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 근대영문헌

서로박: 메리 셸리의 '프랑켄슈타인' (1)

필자 (匹子) 2022. 3. 19. 10:29

1. 낭만주의와 인간 소외: 19세기 초는 서양의 정신사에서 하나의 획을 긋는 시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이 시기에 이르러 학문이 분화되고, 정신과학과 자연과학이 분리되고, 육체노동과 정신노동이 분명하게 구분되기 시작합니다. 당시의 시대적 화두는 산업 혁명과 인간 소외였습니다. 이를테면 증기기관의 발명은 인간의 편안한 삶 그리고 경제적 부에 대한 기대감을 가져다주었습니다.

 

그런데 산업혁명은 나쁜 영향 또한 불러일으켰습니다. 그것은 바로 물화되는 삶 그리고 인간 소외의 문제점이었습니다. 산업 혁명은 생산력을 증강시켜 주었지만, 더 많은 재화를 창출하려는 인간의 욕망은 이와는 다른 가치를 허물어뜨리게 작용하였습니다. 특히 자연은 정복 가능한 처녀지로 간주되었는데, 이로 인하여 자연 속에 도사린 마력적 요소라든가 신적인 경외감 등은 약화되기 시작했습니다. 이로써 질적 가치를 지닌 자연에 대한 고대적 시각은 자취를 감춥니다.

 

그런데 특히 인간 소외의 문제를 가장 강하게 인지한 사람들은 낭만주의자들이었습니다. 이 점을 학문적으로 개진한 책은 에른스트 피셔 Ernst Fischer의 『낭만주의의 근원과 본질 Ursprung und Wesen der Romantik』입니다. 산업의 발달은 서서히 초기 자본주의를 발전시키게 하였으며, 인간의 세계관 또한 서서히 변화시키게 하였습니다. 이와 병행하여 19세기 초의 사회의 가장 중요한 이슈는 부와 풍요로움, 직업, 재화의 생산 등으로 요약될 수 있습니다.

 

2. 뒷전으로 밀려난 특성들, 감각적인 것, 여성적인 것, 영혼적인 것: 산업 혁명과 그 영향에 대한 반대급부로 무가치한 것으로 저열하게 취급당한 게 있습니다. 그것은 다름 아니라 감각적인 것, 여성적인 것 그리고 영혼적인 것입니다. 인간의 오관으로 느낄 수 있는 자연적 요소는 무시되고, 숫자와 계산 그리고 기하학적인 구도만이 가장 중요한 것으로 인정받게 됩니다.

 

숫자와 기하학적 구도는 계산을 통한 물량적 이득을 가져다주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자연을 질적으로 고찰하던 종래의 시각을 저버리게 하고, 자연을 하나의 정복될 수 있는 양적 대상으로 파악하게 하였습니다. 사회적으로 활동하는 여성은 비난의 대상이 되고, 여성의 미덕은 가사를 돌보는 일에 국한되고 말았습니다. 이를테면 낭만주의 시대에 살롱 문학을 전개하던 여성 작가들은 남자의 가명을 사용하지 않으면, 작품 발표의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이러한 사항은 어째서 페미니즘 운동이 하필이면 19세기 초에 고개를 들었는가? 하는 이유일 수 있습니다. 다른 한편 중세에 관심을 끌던 여러 가지 마력적인 요소들은 이제 미신적이고 주술적인 심령학으로 치부되기에 이릅니다. 대신에 고개를 내민 것은 과학 기술에 대한 맹신,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이는 인조인간에 대한 가능성으로 표출되었습니다.

 

3. 페미니즘 운동: 지금까지 수많은 유토피아 사상가들은 경제적인 관점에서 평등 사회를 설계하였으며, 평등주의의 바탕 위에서 사회적 제반 규정들을 축조하였습니다. 그럼에도 전통적 유토피아에서는 여성의 권리가 대체로 남성의 그것에 비해서 보장받지 못했습니다. 18세기말, 그러니까 프랑스 혁명을 맞이할 즈음에야 여성들은 비로소 자신의 권리를 위해서 직접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했습니다. 이전의 시점에는 여성이 주체적 입장에서 자신의 견해를 표명하는 경우가 거의 없었습니다.

 

1791년에 올랭프 드 구주 Olympe de Gouges는 파리에서 「여성의 인권 선언문 Déclaration des Droits de la Femme」을 만천하에 공표하였으며, 1792년 메리 울스턴크래프트는 영국에서 「여성의 권리 옹호 A Vindication of the Rights of Women」를 발표하였습니다. 만약 중세 후기의 크리스틴 드 피잔 Christine de Pisan의 『여성의 도시에 관한 책 Le Livre de la Cité des Dames』을 제외한다면, 우리는 19세기 이전에는 페미니즘과 남녀평등의 유토피아가 출현하지 않았다고 단언할 수 있을 것입니다.

 

놀라운 것은 대부분의 여성 작가들이 디스토피아, 다시 말해서 인류에게 도래할지도 모르는 끔찍한 삶에 대한 경고의 상을 묘사했다는 사실입니다. 이는 당시의 시대정신에 기인하는 것입니다. 이미 언급했듯이 감각적인 것, 여성적인 것 그리고 영혼적인 것은 9세기 초 산업혁명 이후로 인간 삶에 거의 필요 없는 무엇으로 철저히 매도되기 시작했습니다.

 

4. 장 작 루소의 삶 그리고 태초의 자연인의 변화 과정: 미리 말씀드리지만 메리 셸리의 작품 『프랑켄슈타인』은 유토피아 소설과는 거리가 멉니다. 따라서 그것은 문학 유토피아의 특성을 표방하지 않으며, 유토피아 모델도 아닙니다. 왜냐하면 작품 내세어 더 나은 사회상의 모델 내지 추악한 사회상의 모델 역시 출현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나아가 우리는 셸리의 작품을 통해서 유토피아의 경미한 사상적 편린조차도 발견할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우리가 유토피아의 역사를 서술하는 데 있어서 이 작품을 언급하는 것은 두 가지 이유 때문입니다. 첫째로 작품 속에는 지금까지 문학 유토피아에서 부분적으로 언급된 “새로운 인간”에 관한 비유가 담겨 잇습니다. 새로운 인간형은 특정한 사회 제도와의 유기적인 관계 속에서 형성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특성은 공교롭게도 20세기 사이보그를 다루고 있는 문학 유토피아에서 다시 출현하고 있습니다.

 

둘째로 메리 셸리의 작품은 장 작 루소가 상정한 자연 상태의 야만인이 어떻게 문명사회에 적응해나가는가? 하는 문제와 관련됩니다. 사회적 존재로서의 인간은 주위의 가족, 친구 그리고 애인 등과의 관계 속에서 자신의 사상 감정을 발전시킵니다. 만약 이러한 관계가 처음부터 차단되고 방해받는다면, 그는 괴물의 모습을 드러낼 수밖에 없습니다. 이를 고려한다면 『프랑켄슈타인』은 미리 말씀드리건대 가족 치료라는 심리학적 관점에서 분석될 수 있습니다

 

5. 루소와 셸리: 자고로 인간의 개별적 정서는 주어진 현재 삶의 관습, 도덕 그리고 법의 영향 속에서 태동하고, 성장하며 결국 하나의 특성으로 확립됩니다. 메리 셸리는 새롭게 인위적으로 탄생한 인조인간을 통해서 그의 심적 상태, 언어 습득 과정 그리고 타인과의 관계 맺는 과정 속에서의 심리적 변화 등을 추구하고 있습니다.

 

만약 태초의 자연인이 처음으로 세상에 발을 디디면, 다시 말해서 가족들과의 애틋한 관계 맺음 없이 홀로 세상에 존재한다면 그는 주어진 환경과 이웃들에 대해서 어떻게 처신해 나갈까? 하는 문제가 작가에게는 가장 중요한 것으로 보입니다. 태초의 자연인에 관한 사고는 장 작 루소가 끊임없이 고뇌한 사항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와 관련하여 메리 셸리가 장 작 루소의 사회 계약론에 몰입하면서 루소 전기를 집필한 것은 그 자체 의미심장합니다.

 

장 작 루소는 주지하다시피 『에밀』이라는 탁월한 교육 이론서를 집필한 철학자였지만, 테레즈 Theresse le Vasseur와 동거하면서 1746년부터 1753년까지 다섯 아이를 얻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아이들을 다만 시끄럽게 떠든다는 이유로 고아원에 보낼 정도로 파렴치한 아버지였습니다. 부모 없이 자란 대부분의 아이들이 경제적으로 그리고 심리적으로 삶의 어려움을 겪는가? 하는 문제는 여기서 매우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메리 셸리 역시 어머니 없이 권위적인 아버지 아래에서 성장하였기 때문에, 경제적인 문제를 제외한다면, 심리적으로 루소의 다섯 자식들이 겪어야 했던 불행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