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 근대영문헌

서로박: 버틀러의 "에레혼" (4)

필자 (匹子) 2022. 1. 14. 19:02

14. 제어할 수 없는 기술의 횡포: 지금까지 19세기의 유토피아 사상가들 가운데 기술에서 비롯하는 인간 소외의 문제라든가 기계의 횡포에 관해서 버틀러만큼 심도 있게 서술한 자는 없었습니다. 기계의 사회 기술적 구조의 거대한 힘을 생각해 보세요. 이러한 힘은 자본주의 체제 하의 소수 엘리트가 기계를 작동해나가는 어느 순간 제어할 수 없을 정도로 터져 나오게 됩니다. 인민에 의해서 활용되던 기술은 합목적적으로 더 이상 조절 불가능할 정도로 마구잡이로 활용되게 됩니다.

 

이상 공동체는 지금까지 과학 기술을 활용하여 모든 물질들을 재생산할 수 있었는데, 인간은 기계의 노예로 전락하게 된 것입니다. 지금까지 기계는 인간의 육체적 노동을 대신해주었습니다. 기계는 인간에게 자유의 나라라는 새로운 차원을 개방시켜준 셈이지요. 기술을 매개로 하여 인간이 자신의 이상을 실현하고, 지배자 없는 전원 속에서 행복한 삶을 살아가는 경우를 설득력 있게 보여주는 작품은 윌리엄 모리스의 『유토피아의 소식』이었습니다.

 

15. 버틀러의 기계 비판 속에 도사린 다른 의미: 버틀러의 기계 비판은 오늘날에도 어느 정도 설득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이를테면 컴퓨터에 의해서 작동되는 것은 오로지 주어진 프로그램의 틀에 의해서 실행될 뿐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컴퓨터는 가공할만한 능력을 발휘하여 스스로 어떤 새로운 프로그램을 만들어내고 이를 활성화시킬 수 있습니다. 실제로 『에레혼』에서 기계는 인간에 대항하게 되는데, 이는 결국 땅을 황폐하게 만듭니다. 작품 속에서 인구가 갑자기 두 배로 늘어났지만, 이를 감당할 식료품이 모자라서, 사람들은 빵을 서로 차지하게 위해서 끔찍하게 전쟁을 일으키게 됩니다. 이로 인하여 인구의 절반이 사망하는 끔찍한 결과가 초래하게 됩니다. 이러한 비극적 이야기를 고려한다면 버틀러의 『에레혼』은 단순한 기계의 횡포를 경고하는 이야기를 들려줄 뿐 아니라, 참되고 선한 삶에 대한 인간의 갈망이 어쩌면 인간 정신 속에만 고유하게 존재하지는 않는다고 우리에게 충고하고 있습니다.

 

17. 버틀러의 시대 비판: 요약하건대 문학 유토피아, 『에레혼』은 기계 문명에 대한 비판을 골자로 하고 있습니다. 작품은 19세기 영국에 대한 신랄한 시대비판을 담고 있습니다. 첫째로 버틀러는 작품 속에서 영국 교회와 성당에서 일하는 수사 계급에 대해서 집요할 정도의 저주를 퍼붓고 있습니다. 교회와 성당은 거대한 중앙은행으로 비유되고 있습니다. 교회와 성당의 재산은 재정을 담당하는 수사들에 의해서 은밀히 은폐되고, 모든 거래는 국제적 종교 사업의 명목으로 신앙 상인들에 의해서 음성적으로 전개되고 있습니다.

 

둘째로 버틀러는 19세기 영국의 교육적 현실을 심도 있게 비판하고 있습니다. 이를테면 라틴어 그리스어와 같은, 죽은 언어가 공공연하게 중요한 교과목으로 활용되는 것 자체가 이상하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아이들은 “비이성의 학교”에 다니면서 기이한 언어를 배워야 하는데, 이 언어는 100년 전에 사용되었을 뿐, 지금은 더 이상 쓰이지 않는 죽은 언어라고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요한 책은 이러한 기이한 언어로 기술되어 있어서 취업하기 위해서는 학생들은 반드시 기이한 언어를 배우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합니다. 여기서 버틀러는 라틴어와 그리스어 교육이 분에 넘치게 행해진다는 사실을 지적하며, 교육에 있어서의 개혁을 은근히 촉구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