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 유토피아

서로박: 아나키즘의 유토피아 사상 (1)

필자 (匹子) 2018. 1. 29. 11:08

1. 국가주의, 혹은 비-국가주의 유토피아: 유토피아의 역사를 서술하는 데 있어서 아나키즘과 비국가주의의 개념을 명확하게 규정할 필요가 있습니다. 유토피아는 최상의 국가가 무엇인가에 관한 물음으로 시작되었습니다. 그렇기에 그것은 처음부터 국가 구조의 특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러나 근대에 이르러 권력 기관으로서의 국가 없이도 얼마든지 훌륭한 유토피아가 형성될 수 있다는 사고가 태동하기 시작했습니다. -국가주의의 공동체의 가능성이 바로 그것입니다. 이로써 인간의 행복을 위한 사회적 삶이 국가의 틀에서 토대를 두고 있는가? 아니면 국가 없는, 혹은 권력이 배제된 행정청으로서의 공동체의 틀에 근거하고 있는가? 하는 물음이 가능합니다. 전자가 국가 중심의 지배와 관련된 국가주의의 유토피아archistische Utopie”라면, 후자는 국가가 일차적으로 배제된 -국가주의의 유토피아anarchistische Utopie”라고 표현될 수 있습니다. 국가주의냐, -국가주의냐? 하는 물음은 바람직한 사회 공동체의 틀을 기초할 때 국가의 구조를 우선적으로 내세울 것인가, 아니면 국가의 구조를 무시할 것인가를 일차적으로 고려한 것입니다.

 

2. 아나키즘과 비-국가주의 유토피아는 차원이 다른 개념이다.: 유토피아 연구에서 국가주의-국가주의라는 용어를 사용한다면, 이것들은 아나키즘과는 다른 차원에서 이해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아나키즘은 그 지향점에 있어서 다양한 스펙트럼을 지니고 있음에도 궁극적으로 비-국가주의가 아니라, -국가주의를 지향하기 때문입니다. 아나키즘은 처음부터 정부 중심적 사회구조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무정부주의로 번역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것은 기존의 정부를 신랄하게 부정하고 이를 파괴하려고 한다는 점에서 반정부주의로 이해됩니다. 어쨌든 아나키즘은 하나의 사상적 조류 내지 세계관의 관점에서 이해될 수 있는 개념이라면, -국가주의는 유토피아의 사회 구조를 위한 방법론의 개념으로서 이해되어야 합니다. 아나키즘이 정부 내지 국가의 권력을 악의 온상으로 규정하면서, 이를 극복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는 반국가주의 내지 반정부의 사고라면, -국가주의는 유토피아의 영역에서 나타나는 국가 체제에서 벗어난 다른 공동체 내지 코뮌을 통칭하는 전문용어에 해당합니다. 이와 관련하여 우리는 일차적으로 사상적 조류로서의 아나키즘의 흐름을 개관하고, 뒤이어서 유토피아의 역사에 나타난 (방법론적 전문용어로서의) -국가주의의 범례를 고찰하도록 하겠습니다.

 

3. 아나키즘과 고드윈: 아나키즘은 윌리엄 고드윈 (William Godwin, 1756 1836)부터 시작됩니다. 1793년에 그는정치적 정의와 그것이 일반 미덕과 행복에 미치는 영향에 관한 고찰An Enquiry Concerning Political Justice, and Its Influence on General Virtue and Happiness을 발표하였습니다. 여기서 저자는 인습적인 정부를 신랄하게 비판합니다. 정부는 고드윈에 의하면 원래 권력을 조작하는 과정에서 죄악을 저지르고 부패를 자행하기 마련이라는 것입니다. 처음에 그는 정부의 오만방자한 권력 남용을 비판하려 했는데, 나중에는 독재 정치가 권력의 본성이라는 점을 확신하고 아나키스트의 길을 걷게 됩니다. 고드윈은 침례교회에 속했던 경건한 신앙인이었는데, 행정청 공무원으로 일하다가 문학과 저널리즘에 관심을 기울입니다. 그는 탐정소설, 칼럽 윌리엄스Caleb Williams(1794)를 발표하였습니다. 이 작품은 치명적인 비밀이라는 제목으로 알려졌는데, 나중에 에드거 앨런 포 그리고 찰스 디킨스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친 바 있습니다. 고드윈은 영국의 자급자족의 지방분권적 유토피아 공동체를 설계하였던 로버트 오언에게 많은 조언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4. 아나키즘의 스펙트럼은 무척 폭넓다.: 사회주의 사상의 경우처럼 아나키즘의 이념 역시 폭넓은 사상적 스펙트럼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아나키스트들 가운데 다양한 입장을 제기하거나, 이질적인 견해를 피력하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오늘날에도 아나키스트들 사이에서 세부적 사안에 있어서 서로 논쟁하는 경우가 발생하곤 합니다. 분명한 것은 아나키즘이 처음부터 개개인을 억압하는 강제적 국가의 철폐를 주장하고, “국가 없는 사회를 만들려는 것을 목표로 한다는 사실입니다. 바로 이 점을 고려한다면, 무정부주의자들은 홉스, 로크 그리고 루소가 제시한 사회계약론을 처음부터 하나의 허구라고 단언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사회계약론은 국가의 존재 이유를 처음부터 인정하는 데에서 출발하기 때문입니다. 아나키스트들은 국가가 내세우는 모든 계약의 이론 뿐 아니라, 국가적 법령 자체를 부정적으로 고찰합니다. (한형식: 95). 아나키스트들은 그들 내부에서 그리고 외부적으로 국가 없는 사회를 만드는 정책을 처음부터 하나의 목표와 수단으로 일원화시킬 것인가, 아니면 구분할 것인가? 그게 아니라면 다른 사상과 일단 전략적으로 협력한 다음에 어느 정도의 때가 무르익으면, 그러한 정책을 내세울 것인가? 하는 문제로 고심하곤 합니다.

 

5. “국가 없는 사회의 네 가지 특징 (1): 아나키스트들이 추구하는 국가 없는 사회는 주로 세 가지의 특징을 지니고 있습니다. 첫째로 국가 없는 사회의 지도자는 원칙적으로 지상에서 사라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누구든 간에 우두머리가 되면, 권력을 휘두르고 싶은 욕구가 솟구친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어떠한 단체라 하더라도 하나의 정책을 원활하게 수행하기 위해서는 책임자 내지 대표자를 필요로 하는 법입니다. 그렇기에 아나키스트들은 어쩔 수 없는 경우에 한해서 대표자를 인정합니다, 이 경우 어떻게 해서든 대표자의 수는 제한되어야 하고,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하지 못하도록 통제 받아야 한다고 확신하고 있습니다. 둘째로 아나키즘은 경쟁과 착취 대신에 정의로운 분배가 실천되기를 강조합니다. 이와 관련하여 프루동은 절대 왕정, 관료주의 그리고 봉건주의가 타파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였습니다. 왜냐하면 이러한 형태는 가난한 자의 비용으로 부자들의 이권을 채워주었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상품의 생산이 이윤추구 때문이 아니라, 필요성에 의한 소비에 의해서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돈을 벌기 위해서 물건을 생산하는 게 아니라, 필요한 물건을 일정의 수에 맞추어 생산되어야, 모든 갈등이 처음부터 사라질 수 있다고 합니다. 이러한 경제 체제는 자본주의의 사유재산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바로 이 점에 있어서 아나키즘의 사상적 출발점은 마르크스주의의 그것과 거의 유사합니다.

 

(계속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