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나의 글

만인을 위한 병원

필자 (匹子) 2022. 10. 20. 09:52

1.

요즈음에는 그렇지 않지만, 병원이나 약국은 나에게 무척 생소하게 느껴지는 곳이었습니다. 천혜의 도움을 받아서인지, 아니면 “결벽증”인지는 몰라도 잔병이 났을 경우 나는 대체로 약을 멀리하고, 마치 병든 개처럼 며칠 드러누워 있다가 자리에서 일어나곤 했으니까 말입니다.

 

오늘 아들의 치료를 위해서 실로 오랜만에 대학 병원을 찾았습니다. 병원 입구에서 많은 직원들이 열 지어 병원 방문객들에게 고개 숙여 인사를 올리고 있었습니다. 내 눈에는 그것이 무척 신기하게 보였습니다. 그런데 더욱 신기한 것은 그들이 병원 문을 나서는 사람들에게 한번도 고개 숙여 인사하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아니, 그들의 눈빛은 몇몇 표독스러운 교도소 경비자의 그것을 방불케 했습니다. 왜 병원은 들어오는 자를 반기고, 나가는 자를 마치 범죄인처럼 감시할까? 그 이유를 나는 나중에 알게 되었습니다.

 

2.

면담 후에 신경 정신과 담당 의사는 정확한 검진을 받기 전에는 아들의 증세를 정확히 말할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보호자인 나에게 심리 검사, MRI 검사 등을 해보는 게 어떠냐고 물었습니다. 처음에는 보호자의 동의 없이 검사할 수 없기 때문에 그렇게 묻는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게 아니었습니다. 검사를 위한 비용이 의료보험 공단에서 지불되지 않기 때문에 그는 그렇게 물었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치료를 위한 모든 조처를 결정하는 자는 의사가 아니라, 환자와 그 가족이란 말인가요? 그제야 나는 왜 병원 입구에서 직원들이 우리에게 그렇게 깍듯이 인사하는 이유를 알 것 같았습니다. 들어오는 자는 쓸모 있는 고객이고, 나가는 자는 쓸모없는 고객이었던 것입니다.

 

 

 

 

아헨에 있는 대학 병원 건물. 이곳에는 의대 강의실, 도서관 그리고 진료실, 입원실 등이 갖추어져 있다. 독일인들은 세금을 많이 내는 대신에 의료비를 스스로 지불하는 경우가 없다.

 

3.

문제는 모든 검사 및 치료 과정에 100퍼센트 의료 보험 혜택이 주어지지 않다는 데 있습니다. 그렇지만 따지고 보면 의료 보험 혜택의 기준은 모호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중환자라 하더라도 검사 비용은 모조리 의료 보험의 혜택을 받지 못하나, 감기 치료를 위한 조제에는 의료 보험 혜택을 받습니다. 나는 의료 보험 제도의 세부적 사항에 대해 시비를 걸 생각은 추호도 없습니다. 문제는 만인이 병들었을 때 100퍼센트 의료 보험 혜택을 받는 일입니다. 가족 중에 누군가 병이 들면, 그 가족은 정말로 커다란 홍역을 치릅니다. 수없이 많은 치료비 환자실 사용료, 간병인 수당 등을 생각해 보세요. 왜 우리나라에서는 행여나 병들까봐 건강한 자들이 두려움에 떨어야 하는가요? 어떻게 하면 만인이 요람에서 무덤까지 의료 혜택을 얻을 수 있을까요?

 

4.

혹자는 다음과 같이 질문을 던집니다. 모든 사람에게 혜택을 돌아가게 하려면, 의료보험료를 두 배 이상 납부해야 하지 않을까요? 그렇다면 가난한 사람들이 어찌 의료 보험료를 납부할 수 있을까 하는 문제가 제기됩니다.

 

만인이 전액 보험 혜택을 얻게 되면, 그 돈을 충당하기란 쉽지 않을 것입니다. 가난한 사람들이 두 배 이상의 보험료를 납부할 수는 없습니다. 대신에 상류층, 고위층 사람들이 지금보다 월등한 의료 보험료를 납부해야 합니다. 그렇지만 고위층 사람들은 국민의 세금을 선거 자금으로 빼먹을 줄 알뿐, 노동자를 위한 과세 법 제정 등에는 전혀 관심이 없고, 어떻게 하면 차기 선거에 승리하는가에 신경을 씁니다. 어디 그 뿐인가요? 상류층 사람들은 아들의 병역 면제 그리고 고액 과외에 수억의 돈을 쓰지만, 의료 보험료 인상에는 처음부터 반대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해서든 정부는 이들에게서 합당한 의료 보험료를 징수하여, 가난한 자들의 병을 무료로 치료해주게 해야 합니다.

 

 

아헨 병원의 내부 모습

5.

그밖에 다른 문제들도 파생됩니다. 모든 사람들이 무료로 치료받게 되면, 병원이 수많은 환자들로 몸살을 겪지 않을까요?.

 

잘 모르긴 해도 이 문제는 얼마든지 제도적으로 방지할 수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우리는 환자 치료에 대한 모든 결정권을 의사들에게 일임해야 합니다. 의사들은 모든 사람들로 하여금 건강을 유지하게 할 비법을 완전히 알지는 못합니다. 그렇지만 어떻게 하면 특정한 병이 치유될 수 있는가에 대해서는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의사들은 병원의 모든 실제 의료 업무들을 그들 스스로 관장해 나갈 수 있을 것입니다. 100퍼센트 의료 보험의 혜택을 받는다고 하더라도 사람들은 비타민 제품, 건강을 위한 보약 등을 무료로 얻을 수는 없습니다. 이에 관해 결정해야 할 사람들은 (한)의사 그리고 약사들일 것입니다. 또한 간병인 제도를 신설하여, 환자들이 부수적으로 돈을 치르는 경우는 없어져야 할 것입니다.

 

6.

만약 모든 사람들이 의료 보험 혜택을 받게 된다면, 의학에 종사하는 모든 사람들은 자신의 일에 커다란 긍지를 갖게 될 것이고, 오히려 노력과 업무에 상응하는 정당한 보수를 받게 될 것입니다. 적어도 의료 분야에 관한 한 “합리적 사회주의”의 체계가 도입될 필요가 있습니다. 돈을 위할 것인가, 사회를 위할 것인가를 생각해 보세요. 또한 자주 물의를 빚는 의료 사고에 대한 분쟁 역시 크게 발생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의료 분쟁이라는 것도 생명의 문제인 것처럼 보이나, 기실 따지고 보면 돈에 얽힌 갈등으로 이해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아들과 함께 병원을 나서면서 나는 희망했습니다. 적어도 이 나라에서 차제에는 병 때문에 가산을 탕진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고, 병원과 학교가 돈에 관심 없는 곳으로 변모해야 한다고. 내 아들이 성인이 되었을 때, 이 문제가 과연 해결되어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