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에서 계속됩니다.)
12. 기술의 발전과 문명사회 내의 비인간화의 경향: 물론 웰스가 설계한 미래 사회에서는 –헉슬리가 여러 끔찍한 장면을 통해서 묘사한 바 있듯이- 태아가 유전자 조작을 통해서 탄생하고 생체 실험실에서 자동적으로 배양되는 경우는 없습니다. 그렇지만 새로운 사회에서 살아가는 인간은 영혼을 상실한 채 살아가고 있습니다. 미래 사회의 인간들의 마음속에는 괴로움도, 동정심 내지는 사랑의 감정이 추호도 남아 있지 있습니다. 웰스의 이야기는 마지막에 이르러 부정적으로 끝납니다.
그레이엄은 오스트록에 대항하여 격렬하게 투쟁합니다. 제 아무리 초인적인 능력을 발휘하는 아프리카 용병들이라고 하더라도 주인공은 아랑곳하지 않습니다. 그레이엄은 수없이 달려드는 흑인 용병들에게 향하여 기관총을 발사하다가, 바닥없는 곳으로 추락하고 맙니다. 웰스는 기술과 산업을 철폐시킴으로써 세계에 질서를 부여하려고 시도하지는 않았습니다. 이를테면 카베와 벨러미는 과학 기술의 발전을 진보와 평행선상에 설정하여, 찬란한 미래의 시스템을 설계한 바 있습니다. 웰스는 이들과는 달리 과학 기술이 얼마든지 인간을 착취하고 비인간적인 삶을 영위하도록 작동될 수 있으며, 비인간화를 초래할 수 있다는 것을 분명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13. 법은 과연 자유를 수호하는 수단인가?: 지금까지 유토피아 사상가들은 법이 마치 자유를 수호하는 파수꾼과 같다고 이해하였습니다. 그렇지만 웰스는 이러한 견해를 전적으로 부정합니다. 지금까지 인간은 개개인의 자유를 억압하고 하나의 틀 속에 규정함으로써 수많은 가상적 살인을 차단시켜 왔습니다. 살인사건이 발생할 경우, 법은 이를 완강하고 근엄하게 처벌하였습니다. 이로써 국가를 다스리는 자들은 법을 통해서 범죄를 차단시키고 예방할 수 있다고 믿어 왔습니다. 과거 유토피아주의자들이 법을 중시한 까닭은 그것이 사람들이 범죄를 저지르지 않게 하는 하나의 예방의 효과를 지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웰스는 현대에 이르러 법 자체가 범행의 도구로 활용된다는 사실을 예리하게 간파합니다. 법은 20세기에 이르러 범죄의 수단으로 활용되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는 프란츠 카프카의 문학에서 상징적으로 묘사되고 있습니다.) 소시민들은 법을 악용하여 타인으로부터 이득을 챙기는가 하면, 거대한 국가를 다스리는 자는 법의 이름으로 체제 파괴적인 사람들을 얼마든지 억압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밖에 가진 자들은 실정법을 통하여 가지지 않은 자들의 노동력을 착취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말하자면 사회적 질서의 기준이 되는 법 자체가 범죄를 파생시키는 수단으로 변질된 것입니다. 웰스는 바로 이러한 비판에서 자신의 고유한 시각을 개진해나가고 있습니다.
14. 진정한 의미에서의 자유: 자유에 대한 웰스의 구상은 협소한 개념으로 드러납니다. 그는 보편적 틀에 의해서 자유를 제한하는 모든 처사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고 있습니다. 이를테면 과거의 이상적 공동체는 공동의 믿음, 공동의 관습 그리고 공동의 신앙을 고수하였습니다. 과거 사람들은 이러한 원칙 하에서 동일한 의복을 걸치고, 같이 식사하며, 거의 유사한 주택에 거주하며 살았습니다.
그렇지만 이러한 동일성의 원칙은 현대에 이르러 전체주의의 폭력으로 변질되었습니다. 사회는 과거의 계층 구도에서 탈피한 것 같지만, 실제에 있어서는 보이지 않는 방식으로 인간의 계층적 차이를 더욱 공고하게 만들었습니다. 부를 획득하고, 창의적 노동을 통해서 이득을 올리는 자들은 대체로 상류층 사람들에게 국한되었습니다. 창의적 노동은 국가에게 유리한 직업을 선택한 자들의 몫이 되었습니다. 시민 사회의 이념 그리고 마르크스의 사상을 도외시하더라도, 현대의 사회가 좋든 싫든 간에 엘리트 계층을 양산시켜 온 것은 사실입니다. 적어도 사회 내에서 특권층이 존재하는 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고유한 자유를 그들에게 뺏기기 마련입니다.
15. 기능 변화의 관점에서 고찰한 웰스의 유토피아: 친애하는 W, 지금까지 우리는 웰스의 소설 두 편을 살펴보았습니다. 웰스가 쓴 일련의 작품들은 유토피아의 역사에서 어떤 새로운 특징을 분명하게 보여줍니다. 그것은 현실 영역의 확장 그리고 나아가 유토피아의 기능 변화와 관련된 사항입니다. 20세기 초에 이르러 세계의 관점은 더 이상 중동, 유럽과 같은 서구가 아니라, 전-지구적인 현실을 바탕으로 확장되었습니다.
고대 사람들이 그리스 혹은 이탈리아를 세계 전체로 이해했다면, 현대인들은 지구 전체를 염두에 두게 되었으며, 우주를 상상하게 되었습니다. 또 한 가지 언급해야 할 사항은 국가, 법 그리고 학문이 20세기에 이르러 과도한 권능을 지니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르네상스 시대에 중요한 사항으로 간주되던 이상적인 국가, 바람직한 법 그리고 사회에 기여하는 학문 등은 마치 “무대에 출현한 신 Deus ex machina”처럼 현대에 이르러 더욱 막강한 힘을 지닌 채 오히려 개개인의 자유를 옥죄이게 되었습니다.
첫째로 국가는 과거에는 인민의 행복과 안녕을 보장해주었지만, 20세기에 이르러 거대한 전체주의의 폭력으로 돌변해서 나타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둘째로 개개인의 권리와 사유권을 보장해주던 수단으로 작용하던 법의 기능 또한 백팔십도 돌변하여, 일반 사람들의 일상을 규제하고 그들의 자유를 차단시키는 역할을 담당하게 되었습니다. 셋째로 자연과학을 포함한 학문 역시 인간의 평화와 행복에 기여하는 게 아니라, 수많은 사람들을 전쟁터로 몰아가게 하고, 더욱 발전된 첨단 무기의 희생양이 되게 하였습니다. 웰스의 문학은 바로 이러한 가치 전도된 국가, 법 그리고 학문의 기능을 정확하게 꿰뚫고 있습니다.
이와 병행하여 우리는 웰스의 문학에 반영된 유토피아의 변화된 기능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과거의 유토피아는 더 나은 바람직한 사회적 삶의 설계에 해당한다면, 과거의 유토피아에서 긍정적으로 수용되었던 학문, 법 그리고 국가는 20세기 초의 시점에 이르러 개개인의 자유를 구속하고 억압하는 어떤 끔찍한 기관 내지 단체로 변질되었던 것입니다. 웰스의 이러한 시각에서 우리는 차제에 출현할 디스토피아의 사상적 배아를 고찰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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