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 유토피아

서로박: 아나키즘의 유토피아 사상 (5)

필자 (匹子) 2018. 1. 29. 11:13

(앞에서 계속됩니다.)

 

24. 비참상의 근원은 국가에 있는가?: 몇몇 아나키스트들은 이러한 사회적 비참상의 근원이 자본주의의 경제 구도가 아니라, 국가 체제에 있다고 판단하였습니다. 모든 죄악의 근원은 자본가의 잉여가치의 추구에 도사린 게 아니라,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하는 폭력적 국가 자체에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폭력 국가는 마치 과거 시대의 막강한 신의 권능과 다를 바 없다고 합니다. 이를테면 바쿠닌의 유작인 신 그리고 국가Dieu et l'état(1871/ 1882) 를 읽으면, 우리는 그가 얼마나 권위로서의 신과 국가에 대한 노여움을 드러내고 있는가? 하는 점을 감지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바쿠닌이 사회 파탄의 근본 원인을 추적하지 않고, 결과를 원인으로 고찰했다는 데 있습니다. 바쿠닌은 국가가 과연 어떠한 과정을 거쳐서 무소불위의 힘을 휘두르게 되었는가를 숙고하지 않고, 차르 왕정의 독재에 대한 울분으로 인하여 국가 체제를 처음부터 무작정 증오하였습니다.

 

요약하건대 아나키즘 사상은 체제 파괴적인 저항이라는 올바른 방식을 선택하고 있습니다. 문제가 있다면 다만 몇몇 아나키스트들이 특히 19세기 중엽 이후의 유럽의 상황을 전제로 할 때 현실의 핵심적 문제를 좌시했다는 사실입니다. 19세기 중엽의 마르크스주의자 그리고 아나키스트들은 무산계급에게 일차적으로 도움이 되는 일은 무엇인가? 하는 문제를 놓고 서로 다른 의견을 내세웠습니다. 마르크스가 가난한 노동자를 염두에 두었다면, 바쿠닌은 궁핍하게 살아가는 러시아의 농민들을 일차적으로 염두에 두었습니다. 두 사람의 의식 속에는 독일과 러시아라는, 어떤 이질적인 현실적 조건 그리고 독일의 무산계급과 러시아의 농민이라는 서로 다른 계층 사람들이 강렬하게 투시되고 있었습니다. 두 사람 사이의 공통되는 추상적 논의의 배경에는 이렇듯 서로 다른 현실적 조건들이 도사리고 있었습니다.

 

25. 아나키즘에 도사린 세 가지 문제점 (2): 둘째로 아나키즘은 원칙과 지향점에 있어서는 나무랄 데 없지만, 실천 과정에 있어서 어떤 결정적 취약점을 내재하고 있습니다. 아나키즘은 막강한 힘을 지닌 국가를 부정하고 탄핵하지만, 거대한 사회의 변혁을 도모하는 세력을 결집시키는 데 커다란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습니다.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때로는 전략적으로 국가의 의회 민주주의 체제를 용인하면서, 자본주의의 메가 시스템을 무너뜨리기 위하여, 전 세계적인 노동자의 단결을 호소한 반면, 아나키스트들의 방안은 극렬 테러리즘 외에는 어떠한 다른 방도를 찾지 못했습니다. 아나키스트들은 온건한 정책이냐, 아니면 강경한 정책이냐? 하는 기로에서 어떠한 선택의 가능성을 찾지 못했습니다. 오늘날에 이르러 지식인들이 마르크스 레닌주의의 하자를 지적하고, 아나키즘 속에서 어떤 정의롭고 바람직한 시각을 발견하려고 합니다만, 19세기 말의 현실적 조건을 감안한다면, 아나키즘은 무엇보다도 운동의 전략 내지 구체적 실천 방안을 찾고 실천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그렇지만 아나키즘 사상은 오늘날의 현실을 고려한다면, 결코 정책의 하자 내지 취약점을 지닌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오늘날 소규모 공동체 등과 같은 자연스러운 방법으로 실천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26. 아나키즘에 도사린 세 가지 문제점 (3): 몇몇 아나키스트들은 평화주의를 부르짖지만, 다른 아나키스트들, 특히 러시아의 아나키스트들은 사안의 중요성을 감안하여 테러 행위를 용납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들은 폭군 차르를 무너뜨리기 위해서 급진적 생디칼리슴의 폭력을 활용할 수밖에 없다고 했습니다. 여기서 이상 사회를 건설하는 과업이라는 목표 그리고 무력이라는 수단 사이의 핵심적 문제가 대두됩니다. 착취하고 억압하는 구체제의 무력을 무너뜨리기 위해서 수단 방법을 가리지 말아야 하는가? 폭력은 어느 정도의 범위에서 정당화될 수 있는가? 하는 문제를 생각해 보십시오. 특히 제 1세계는 19세기 말부터 식민주의와 제국주의의 혹독한 정책을 펴나갔습니다. 3세계의 민초로서 이를 막을 수 있는 방법은 테러리즘밖에 없었습니다. 그렇다고 폭력이 고결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 무조건 정당화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여기서 분명한 것은 무력 혁명의 급진적 생디칼리슴이 누구보다도 조르주 소렐Georges Sorel과 같은 아나키스트에 의해서 전개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아나키즘 속에 담긴 문제점과 관련하여 우리는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만약 유토피아가 창조의 희망 속에서 자아를 발견하는 일이라면, 아나키즘의 체제 비판적인 완강한 자세는 결코 비난당할 수 없다고 말입니다.

 

27 아나키즘의 국가 모델은 과연 존재할 수 있는가?: 아나키스트들은 주지하다시피 국가를 처음부터 부정합니다. 그들은 체제로서의 가능한 국가 모델을 설계한 바 없었습니다. 그럴 필요성을 느끼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문학 유토피아로서의 무정부주의의 국가 모델을 처음부터 기대한다는 것은 자가당착의 사고나 다를 바 없습니다. 그렇지만 수많은 아나키스트들이 전체주의의 국가에 대한 반대급부로서의 작은 소규모 공동체 내지 지역 공동체 운동을 강조한 것은 사실입니다. 이를 고려할 때 몇몇 지방분권적 유토피아를 설계한 유토피아주의자들에게서 비-국가주의의 요소를 얼마든지 부분적으로 발견할 수 있습니다. 가령 푸아니, 오언, 푸리에 그리고 모리스 등의 유토피아는 그 규모가 크든 작든 간에 국가 없는 자치, 자활 그리고 자생 공동체로 이해될 수 있습니다. 그것이 궁극적으로 사회주의를 지향하는가? 아니면 무정부주의를 지향하는가? 하는 물음은 별개의 차원에서 다루어져야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근본적 세계관 내지 삶의 목표를 위한 근본적 정치관이 무엇인가? 하는 본질적 세계관에 관한 물음은 사회 유토피아를 어떠한 구도로 설정할 것인가? 하는 유토피아 구도의 방법론을 따지는 물음과는 근본적으로 차원을 달리하기 때문입니다.

 

28. 아나키즘과 사회주의의 경미한 차이점: 아나키즘과 사회주의는 하나의 기준으로 정확히 구별될 수 없는 사고입니다. 예컨대 마르크스 레닌주의는 아나키즘 사상과 마찬가지로 기존하는 사악한 현실 구조의 파괴를 일차적 과업으로 이해하였습니다. 그런데 혁명 내지 사회적 변혁의 과정에서 마르크스 레닌주의는 거대한 야권 세력으로서의 당 내지 기관에 커다란 비중을 두었습니다. 이에 반해 19세기 말 유럽의 아나키스트들은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어떠한 단체 내지 과도기적 권력 집단을 용인하지 않았습니다. 그렇기에 그들은 기존 사회주의의 국가 체제를 처음부터 용인하려고 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문제는 마르크스 레닌주의 역시 역사의 최종 단계에서 국가의 소멸을 목표로 삼고 있는데, 이는 아나키스트들이 목표로 하는 국가의 타파와 일맥상통하는 대목입니다. 상기한 사항을 고려하면 아나키즘과 사회주의 사이의 차이는 어쩌면 방법론으로서 하나의 당 내지 기관을 인정하는가, 그렇지 않은가? 하는 물음에 의해서 정해질 뿐, 그 밖의 다른 사항에 있어서는 별반 차이점을 드러내지 않습니다.

 

29. 재론. 아나키즘과 비-국가주의는 차원이 다른 개념이다: 가령 윌리엄 모리스가 아나키스트인가, 아니면 사회주의자인가? 하는 물음은 (마치 누군가가 민주주의자이냐, 아니면 공산주의자이냐? 하는 질문처럼) 두 개의 어긋난 기준에 의해서 제기되는 불필요한 질문에 해당합니다. 노트롭 프라이Northrop Frye는 모리스의 유토피아가 공산주의 사회가 아니라, 아나키즘에 입각한 이상 사회라고 주장했습니다. (Frye: 44). 심광현은 이와 반대로 모리스의 유토피아는 혁명적 이행의 과정을 중시했다는 점에서 아나키즘과 구별되며, 오히려 마르크스와 공명한다는 것입니다. (심광현: 47). 이러한 견해들은 부분적으로 타당하지만, 모리스의 유토피아의 특성을 이해하는 데 있어서 어떤 오해의 소지를 드러냅니다.

 

앞에서 말씀드렸듯이 우리는 세계관의 문제 그리고 유토피아의 모델의 문제를 일차적으로 구분해야 합니다. 첫째로 세계관의 문제에 있어서 윌리엄 모리스는 궁극적으로 자본주의의 거대한 메가 시스템의 산업 발전을 처음부터 끝까지 혐오하였으며, 이에 대한 대안으로서 자본주의 국가가 더 이상 사악한 횡포를 부리지 않는 사회주의 유토피아를 설계했습니다. 둘째로 유토피아 모델을 설정하는 데 있어서 모리스는 국가 중심적 모델이 아니라, “도시 분산화라는 비-국가주의의 모델을 선택하였습니다. (모리스: 435). 예컨대 모리스의 유토피아에서 모든 국가적 정책 수행이 철폐되어 있는 것을 생각해 보세요. 그러나 오늘날의 관점에서 고찰한다면 모리스의 유토피아는 21세기 생태 공동체의 자생적 모임을 선취하는 사회 유토피아로 이해될 수 있습니다. 어쨌든 우리는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릴 수 있을 것입니다. 윌리엄 모리스의 유토피아는 사상적 토대의 측면에서 반자본주의를 지향하는 사회주의의 세계관에 바탕을 두고 있지만, 유토피아의 구도 내지 방법론적인 측면에 있어서 -국가주의의 범례를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고 말입니다.

 

 

참고 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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