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 현대영문헌

서로박: 웰스의 두 편의 소설 (2)

필자 (匹子) 2023. 4. 1. 09:18

(앞에서 계속됩니다.)

 

6. 그레이엄 잠에서 깨어나다.: 웰스의 다른 소설, 『잠자는 자가 깨어난다면』은 결코 과학 기술에 바탕을 둔 진보적 낙관주의를 칭송하지 않습니다. 물론 그가 과학 기술에 의해서 더욱 발전된 문명사회의 어떤 가능성을 언급하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렇지만 이 작품은 발전된 과학 기술의 남용이 얼마나 끔찍한 악영향을 끼치고 있는가? 하는 문제를 지적하고 있습니다. 특히 이를 자신의 이득을 위해 활용하려는 자들은 다름 아니라 권력을 탐하는 국가 체제입니다.

 

벨러미와 모리스의 작품에 등장하는 주인공과 마찬가지로 웰스 소설의 주인공, 그레이엄은 깊은 잠에 빠져 들어갑니다. 그의 몸은 경직되어 꼼짝도 하지 않습니다. 약 200년의 세월이 지난 다음에 그레이엄은 잠에서 깨어납니다. 자신이 과거에 신탁회사에 맡겨둔 투자 금액은 수천 배로 늘어나 있습니다. 결국에 그는 다시 깨어난 세계에서 자신의 뜻을 실천하며 살아가는 존재가 됩니다.

 

7. 소설의 줄거리, 정치적 사회적 전복의 과정: 그레이엄이 조우한 새로운 시대는 사회적으로 그리고 정치적으로 불안하기 짝이 없습니다. 국가를 다스리는 최고 평의회는 엄청난 재력을 자랑하는 인간이 오랜 잠에서 깨어났다는 소식에 전혀 개의치 않습니다. 그들은 그레이엄에 관한 뉴스 그리고 그에 관한 모든 정보들을 알려고도 들으려고도 하지 않습니다. 어느 날 오스트록이라는 사내는 그레이엄을 찾아옵니다. 그는 혁명운동가로서 착취당하는 인민의 편에서 투쟁하고 있었습니다.

 

오스트록은 인민의 희망을 위해서 자신을 도와달라고 주인공에게 사정합니다. 최고 평의회는 그레이엄을 위험인물로 간주하고 그를 감옥에 수감시킵니다. 마지막에 이르러 그레이엄은 사형 선고를 받게 되는 그날 밤, 혁명당의 사람들은 정부 소속의 편안한 실내 형무소에 난입하여, 그레이엄을 구출해냅니다. 주인공이 이들과 함께 도주하는 동안에 시민전쟁이 발발합니다. 끔찍한 전투로 인하여 목숨을 잃는 사람은 수천 명에 달할 정도였습니다. 결국 오스트록의 당은 승리를 구가합니다.

 

8. 그레이엄, 새로운 사회에서 전혀 다른 삶을 살아가다.: 19세기에 잠들었다가 현대의 과학 기술의 사회에 깨어난 주인공은 처음에는 첨단 과학 기술이 이룩해낸 성과에 대해 감탄을 금치 못합니다. 다양한 모습으로 개발된 비행기들, 기계로 작동되는 선로 위를 달리는 전차들, 텔레비전 수상기, 라디오들은 그저 놀랍기만 합니다. 이를테면 새로운 재봉틀 기계는 치수에 맞는 옷 한 벌을 불과 몇 분 내에 생산해냅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그레이엄이 19세기에 런던의 행정을 담당하는 공위 공무원으로 일했다는 사실입니다. 이전의 시대에 그는 끔찍한 살육과 폭력의 화신인 아프리카 군대를 영국으로 데리고 온 적이 있었습니다. 이는 런던의 시가지에서 데모하는 노동자들을 무참하게 진압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런데 다시 깨어난 세상에서 그는 다른 편에 서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그레이엄은 힘들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위해서 투쟁해야 하는 형국에 처하게 됩니다. 오스트록은 주인공에게 이 모든 정황을 알려주면서, 주위 사람들에게 그레이엄을 “세계의 주인”으로 소개합니다. 나아가 그레이엄은 아름다운 여자 헬렌과 조우합니다. 그미는 주인공에게 어떤 암시를 던져줍니다. 즉 오스트록이 자신의 권력을 키우기 위해서 힘없고 착취당하는 인민들을 교묘하게 이용하고 있다는 게 바로 그 암시였습니다. 그레이엄은 자신이 힘없고 억압당하는 인민들을 위해서 일할지 한 번도 생각한 적이 없었습니다. 그렇지만 인민의 비참한 삶의 상태는 반드시 개선되어야 한다고 믿습니다.

 

 

9. 현대 기술 사회의 암울한 이면: 그레이엄은 현대의 첨단 과학 기술의 사회의 어두운 면을 접하게 됩니다. 고통스럽게 일하는 노동자들은 제대로 먹지 못해 피골이 상접한 얼굴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들은 푸른색 유니폼을 입고 일하는데, 오렌지 색 유니폼을 입고 있는 사람들에 의해서 감시감독당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노동자들이 강력한 근육을 지녔는가? 하는 물음에 있지 않습니다. 노동자들은 산업의 혁명이 지난 이후에는 기계의 부품 내지 기계의 일부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공장은 햇빛이 들지 않는 곳에 위치하며, 노동의 현실은 참으로 열악합니다.

 

노동자들은 생활하기 어려울 정도로 작은 임금을 받고 있으며, 현대 사회에서 통용되는 유일한 가치 기준은 바로 돈입니다. 돈은 과거에 존재했던 모든 가치들을 온통 무의미하게 만들어놓았습니다. 특권층 사람들이 거주하고 있는 찬란한 건물은 미적 이상을 추구하는 그레이엄의 눈에는 황량한 삶의 가치를 그대로 드러내고 있습니다. 이에 비해서 대도시의 공공연한 건물은 화려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식당 건물, 무도회장, 카지노 시설 그리고 찬란한 빛을 발하고 있는 홍등가 등은 국가에 의해서 조직화되어 있습니다.

 

10. 여성 해방, 유아시설: 그레이엄은 우연히 유리로 덮여 있는 탁아소를 바라보게 되는데, 모골이 송연하게 되는 것을 느낍니다. 아이들은 그곳에 모여 놀고 있는데, 탁아소의 모습은 마치 과거 빅토리아 시대의 감옥을 연상시키고 있습니다. 그곳에는 복잡한 자동 기구들이 설치되어 있습니다. 그것들은 적정 온도라든가 습기를 분명하게 규정하고 있는데, 조금이라도 주위 여건이 규정에 어긋나게 되면, 경고 소리가 올려 퍼지게 됩니다. 여성들은 경제적으로 그리고 성적으로 남자로부터 독립해 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각자 자신의 돈을 벌면서 살아갑니다.

 

그렇지만 가족의 의미는 이제 사라진 것 같아 보입니다. 여성들은 아이를 탁아소에 맡기고 일합니다. 어느 의사는 주인공에게 인형으로 제조된 유모를 보여주며, 인형이 어떻게 팔과 다리를 움직여서, 젖을 아이에게 물리는지 보여줍니다. 말하자면 젖을 먹이는 인형이 개발된 것입니다. 이로써 어머니와 자식의 따뜻한 인간관계는 깨어지고, 아이들은 아무런 표정 없는 기계에 의해서 보살펴집니다. 그레이엄을 안내하는 사람은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중산층 여성들은 아이 한 명을 데리고 사는 것을 멋지다고 생각해요. 노동자의 경우는 이와 다르지요. 그들은 자식들이 많은 것을 자랑스러워하고, 자주 탁아소를 방문한답니다.”

 

11. 불필요한 노인들. 달면 삼키고 쓰면 내뱉는 껌 같은 존재가 바로 인간인가? 새로운 세계의 산업 도시에는 젊은 사람들의 모습이 많이 눈에 띕니다. 나이든 사람들의 삶은 이전처럼 그렇게 편안하지 않습니다. 물론 나이든 사람들이 부자일 경우는 사정이 다릅니다. 이곳의 사람들은 스스로 죽기를 원하는 노인들을 위한 안락사의 시설을 갖추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노인들이 더 이상 살고 싶지 않을 경우 얼마든지 안락사의 시설을 찾아서 편안하게 세상을 하직할 수 있습니다.

 

새로운 세계는 참으로 기괴하기 짝이 없습니다. 옛날에는 부모가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면, 쉴 곳조차 변변하지 않았는데, 지금의 부모들은 첨단 기계를 도입하여 아이들을 완벽하게 돌보게 하고 있습니다. 인간이 기능인으로서 더 이상 필요하지 않으면, 안락사 시설을 통해서 사망하게 조처하고 있습니다. 식량이 부족하던 선조들은 고려장이라는 풍습을 통하여 노인들을 안락사 시켰는데, 발전된 새로운 사회는 과학 기구들을 활용하여 사회적으로 불필요한 인간군이라는 이유로 노인들을 안락사 시키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힘들지 않게 재화를 창출하여 풍요로움을 이룩했지만, 이러한 풍요로움은 참으로 부도덕하게 활용되고 있습니다. 바로 이 순간 그레이엄은 쓰라린 미소를 짓습니다.

 

(계속 이어집니다.)