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 20전독문헌

서로박: 베르펠의 태어나지 않은 자들의 별 (3)

필자 (匹子) 2021. 10. 10. 09:50

18. 천체 인간의 삶에서 드러난 몇 가지 문제점: 주인공은 한 가지 사실에 대해 무척 아쉬움을 금치 못합니다. 그것은 다름 아니라 천체 인간들이 아무런 축제를 즐기지 않고, 따분하고도 단조롭게 살아간다는 사실입니다. 예컨대 누구든 간에 어떤 기이한 상황에 직면하면 약간 흥분하게 되는데, 천체 인간들의 면모에서 이러한 자극이 그다지 강하게 드러나지는 않습니다. 이곳에서는 희로애락 애오욕의 정서가 마치 어떤 의식의 빛에 의해서 세척되는 것 같습니다. 이로 인하여 개인적으로 체험할 수 있는 정서적인 모든 능력이 사라지고 맙니다. 가령 인간의 심리는 더 이상의 고통 내지 고뇌를 분명하게 인지하지 못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희로애락 애오욕의 정서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그들의 계층 사이의 심리적 갈등 그리고 투쟁이 속출하는 것은 작은 감정이 오랜 기간이 지나 축적되어 출현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이곳에서 살아가는 천체 인간들은 실제로 자유를 구가하지만, 고통이 무엇인지, 행복이 무엇인지 명료하게 알지 못합니다. 그들은 마치 하늘 위로 자유롭게 날아가는 기러기 한 쌍처럼 자유와 사랑을 실천하지만, 정작 자신이 행복한지, 열광적 희열에 사로잡히는지 전혀 느끼지 못하고 있습니다. 언젠가 재독동포 어수갑씨는 유럽에서의 삶이 “재미없는 천국”아고, 한반도에서의 삶이 “재미있는 지옥”이라고 비유한 바 있습니다. (어수갑: 168). 비록 맥락은 다르지만, F.W.는 혹성에서의 삶이 “재미없는 천국”이며, 자신의 과거의 삶의 공간이 “재미있는 지옥”으로 느낍니다.

 

19. 겨울 정원, 윤회의 가능성으로서의 삶과 죽음: 천체 인간에게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그다지 크지 않습니다. 죽음은 그 자체 과학기술에 의해 인위적으로 하나의 조작되는 과정으로 인지될 뿐입니다. 실제로 대부분의 천체 인간들은 자신의 사망이 “안락사를 통해서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는, 겨울 정원 속의 삶”이라고 냉담하게 받아들입니다. 다시 말해 죽음이란 이들에게는 “자신이 태어날 때의 태아의 모습으로 되돌아가는 일”, “마치 식물과 같은 비형태의 존재”로 이해될 뿐입니다. 과거에 인류는 자신이 겪어야 하는 끔찍한 비극에 즈음하여, 이를 가져다준 대천사의 보복에 대해 처절할 정도로 저주하면서도, 애타는 마음으로 신에게 마지막 구원을 빌었습니다. 그렇지만 미래 세계의 천체인간들은 이러한 신의 영향으로부터 멀리 동떨어져서 살아갑니다. 천체 인간의 정신과 영겁을 고려할 때 우리는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습니다. 즉 철학과 같은 도덕적 형이상학은 어떠한 경우에도 천체 인간의 삶을 발전시키는 데 커다란 도움을 주지 못했다고 말입니다.

 

20. 필요악으로서 온존하는 사회적 갈등: F. W.는 혼란스러움에 사로잡힌 채 다음의 사실을 깨닫습니다. 즉 모든 세계, 모든 시대는 몇몇 예외적인 새로운 현상을 도외시한다면, 인간이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수많은 변전이라든가 모순들로 가득 차 있다는 사실 말입니다. 천체 사회는 네 가지 계층 (교회 계층, 정치를 담당하는 계층, 경제에 몰두하는 계층 그리고 거대한 산에서 거주하는 계층) 등으로 분화되어 있습니다. 우주 사회가 마치 기독교에서 말하는 “인식의 나무 Baum der Erkenntnis”와 같은 형태, 혹은 오래 전에 출현한 바벨탑의 형태를 드러내는 까닭은 세상이 그야말로 다양한 이질적 특성으로 단계적 차이를 보여주기 위함입니다. 이로써 작가는 때로는 당혹스럽고도 기이한 방식으로 인류의 삶이 그야말로 다양하고 이질적이며, 질적인 측면에서 평등하지 못하다는 점을 독자에게 분명하게 알려줍니다.

 

전쟁이 완전히 극복되었다고 하지만, 네 계층 사람들은 제각기 개별적으로 다른 무엇을 갈망하고, 그것이 충족되기를 요구하곤 합니다. 이러한 이질적인 갈망으로 인해 어쩔 수 없이 어떤 경미한 사회적 갈등이 고개를 들 수밖에 없습니다. 물론 우주 도시에서는 모든 것을 정신적 차원으로 극복하고, 현존재의 단순한 폭력들을 깡그리 없앴다고 하지만, 사람들 사이의 마찰은 끊임없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어떤 장면에는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황당무계한 상황이 다루어지고 있는데, 이것이 주인공의 현실인지, 아니면 주인공의 꿈 내지 환상인지 분간이 가지 않는 경우도 있습니다.

 

21. 작가의 시대비판, 전쟁의 허구성의 고발: 본서의 서문에서 언급했듯이 모든 문학 유토피아는 어떤 문학적 가상이라는 면사포를 쓰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주어진 현실을 간접적으로 비판하기 위해서입니다. 따라서 주어진 시대에 대한 작가의 비판이야 말로 유토피아의 가상적 특성을 채워줄 수 있는 가장 절실한 사항이 아닐 수 없습니다. 베르펠은 궁극적으로 타자에 대한 증오심이 갈등, 전쟁 그리고 학살극을 불러일으킨다고 확신했습니다. 타자를 마치 나 자신과 같은 존재로 받아들이지 않고, 나와는 전혀 다른 별개의 존재로서 나의 이득을 갈취하는 사악함을 드러낼 때, 인간은 그때부터 타자를 증오하기 시작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엠마누엘 레비나스처럼 스스로 타자가 되어 자신을 비판적으로 성찰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Levinas 67).

 

피부색이 다르고, 언어가 다르며, 마음속으로 모시는 신이 다르고, 자신이 속한 나라가 다를 때 우리는 타자를 남으로, 낯선 존재로 성급하게 지레짐작하고, 그들로부터 우리의 선을 분명히 긋습니다. 타자가 누구보다 먼저 이득을 챙기며 살아갈 때, 바닥나기들은 타자에 대한 증오심을 품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로써 발생하는 게 베르펠에 의하면 마치 빵 앞에서 으르렁거리는 늑대의 경우처럼 갈등과 반목의 정서라고 합니다. 이러한 갈등과 반목은 결국에 이르러 세계대전으로 발전될 수 있다고 합니다.

 

에곤 실레 Egon Schiele 의 작품 죽음과 소녀, 실레는 이 작품을 1915년에 완성하였다. 전쟁 속에서 느끼는 죽음의 공포는 죽음과 소녀의 포옹으로 형상화되고 있다.

 

22. 인류의 평화 공존은 가능한가? 이러한 전쟁에 직면하여 베르펠은 두 가지 문제점을 제시합니다. 그 하나는 세계 역사가 국가 중심적으로 이루어져나가야 하는가, 아니면 무정부주의의 성향을 강하게 드러내는가? 하는 물음이며, (인류는 어차피 두 가지 사항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야 할 수밖에 없습니다.), 다른 하나는 인간의 내면에 도사리고 있는 마치 카인이 아벨에게 저지르는 폭력성에 관한 물음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프란츠 베르펠이 궁극적으로 추적하는 형이상학적인 역사에 관한 관점을 읽을 수 있습니다. 그것은 다름 아니라 별에서 살고 있는 미래 인간의 문화 역시 궁극적으로 사멸되거나 미지의 다른 세력에 의해서 파괴되리라는 관점 말입니다.

 

그렇지만 주인공은 이름없는 어떤 아이의 자기희생에 의해서 구원을 받게 됩니다. 그 아이는 자청하여 이른바 죽음의 세계라는 고통 없는 소멸 속으로 걸어서 들어가기를 거부합니다. 말하자면 과학기술을 통해 죽음을 극복할 수 있는 겨울 정원의 체제를 처음부터 거부한 것입니다. 대신에 아이는 자연적인 죽음을 선택함으로써 도저히 증명될 수 없는 종교의 카리스마를 받아들입니다. (Wagener: 129). 이로써 작가는 과학 기술 대신에 무엇보다도 가톨릭의 신앙에 기대를 걸면서, 니힐리즘을 절대적 종말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23. 가톨릭의 세계관을 중시하는가? 천체 사회에서 종교는 커다란 의미를 지니지 않지만, 가톨릭 교회 그리고 유대교의 예배당은 존재합니다. 인류를 대변하는 인물은 놀랍게도 “시대의 유대인” 그리고 “대주교”입니다. 두 사람은 도저히 양립할 수도 화해할 수도 없는 유대인과 기독교도 사이에서 함께 살아가는 평화 공동체의 생생한 증인으로 활약합니다. 이들은 천체 인간들의 심리적 갈등을 부분적으로 보살펴주는 일을 수행합니다. 게다가 두 사람은 초당적 자세로 서로 협력하고 있습니다. 이들의 평화 공존이야 말로 인간의 바람직한 역사가 지속될 수 있으리라고 프란츠 베르펠은 확신하고 있습니다.

 

기이한 것은 이슬람 종교에 관한 언급이 전혀 나타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죽음과 마지막 파국은 작가에게는 하나의 “출구 Exitus”로서 인간이 최후의 심판 일에 겪어야 하는 사건으로 파악되고 있습니다. 그것은 선택받은 인간이 새롭게 맞이해야 하는 새로운 예루살렘의 개벽으로 이해될 수 있습니다. 바로 이 점을 고려할 때 우리는 베르펠의 자세에서 어쩌면 야훼 신에 귀의하려는 가톨릭 신자의 보수 반동적인 체념을 부분적으로 읽을 수 있습니다. (Meyer: 88).

 

24. 인종 갈등 내지 죽음의 극복으로서의 유토피아: 베르펠의 유작은 앞에서 언급했듯이 유토피아 그리고 디스토피아의 두 가지 이질적인 상을 동시에 포괄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찬란한 미래의 현실상을 다루고 있으면서도, 부분적으로 나쁜 현실상을 보여줍니다. 마지막에 도시의 파괴를 통해서 어떤 끔찍한 디스토피아의 면모를 보여주기도 합니다. 물론 베르펠이 처음부터 창작의 목표로서 어떤 현대적 의미에서의 미래 소설 속의 유토피아의 모델을 도출해내려고 의도한 것은 아니었니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자신의 유언을 묵시록적으로 전달하는 일이었습니다. 죽음을 앞둔 국외자 한 사람이 전하고 싶은 것은 하나의 모델을 통해서 전해질 수는 없을 테니까요.

 

그럼에도 우리는 베르펠의 작품에서 어떤 유토피아의 요소 내지 구성성분을 발견해낼 수 있습니다. 먼 미래의 부분적으로 찬란한 가상적인 삶은 전쟁과 인종 갈등을 극복하기 위해서 작가가 가상적으로 끌어낸 “오이토피아”의 상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다른 한편 『태어나지 않은 자들의 별』은 영원히 지속되는 찬란한 현실상이 아닙니다. 마지막 대목에 이르러 지하의 문명 세계는 여지없이 파괴되고, 십만 년 후의 미래에 살아남는 사람들은 기껏해야 소수의 “중겔” 족속에 불과합니다. 이러한 두 가지 특성과 관련하여 우리는 유토피아의 역사적 맥락에서 다음의 사항을 지적할 수 있습니다. 즉 작품은 미래의 천체 인간의 삶을 묘사하고 있는데, 이는 무엇보다도 인종 사이의 갈등, 반목, 외면 투쟁 등을 극복하고 죽음 이후의 삶의 가능성을 선취하게 하는 계기를 제공하고 있다고 말입니다.

 

참고 문헌

- 어수갑: 베를린에서. 18년 동안 부치지 못한 편지, 후마니스트 2004.

- 베르펠, 프란츠: 야코보스키와 대령, 김충완 역, 지만지 2013. 프란츠 베르펠: 거울인간, 김충완 역, 지만지 2014.

- Gadamer, Hans-Georg: Über leere und erfüllte Zeit, in: Die Frage martin Heideggers. Sitzungsberichte der Heidelberger Akademie der Wissenschaften, philos.-hist. Klasse, Jg 1969.

- Roland Innerhofer u. a. (hrsg.): Das Mögliche regieren: Gouvernmentalität in der Literatur- und Kulturanalyse, Wien 2011.

- Jens, Walter (hrsg.): Kindlers neues Literaturlexikon, Bd. 17, München 2001.

- Levinas, Emmanuel: Jensseits des Seins oder anders als Sein geschieht, Freiburg 1998.

- Meyer, Daniel: Vom mentalen Schlaraffenland zur Apokalypse, Franz Werfels utopischer Roman 『Stern der Ungeborenen』, in: Hans Esselborn (hrsg.) Utopie, Anti-Utopie und Science Fiction im deutschsprachigen Roman des 20. Jahrhunderts, Würzburg 2003.

- Paulsen, Wolfgang: Franz Werfel: Sein Weg in den Roman, Tübingen 1995.

- Torberg, Friedrich: Die Erben der Tante Jolesch, München 2008,,

- Wagener, Hans u. a. (hrsg.): Judentum im Leben und Werk von Franz Werfel, Oldenbourg 2011,

- Werfel, Franz: Stern der Ungeborenen: Ein Reiseroman, 6. Aufl. Frankfurt a. M. 2010.

- Zemsauer, Christian: Wortschöpfungen für Zukünftiges in Franz Werfels Stern der Ungeborenen, Diss., Wien 20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