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 근대영문헌

서로박: 버틀러의 "에레혼" (2)

필자 (匹子) 2022. 1. 14. 19:01

5. 작품의 외적인 틀: 작품의 배경 및 틀은 비교적 간단하게 요약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에레혼 Erewhon”이라는 단어를 거꾸로 쓰면, “지상에서 발견되지 않는 곳 nowhere”가 됩니다. 이로써 우리는 작가가 유토피아의 지역을 의도적으로 그렇게 표현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소설의 틀을 고려하면, 우리는 작가가 동시대 사회의 전반적 영역 뿐 아니라, 주어진 현실의 모든 가치를 모조리 부정하려고 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또한 우리는 작품 속에서 19세기 사회 유토피아의 핵심적 유형에 대항하는 중요한 논거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의 유토피아는 하나의 목표를 부각시키고 있는데, 이는 버틀러의 견해에 의하면 수정되어야 마땅하다는 것입니다. 버틀러는 “새로운 인간”에 관한 비전 그리고 (토마스 모어 이후의 거의 모든 유토피아에 반영되고 있는) 과학 기술에 대한 긍정적 태도에 대해 비판의 화살을 겨누고 있습니다.

 

6. 겉 다르고 속 다른 현실: 작가는 에레혼의 배경으로서 뉴질랜드의 어느 산맥을 선택하였습니다. 버틀러는 왕년에 뉴질랜드에서 몇 년 간 생활한 적이 있는데, 이곳 지역을 작품 속에 반영한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는지 모릅니다. 버틀러의 일인칭 소설의 주인공, “나”는 가상적 문명을 피상적으로 즐기고 있는 에레혼 주민들의 거대한 아름다움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에레혼의 어디서든 간에 건전함, 고상함 그리고 아름다움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러한 바람직한 모습은 전반대의 모습을 유추하게 해줍니다. 이는 플라톤 이후의 유토피아가 언제나 그러했듯이 19세기 말의 영국의 현실을 비판하기 위한 반대급부의 상과 같습니다. 에레혼의 현실이 아름답고 찬란하게 비치는 까닭은 기괴한 인간 내지 병든 사람들을 다른 곳에 가두어두었기 때문입니다. (Butler: 102). 주인공, “나”는 우연히 이곳에 발을 디디게 되었는데, 블론드의 머리카락을 지닌 젊은 남자이며, 그의 준수한 차림은 이성이 매력을 느끼기에 충분할 정도입니다. 그렇기에 에레혼의 주민들 역시 주인공을 처음에 환대하는 것은 당연해 보입니다.

 

7. 소설의 줄거리: 주인공은 조지 힉스라는 이름을 지닌 젊은 사내입니다. 그는 양을 키우면서 농사를 지으면서 살아갑니다. 힉스 우연히 지도에 나타나지 않은 “에레혼”이라는 지역을 발견합니다. 산악 안내인 초복은 과거에 에레혼에서 살았는데, 그 지역을 탈출한 사내였습니다. 그는 주인공에게 그곳으로 들어가지 말라고 경고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힉스는 궁금증을 떨칠 수 없어서 혼자 미지의 땅으로 잠입합니다. 힉스는 그곳으로 들어가자마자 체포됩니다. 시계를 차고 있다는 게 사람들의 눈에 띄었습니다. 모든 유형의 기계는 이곳에서는 위험한 물건으로 간주됩니다. 기계는 어느 순간 고유한 생명체로 돌변하게 되고, 인간을 지배하게 되리라는 게 이곳 사람들의 항변이었습니다.

 

감옥에서 주인공은 이람이라는 이름의 간수를 만납니다. 그는 주인공을 자신의 딸과 결혼시키고 싶어 합니다. 주인공 힉스가 몸상태가 좋지 못하다고 말했을 때, 이람은 더 이상 주인공을 거들떠보지 않습니다. 질병은 “에레혼”에서는 범죄로 간주됩니다. 반대로 잘못을 저지른 범인은 이곳의 병원에서 치료받게 됩니다. 사람들은 낯선 이방인인 힉스를 수도에 있는 왕에게 보냅니다. 왕의 책사는 세노이 노스니보어 Senoj Nosnibor라는 이름을 지닌 장년의 남자였습니다. 노스니보어는 로빈손 크루소의 “로빈손 Robinson”을 뒤집어 표현된 것입니다. 그에게는 두 명의 딸이 있었습니다. 노스니보어는 첫째 딸, 추롤라와 그를 연인으로 맺어주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주인공 힉스는 둘째 딸 아로헤나에게 더 마음이 끌립니다. 마지막에 폭동이 발발하게 되자, 힉스는 아로헤나와 함께 애드벌룬을 타고 끔찍한 땅을 벗어나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