한 종교적 철학적 깨달음과 관련된다고 굳게 믿었습니다. 가령 란다우어는 “지배 없음αναρχος”의 개념을 플로틴, 중세 철학자 그리고 에크하르트 선사 등이 추적한 “시작 없음”이라는 개념으로써 해명하려고 했습니다. “시작이 없다.”는 말은 시간이 없다는 의미에 있어서 영원과 관련된다고 합니다. 다시 말해 영원, 즉 시작 없음이란 궁극적으로 시간의 현재 속에서 인식되는 어떤 “신비적 관조” (Plotin)와 다를 바 없습니다. 인간은 에크하르트 선사의 표현에 의하면 응축된 시간의 신비적 관조 속에서 어떤 깨달음으로서의 빛을 인지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논리로써 란다우어는 자신의 혁명론을 개진합니다. 모든 혁명은 란다우어에 의하면 응축된 시간 속에서 변화를 강렬하게 열망하는 가진 것 없는 사람들의 노여움에서 출발한다고 합니다. (Landauer 1923: 14). 중요한 것은 개별 자유인들이 각성과 실천을 위한 응축된 시간 속에서의 어떤 깨달음이라고 합니다.
18. 란다우어의 무정부주의의 자세: 구스타프 란다우어는 아나키스트의 자세를 세 가지로 요약합니다. 첫째로 아나키스트는 모든 유형의 강제적 억압을 거부한다고 합니다. 자유로운 인간은 자발적인 삶을 추구하기 때문에 본능적으로 그리고 도덕적으로 위로부터의 권위적 요구라든가 모든 유형의 강제적 폭력에 대해 저항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둘째로 란다우어는 아나키스트의 인내와 비폭력주의를 강조합니다. 거대한 힘을 지닌 체제에 대항하여 한 인간이 달려드는 것은 마치 계란으로 바위 치는 일과 같다고 합니다. (Landauer 2009: 328). 따라서 아나키스트들은 결코 테러리스트로 전락해서도 안 되고 그렇게 비난당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셋째로 아나키스트는 이기적 개인주의를 극복하고 자발적 자세로 생각을 달리 하는 다른 사람들과 연대하고 협력해야 한다고 합니다. 아나키스트가 독자적 자유를 스스로 발전시키기 위해서 다른 공동체와의 협력하고 공조하는 행동은 그야말로 필수적이라는 것입니다.
19. 경제적 영역에서의 란다우어의 비판: 란다우어는 개개인의 자유를 억압하고 경제적 부자유를 조장하는 세 가지 사항에 대해서 철저하게 비판해야 한다고 주장하였습니다. 첫째로 그는 재화의 유통을 차단시키는 부동산 소유를 처음부터 비판했습니다. 부동산의 소유는 생산 및 재화의 유통의 차원에서 고찰할 때 노동 가치를 떨어뜨리고 불로소득자를 양산시키는 수단으로 작용하기 때문에 사회 전체의 차원에서 배격되어야 한다고 합니다. 둘째로 란다우어는 교환 가치로서의 화폐를 철저하게 비판하였습니다. 그는 이를테면 실비오 게젤Silvio Gesell이 내세운 “화폐의 노화에 관한 이론”에 적극적으로 동조하였습니다. 게젤에 의하면 모든 물품은 노화되어 사라지기 마련이지만, 유일하게도 노화되지도 소멸되지도 않는 게 화폐라는 것입니다.
화폐, 특히 교환 가치로서의 지폐는 마구잡이로 찍어낼 수 있다는 점에서 기괴한 자기 증식의 특성을 드러내는데, 이러한 자기 증식을 사전에 차단시키는 것이야 말로 인플레이션과 스태그플레이션 없는 공명정대한 사회가 추구해야 할 관건이라고 합니다. (엔데: 42). 셋째로 상업을 통한 잉여 가치를 창출하는 일은 란다우어에 의하면 결국 노동자의 경제적 삶을 끝내 궁핍하게 하리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자본가는 이윤의 추구를 위해서 잉여가치를 창조해내야 하는데, 이에 대한 희생양이 바로 노동자들이기 때문입니다. 특히 세 번째 사항을 고려한다면 란다우어의 입장은 마르크스주의자와 뜻을 같이 합니다. 란다우어는 누구보다도 사회주의자들과 협력과 연대를 강조하였지만, 그의 뜻은 내외적으로 반대에 부딪치곤 하였습니다. 그렇지만 그는 제 1차 세계대전이 끝난 시점에 뮌헨에서 보수주의의 수구 단체 사람에 의해서 암살됨으로써, 그의 사상적 정치적 노력은 미완으로 끝나고 맙니다.
(계속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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