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내 단상

(단상. 316) 자아정체성과 결혼 이데올로기

필자 (匹子) 2016. 1. 11. 11:23

호모 아만스 가운데에는 자신의 뿌리가 어디에서 비롯하는지 모르는 사람들이 더러 있다. 알렉스 헤일리의 장편소설뿌리를 예로 들지 않더라도, 우리는 해외에 입양된 한국인들을 떠올릴 수 있다. 물론 부모가 누구인지 모르는 분도 얼마든지 사랑하고 임을 만나 멋지게 살아갈 수 있다. 그렇지만 사랑과 성을 추구하는 인간 동물이 살아가는 데 출발점이 되는 것은 무엇보다도 자아정체성을 확립하는 일이다. 자신을 알아야, 주위 사람들을 더욱 잘 알고 세계를 이해할 게 아닌가?

 

그런데 주어진 현실은 우리로 하여금 자신을 알지 못하도록 잔인한 장애물을 설치하기도 한다. 이를테면 사랑하는 분과의 결혼이 불가능할 정도로 정치적 경제적으로 힘든 개인적 정황과 사회적 여건 등을 생각해 보라. 가난과 폭정은 인류 역사에서 지속적으로 이어져온 것들로서 삶의 고통에 대한 두 가지 원인이었다. 과거의 끔찍한 기억을 뇌리에서 떨치기 위해서 여러 번에 걸쳐 결혼하는 유대인도 존재한다.

 

그래도 역경을 딛고 일어서는 사람들도 있다. 극도의 노력으로 인생의 고난의 가시밭길을 혼자 힘으로 헤쳐 나와 자수성가하는 사람도 주위에서 드물게 발견된다. 부디 금수저, 흙수저에 관한 비유는 이 땅에서 사라지기를 바란다. 대신에 개천에서 용 나는 이야기가 많이 출현했으면 좋겠다. 주어진 삶은 언제나 극도의 고통을 안겨준다.

 

역설적인 말이지만 삶이 개개인에게 여러 가지 핍박을 가하기 때문에, 우리는 인생의 깊은 쓰라린 단맛을 만끽할 수 있는지 모른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다음의 사실이다. 즉 많은 사람들이 모든 역경과 아픔을 딛고 입신하여 자기 정체성을 확립하는 인간에게 인간 승리를 축하하는 뜨거운 박수를 보낸다는 사실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