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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박: 베르펠의 '태어나지 않은 자들의 별' (1)

필자 (匹子) 2021. 10. 10. 09:49

1. 유토피아인가, 디스토피아인가? 평화 공존과 인종 극복의 유토피아: 프라하 출신의 유대인 작가, 프란츠 베르펠 (Franz Werfel, 1890 – 1945)은 수십 년 동안 독일과 슬라브 민족 사이에서 자리하던 보헤미안 문화에 경도해 있었습니다. 비록 유대인의 피를 물려받았지만, 스스로를 가톨릭 시인으로 규정하였고, 사라진 헝가리와 오스트리아의 이중 군주국의 예술적 보헤미안의 정서를 죽을 때까지 고수하려고 했습니다. 그는 자신의 조국, 체코로부터 박해당하고, 이른바 “넥타이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자신의 인종으로부터 거부당했으며, 타인종이라는 이유로 자신의 신앙의 산실인 로마 가톨릭 교회로부터 배척당했습니다. 그가 미국에서 『태어나지 않은 자들의 별』을 탈고한 뒤 며칠 후에 사망했을 때, 그의 곁을 지킨 사람은 알마 말러-베르펠 한 사람밖에 없었습니다.

 

마지막 작품 속에는 유럽의 전란으로부터 도피한 외로운 아웃사이더 작가의 애환, 희망과 절망의 뒤섞인 정서 그리고 마지막 생을 앞둔 작가로서의 갈망과 해원이 복합적으로 용해되어 있습니다. 작품은 우크로니아의 사이언스 픽션이라는 형식을 갖추고 있지만, 이승과 저승의 시공간을 넘나들고 있습니다. 미리 말씀드리건대 작품은 인종 갈등 문제 그리고 비극적 죽음의 극복 가능성의 측면에서 유토피아의 요소를 보여줍니다. 미래의 찬란한 현실과 마지막 파국의 장면 그리고 새로운 시대에 대한 작가의 갈망과 염세주의적 성찰 등은 서로 대비된다는 점에서 묘하게 유토피아와 디스토피아의 한계를 희석시키고 있습니다. (Paulsen: 265). 이는 20세기 후반의 사이언스 픽션 계열의 문학 유토피아에서 새롭게 나타나는 특징인데, 우리는 마지 피어시의 문학을 예로 들 수 있습니다.

 

2. 보헤미안 소수 문화와 프란츠 베르펠: 사실 프란츠 베르펠만큼 이질적 외모 때문에, 다른 언어를 사용한다는 이유로, 다른 신을 믿는다는 이유로 처참한 죽음을 당한 무고한 사람들의 피맺힌 한을 문학적으로 형상화한 작가도 없을 것입니다. 그의 대표작으로서 아르메니아인들에 대한 터키인들의 인종 학살을 다룬 문제 소설 『무샤다크의 40일』 (1933/ 1947) 그리고 어느 성스러운 처녀의 기이한 동화적 이야기인 『버나뎃 소비루』 (1941) 등이 있습니다. 많은 산문 작품들이 그의 명성을 높여주었지만, 베르펠은 슐레지엔의 신비주의 시인, 안겔루스 실레지우스 Angelus Silesius를 추종하면서, 스스로 보헤미안의 기독교 시인으로 자처하였습니다.

 

베르펠의 후기 문학을 이야기할 때 우리는 그의 동반자 알마 말러-베르펠 (Alma Mahler-Werfel, 1879 – 1964)의 예술적 영향을 생략할 수 없습니다. 그미는 20세기 초에 살롱을 경영하면서, 수많은 예술가와 문인들과 교우하였으며, 동유럽 지역 작가의 예술 창작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습니다. 토어베르크는 그미의 자유분방한 삶을 염두에 두면서, 노골적으로 그미를 “치명적인 여인 femme fatale” 내지는 “위대한 숙녀이자 시궁창”이라고 폄훼하기도 했습니다. (Torberg: 643f). 과연 알마 말러가 수많은 사내와 살을 섞던 시궁창과 같은 여인이었을까요? 그러나 우리는 남자의 시각으로 일방적으로 한 여인을 매도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알마 베르펠은 작가 프란츠 베르펠을 만나기 전에 자유분방하고 보헤미언의 삶을 살았다. 그미가 깊은 관계에 빠진 사내로서 화가 구스타프 클림트, A. 쳄린스키, 작곡가 구스타프 말러, 건축가 발터 구로피우스, 파울 캄머러, 화가 오스카 코코슈카, 교수 요한네스 홀린슈타인 등이 있다. 오스트리아의 작가 토어베르크는 알마를 "시궁창", "팜므 파탈"이라고 표현한 바 있다,

 

3. 부모에 대한 과도한 사랑은 당사자의 사랑의 삶을 방해한다: 사실 알마 말러-베르펠은 아름다움과 미학에 자신의 모든 것을 다 바칠 정도로 예술가와 작가들에게 직간접적인 영향을 끼쳤습니다. 그미는 원래 어린 시절부터 아버지를 극진히 사랑했는데, 아버지에 대한 과도한 사랑이 결국 알마를 심리적으로 방황하게 만들게 되었습니다. 알마는 구스타프 말러와 결혼했는데, 나이 차이가 많은 음악가를 선택한 까닭은 무엇보다도 아버지를 닮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미는 집안 살림에 서툴고 손익계산에 익숙하지 못하는 등 20세나 나이 많은 남편을 제대로 내조하지 못했습니다. 이로써 알마는 음악가의 대가족적 분위기에 적응하지 못하고 몹시 외로움을 느꼈습니다.

 

남편인 말러가 사망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화가 오스카 코코슈카를 뜨겁게 사랑합니다. 알마는 오래 전부터 살롱을 경영하면서 수많은 예술가들과 교우하던 터였습니다. 코코슈카는 그미가 애호하는 남자들 그리고 이미 유명을 달리한 말러에 대해서도 질투심을 드러냈습니다. 코코슈카의 말러 인형에 관한 그림은 알마에 대한 색정적 애착 그리고 질투로 인한 기괴한 변덕을 그대로 표출하고 있습니다. 알마가 자신의 아이를 낙태수술로 사망하게 했을 때, 열정적 화가는 군에 자원입대하여 장총으로 자살까지 시도하였습니다. 그만큼 코코슈카는 “요염한 과부”에 거의 병적으로 집착했던 것입니다. 그렇지만 알마가 선택한 남자는 나중에 위대한 건축가로 이름을 떨치게 될 발터 그로피우스였습니다. 알마는 건축가 발터 그로피우스와 만나 결혼한 다음에 딸을 낳았습니다. 그런데 제 1차 세계대전이 결국 그로피우스와 알마를 이별하게 만듭니다. 왜냐하면 그로피우스는 장교로 징집되어 전선에 주둔해야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4. 알마 그로피우스, 알마 베르펠로 개명하다.: 알마가 자신보다 11살이나 나이어린 베르펠을 만난 것은 1917년이었습니다. 처음 살롱에서 조우했을 때, 베르펠의 외모는 어떠한 여성도 매혹시키지 못할 만큼 투박하고 볼품이 없었습니다. 알마는 유대인 특유의 뚱뚱한 몸, 안짱다리에다 두툼한 입술에 매료될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베르펠의 구애는 애절하게 지속되었고, 끝내 좋은 결실을 맺게 됩니다. 알마가 사랑의 문을 열어젖히게 되어 결국 결혼에 이르게 된 것이었습니다.

 

두 사람은 오랜 관계 속에서 아들을 낳았으나, 태어난 아이, 마르틴은 안타깝게도 일찍 사망하고 맙니다. 놀라운 것은 알마가 베르펠과 만남으로써 지금까지의 자유분방한 삶을 청산하고 갱생의 길을 걷게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미는 보헤미안적 생활관습을 저버리고 오랫동안 견지했던 반유대주의적 지조조차 일거에 파기하게 됩니다. 베르펠 역시 그미와의 사랑의 삶을 통해서 심리적 안정을 찾고 집필에 몰두할 수 있었습니다. 베르펠이 죽을 때까지 가톨릭 신앙을 고수한 것도 그미의 영향 때문이었습니다.

 

5. 베르펠의 초현실주의의 묵시록: 1945년에 베르펠은 죽기 전에 아내와 캘리포니아의 비버리 힐스에서 거주했는데, 이 작품을 탈고한 지 며칠 안 되어서 유명을 달리 하였습니다. 이 작품의 13장은 잡지 『노이에 룬트샤우』의 1945년 6월호에 실리기로 하고 인쇄되었는데, 여기서 작가는 자신의 작품을 토마스 만에게 헌정하고 있습니다. 당시에 소설의 영감으로 작용한 것은 단테의 『신곡』 그리고 토마스 만의 『파우스트 박사』였습니다.

 

베르펠은 작품의 모두에서 디오도로스 크로노스의 말을 인용합니다. “시인의 사명은 멀리 떨어진 섬의 기이한 존재들, 하데스에 머무는 죽은 사람들 그리고 그들의 별에 있는 태어나지 않은 자들을 찾아가는 일에 있다.” 여기서 태어나지 않은 자들의 별은 작가가 내적으로 갈구하는 가상적 고향을 가리킵니다. 베르펠은 작가가 문학적으로 갈망하는 가상적 판타지 및 이와 관련되는 신화의 세계를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으로 여겼습니다. 작품에는 다음과 같은 주인공의 발언이 실려 있습니다. “신화는 냉정한 역사서술가도 알고 있듯이 단순하고 공허한 환영이 아니라, 어떤 의미심장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가상적 현실이다.” (Werfel: 557).

 

허황된 말처럼 들릴지 모르지만, 인간은 적어도 꿈의 세계 속에서는 죽음의 운명을 비켜갈 수 있습니다. 이러한 세계 속에서는 우리의 의식으로써 해독할 수 없는 어두움과 현존재의 수수께끼가 충만해 있습니다. 그렇기에 가령 회화 작품 속에 반영된 갈망의 현실상들은 하나의 명징한 의미를 전해주는 게 아니라, 어떤 비유의 상 내지 초현실주의의 묵시록으로 파악될 수 있습니다. 베르펠은 자신의 꿈속에서 출현하는 혹성과 항성의 정신에 관해 다음과 같이 정의를 내렸습니다. 즉 혹성과 항성은 사람들의 마음속에 깊이 각인되어 있는 갈망의 빛이라고 합니다. 그렇기에 별의 정신이란 우리의 영혼이 끝없이 꿈틀거리는 상이라고 합니다. 예술가는 이를 하나의 예술적 소재로 설정하여, 이러한 상에다 시간과 장소라는 구체적인 색을 입혀야 한다는 것입니다.

 

 

프란츠 베르펠, 그는 인종적, 정치적 예술적 측면에서 철저히 국외자였다.

 

6. 별천지에 관한 사흘 동안의 경험: 800페이지에 육박하는 방대한 작품은 세 단락으로 나누어집니다. 이는 주인공 “나”인 F. W.가 3일 동안에 겪었던 이야기와 직결됩니다. 주인공은 영성을 추구하는 어느 모임에 참석하여 서기 101945년의 시점, 다시 말해서 처녀좌의 11 번째 대세계의 해로 소환 당하게 됩니다. 그곳은 지구가 아니라, 천체의 다른 혹성이었습니다. 그의 “멘토”에 해당하는 B. H.라는 사내는 주인공을 우주 속을 꿰뚫고 기이한 곳으로 데리고 갑니다. 여기서 B. H.는 작가 프란츠 베르펠의 죽마고우인 시나리오 작가이자 영화 평론가로 활약했던 빌리 하스 (Willy Haas, 1891 – 1973)를 암시합니다. (Werfel: 35).

 

지금까지의 인류 문명은 과학 기술의 활용으로 인하여 편리한 삶을 누릴 수 있었지만, 이에 대한 반대급부로서 전쟁 산업을 통해서 수많은 인간의 아까운 생명을 앗아가게 하였습니다. 그렇기에 기술의 시대는 전쟁으로 점철되었다는 점에서 야만적 과거에 속합니다. 과거에는 국가들과 계급들 사이의 투쟁으로 인하여 세계대전이 발발하였습니다. 그런데 서기 101945년에 세계는 하나의 국가 체제로 변해 있습니다. 지구는 우주의 도시 내지 수많은 도시 국가의 형태로 유지되고 있습니다. F. W.는 놀라운 변화에 경탄을 터뜨립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가상과 현실 사이의 한계를 허물고, 스스로 얼마든지 우주의 특정한 영역 속으로 잠입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7. 작품의 발단, 시간 여행: 소설의 배경은 미래의 분명한 시점을 알 수 없는 지구에서 사망을 예견한 시점부터 약 십만 년 후의 시간입니다. F. W.은 친구, B. H,의 도움으로 깨어납니다. 그는 죽은 사람들 사이에서 의식을 되찾았던 것입니다. 새롭게 깨어난 주인공은 처음에 자신이 과연 죽었는지 살았는지 스스로 정확히 감지하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자신의 목숨이 이미 오래 전에 끊어졌다고 확신했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주인공은 이전의 삶에 관해서 아무 것도 소환해내지 못합니다. 자신이 언젠가 지상에서 살다가 죽은 것 같은데, 그때가 언제인지 어디인지 도저히 기억나지 않습니다. 자신의 사망은 너무나 오래 되었기 때문에 그저 흐릿한 기억의 흔적만 남아 있을 뿐입니다.

 

누군가 자신을 땅 속에 묻었을 때 연미복을 입혀두었습니다. 그렇지만 이러한 옷차림은 새로운 세계에서는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곳 사람들은 속이 비치는 면사포를 걸치거나 아예 옷 없이 생활하기 때문입니다. 그를 잠에서 깨운 사람은 B. H.인데, 주인공은 그를 단번에 알아차리지 못합니다. 어릴 때 이미 만난 적이 있는 남자 같은데, 난생 처음 대하는 얼굴이었습니다. B. H.는 “다시 태어난 자들” 그룹의 일원이었습니다. 이들은 한 번 살았다가 다시 태어나는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렇지만 인간이 다시 태어날 때는 이전과는 다른 육체를 지닌 제 3자의 모습으로 부활하게 됩니다. 말하자면 B. H.는 주인공이 3일 머무는 동안 천체 인류의 세계에 대한 안내자의 역할을 맡고 있습니다.

 

8. 천체의 우주인들의 자연과학의 활용: 주인공은 약 3일간 머물면서 천체의 우주인들의 찬란한 삶 내지 근본적인 위기를 체험합니다. 그리고 우연히 자신의 과거 삶에서 기술된 몇몇 문장들을 접하게 됩니다. 그것은 자신이 죽기 전에 메모한 것이었는데, 별로 중요한 내용은 아니었습니다. 말하자면 F. W.는 그는 10만년 후에 “처녀의 11번째 거대 세계에서의 3일을 다시 살아가게 된 셈입니다. 10만년을 기점으로 하여 세상은 몇몇 사항에 있어서 변해 있습니다. 여기서 중세 내지 르네상스의 시대는 그야말로 작은 차이를 드러낼 정도로 거의 동일하게 인지되며, 인류의 출발로 명명되고 있을 정도입니다.

 

10만년 이후의 세상은 많이 변해 있습니다. 주인공은 B. H.의 안내에 따라 이곳저곳을 돌아다닙니다. 가령 B. H.의 손에는 “멘텔로볼 Mentelobol”이라고 불리는 이동기구가 들려 있어서 단추를 누르면, 두 사람은 순식간에 목적지에 도착해 있습니다. (Innerhofer: 234). 멘테로볼을 통해서 두 사람은 먼 지역을 신속하게 찾아갈 수 있습니다. 정확히 표현하면, 두 사람은 가만히 있는데, 마치 세상이 신속히 이전되어, 순식간에 목적지가 그들 앞에 마치 TV 화면처럼 출현하는 것입니다. 멘테로볼을 만지면, 두 사람의 몸은 어떤 블랙홀, 다시 말해 거대한 구멍 속으로 빠져들어 다른 곳으로 이전됩니다. 이때 그들은 스스로 몸을 움직일 필요가 없고, 인간의 감각만이 유동하는 것을 느낄 뿐입니다. 두 사람은 인류의 시작 시기 사이를 헤집고 여행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