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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박: 카이저의 아침부터 자정까지

필자 (匹子) 2020. 11. 15. 10:20

친애하는 J, 게오르크 카이저 (G. Kaiser, 1878 - 1945)의 극작품 「아침부터 자정까지 (Von Morgens bis Mitternachts)」는 1912년에 집필되어, 1917년 4월 28일 뮌헨에서 처음으로 공연되었습니다. 이 작품은 카이저의 명성을 드높였을 뿐 아니라, 당시에 횡행하던 표현주의의 발전에 크게 기여하였습니다. 이 작품은 문학사에서 자주 소개되었지만, 정작 줄거리 및 작품의 주제에 관해서 정확히 알려진 바 없습니다. 그래서 나는 당신을 위하여 줄거리를 소개하려고 합니다.

 

작품의 줄거리는 다음과 같습니다. 어느 귀부인이 소도시 W에 나타납니다. 나이는 30대 후반 정도 되었지만, 그미의 얼굴과 몸매는 여전히 뭇 사내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정도로 훌륭했습니다. 귀부인은 넓은 세계를 돌아다니다가, 사적인 용무로 잠시 독일의 어느 도시에 머무르는 것 같았습니다. 귀부인은 은행의 창구에서 거액의 돈을 찾으려 합니다만, 구비 서류를 제대로 갖추지 못했습니다. 당시에도 필요한 서류 없이 돈을 인출하는 것은 불가능했습니다. 주인공 은행 직원은 귀부인의 당황하는 모습을 넋을 잃은 채 바라봅니다. 귀부인의 고혹적인 아름다움은 결국 주인공의 삶을 완전히 뒤바꾸어버립니다. 귀부인의 자태에 넋이 나갈 지경이었으니까요.

 

친애하는 J, 사악한 여자를 누가 꽃뱀이라고 했나요? 아름다움에 매혹되어 실수를 저지르는 자는 주로 젊은 남자들입니다. 그들이 화무십일홍을 깨닫고 냉정한 태도를 취하는 경우는 드물지요.^^ 다시 사건으로 돌아가기로 합시다. 귀부인은 은행 직원에게 잠깐 차를 마시며 대화를 나누자고 말합니다. 은행 직원은 마치 꿀 먹은 벙어리처럼 그미의 뒤를 따릅니다.

 

놀라운 것은 귀부인의 제안이었습니다. 그것은 다름 아니라 돈을 찾아서 대도시 B로 함께 도주하자는 것이었습니다. 은행 직원은 이미 귀부인의 아름다움에 반해 있었습니다. 어리석게도 그는 함께 도주하자는 제안을 미래의 동반자로서 함께 해로하자는 의미로 받아들였습니다. 은행 직원은 틈틈이 모은 육만 마르크를 금고에서 인출하여 그미에게 건네줍니다. 그러나 귀부인은 저녁 무렵 약속했던 그 장소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습니다. 그제야 은행 직원은 여자에게 당했다는 것을 알아차립니다.

 

놀랍지 않습니까? 그렇게 평소에는 냉정했는데, 순간적인 방심으로 인하여 묘령의 여자의 술수에 속은 셈이었습니다. 그는 절망의 구렁텅이 속으로 빠져듭니다. 그리하여 은행 직원은 “방랑자”가 되어 아침부터 저녁까지 이리저리 방황하게 됩니다. 놀랍게도 불과 하루 만에 그의 삶이 완전히 뒤틀리게 된 것입니다. 이러한 체험들은 그의 내면에 세상에 대한 역겨움만 가져다줄 뿐입니다. 은행 직원은 6일 동안 나이트클럽에서 보내다가 구세군의 종교 단체를 접하게 됩니다. 구세군에서 일하는 어느 처녀는 주인공에게 미소를 짓습니다. 처녀의 뺨은 몹시 붉었습니다. 비록 까만 유니폼을 입고 있었지만, 유니폼은 그미의 아름다운 몸매를 완전히 감출 수는 없었습니다.

 

주인공은 그미에게 접근하여 사랑을 호소합니다. 그러나 구세군 처녀는 생각했던 것만큼 그렇게 순수한 인간이 아니었습니다. 그미에게 중요한 것은 오로지 구세군 냄비에 쌓여 있는 동전의 양이었습니다. 은행 직원은 다시금 한 여자에게서 실망감을 느낍니다. 그리하여 그는 구세군의 냄비에서 몇 푼의 동전을 훔침으로써, 처녀에 대한 불만을 표출합니다. 그러자 구세군 처녀는 이를 알아차리고, 은행 직원을 경찰에 고발합니다. 불과 조금 전만 하더라도 연인 사이로 발전할 뻔했던 남자였는데도 말입니다. 결국 은행 직원은 머리에 총을 대고 발사하여, 아까운 목숨을 끊어버립니다.

 

작품의 첫 번째 모티프는 돈입니다. 돈은 인간관계를 완전히 망가뜨리며, 진정한 가치를 은폐시키게 합니다. 작가는 돈이야 말로 세상의 기만과 술수 가운데 가장 치졸한 현혹이라고 말합니다. 극작품에서는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드러내기 위한 수단이 바로 돈이지요. 소유욕이라든가 박해자에 대한 두려움이 주인공으로 하여금 도피하게 하지는 않습니다. 작품의 두 번째 모티프는 직업 그리고 가정에서 드러나는 이른바 속물근성입니다. 시민 사회내의 엄청나게 잘사는 인간의 황폐한 내면은 속물근성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어느 부자는 6일 동안의 도박을 위해서 거대한 판돈을 걸어놓았습니다. 주인공은 여기에 참여합니다. 이때 프로이센 황제가 등장합니다. 그는 거액을 과연 누가 차지하는지를 체험하려고 합니다. 사람들의 원성이 여기저기서 들립니다. 황제 역시도 나이트클럽의 돈 많은 부르주아들처럼 행동합니다. 그들은 주인공인 은행 직원이 웨이터에게 팁으로 건네준 돈마저 슬쩍 훔칩니다. 여기서 일하던 웨이터는 다음날 일자리를 잃고, 목숨을 끊습니다.

 

작품의 세 번째 모티프는 종교적인 도취의 거짓된 모습입니다. 사람들은 구세군의 모임에 참석하여 무릎을 꿇고 참회합니다. 그러나 군중들의 이러한 모습 속에는 자신의 죄를 씻으려는 진지함이 드러나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참회하는 모습은 기괴한 우스꽝스러움과 진지함이 마구 뒤섞여 있습니다. 종교적 자아비판은 결국 희화화된 소극의 모습을 연출하고 있습니다. 주인공은 구세군에서 일하는 처녀를 만나서, 자신의 행동을 진심으로 뉘우치려고 합니다. 그는 구세군으로 일하는 어느 처녀에게 다시금 애틋한 사랑의 감정을 품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그미 역시 나이트클럽의 거짓된 하녀처럼 겉과 속이 다릅니다. 세상의 차가움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출구는 죽음밖에 없습니다.

 

친애하는 J, 극작가는 마지막 대목에서 다음과 같이 외칩니다. “저 인간을 바라보라. (Ecce homo)”. 이 말은 원래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인 군인들의 야유였습니다. 극작가는 작품의 말미에서 일부러 자살 행위를 부각시켰습니다. 자살 행위는 이 경우 세상으로부터 희생당한 자의 태도로 이해될 수는 없습니다. 오히려 그것은 절망적인 세상과 부정으로 가득 찬 사회에 대한 강렬한 저항의 제스처로 해석될 수 있지요.

 

그러한 한 주인공의 자살은 죄악으로 가득 찬 세상에 대한 마지막 인간적 절규로 이해될 수 있으며, 그 자체 표현주의 문학의 특성이나 다를 바 없습니다. 하나의 해결책을 내놓을 수 없습니다. 황제는 그저 팔짱을 끼고 있습니다. 은행 직원은 불의에 대항하여 싸우지 않습니다. 그는 혁명가가 아닙니다. 그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오로지 무한대의 고통을 감내하는 일밖에 없습니다.

 

작품은 마치 영화의 장면처럼 신속하게 바뀝니다. 호흡은 급박하고, 등장인물들의 언어는 스타카토 식으로 끊겨 있으며, 극한적 상황에 상응하게 격정적 문체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카이저는 이전에 「칼레의 시민들」을 집필 발표하였습니다. 이 작품 속에는 인상주의 내지 신낭만주의의 요소들이 가득차 있는 반면에, 「아침부터 저녁까지」는 스트린드베리의 영향으로 시대적 상황이 충실하게 배여 있습니다.

 

특히 놀라운 것은 등장인물의 이름이 모조리 생략되어 있다는 점입니다. 이로써 극작가는 다음의 사항을 은근히 말하려고 합니다. 역사의 소용돌이를 개인적 영웅이 바꾸는 시대는 이제 지났다고, 개인은 없고, 다만 익명의 군중만이 시대의 물꼬를 조금 바꾸려고 시도할 수는 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